<실종>은 핑퐁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수평으로 마주 본 두 사람은 쉴 새 없이 공수를 반복한다. 네트를 사이에 두고 랠리가 숨 가쁘게 이어지는 동안, 어느 편이 승리를 차지할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구기 중에서 가장 작고 가벼운 공을 사용하는 탁구. 1초에 평균 100회를 회전하는 이 빠른 공은 어디로 튈지 모르기에 무시무시하고, 손에 쥐면 금세 모습을 감추기에 의뭉스럽다.
<실종>의 인물들은 맨몸에 라켓 하나 쥐고서 경기에 오른 선수와 같다. 저마다 전략을 숨긴 채 시합에 나선 후, 준비해온 무기를 하나씩 꺼내 보인다. 경기에서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 또한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인정받기를 갈망하고, 누군가는 진실에 다가가려 애쓴다. 인물마다 승리를 정의하는 기준이 다르기에, 영화가 관심을 집중하는 대상과 가치에도 차이가 생긴다. 덕분에 <실종>은 살인과 추격이라는 익숙한 플롯을 전개해나가지만, 거듭 새로운 각도에서 판을 펼쳐 놓음으로써 예상치 못한 긴장을 선사한다.
어릴 적부터 엄마를 따라 탁구를 쳤던 소녀 카에데(이토 아오이), 그러나 루게릭병을 앓던 엄마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 카에데는 아빠 사토시(사토 지로)와 단둘이 사는 생활에 적응하려 노력하지만, 엄마의 부재는 부녀 모두에게 메울 수 없는 구멍으로 남아 있다. 한때 탁구 클럽을 운영했던 사토시는 이제 일용직을 전전하는 신세. 카에데는 걱정과 짜증이 섞인 눈으로 사토시를 바라본다. 언젠가부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사토시다. “아빠가 오늘 그 녀석을 봤어.”
연쇄살인범으로 지명 수배자가 된 ‘무명씨’ 테루미(시미즈 히로야)를 목격했다며, 사토시는 현상금 300만 엔에 욕심을 드러낸다. 다음 날 아침, 사토시는 갑작스레 자취를 감춘다. ‘실종’을 직감한 카에데는 아빠를 찾아 헤매지만, 경찰은 생활고에 시달리는 중년 남성의 행방불명을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결국 카에데는 동급생과 함께 사토시의 행적을 쫓기 시작한다. 인력 사무소에서 아빠가 일하는 공사 현장 주소를 알아낸 카에데. 그곳에는 아빠가 아니라, 아빠와 똑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젊은 남자가 있다. 전날 밤, 사토시가 말했던 범죄자처럼 그도 손톱을 물어뜯는다.
<실종>은 기승전결 구조를 따르되, 이야기를 시작한 후에는 과거로 시점을 옮긴다. 실종 사건 3개월 전으로 가서 테루미의 살인 행각을 담고, 그 다음에는 13개월 전에 이뤄진 사토시와 테루미의 첫 만남을 관찰한다. 살인을 구원이라 칭하는 테루미, 욕망과 윤리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토시, 그리고 그들을 추적하여 얽히고설킨 관계에 접근하는 카에데. 이처럼 각 인물이 현재에 다다르는 과정을 뒤쫓으며, 영화는 점차 사건의 본질로 나아간다.
사토시의 실종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을 구성하는 일부분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가?’ 질문하듯 영화는 화자를 바꾸고, 동일한 상황을 다른 각도에서 비춘다. 이때 몰입감과 효율, 어느 쪽도 놓치지 않는 촬영이 돋보인다. 시점을 달리하여 같은 장면을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카메라 위치를 바꾸며 시야에 차이를 만들어낸다. 그토록 찾아 헤매는 사람이 알고 보니 바로 등 뒤에 있다거나, 하반신을 먼저 보여준 후 나중에야 상반신까지 드러내는 식이다. 영화는 정보를 쪼개며 반전의 쾌감을 주는 동시에, 제한된 공간을 풍성하게 사용하는 데 성공한다.
인물들은 끝까지 핑퐁을 지속한다. 테루미의 원칙이 사토시의 욕망을 부추기면, 사토시의 욕망은 테루미의 원칙을 무너트린다. 영화 말미, 사토시의 비밀을 마주한 카에데는 진짜 라켓을 손에 쥐고 탁구 테이블에 선다. 부녀는 땀을 뻘뻘 흘리며, 한참이나 랠리를 이어간다. 게임은 어떻게 종료될까. 휘슬이 울리듯 먼 곳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올 때, 스릴 넘치는 추격과 사회의 사각지대를 조명하는 블랙코미디가 가득했던 영화에는 가슴 뭉클한 순간마저 스며든다.
<실종>을 연출한 가타야마 신조는 일본에서 주목받는 신예로, 봉준호 감독의 <도쿄!>(2008), <마더>(2009)에서 조감독으로 활동한 바 있다. <실종>은 데뷔작 <시블링스 오프 더 케이프>(2018)와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삼는 드라마 <방황하는 칼날>(2021) 이후 두 번째로 선보이는 장편영화다. 개성 짙은 연기로 유명한 사토 지로는 순박함과 비열함을 변화무쌍하게 오가고, 시미즈 히로야는 예민하고 음울한 눈빛을 강조하며 새로운 유형의 살인자를 구현한다. <행복 목욕탕>(나카노 료타, 2016) 이후 오랜만에 극 중심에 선 이토 아오이는 누구보다 강력하고 뜨거운 에너지로 화면을 장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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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차한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