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조동필로 불리는 조던 필은 원래 코미디언이었다. 세컨 시티라는 유명한 코미디 극단 출신으로, 알 사람은 알 법한 "자기야, 인터넷 기록이 왜 자꾸 지워져" 영상의 주인공이다. 코미디언으로서 좋은 성과를 거뒀기에 원래부터 코미디언이 꿈이었을 거라 생각할 수 있으나 그건 아니다. 조던 필은 어릴 적부터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지만 감독이 되기 전에 코미디언을 먼저 선택했다고. 그래서인지 그의 필모그래피 작품을 들여다보면 뛰어난 통찰력과 특유의 유머감각이 곳곳에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조던 필이 연출하는 블랙코미디는 예리하고 풍부하다.

조던 필

조던 필은 과거 한 인터뷰에서 "내 영화에 백인 남성을 주연으로 캐스팅하지 않겠"다고 발언한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백인 남성을 싫어하기보다는 이미 할리우드 영화 주연으로 많이 출연했기 때문이라고. 실제로 대부분의 할리우드 영화는 백인 남성을 주인공으로 두고 있는 상황이며 그의 신념은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다. 조던 필에게 많은 상을 안겨준 작품 <겟 아웃> 이외에도 훌륭한 필모그래피가 많다. 그가 참여한 다섯 작품을 하나하나 훑어보자.


<키아누>

2016

<키아누>

영화 <키아누>는 조던 필이 처음으로 각본과 제작, 주연까지 참여한 영화다. 코미디 영화이다 보니 당연하게도 내용은 조금 황당하다. 사촌지간인 '클라레스'와 '렐'이 소중한 반려묘 '키아누'를 도둑맞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키아누'를 훔쳐 간 범인은 바로 갱단. '클라레스'와 '렐'은 고양이를 되찾아오기 위해 킬러 행세를 한 채 갱단을 찾아간다. 하지만 갱단은 순순히 돌려주지 않는데 그 이유는 바로 고양이의 매력에 단단히 빠져버렸기 때문. 고양이 '키아누'를 두고 둘의 싸움이 전쟁 수준으로 거대해진다. 이 영화의 포인트는 당연하게도 새끼 고양이 '키아누'다. 왜 고양이 때문에 저렇게까지 난리인지 단번에 이해가 될 정도로 사랑스럽고 귀엽다. 조던 필은 이 영화에서 영화배우이자 코미디언인 키건 마이클 키와 함께 공동 주연을 맡아 유쾌하고도 자연스러운 케미를 자아냈다.


<블랙클랜스맨>

2018

<블랙클랜스맨>

<블랙클랜스맨>은 <겟 아웃>이 흥행에 성공한 이후로, 조던 필 감독이 처음 제작에 참여한 영화다. 할리우드의 유명 감독 스파이크 리가 연출한 <블랙클랜스맨>은 백인 우월 단체 KKK단에 잠입하여 비밀정보를 수집한 흑인 형사 론 스툴워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인종차별이 팽배했던 70년대엔 경찰 내부에서도 흑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았다. 하찮고 귀찮은 사건만 배정시키고 동료들에게 대놓고 만만히 대해졌다고. 주인공 '론'은 굴하지 않고 스스로 KKK단에 들어가 정보를 빼오기를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KKK단에 가입하기 위해 전화 통화로 본인이 백인 우월주의자라고 거짓말한다. 분명 목소리만 들어도 흑인과 백인을 구분할 줄 안다고 했던 KKK단의 지부장 '데이비드 듀크'는 끝끝내 진실을 알아채지 못하고 '론'은 이를 조롱한다. 백인 우월주의자의 알량한 밑바닥을 밝혀낸 것.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지금 시점으로 넘어와 트럼프의 기자회견이 영화 속에 흘러나온다. 스파이크 리 감독은 현재 인종차별이 합법처럼 여겨지고 있다는 사실을 매섭게 꼬집는다. 과거의 아픈 기억이 아니라 지금 당장 스크린 너머에서 일어나는 문제라는 걸 관객들에게 정확히 짚어준 것이다. 트럼프의 지시하에 KKK단은 목소리를 얻었고 그 잔재가 아직까지도 남아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블랙클랜스맨>은 2018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선 개봉하지 않아 잘 알려지지 않았다.


<어스>

2019

<어스>

<어스>는 조던 필의 두 번째 스릴러 영화로, 미국 정부가 땅속에 대규모의 복제인간 실험 시설을 만들었다는 설정에서 시작된다. 복제인간은 양분화되어버린 미국 사회를 의미한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이민정책 때문에 인종차별이 만연한 시점이었기에 <어스>의 이 설정은 미국 대중들의 많은 공감을 얻었다. 작품 전체에 사회비판적인 상징이 깔려있으며 탄탄한 복선과 비유가 구조적으로 잘 짜인 게 장점인 영화. <어스>가 개봉한 후, 어느 한 인터뷰에서 조던 필 감독은 도널드 트럼프를 향해 "진짜 괴물은 밖이 아니라 안에 있다는 걸 깨닫기 바란다"고 했다. 괴물을 타자화하여 보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라는 말처럼 들리지 않나. 영화의 의미나 상징에 대한 해석은 개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어스>는 현재의 사회적인 문제를 짚어내고 있어 더욱 강렬하다. 외화 스릴러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만 147만 명의 관객이 동원될 만큼 큰 호응을 받았다.


<캔디맨>

2021

<캔디맨>

1992년에 제작되었던 원조 <캔디맨>이 리부트 되어 돌아왔다. <캔디맨>은 거울을 마주한 채 '캔디맨'을 다섯 번 외치면 캔디맨의 손에 죽게 된다는 도시괴담을 바탕으로 창작된 공포 영화다. 유치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미 3편까지 제작된 슬래셔 영화계의 클래식 중의 클래식. 이 작품 또한 혐오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캔디맨'은 잘린 팔에 후크를 한 흑인 남성으로, 백인 여성과 사랑에 빠졌다는 이유로 장인어른에게 살인을 당한 인종차별 피해자다. 원작 <캔디맨>은 도시 괴담에 대해 부정하던 '헬렌'이 '캔디맨'을 만나 벌어지게 되는 이야기이며 리부트 된 <캔디맨>도 원작의 세계관과 이어져있다. 조던 필은 원래 연출까지 맡을 생각이었지만 이후 차기작의 스케줄 문제 등으로 공동 각본과 제작만 맡았다고 한다. 기존의 작품은 고전적인 슬래셔 영화로 볼 수 있지만 2022년 버전의 <캔디맨>은 뿌리 깊은 인종차별의 역사에 중점을 뒀다. 깊이 있는 조던 필의 각본 실력과 니아 다코스타의 감각적인 영상 기법의 조합이 신선하면서도 조화롭다. 니아 다코스타는 현재 캡틴 마블의 속편 <더 마블스> 감독을 맡았다.


<놉>

2022

<놉>

현재 조던 필 감독은 자신이 쓰고 연출한 영화 <놉> 개봉을 앞두고 있다. <놉>은 캘리포니아의 한 농장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로, 하늘에서 생겨난 기이한 형상에 의해 일어나는 일을 중심으로 전개될 예정이다. 예고편의 초반까지는 경쾌한 호흡으로 진행되다가 중간부터 분위기가 단번에 전환되어 스릴러 영화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아직 자세한 줄거리가 공개되지 않았지만 추측하기로는 외계인 소재의 호러 영화일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사막과 농장과 말, 그리고 외계인이라니. 벌써 흥미롭지 않은가. 주연배우로는 <겟 아웃>의 다니엘 칼루야와 <미나리>의 스티븐 연, <허슬러>의 케케 파머가 출연한다. 다니엘 칼루야는 그전에 함께 작품을 한 적 있기에 익숙하지만 조던 필이 연출하는 스티븐 연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된다. 개봉일은 2022년 8월 17일. <놉>은 여름에 찾아올 예정이다.


씨네플레이 김다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