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실력을 가졌지만 통제 불능인 해군 전투기 조종사 피트 미첼 (aka.매버릭 - 톰 크루즈 분). 그는 최고의 해군 전투기 조종사 양성소인 탑건에서 경쟁과 우정,사랑을 통해 성장한다. 이것은 <탑건> (1986)의 스토리가 아니라 속편, <탑건 : 매버릭> (2022, 코로나로 인해 개봉이 2년 연기됐다)의 스토리다. 전편과 닮은 구석이 아주 많은 이 속편은 매버릭이 전편에서부터 가졌던 트라우마를 떠나보내는 살풀이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면에서 2편의 감동은 조금 아이러니하다. 왜 그런 것인지, 1편의 배경부터 차근차근 살펴보자.
전후부터 X세대의 미국까지
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은 축제 분위기였다. 전쟁에서 승리한 기쁨에 도취한 미국인들은 경제, 사회, 문화를 발전시켜 전성기를 이룩했다. 대공황과 전쟁을 지낸 기성 세대들은 안정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생각했다. 잔디밭이 딸린 교외의 집에서 출퇴근하며 주말에는 처자식과 휴식을 취하는일상이 그들에게는 성공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낳은 베이비 부머세대의 생각은 달랐다. 엑스세대(전후 ~ 65년생)의 등장이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의 엑스X 표시로 대체되는 이 세대는 부모 세대와는 확연히 달랐다. 열심히 사회운동에 가담한다고 해서 삶이 바뀌는 것을 겪은 것도 아니고, 워터게이트의 추악함을 경험했으며, 명분없이 참여한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라는 강자가 어떤 행패를 부리는지 목도했다. 그 시선은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1976), <디어헌터>(1978), <지옥의 묵시록>(1979), <람보>(1983), <7월 4일생>(1989), <더 포스트>(2017) 등의 영화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윽고 히피의 탄생과 함께 곳곳에서 반전시위가 일어났으며 큰 이데올로기 보다는 당장 현재를 즐기자는 삶의 방식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공동체의 가치를 추구하는 기성세대와는 달리 개인의 평안과 감각을 중요시했고 스스로에 대한 존재에 대해 집중하며 개인주의가 각광받기 시작했다.이런 시대의 흐름을 잘 읽은 제작자가 있었으니, 돈 심슨과 제리 브룩하이머였다.
블록버스터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제작자
그들은 <플래시댄스> (1983)를 시작으로 <탑건>을 지나 <폭풍의 질주> (1990) 뿐만 아니라 21세기에 들어서 <코요테 어글리> (2000)까지 제작하며 젊은 세대에 대한 관심을 늦추지 않았다. (돈 심슨은 96년에 사망함으로써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1998) 까지만 공동작업을 했다) 그리고 그들의 기세가 보수적인 미국사회가 입었던 불명예를 원복하기 위한 몸부림과 만나 <탑건>이 탄생했다. 국가와 해군에서는 자존심 회복을 위해 기꺼이 전투기를 띄웠으며 적극적으로 촬영에 협조했다. 현란한 항공 촬영과 최고의 이미지를 위해 광고계에서 이미 두각을 드러낸 토니 스콧 감독이 고용되었으며, 당대 수컷 중 최고의 매력을 뿜는 톰 크루즈가 웃통을 벗고 비치 발리볼을 했다. 결과는 그 해 최고의 흥행으로 증명됐다.
<탑건>이 보여준 가치
앞서 말한바와 같이 엑스세대는 특정 가치를 추구하진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을 대표하는 영화에서 모두가 가치를 인정했다. 주인공인 매버릭은 너무 뛰어난 전투기 조종실력을 가졌지만 자신의 감각을 과신한 덕에 메뉴얼을 요구하는 주변인과 갈등한다. 실제로 매버릭 Maverick이라는 단어는 독불장군, 개인주의자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반면 그의 경쟁자인 아이스맨 Ice man은 (발 킬머 분) 이름 그대로 냉철하며 메뉴얼을 충실하게 이행한다. 이야기는 우여곡절 끝에 매버릭의 성공을 보여준다. 고리타분한 조직 뿐만 아니라, 아이스맨의 거센 성정을 넘어 당시에 필요한 가치에 대한 역설을 던진 것이다. 엑스세대들은 톰 크루즈에 열광했고, 그가 입었던 항공 점퍼와 레이밴 에비에이터 선글라스는 모든이의 옷장에 자리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조직에 충성하는 팀플레이보다 현장실무자의 상황판단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인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었다. 영화의 매버릭의 모습은 그런 시대의 트렌드와도 딱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그후, 속편 <탑건:매버릭>
매버릭이 군에 몸담은 지도 어언 40년. 그러나 그 특출난 개인주의로 만년 대령에 머무르는 미첼은 다시 한 번 탑건으로 발령난다. 그런데 그 대원들 중에 사망한 그의 동료 구스의 아들이 있다. 매버릭은 구스의 아내의 부탁을 받아 구스의 아들(루스터 - 마일즈 텔러 분)만큼은 전투기에 태우지 않으려 그의 사관학교 지원을 반려시킨 바 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자신을 원망하는 루스터를 최고의 조종사로 만들어야만 한다.
재미있는 것은, 전작에서 뻣뻣한 기성세대의 가치들과 싸워왔던 매버릭이 이번엔 제대로 꼰대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영화는 아날로그를 마스터한 매버릭이 무인드론의 시대라는 위기를 맞이하며 시작한다. 탑건으로 옮겨간 뒤에도 개성 강한 조종사들을 상대하며 지나간 사람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매버릭은 그들의 동료애를 고취시키고 한계를 돌파시킨다. 전작은 세대교체의 느낌이 강했다면, 이번에는 엑스세대와 밀레니얼세대가 서로를 다독이며 가치를 주고 받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관람전에 복습을 해야할까?
1편에 대한 오마주적 요소가 강하다. 오프닝에서 탑건이란 장소가 무엇인지 설명해주는데, 전작과 똑같은 내용과 폰트로 보여주며 2편의 정체성을 알려준다. 그리고 구스의 아들인 루스터가 아버지에 이어 이번에도 피아노를 연주하며 'great balls of fire'를 열창한다. 이를 보는 매버릭의 시점쇼트는 전작의 팬이라면 누구나 아련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36년전에 비치발리볼을 했다면, 이번엔 전투럭비가 있다. 다들 웨이트로 단련된 스포츠 모델같은 몸매를 자랑하니 맘껏 즐기시라.
매버릭이 구스에게 가지는 마음의 빚을 갚는 일종의 살풀이 요소가 있는데, 이 역시 원작 팬들에게 선물과도 같은 감동을 제공한다. 뿐만아니라 예전엔 있었지만 지금은 없는 제작자인 돈 심슨과 연출자인 토니 스콧에 대한 언급또한 놓치지 않는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과거의 많은 요소를 끌어왔는데, 마음을 울리는 가치는 역설적 대사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매버릭은 구스와 루스터에 대한 양가적 감정으로 혼란스럽다. 이에 아이스맨은 '과거는 이만 보내줄 때가 됐다' It's time to let go 며 위안을 전한다. 조언을 받아들이는 매버릭을 연기하는 톰을 보면서 <그랜토리노> (2008)의 노인이 생각났다. 이미 굉장히 연기를 잘하는 배우지만, 그 깊이에 감명이 인다.
전작을 보지 않았다면 속편을 보기전에 복습을 해야 할까? 그냥 속편을 보러가라고 권하고 싶다. 일단 플래시 백등으로 충분히 설명해주며, 루스터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장면에서 친절하게 심리적 우위관계를 연출해 놓았다. 게다가 36년간 켜켜이 쌓인 추억의 중량감은 급하게 복습한다고 해서 알 방도가 생기진 않을 것이다.
톰 크루즈, 아! 톰 크루즈
CG로 범벅된 할리웃의 액션에 지친 요즘, 실제 촬영한 리얼 액션이 제공하는 극한의 해상도는 정말 반갑다. 아이맥스와 일반관 두 군데서 관람을 했는데, 아쉽게도 일반관에서는 전투 장면의 스릴이 반 정도 밖에 구현되지 않는다. 반드시 가까운 아이맥스 극장에서 관람할 것을 추천한다.
여기엔 제작까지 참여한 톰 크루즈의 판단 또한 한 몫한다. 코로나로 인하여 개봉이 2년여 미뤄졌지만 OTT 플랫폼에 넘기지 않았다. 온전한 체험으로써의 요소를 버리지 않은 판단이 고맙기까지하다. 제작-배급-상영-관객 4박자가 만들어내는 온연한 영화가 존재하는 한 분명 톰 크루즈, 그의 시대다.
무인드론이 파일럿을 대체하듯이, 언젠가는 기계가 이런 액션을 대체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극중의 대사 '아직은 아냐' Not today 처럼 아직까진 분명 톰 크루즈, 그의 시대다.
*p.s. 아이스맨 역할의 발 킬머는 2015년에 구강암 진단을 받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상태에서 속편에 출연했다. 이 사실을 알고 그가 등장하는 씬을 보면 감동이 배가될 것이다.
프리랜서 막노동꾼 이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