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먹은 것은 반드시 이루고야 마는 소녀 유미(수지 분), 그녀의 포부는 원대하지만 부모는 가난하고 그 가난은 계속 발목을 잡는다. 고등학생이 된 유미는 학교선생님과 연애를 시작하지만 그의 거짓말로 인해 쫓겨나듯 서울로 전학을 가게된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대학 시험까지 낙방하고 만다. 그러다 부모에게 명문여대에 합격했다는 거짓말을 하게 되고, 동아리까지 가입하게 되면서 외로웠던 타지 생활에 활력이 생기기 시작한다. 동아리 사람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유미는 신상에 대해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홍천은 친척집이고 실은 사업하는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서 생활하다 왔어요' 본격적인 거짓말로 받게 되는 관심이 그녀는 싫지 않다.
단지...그 거짓이 진짜였으면 더 좋았을텐데.
본능과 도덕 사이의 시퍼런 우울
드라마 <안나>는 '사람은 혼자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씁니다' 라는 유미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한다. 그것은 드라마의 원작 소설인 '친밀한 이방인'의 인상적인 구절과도 닮아있다.
우리가 질서를 연기하는 한, 진짜 삶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그렇다면 진짜 삶은 어디 있는가?
그것은 인생의 마지막에서야 밝혀질 대목이다. 모든 걸 다 잃어버린 후, 폐허가 된 길목에서
관객은 <안나>를 보면서 주인공인 유미를 따라간다. 다른 사건의 레이어가 치고 들어와서 긴장이 높아지거나, 사건을 예견하는 데 있어서 주인공이 제공하는 시점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지만, 그만큼 밀도는 높아진다. 우리는 그 시야만을 공유받으며 인물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거짓말에 관한 나레이션으로 시작하여 삶이 꽃피기 시작하는 시기도 허구로 꾸민 유미라는 인물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녀의 마지막은 폐허가 될까, 혹은 축복이 될까?
다년간의 고생, 그리고 전환기
이윽고 거짓 대학생 신분을 들켜버린 유미는 정혼자와의 결혼이 파투나 버린다. 이후 7년 넘게 알바생활을 전전한 끝에 초호화 가구 판매상의 집에 취직하지만 사장의 딸 이현주(정은채 분)의 몸종같은 신분일 뿐이다. 우연한 기회에 현주의 방에 들어가게 된 유미는 아름다운 전망을 가진 방 풍경에 심취한다. 그리고 마침 신데렐라를 위한 구두마냥 자기 발에 딱 맞는 현주의 예쁜 구두까지 신어보게 된다.
현주의 비위를 맞추며 지낸지 3년. 사적이고 소소한 일처리까지 모두 도맡아 처리하던 유미는, 어느날 현주의 졸업장과 여권을 들고 달아난다. 여권에 적힌 이름은 안나(Anna)이고 전공은 마침 유미가 관심을 가지던 미술분야다. 유미는 그 이력서를 자기것인냥 속이고 예일대에서 아시아 미술사를 전공한 재원 '이안나'로서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아이비리그의 미대입시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제자를 덜컥 예일대에 합격시켜버린다.
그렇게, 그녀의 삶은 제법 승승장구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극중 위조한 신분이 예일대 졸업생인 것은 단지 우연일까? 여기서 흥미로운 연결거리가 보인다. 2007년 경, 허위 학력 파문과 청와대 고위층과의 스캔들로 대통령까지 국민사과를 했던 헤프닝의 주인공, 신정아가 떠올랐다.
대한민국에 학력 확인 열풍을 가져온 스캔들
97년 금호미술관에는 미국에서 회화를 전공했다는 한 여자가 찾아와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당시 수석 큐레이터가 원장과의 다툼으로 사직했기 때문에 그녀는 금새 정식 큐레이터의 자리를 꿰차게 된다. 그렇게 미술계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던 신정아는, 당시의 기획예산처 차관과 사랑에 빠진다. 차관의 채근에 동국대학교는 그녀를 교수로 채용했고, 최연소 광주비엔날레의 총감독이 되었으며, 미술관에는 의문의 지원이 쏟아졌다. 그러나 박사과정 학위가 허위로 밝혀지면서 그녀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된다. 지원금은 횡령의혹에 시달리고, 문서를 위조했으며, 권력을 남용했다. 이때 그녀가 인터넷으로 이수했다고 주장하던 박사학위가 바로 예일대학교의 것이었다.
수감된 신정아는 자신의 수감번호를 딴 '4001'이라는 책에서 서울대 총장과의 스캔들을 언급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신을 책사로 삼았으며, 대우의 김우중 회장과 아주 가까웠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가 만들고 싶었던 이미지였을 뿐 그를 증명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렇게 살고 싶었기 때문에 그것을 믿었을 뿐, 그것이 맞는지 알 길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잠깐, 이 모든 사건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금호미술관 수석 큐레이터의 사직을 만일 그 아르바이트가 꾸민 일이라면? 그리고 이 모든 건 스스로 쟁취한 것이므로 나는 이 모든 것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스스로 믿어 버린다면? 마치 <안나>의 유미처럼 말이다. 단순히 거짓말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거대한 성취욕구 때문에 열등감과 피해의식을 동반한 거짓말을 일삼으며 이를 진실로 믿는 것. 리플리 증후군이다.
드라마의 제목은 왜 <유미>가 아나라 <안나> 인가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단어는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그 증후군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 <리플리> (1999)와 그 모태가 되는 <태양은 가득히> (1960)는 유명한 고전이며, 스스로를 이상 속 상태로 만들어 버리지 않으면 견딜 수 없지만 그 존재들을 향한 연민의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화차>(2012) 나 <블루 재스민> (2013)이 연상되기도 한다.
드라마의 연출인 이주영 감독은 전작 영화 <싱글라이더> (2016)에서 보여준 것 처럼 주인공의 원쇼트에 집중하며 인물의 애긍한 감정 포착에 능하다. 유미는 유난히 외로이 혼자 잡히는 장면이 많고, 군중 속에서도 망원렌즈의 얕은 심도와 좁은 화각 안에 갇힌 듯한 인상을 준다. 거짓 성공으로 찰나의 성취를 누리는 순간 조차 객관적인 행복의 정서는 함부로 제공되지 않는다. 때문에 가짜 신분으로 쟁취한 호화 결혼식에서 보여지는 아름다운 설원풍광과 눈꽃의 미장센은 되려 비극을 초래할 잿더미같다는 암시까지 준다.
광고로 쌓은 필모 덕분인지 모델 같은 배우를 어떻게 빛내야할지 알고 있다. 상황과 감정이 변해감에 따라 유미의 의상 및 헤어, 분장은 품위를 머금지만 가시 또한 숨겼음을 꼼꼼하게 보여준다.
분명 열심히 살았던 유미는 왜 스스로를 거짓 삶 속에 내던지지 않을 수 없었을까? 다시 원작 '친밀한 이방인'으로 돌아가보자. 소설의 주인공이 쓰는 가면은 단지 생존을 위한 것으로, 카멜레온의 보호색과 흡사한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그에게 돌을 던지기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드라마의 제목이 유미의 본명이 아니라 거짓 신분인 <안나>인 것에는 가면의 속성과 유사한 그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거짓말을 하며 살아간다. 껍데기를 타이틀로 내세운 이야기를 보며 우리는 얼마나 우리 자신의 모습들을 읽어 낼 수 있을까? 극중 안나의 엄마가 불길한 꿈속에서 본 것처럼, 울고 있는 사슴같은 모습을 하며 비참한 최후를 만나지는 않을지 염려된다.
<안나>는 클라이막스와 엔딩에서 그 아이러니를 사유하게끔 해주지 않을까? 이제 겨우 도입부를 지나가지만, 다음 이야기들이 기대되는 이유다.
프리랜서 막노동꾼 이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