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90년대를 잊을 수 없다. <신세기 사이버 포뮬러>, <피구왕 통키>, <짱구는 못 말려>, <슬램덩크>, <달의 요정 세일러문>, <신세기 에반게리온> 등 90년대에 나온 다수의 애니메이션 작품은 30년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된다. ‘도대체 그 시절엔 무슨 일이 있던 걸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드는 90년대 애니메이션 명작 중 넷플릭스에서 만날 수 있는 3편의 작품을 골라 소개해 본다.
<트라이건>
1998년 방영을 시작한 애니메이션 <트라이건>은 'DEEP SPACE PLANET FUTURE GUN ACTION'이라는 캐치프라이즈를 내세운 작품으로 서부 개척 시대와 SF 세계관을 융합시킨 배경 설정이 큰 특징이다. 서부 개척 시대 배경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추천하는 애니메이션 <트라이건>이 구현해 내는 과학 기술력은 21세기스럽지만 그 외 나머지 부분은 전형적인 미국 서부극의 모습을 하고 있다. 미국 서부극을 배경으로 두어서였을까. <트라이건>은 일본보다 북미 지역에서 큰 인기를 받았다. 작품의 주요 배경인 노맨즈랜드는 녹지를 찾아보기 힘든 바위와 사막으로 이루어진 행성이다. 그곳에서 각종 범죄자가 활개를 치며 일반인들을 괴롭힌다. <트라이건>의 주인공 밧슈 더 스탬피드는 과거 한 도시를 지도상에서 지워버린 주모자로 몰린 인물이며 그의 앞으로는 600억 더블 달러라는 엄청난 현상금이 걸려있다. 때문에 그가 나타난 곳에는 언제나 현상금 사냥꾼도 함께 나타난다. 그런 그에게 보험회사 직원인 메릴과 밀리가 찾아오면서 <트라이건>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일본 애니메이션 대부분이 코믹스에서 비롯되어 제작되듯, <트라이건> 또한 이 경우에 해당된다. 나히토 야스히로의 동명의 코믹스가 1995년 연재를 시작, 그로부터 3년이 지난 1998년 애니메이션 제작이 시작됐다. 원작이 막 주요 스토리로 진입하고 있을 때 애니메이션 제작이 시작되었기에 극 중반부부턴 애니메이션 오리지널 스토리로 진행됐다고. 이와 관련해 원작자 나히토 야스히로는 애니메이션 <트라이건>의 메인 각본가 쿠로다 요스케에게 “원작은 신경 쓰지 말고 오리지널 스토리로 진행해 달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쿠로다 요스케는 원작자의 의견을 반영해 큰 틀은 원작을 따라가되 세세한 부분은 오리지널 스토리로 진행했다고. 한편 최근 <트라이건>의 새로운 오리지널 시리즈 제작이 확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많은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다. 새 시리즈는 2023년 공개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TRIGUN STAMPEDE>라는 제목으로 만나볼 수 있다고 한다.
<카우보이 비밥>
<카우보이 비밥>을 본 사람이라면 오프닝 장면을 잊을 수 없을 거다. 눈과 귀를 사로잡는 화려한 색감의 연출에 평상시라면 칼같이 오프닝을 스킵 했을 사람조차도 멍하니 보고 있게 만든다. 오프닝 음악 'Tank!' 같은 경우 국내 예능 프로그램에도 자주 사용될 정도로 널리 알려진 곡이다. <카우보이 비밥>에서 음악은 작품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모든 에피소드의 제목이 노래 제목으로 되어 있으며 심지어는 이야기 진행 또한 노래 제목에 걸맞게 펼쳐진다. 이와 관련해 <카우보이 비밥>의 와타나베 신이치로 감독은 "흔히 슬픈 장면에서 슬픈 음악이 흐르면 음악이 영상을 설명하는 역할만 할 뿐이다. 그와 달리 사운드 이펙트에서도 그림을 설명하는 것에 그치는 수준을 넘어서고 싶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카우보이 비밥>이 단지 음악만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평가받는 것은 아니다. 90년대엔 SF 애니메이션이 오락물 혹은 어린이용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컸는데, <카우보이 비밥>이 나오며 이러한 인식은 허물어졌다. 높은 완성도의 작화, 세련된 각본,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매력적인 캐릭터 그리고 음악이 잘 어우러지며 애니메이션 마니아들 사이에서 <카우보이 비밥>은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더불어 가장 완성도 높은 재패니메이션으로 인정받았다. '어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이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카우보이 비밥>은 2021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실사화되었지만 좋은 평을 받지 못해 결국 넷플릭스 측은 시즌 2 제작 중단을 발표했다. 실사화에는 실패했다고 해서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의 평가가 절하된 건 아니다. <카우보이 비밥>은 21세기 후반인 2071년을 배경으로 둔 옴니버스식의 SF 하드보일드 애니메이션으로 흔히들 '우주 누아르'라고 불린다. 현상금 사냥꾼으로 범죄자들을 잡아 생계를 유지하며 우주를 떠도는 스파이크 일행의 이야기가 작품의 스토리를 이끌어간다.
<공각기동대>
1995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공각기동대>는 동명의 원작에 해당되는 코믹스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공각기동대>는 9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 대표작으로 불리며, 현재와 가까운 2029년 미래를 배경으로 둔 SF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2029년에 가까워지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는 마치 예언서처럼 느껴질 정도다. 사이보그와 인간이 공존하는 사회에서 고도화된 기술로 지능화되고 흉포해지는 범죄에 대항하기 위해 정부가 조직한 '공각기동대'를 다루고 있다. 네트워크와 현실의 테러 진압을 주된 임무로 둔 그들은 임무 수행 중 정체불명의 해커 '인형사'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를 추적, 제거하는 스토리를 그린다. 원작 코믹스와 동일하게 '몸 마저 기계로 바꾸는 세상에서 인간 그리고 자신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따르고 있다. <공각기동대>는 2017년 스칼렛 요한슨 주연의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이라는 제목으로 실사화되었는데 많은 사람의 기대와 달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다루던 주제 의식에 한참 못 미쳤다'라는 평과 함께 '지루하고 개연성 없는 스토리'라는 반응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고. 현재 애니메이션 영화 <공각기동대>, <공각기동대 S.A.C_2030>, <공각기동대 S.A.C_2034>, <공각기동대 S.A.C_2045>는 모두 넷플릭스를 통해 서비스되고 있다.
씨네플레이 김성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