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정말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을까? 세상은 신이 만든 규칙으로 완전무결하게 굴러갈까? 선한 사람은 언젠가 그 행위에 대한 보상을 받고, 악한 사람은 벌을 받는 걸까? 그렇다면, 12년이라는 시간 동안 가족 4명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 그녀는 정녕 신의 분노를 산 것일까? 오랜만에 만나는 스릴러 수작 넷플릭스 <신의 분노>(감독 세바스티안 신델) 이야기다.
젊은 여성이자 타이피스트인 루시아나(마카레나 아차가)는 미스터리한 천재 작가 클로스터(디에고 페레티)의 소설 구술 작업을 돕는다. 클로스터의 아내와 어린딸도 그녀를 친근하게 대해준다. 평온하던 일상은 둘만 남은 대저택에서 클로스터가 루시아나를 강제추행함으로써 한순간 깨진다. 클로스터는 루시아나에게 일방적인 키스를 하고, 불쾌함과 모멸감을 느낀 루시아나는 울면서 집으로 돌아간다.
일을 그만두고 변호사를 고용해 근로계약법 위반, 성추행으로 클로스터를 고소한 루시아나. 중재 자리에 나타난 클로스터는 합의금을 수표로 내놓는다. 그녀가 두고 간 성경책을 돌려주면서. 복선이다. '탈리오의 법칙'을 시작하겠다는 클로스터의 선언. 두 사람은 작업을 같이 하는 동안 성경에 쓰인 ‘탈리오의 법칙’를 두고 새로운 해석을 공유한 적이 있다.
'탈리오의 법칙'이란 흔히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알려져 있다. 고대 바빌로니아 왕국 함무라비왕이 만든 법전에 기록돼 있어 ‘함무라비법’으로도 부른다. 성경에도 ‘생명에는 생명으로써, 눈에는 눈으로써, 이에는 이로써’라는 구절이 있으며, 무제한 복수를 허용하던 단계에서 동해 보복 정도까지 보복을 제한했다는 의미가 있다.
그 이후 12년 동안 그녀의 가족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죽음들이 연달아 일어난다. 그 누구보다 건강에 자신 있던 수상 안전요원 오빠는 가족이 함께 떠난 여름 여행지에서 신원 불명의 인물을 구하다가 현장에서 익사한다. 첫 번째 죽음이다. 두 번째 죽음은 아빠다. 버섯 요리에는 도가 튼 엄마가 만든 파이를 먹고 죽고, 엄마는 요양원에 갈 정도로 건강이 악화된다. 세 번째 죽음은 의대생 오빠다. 아내가 오빠와 불륜 행각을 벌인다는 걸 알게 된 수감 중인 남편이 교도소를 탈옥해 길바닥에서 때려죽인다.
이 모든 죽음은 우연이었을까? 루시아나는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성추행 고소장을 먼저 확인한 건 클로스터의 아내였다. 아내는 남편의 범죄행위에 배신감과 분노를 느낀 나머지 우발적으로 딸을 살해하고 본인도 극단적 선택을 한다. 클로스터는 자신의 저지른 파렴치한 범죄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잃었다고 느낀다. 루시아나 입장에서는 가해자 클로스터가 속죄하긴커녕 앙갚음을 한다고 믿을 만한 상황.
그도 그럴 듯이 수상 안전요원 오빠가 죽은 해변에서 루시아나는 클로스터를 봤고, 독버섯 요리에 대해서 클로스터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으며, 클로스터가 교도소 재소자 팬에게 편지를 보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미 팬들에게 신적인 존재가 되어 버린 유명한 소설가가 굳이 살인을 교사할까? 모든 죽음은 우연의 확률로 일어난 것은 아닐까? 일단 증거는 없다. 연이은 죽음을 조사했던 검사 역시 루시아나를 미친 사람으로 여길 뿐이다.
이제 루시아나는 엄마의 죽음을 막아야 한다. 마지막 희망을 걸고 그녀는 12년 전 타이피스트로 일하며 만났던 작가 지망생 에스테반(후안 미누힌)에게 전화를 건다. 기자가 된 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기사화해 달라고 호소한다. 그럼으로써 네 번째 죽음을 막아달라고. 두 남녀의 엇갈린 주장은 기자라는 객관적인 제3자가 개입하면서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까?
<신의 분노>는 아르헨티나의 수학자 출신 작가 기예르모 마르티네스의 원작 소설 <살인자의 책>(2009년)을 바탕으로 했다. 플라네타상, 만다라체 상 등 스페인어권 각종 문학상을 휩쓸었던 그는 수리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수학자 출신 소설가답게 <보르헤스와 수학>, <옥스퍼드 살인 방정식> 등의 전작에서 치밀한 두뇌게임과 논리 전개를 필요로 하는 지적인 추리소설을 써왔다.
<살인자의 책>을 <신의 분노>로 영상화한 세바스티안 신델 감독은 파블로 델 테소와 공동 각본으로 참여해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혼한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은 아들을 구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어머니의 여정 끝에 숨겨진 진실을 집요하게 파헤쳤던 <가족의 죄>(2020)에서 공동 각본으로 한 차례 합을 맞춘 바 있다. <신의 분노>에서는 수미상관 식의 플롯, 인물들의 심리를 탁월하게 보여주는 공간감과 적재적소에 배치된 단서들로 관객의 몰입감을 고조시킨다.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앞서 말한 '탈리오의 법칙'이다. 탈리오의 법칙은 약 4천 년 전 신 마르두크가 바빌로니아 왕국에게 하사한 후 그에 따른 법률이 인간사를 지배해 왔다. 하지만 영화 말미에 클로스터는 신작 소설 <오딜과 오데트>를 발표하며 그것만으로 충분치 않다고 말한다. 뻔뻔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대목이다. 나이가 한참 어린 여성을 강제추행함으로써 이 모든 사건의 발단을 만든 가해자가 할 말은 아니니까. 다음은 클로스터의 말이다.
“탈리오 법칙은 인간의 정의 추구, 즉 피해에 상응하는 형벌을 의미합니다. <오딜과 오데트>에서 복수는 인간의 차원이 아니라 신의 차원으로 이뤄지죠. 신은 창세기에서 카인을 죽이는 자는 일곱 갑절의 형벌을 받으리라 경고합니다. 성경은 문자 그대로의 양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과장됐다고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죠. 그 성경 구절은 신의 분노를 의미합니다. 신적 차원의 정의를 명시한 것입니다. 이번 새 소설에서는 복수, 정의가 완성됩니다. 완벽하게요.”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 신과 이미 신적인 존재가 되어 버린 클로스터, 성추행 피해자임에도 그 죄를 물었다는 이유만으로 어이없는 앙갚음을 당한다고 믿게 되는 루시아나. 성범죄 가해자인 클로스터는 끔찍한 연쇄살인범이기까지 했을까? 아니면 이 모든 것은 루시아나의 심리가 빚어낸 환영이었을까? 에스테반은 두 사람 사이에서 숨겨진 진실을 발견해낼 수 있을까? 이제 질문을 바꿔 보자. 12년간 이어진 가족들의 의문사는 성범죄 가해자가 추가로 계획한 치밀한 범죄일까, 우연의 확률일까, 그렇지 않다면 가당치 않은 신의 분노일까? 넷플릭스 <신의 분노>의 경악할 만한 마지막 장면에서 당신은 신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릴 것인가.
윤상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