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시상식 시즌이 다가와서 올해의 영화들이 공개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렇게 붙어있어야 시상식 결과에 좋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고, 또 그게 관행처럼 굳어져 내려왔기 때문이다.
국내에선 아직 듣지도 보지도 못한 작품들이 종종 한해 결산 리스트에 포함되고, 해를 넘겨 뒤늦게 소개되는 경우가 흔하다. 일부 영화제에서 공개돼 미리 접할 수 있는 기회도 있지만 소수에 해당될 뿐, 대다수 관객들은 개봉일까지 목을 빼고 기다려야 한다.
여기에 골라본 ‘2016 해외 사운드트랙 베스트 10’ 역시 그런 작품들이 일부 있음을 밝혀둔다. 직접 그 가치를 확인하려면 역시나 조금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하지만 공개되고 난 뒤 이견이 없을 작품들을 대상으로 삼고자 숙고하고 또 숙고했다.
안타깝게도 이 리스트에선 제외했지만 인상적이었던 사운드트랙들을 먼저 간략하게 언급하고 본문으로 넘어가고자 한다. 리스트는 역시 무순이다.
음악감독 이후쿠베 아키라에 대한 헌정의 의미를 잔뜩 담아 고전 시리즈들에서 악곡들을 가져오고, 무려 자신의 <에반게리온>과 크로스(!)를 시도한 사기스 시로의 <신 고지라> 음악집은 가히 놀라웠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스코어의 위력을 잔뜩 실감케 한 존 데브니의 <정글북>과, 팀 버튼과의 협업까지 포기하면서 자신의 임무를 마친 대니 엘프만의 <거울나라의 앨리스> 또한 잊어서는 안될 매력적인 사운드트랙이었다.
골든 글로브 음악상 후보에 오른 아름답고 감동적인 더스틴 오할로란과 하우쉬카의 <라이언>과 여전히 괴물 같은 해석력으로 독특한 감성을 표출해낸 미카 레비의 <재키>, 그리고 섬세한 사운드로 끔찍스런 내용을 감싸 안았던 앤 더들리의 <엘르> 역시 2016년에 빛나던 사운드트랙들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꼭 영화와 함께 접해보기를 권한다.
1. <라라랜드>
by 저스틴 허위츠
<위플래쉬>로 충격파를 남겼던 다미엔 차젤레 감독이 차기작으로 손댄 건 과거 할리우드 고전 뮤지컬에 큰 지분을 두고 있는 마술과도 같은 로맨스 영화 <라라랜드>였다. 전작들에서 재즈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마음껏 과시했던 감독은 이번에도 자신의 음악적 짝패인 저스틴 허위츠와 함께 재즈에 기반을 둔 사랑스럽고도 아름다운 음악들을 펼쳐 보인다. 이미 아카데미의 전초전이라 부를 수 있는 여러 비평가협회 시상식들의 음악상을 휩쓸다시피하며 올해 가장 강력한 음악상 부문 타이틀 홀더가 될 것으로 예측되는데, 그만큼 음악이 가진 황홀한 매력과 진솔한 힘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고전 뮤지컬 넘버들을 떠오르게 만드는 인상적인 주제곡들을 포함해 빅밴드, 스윙 등에 기반을 둔 다양한 스타일로 관객들에게 접근하는 허위츠의 음악은 영화가 끝나도 쉬 잊을 수 없는 감흥과 감동을 남긴다. 꿈을 좇는 청춘의 열정과 사랑이라는 놀라운 마법에 빠진 두 젊은이들의 모습을 통해 달콤하고 짜릿하며 안타까운 순간들을 함께 나누는 이 경험은 영화란 장르가 가진 판타지를 가장 충실히, 그리고 가장 멋지게 완성시켜주는 방법이었음을 깨닫게 만든다. 이제 겨우 3편의 필모만 가진 감독 다미엔 체젤레와 영화음악가 저스틴 허위츠지만 그들의 앞날에 비칠 어마어마한 서광에 벌써부터 눈이 부시다고 말할 수 있는, 명실상부한 올해의 사운드트랙.
2. <컨택트>
by 요한 요한슨
2014년 <사랑에 대한 모든 것>으로 골든 글로브를 깜짝 수상하고, 2015년 <시카리오: 암살자들의 도시>로 오스카 음악상 후보에 연속으로 오른 아이슬란드 태생의 요한 요한슨은 근래 가장 주목받기 시작한 영화음악가다. 드니 빌뇌브 감독과는 <프리즈너즈>로 호흡을 맞추기 시작한 후 차기작인 <블레이드러너 2049> 음악까지 맡기로 하며, 가장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고 있다. 외계문명과의 조우를 철학적이면서도 심오한 텍스트로 완성해낸 <컨택트> 역시 그 특유의 묵직하면서도 미니멀한 사운드로 접근해가며 기존의 할리우드 SF물 스코어와는 또 다른 긴장과 감동을 선사한다.
앰비언트와 스트링, 코러스와 퍼쿠션, 드론 등 다양한 장르적인 혼용과 충돌을 통해 아방가르드하게 펼치는 <컨택트>의 스코어는 쉽게 관객들에게 접근을 허하지 않지만, 외계문명과의 충돌 및 교류를 상징적으로 표현해내며 영화가 가진 의미를 더욱 곱씹게 만든다. 명징한 테마나 선율 없이 강렬하고도 인상적인 잔향과 점진적인 반복을 활용하며 기존의 외계 문명과 만남을 가졌던 존 윌리엄스의 <미지와의 조우>, 제리 골드스미스의 <에일리언>, 알란 실베스트리의 <콘택트>, 데이빗 아놀드의 <인디펜던스 데이>, 한스 짐머의 <인터스텔라> 등과는 또 다른 색채를 자아내는 데 성공한다. 소통이라는 지점을 다룬 영화에서 하모니가 아닌 불협화음과 모노톤으로 스코어를 구현해낸 요한슨의 선택은 무모하면서도 대범하게 다가온다.
3. <문라이트>
by 니콜라스 브리텔
한 흑인 성소수자의 인생 여정을 어린 시절과 청년기, 성인 세 시기에 걸쳐 옴니버스로 담아내는 <문라이트>는 분명 낯선 영화지만, 소외된 계층에 대한 생생하면서도 치열한 묘사로 감동을 전달하는 작품이다. 고난스러운 일상과 달리 아름답고 서정적으로 그려진 촬영과 짧지만 인상적인 울림을 담아내는 음악이 더욱 그 지난한 삶을 두드러지게 만드는데, 그 음악을 작곡한 니콜라스 브리텔은 작년의 <빅쇼트>로 인상적인 메이저 데뷔를 치른 젊은 작곡가다. 큰 오케스트라 대신 작은 앙상블과 피아노, 바이올린 솔로, 노이즈와 신시사이저 등을 통해 담백하고 잔잔한 울림에 더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짧은 큐들이 영화 전반에 걸쳐 수놓고 있다.
스코어가 전면에 나서기보단 절제된 영상 뒤에 숨어 탄탄하게 뒷받침해주는데, 찰라의 감동과 순간의 감정을 절묘하게 포착해낸 미묘한 떨림은 영화의 깊이와 온도를 더 깊숙이 투영해내고 있다. 마치 영화의 제목인 달빛처럼 은은하게, 차가운 것 같으면서도 어둠 속을 밝혀주는 한줄기 구원처럼. 니콜라스 브리텔은 영화음악가로 아직 두각을 나타내진 못했지만, 이 섬세하고 아름다운 선율을 통해 충분히 세상에 인지시켰다. 해마다 인상적인 신인 작곡가들이 튀어나오는 근래, 브리텔 역시 눈여겨봐야 할 재목인지 모른다. 특이하게도 위에 언급한 다미엔 차젤레 감독의 단편/장편 <위플래쉬>를 공동 제작했던 이력을 가지고 있다.
4. <너의 이름은.>
by 래드윔프스
지브리 이후 일본 아니메(애니메이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은 올해 일본에서 <신고지라>와 함께 가장 인상적인 족적을 남긴 작품이 되었다. 엄청난 흥행기록을 세운 건 물론, 사운드트랙 역시 6주 연속 음원 차트 1위를 기록하며 각종 기록을 갈아치웠다. 그간 신카이 마코토와 협업하던 텐몬 대신에 일본의 인기 록밴드 래드윔프스가 새롭게 음악을 담당했다. 영국 유학 중 팬이 되었다는 감독은 새로운 시도를 위해 그들에게 러브콜을 보냈다는데, 그런 만큼 전작들과 비슷하면서도 색다른 기운이 감지된다. 피아노와 스트링이 주된 모티브를 차지하는 건 여전하지만, 록 기운으로 인해 보다 경쾌하고 역동적이 되었다.
완성되기 1년 전부터 래드윔프스가 음악 작업에 참여했던 터라, 미리 작곡된 곡을 듣고 편집이 이루어져 무엇보다 음악과 영상의 싱크로율이 높고, 스코어 역시 보다 대중적인 접근을 취하고 있다. 시골과 도시의 두 남녀 캐릭터가 뒤바뀌며 운명론적인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만큼, 서정적이고 신비로우면서 감미로운 큐들이 주를 이루며, 청춘의 풋풋한 싱그러움이 느껴진다. ‘전전전세’를 비롯한 4개의 주제곡들은 그들 특유의 감상적이면서 독특한 가사가 영상과 효과적으로 매칭되며 매력적으로 어필한다. 3명의 멤버들이 골고루 참여한 악곡은 다양한 스타일을 구사하고 있으며, 기존 일본 아니메 사운드트랙의 전형성에서 벗어난, 참신하고 활력 넘치는 사운드를 들려준다.
5. <클로버필드 10번지>
by 베어 맥크레리
이 영화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한 <클로버필드>는 음악이 전혀 필요 없는 파운드푸티지 형식의 영화였다. 전작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가는 <클로버필드 10번지>는 보다 관습적이고 장르적인 방식을 택했다. 따라 음악에서도 그런 접근법이 능한 작곡가가 필요했다. 베어 맥크레리는 대중적인 지명도는 다소 낮지만, B급 장르와 마이너 영화, TV물 등에서 다양한 경험치를 쌓아왔으며, 무엇보다 젊고 기존 스타일에 얽매이지 않은 참신하면서도 자기만의 색채가 명확히 구축된 영화음악가다. 이번 영화에서 장르물에 특화된 그의 솜씨가 유감없이 펼쳐지며 올해 가장 짜릿하고 박진감 넘치는 스코어를 완성시켰다.
초중반부 벙커를 중심으로 3명의 관계를 풀어내는 상황 속에서 베어의 음악은 심리 스릴러 스코어에 가깝게 구사돼 밀당의 긴장과 이완을 뛰어나게 묘사해주고 있으며, 후반부 15분을 남겨두고서 급격하게 장르를 변환하는 부분에선 어느 블록버스터 못지않은 스케일과 박진감을 단박에 휘몰아치며 정신을 쏙 빼놓게 만든다. 격정적인 스트링을 전면에 내세우고, 강렬한 브라스로 명징한 테마를 연주한 채 악기라고 할 수 없는 다양한 도구(?)들을 활용해 퍼쿠션 및 음향효과처럼 구사한 실험적인 사운드의 조화는 가히 올해 그 어떤 장르 스코어들에 비해 전혀 꿀리지 않는 청각적 흥분과 스릴, 아드레날린을 마구 분출하게 만든다. 올해의 발견이라 할 수 있는 작품.
6. <녹터널 애니멀스>
by 아벨 코제니오스키
패션 디자이너에 그치지 않고 감독으로 데뷔하며 전방위적인 크레이터로서 자신의 솜씨를 발휘한 톰 포드. 입봉작인 <싱글맨>의 비평적 찬사가 우연이 아니라는 듯 오스틴 라이트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녹터널 애니멀스>도 인상적인 스릴러라는 평가를 받았다. 전작에 이어 다시 아벨 코제니오스키와 호흡을 맞춘 이 영화에서 미장센과 음향은 상당히 중요하게 다뤄지는데, 이런 연출적인 시도들을 극대화시키는 힘은 아벨의 아름답고 빼어난 스코어에 기인한 바가 크다. 우수에 찬 듯 심상을 뒤흔드는 스트링의 섬세한 톤도 유려하고,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테마도 이 매혹적인 스릴러에 인상적인 지장을 남긴다.
감독의 전작이었던 <싱글맨>과 마돈나의 감독 데뷔작인 <위>에서도 그렇듯 아벨의 클래시컬하면서 서정적인 사운드는 마치 같은 폴란드 출신의 즈비그뉴 프라이즈너의 우아하면서도 기품 있는 솜씨를 연상케도 하는데, 아벨의 사운드가 조금 더 탐미적이고 짙은 미련과 회한을 남긴다. 낭만적이고 패셔너블한 그의 솜씨는 톰 포드의 깔끔하고 세련된 연출력에 꼭 재단된 것처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버나드 허만의 스릴러와 엔니오 모리꼬네의 지알로 사운드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듯한 아벨의 이 스코어는 이미 충분히 고전이고, 명작 반열에 오를 만하다. 재능과 실력에 비해 아직까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영화음악가라 생각하지만 곧 친숙하게 들릴 이름이라 예상해본다.
7. <신비한 동물 사전>
by 제임스 뉴튼 하워드
존 윌리엄스와 패트릭 도일, 니콜라스 후퍼와 알렉산드르 데스플라의 뒤를 이어 새롭게 해리포터 (외전) 시리즈의 음악을 담당하게 된 건 제임스 뉴튼 하워드다. 최근 몇 년간 그의 필모를 살펴본다면 이런 선택이 당연하게 다가온다. 그는 그간 <헝거 게임> 시리즈와 <헌츠맨> 듀올로지, <말레피센트>와 <워터 호스>, <라스트 에어벤더>, <피터팬> 등 유난히 판타지 서사 장르에서 놀랄만한 결과물들을 뽑아내었다. 그가 매만진 스코어들은 웅장하고 화려한 스케일과 서정적이며 아름다운 멜로디를 자랑했고, 드라마틱하며 균형감 있는 사운드를 선사했다. 어떤 작품을 맡아도 기본 이상의 실력을 자랑하는 장인에게 해리포터는 당연한 결과였다.
존 윌리엄스의 ‘헤드위그 테마’를 인용하며 해리포터 시리즈와의 연계를 암시하지만, 다른 시리즈들처럼 작곡가 개인의 색깔이 뚜렷이 나타난다. 더욱이 이번 시리즈는 외전이기에 존 윌리엄스가 만들어놓은 세계관에서 더 자유스러운 느낌인데, 제임스 뉴튼 하워드는 충분히 시간을 들여 이번 동물사전 시리즈만의 독자적인 분위기와 캐릭터별 테마들을 완성시키고 있다. 더욱이 무대가 대공황기 뉴욕이기에 거쉰 스타일의 재즈 사운드도 섞어 보이며 지난 시리즈들과의 변별력을 갖는다. 다크하고 진중한 분위기와 함께 신비스러운 마법의 세계로 인도하는 그의 화려하고 장엄한 스코어는 할리우드 최상급 영화음악의 본보기를 제시한다.
8. <마이 리틀 자이언트>
by 존 윌리엄스
<스파이 브릿지>에서 건강상의 이유로 같이하지 못했던 존 윌리엄스와 스티븐 스필버스가 다시 만나 28번째 호흡을 맞춘 <마이 리틀 자이언트>는 로버트 달의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안타깝게도 비평적, 상업적인 성취를 얻는 데 실패하고 말았지만, 그렇다고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거장들의 인상적인 솜씨가 잔뜩 묻어나는 영화다. 특히 존 윌리엄스가 들려주는 다크하면서 몽환적인 판타지 모험담의 노래들은 여전히 우아하고 강렬하며 아름답고 황홀하다. 전작들에 비해 명징한 테마들이 다소 약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이를 보완하는 드라마틱한 서사와 정공법적인 테크닉은 가히 거장의 솜씨답다.
자유롭게 활강하고 비상하는 꿈을 거침없이 묘사하는 목관부와 소녀와 거인 간의 유대를 나타내는 하프의 음색, 그리고 저음의 스트링과 트롬본, 바순, 뮤트된 트럼펫 등 대체적으로 무거운 악기들을 활용해 어두운 꿈과 거인들의 세계를 미키마우징 기법으로 기가 막히게 제시하는 존 윌리엄스의 스코어는 스필버그의 놀라운 비주얼만큼이나 인상적인 시도들을 통해 청각적인 즐거움과 감동을 선사한다. 이전에 존 윌리엄스가 맡았던 여러 어두운 비전의 영화들에서 간혹 보였던 힌트들을 떠올리며 듣는 묘미도 빼놓을 수 없다. 존 윌리엄스와 스티븐 스필버그의 42년간의 내공이 가득 담긴, 그 이름값만으로도 충분히 뽑을 수 있는 히든 카드.
9. <네온 데몬>
by 클리프 마르티네즈
끔찍하게 아름다운 절대 악몽이자 호러 아닌 호러 영화. 니콜라스 윈딩 레픈은 이번에도 스타일과 비주얼로 점철된 과잉의 영화 <네온 데몬>으로 여러 논란을 일으키며 모델과 패션의 세계로 파고든다. 허상뿐이라는 혹평과 그 허상 자체가 의미라는 호평으로 둘로 나뉜 채,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극단으로 갈림에도 공통적으로 극찬을 들은 건 바로 클리프 마르티네즈가 담당한 끝내주는 음악이다. 80년대 유행하던 신스 사운드를 금방 떠올리게 만드는 매혹적인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전작인 <드라이브>와 <온리 갓 포기브스>를 압도하며, 올해 칸 사운드트랙 어워즈 베스트 작곡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빈젤리스와 존 카펜터, 장 미셀 자르 등의 영향력 아래에 놓인 이 차갑고 열정적인 전자음들의 총체는 가히 네온처럼 강렬하게 고막에 점멸하며 청신경을 자극하고 기어코 중독되게 만든다. 영화를 두 시간짜리 뮤직비디오로 보이게 할 만큼 마르티네즈의 음악은 강력한 존재감을 뽐내고 있으며, 광기와 쿨 뷰티의 이미지들을 감각적으로 포장해낸 그의 사운드야말로 이 영화의 진정한 성취이자 성공일지도 모른다. 작년의 <팔로우>와 올 초 공개된 미드 <기묘한 이야기> 역시 이런 80년대 감수성에 뿌리를 둔 일렉 사운드로 충격과 감동을 던져줬으며, 클리프 마르티네즈 역시 영리하게 그 토대 하에 자신만의 비전을 확고히 투영시켜 놀랄 만큼 짜릿한 사운드스케이프를 완성시켰다.
10.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
by 마이클 지아치노
가렛 에드워즈 감독이 원래 음악감독으로 내정했던 이는 <고질라>를 함께했던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였다. 그러나 추가 각본 수정과 재촬영이 이뤄지면서 후반 스케줄이 뒤로 밀렸고, 마침 뤽 베송의 신작 SF <발레리안: 천 개 행성의 도시> 음악 작업과 겹치며 데스플라를 하차할 수밖에 없었다. 제작진이 급하게 새로운 작곡가로 내세운 카드는 디즈니와 제작진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마이클 지아치노였다. 이는 당연한 결론이었다. 데뷔 때부터 존 윌리엄스의 직계라는 평을 받았던 그였고, 이미 존 윌리엄스가 음악을 맡았던 쥬라기 공원의 공식적인 시퀄인 <쥬라기월드>의 음악을 맡아 성공을 이끈 바 있기 때문이다.
작곡에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마이클 지아치노는 맡은 바 소임을 완벽하게 이뤄냈다. 물론 스타워즈 시리즈의 첫 스핀오프이자 극장판 사상 최초로 존 윌리엄스가 아닌 다른 작곡가가 투입되는 경우인지라 기존 팬들의 눈높이에 맞추기가 쉽지 않았겠지만, 존 윌리엄스의 색채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스타일을 과감히 풀어낸 진중하면서도 다크한 세계관은 이 ‘별들의 전쟁’ 사가의 지평을 더욱 넓혔다. 클래식 스타워즈의 테마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며(하지만 그다지 많이 의지한 편은 아니다), 밀리터리 레지스탕스와 스핀오프라는 색다른 요소들을 통해 기존 시리즈와는 또 다른 재미와 감흥을 선사한다. 올해 스타트렉과 스타워즈라는 양대 SF시리즈의 음악을 모두 섭렵한 지아치노의 천운에 놀라면서 다른 한편으론 원래대로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음악이었다면 어땠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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