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종이의 집>을 한국 드라마로 리메이크한다는 소식을 발표했을 때,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다. 하이스트 장르와 넷플릭스 K-드라마의 만남이 멋진 시너지를 발휘할 거라는 의견과 팬덤이 두터운 원작을 과연 뛰어넘을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팽팽하게 맞섰다.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은 포스터와 예고편 같은 관련 정보가 공개될 때마다 더욱 커졌다.
결론적으로 원작의 벽이 높긴 했다. 지난 24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이하 '종이의 집')>은 예상대로 강한 호불호의 반응을 얻고 있다. 아니 정확히는 불호의 반응이 더 거세다. 교복을 입고 BTS의 "DNA"를 따라 춤을 추는 도쿄(전종서)가 "케이팝 그룹 BTS의 팬들은 '아미'라고 불린다"라며 자신을 소개하는 오프닝부터 혼란스러운 마음이 밀려온다. 이런 게 K-패치인가? <종이의 집> 한국 버전도 오리지널 못지않게 장르적 쾌감을 전하며 흥미롭게 흘러가지만, 그럼에도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더 많아 보인다. <종이의 집> 리메이크 버전에 완전히 마음을 주지 못했던 이유를 살펴본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은?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은 통일을 앞둔 한반도를 배경으로 천재적 전략가와 각기 다른 개성 및 능력을 지닌 강도들이 기상천외한 변수에 맞서며 벌이는 사상 초유의 인질 강도극을 그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다. 동명 스페인 드라마를 리메이크 한 작품으로, 드라마 <손 the guest>와 <보이스>, 영화 <역모 - 반란의 시대>의 김홍선 감독이 연출을, 넷플릭스 시리즈 <나 홀로 그대>, 드라마 <괴이>, <싸이코패스 다이어리>, <개와 늑대의 시간>을 쓴 류용재 작가가 극본을 맡았다. 여기에 유지태, 김윤진, 박해수, 전종서, 이원종, 박명훈, 김성오 등 연기파 배우진이 대거 합류해 원작의 인기 캐릭터인 교수, 베를린, 도쿄 등을 맡아 제작 단계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은 6월 24일 넷플릭스 공개 후 비영어권 드라마 시청순위 1위를 기록하며 화제몰이 중이다. 현재 총 6부로 구성된 파트 1이 공개됐고, 올 하반기에 파트 2를 발표할 예정이다. 특히 파트 2에는 원작에 없는, 임지연 배우가 맡은 ‘서울’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향후 전개에 어떤 영향을 끼치며 캐릭터의 매력을 보여줄지 관심을 모은다.
원작의 독특한 설정과 분단국가의 현실이 만난 리메이크
<종이의 집>은 잘 알다시피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스페인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지난해 마지막 파트 5가 공개됐으며, 인기 캐릭터 베를린을 주인공으로 한 스핀오프가 나올 예정이다. 더 나아가 한국 버전으로도 제작될 만큼 스페인 드라마 <종이의 집>이 인기를 끈 이유는 신선한 아이디어와 강렬한 서사, 허를 찌르는 전개에 있다. 강도단이 조폐국을 점령해서 돈을 찍어낸다는 설정은 기발하고, 끊임없이 충돌하는 캐릭터들은 본능적이고 개성이 넘치며, 매 에피소드마다 쉴 틈 없이 감정적으로 몰아치며 반전을 거듭한다. 하이스트 장르 특유의 짜릿함에 휘몰아치는 멜로드라마가 더해지면서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신선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리메이크된 <종이의 집>은 원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통일을 앞둔 한반도를 배경으로 천재적 지략가와 각기 다른 능력을 지닌 강도들이 사상 초유의 인질 강도극을 펼치는 이야기를 그린다. 한국 버전은 범죄 드라마로서 매력에 더 주목한 것 같다. 원작의 독특한 설정에 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한국의 특수한 상황을 접목해 새로운 흥미를 유발한다. 통일을 앞둔 2026년, 남북 공동 화폐를 발행하는 조폐국을 초유의 범죄가 발생하는 무대로 내세운 것이다. 이를 통해 원작과 차별화를 이루며 한국 버전만의 색다른 이야기를 가능하게 한다. 남북통일이라는 상황이 극의 흐름에서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에도 호기심이 생긴다. 장르적 기대감을 공고히 한 현지화 전략은 성공적으로 보인다. 여기에 국악을 활용한 음악이 적재적소에서 긴장감을 높인다.
그러나 원작보다 평범해진 캐릭터, 밋밋해진 리메이크
이 같은 장점에도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은 원작의 강렬한 매력이 무뎌져 아쉬운 면모를 드러낸다. 스페인 원작 드라마를 재밌게 봤다면, 캐릭터의 개성이 반감되고 사건의 흐름만을 따라가는 리메이크작은 밋밋하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각색 과정에서 캐릭터가 아닌 사건 중심의 이야기로 재편됐기 때문이다. 캐릭터들은 원작처럼 감정과 본능에 휘둘리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판단하고 움직인다. 자연히 조폐국 안팎으로 벌어지는 갈등과 대립은 불꽃같은 파열음을 내지 않는다. 이야기 자체는 흥미롭지만 전처럼 끌어당기는 매력이 부족해진 것이다. 원작에서 변주를 꾀한 통일이라는 설정이 힘을 발휘하면 좋을 텐데 애석하게도 배경으로만 머무른다.
원작만큼의 재미가 덜한 데에는 평범해진 캐릭터에서도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도쿄가 대표적이다. 우르술라 코르베로의 도쿄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였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본능에 충실해 무모한 선택을 하느라 위기를 자초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며, 그의 들끓는 감정이 드라마를 극적으로 치닫게 했다. 한국 버전은 이와 다르다. 감성보다는 이성이 앞서고 어딘가 순진한 면모도 있다.
이 모습이 나쁜 게 아니다. 사건의 중심에서 한 발 벗어난, 어정쩡한 포지션이 문제다. 도쿄의 역할이 애매하니 화자로서 매력도 줄어든다. 다정하고 쿨한 매력을 보여줬던 나이로비는 가벼운 사기꾼 캐릭터가 됐고, 조폐국 밖에서 강도단을 지휘하며 너드미와 지성미를 뽐냈던 교수의 매력은 어쩐지 모호하다. 뿐만 아니라 남북 인물 설정도 고루하다. 특히 북한 사람들은 군사적이고 억압적이거나 체제 순응적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다. 캐릭터들이 납작해지니 감정이 엎치락뒤치락하며 변칙적으로 흘러갔던 이야기의 재미가 약해졌다.
과연 <파트 2>는 지금의 실망을 만회할 수 있을까?
현재까지 <종이의 집>은 실망이 앞선다. 원작과 흐름은 같은데 격렬한 리듬감은 옅어졌고, 프로덕션 외에 한국 버전만의 특색이 뚜렷하지도 않다. 리메이크가 필요했던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초반부에 여성 캐릭터를 그리는 방식은 상상력이 부족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판단하기에는 이를지 모른다. 아직 못다 한 파트2의 이야기가 남아있다. 파트 2를 기대하는 건 원작과 다른 흐름을 보여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가령 파트 1에서 배경에 지나쳤던 통일이라는 상황처럼 말이다. 교수나 베를린처럼 원작과 배경이 다른 캐릭터들의 숨은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리고 다소 기대에 못 미쳤던 캐릭터들이 활약해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부디 파트 2에서는 지금의 실망을 만회하기를 기대한다.
테일러콘텐츠 에디터 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