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치드> 포스터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쓴다는 중증의 리플리 증후군인 <안나>의 주인공 ‘안나’. 피 한 방울로 240개 이상의 질병을 판별할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사기극을 벌이며, 실리콘 밸리 역사상 가장 큰 스캔들을 일으킨 <드롭아웃>의 ‘엘리자베스 홈즈’까지. 최근 들어 OTT 계에 수상쩍은 인물들이 출몰하고 있다. 하지만, 2020년, ‘안나’와 ‘엘리자베스 홈즈’쯤은 시시하다며 코웃음 칠 희대의 악녀가 있었으니. 바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래치드>의 주인공인 ‘밀드레드 래치드’다.

<래치드>는 지난2020년 3분기, 공개 28일 만에 약 4천 8백 만명의 시청자를 기록하며 전 세계적으로 많은 화제를 끌었다. 다소 잔인한 스토리와 기타 호불호가 많이 나뉠 수 있는 포인트들 때문에, 아쉽게도 한국에서는 많은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이 작품에 극호[!]였던 필자는 <래치드>가 더 흥행하길 바란다. 또, 절대 시즌 1에서 이야기가 끝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시즌 2가 빨리 제작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염원을 안고서, 수상한 여자들이 OTT를 점령한 타이밍을 틈타 <래치드>의 매력을 많은 분들께 알리고자 한다.

감각적인 미장센과 화려한 볼거리

<래치드>

넷플릭스 시리즈 <래치드>는 소위 미장센 잘알(?) ‘라이언 머피’ 감독의 색채가 짙게 묻어난 작품이다. 고풍스러운 건물 분위기와 비비드한 색감까지. 장면이 바뀌는 순간순간마다 뚜렷한 이미지의 향연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흔히들 ‘정신병원’ 하면 떠올리는 온통 하얀색으로 뒤덮인 차가운 모습이 아닌, 알록달록한 색들로 도배된 <래치드> 속의 아름다운 (?) 루시아 주립 정신병원은 이중 백미다. 왜인지 모르게 기존 정신병원과 다른 그 모습은 더 뒤틀리고 기괴한 분위기로 다가온다.

드라마 속에서 쓰이는 조명 색 또한 상당히 재미있고 인상적인 포인트다. 주인공의 욕망이나 권력을 향한 광기가 겉으로 드러나거나 끔찍한 상상이 행동으로 이어질 때는 초록색, 위험에 처했을 때나 통제력을 잃고 날뛰는 상황에서는 화면이 온통 빨간색으로 변한다. 이렇듯 인물의 감정선에 따라 변하는 조명색은 감각적인 영상미를 도와줄 뿐 아니라,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래치드>

배우들의 의상 또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사라 폴슨이 맡은 주인공 래치드의 칼각 잡힌 정장, 어깨 뽕이 가득 들어가 한껏 치솟은 상의, 화려하고 과장된 모자와 진주 액세서리, 또 레노어 오스굿 역의 샤론스톤이 선보인 흘러넘칠 듯한 퍼 의상, 정교한 메이크업 등, <래치드>는 2차 세계대전 후인 1947년에 유행한 고풍스럽고 빈티지한 스타일을 생동감 있게 고증하며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원작 캐릭터의 재해석

<래치드>

<래치드>의 원작이 된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1962년에 발간된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랜드 슬램을 달성할 만큼 뛰어난 작품성을 선보인 스릴러 영화다. 원작 영화와 소설 속, ‘밀드러드 래치드’는 정신병원에 입원중인 환자들에게 육체적 학대는 물론 정신적 학대도 서슴지 않는 희대의 악인이다. 수많은 악인 캐릭터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어마무시한 이 캐릭터의 과거를 다룬 프리퀄이 바로 <래치드>다.

그런데 드라마 속에서의 ‘래치드’는 원작 속 피도 눈물도 없는 그와는 사뭇 다르다. 이 작품 속에서 주인공은, 상처입은 환자의 마음을 공감하며 어루만져주기도 하고, 비상식적인 치료를 받는 환자를 가엾게 여겨 병원에서 몰래 탈출시키기도 한다. 심지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과거를 회상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하는 등, 꽤나 인간적인 면모를 많이 보여준다. 래치드 역을 맡은 주연 배우 사라 폴슨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밀드러드 래치드는 항상 자신만의 이유가 있다. 그가 어떤 일을 견뎌왔는지 이해하고 나서 연민을 느낀다면, 그것이 틀린 것만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전세계 수많은 시청자들은 착하기만 한 주인공보다 나름의 서사를 갖춘 입체적인 빌런 캐릭터에 더 열광한다. 그런 이들에게 래치드의 서사는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갈 것이다.

주조연들의 미친 연기력

<래치드>

이 작품을 (좋은 의미로) 미친 작품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주조연 배우들의 완벽한 캐스팅과 미친 연기력이다. 특히 래치드 역을 맡은 사라 폴슨의 연기력은 경외감까지 느끼게 했다. 캐릭터가 너무 강하고 파격적이면, 더러 배우가 캐릭터에 압도당해 100%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라 폴슨은 본인의 압도적인 존재감을 내세우며, 그야말로 1000% 몫을 해냈다. 그는 선한 주인공과 악한 주인공의 모습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래치드’라는 캐릭터에 입체감을 더했다. 또, 그의 광기 어린 눈빛 연기는 작품이 가진 서늘한 분위기를 더욱 배가시켰다. 재밌게도 많은 이들을 섬뜩하게 만든 사라 폴슨은 평상시에 호러물이나 범죄물 등 무서운 영화는 잘 보지 않는다고.

호연으로 드라마의 몰입도를 높인 건 주인공 ‘래치드’ 뿐만이 아니다. 정신병원 환자보다 더 미쳐버린 괴짜 정신과 의사 ‘닥터 하노버’, 엄청난 야망을 가진 변태 주지사 ‘조지’와 그의 비서이자 래치드의 연인인 ‘그웬 돌린’, 무시무시한 연쇄살인마이자 래치드의 동생인 ‘에드먼’, 잔혹하게 아들을 죽인 부호 ‘레노어 오스굿’ 등. 소개만 잠깐 해도 장난 아닌 강렬한 캐릭터들이 떼로 나오는데, 작은 배역 하나 빠짐없이 배우들 모두가 완벽하게 배역을 완성한다.

수많은 극중 인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샬럿 웰스’다. 그는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해 다중인격 장애를 겪는 인물로, 소심한 사람, 관현악단 리더, 나치즘에 반대하는 폭군, 어린아이, 이렇게 네 명의 자아로 분열한다. 한없이 순수한 자아에서 폭력적인 폭군의 자아로. 목소리부터 표정, 작은 몸짓 하나까지, 마치 스위치가 바뀌듯 자유자재로 변하는 소피 오코네도의 신들린 연기력은 떠올리기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대단하다. 마지막 화에서 자신이 죽인 ‘닥터 하노버’ 인격으로 변신하여, 병원 경비들과 간호사들을 죽이는 장면은 내가 꼽은 <래치드>의 최고 명장면이다.

<래치드>는 시즌 1을 공개하기 이전부터 이미 10부작인 시즌2의 제작이 확정된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시즌 1의 마지막 장면은 시즌 2에서 펼쳐질 이야기를 암시하는 듯하며 끝이 난다. 하지만 작품 공개 후 2년이 지난 지금까지 후속편에 대한 소식이 전혀 없기에, 팬들은 애가 타는 중이다. 대중들의 반응이 예상보다 그리 뜨겁지 않아 제작하지 않기로 한 것일까? <래치드>의 팬 중 한 사람으로서, 길어지는 무소식에 괜한 조바심부터 난다. 호불호가 강한 작품이라는 사실에는 동의하지만, 강력하게 “불호”를 외치는 자들의 말만 듣고 섣불리 1화 재생조차 누르지 않는 사람들에게 고한다. “1화만 보고 판단해 주세요!” <래치드>는 현재 넷플릭스에서 감상할 수 있다.


테일러콘텐츠 에디터 그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