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가 미국 로맨틱코미디, 멕 라이언, 노라 애프런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면,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은 영국 로맨틱코미디를 대표하는 제작사 워킹타이틀, 배우 휴 그랜트, 작가 리차드 커티스로 이루어진 트리오의 출발점이다. 허구헌 날 지각하는 결혼식 들러리 찰스는 어느 식장에서 미국인 캐리에게 첫눈에 반한다. 영화는 찰스가 캐리에게 어설프게 수작을 거는 과정을 느슨하게 따라가면서, 결혼식과 장례식에서 벌어지는 여러 에피소드에 유머를 쏟아내면서 관객의 흥미를 붙든다. 특히 리차드 커티스의 또 다른 대표작인 '미스터 빈' 시리즈의 주인공 로완 앳킨슨의 활약이 돋보이는 결혼식 신은 (90년대 유행하던 표현을 빌리자면) 배꼽을 달아나게 한다. 그런 가운데서 찬찬히, 찰스와 캐리의 관계가 점점 더 좁혀져가는 걸 바라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280만 유로라는 저예산으로 제작된 영국 로맨틱코미디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은 미국에서 개봉돼 전혀 예상치 못한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제작비의 100배에 달하는 수익을 내 현재까지도 할리우드에서 가장 성공한 영국 영화로 손꼽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의 후보로 지명되기도 했다. 뻣뻣한 신사 역할로 이름을 알리던 휴 그랜트는 로맨틱코미디의 대표적인 남자 주인공으로 등극했다. 로맨틱코미디의 맛을 제대로 본 제작사 워킹타이틀은 멕 라이언의 대표작 <프렌치 키스>(1995), <노팅힐>(1999), '브리짓존스' 시리즈, <어바웃 어 보이>(2002), <러브 액츄얼리>(2003) 등을 히트시키며 로맨틱코미디 명가로 자리매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