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주의 칼럼에서 EBS 국제다큐영화제(이하 EIDF) 상영작들을 소개한 데는 나름 순수한 이유가 있었다. 글발이 미치는 데까지 독자들에게 상영작들을 소개하고, 그들 중 한 명이나마 다큐멘터리 영화를 하나라도 더 봐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자화상 Self Portrait>(마가레트 올린, 카챠 호그셋, 에스펜 월린, 2020)을 소개한 칼럼에 하트가 많은 걸 보고 안도했고, 하트가 100개인데 한 명은 봤겠지(?) 스스로 격려하며 이번 주엔 EIDF 상영작이 아닌 다른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여느 해처럼 올해도 EIDF는 성공적이었다고 믿었다. <금정굴 이야기 Korean GENOCIDE>(전승일, 2021) 방영이 취소됐다는 기사는 차라리 보지 말았어야 했다. EBS와 전승일 감독 양측이 제시한 팩트와 팩트 사이에서 직접 진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급히 칼럼 주제를 바꾸고 이번 주까지만 EIDF에 대한 칼럼을 쓰기로 했다.

<금정굴 이야기>에 대한 언론 보도 요점을 정리하면 이렇다. EIDF는 한국교육방송공사 EBS가 매년 주관하는 다큐멘터리 영화제다. EIDF 기간에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작품들은 EBS TV 채널에도 편성된다. <금정굴 이야기>는 지난 8월 26일 EBS1TV에서 방영 예정이었는데, EBS심의위원회는 그보다 사흘 전 <금정굴 이야기>에 대해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을 들어 방송 불가 결정을 내렸다. “방송은 사실을 정확하고 객관적인 방법으로 다루어야 하며, 불명확한 내용을 사실인 것으로 방송하여 시청자를 혼동케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다. 그러면서 <금정굴 이야기>가 “객관적 자료 제시나 데이터에 대한 출처 표시 등이 부족한 점으로 인해 시청자들이 프로그램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불충분한 점이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방송 불가 결정에 이의를 제기한 전승일 감독은 8월 24일 성명서를 통해 “EBS 심의위원회가 ‘방송불가’ 결정을 한 핵심적인 이유가 영화 전반부의 자막 때문”이라며 <금정굴 이야기> 자막을 인용했다. ‘한국의 군대와 경찰은 1950년 7월부터 10월까지 최소 10만 명의 민간인을 아무런 재판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학살했으며, 미군은 이를 묵인 •방조했다’는 자막이다. 이 부분이 사실인지 EIDF 코디네이터가 감독에게 거듭 사실 확인 요청을 해왔다고 했다. 정리하면, EBS는 해당 자막이 ‘불명확한 내용’이면서도 ‘출처 표시 등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방송 불가 결정을 내렸다.

자막보다 더 큰 문제

EBS 측의 주장은 일정 부분 수긍할 만한 면도 있다. 어떤 영화는 영화 그 자체만큼이나 엔딩 크레딧이 많은 정보를 전달해준다. 엔딩 크레딧만 보아도 어떻게 영화를 만들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금정굴 이야기> 엔딩 크레딧에는 자료 출처가 단 한 곳도 나오지 않는다. 자막을 누가 썼는지에 대한 정보도, 물론 감독이 썼겠지만 아예 빠져 있다. “이름 쓴 사람 역할 제외하면 모두 감독이 했다”고 이야기하는 불친절이다. 영화에는 많은 시각 자료가 포함돼 있다. 그 중에는 파운드 푸티지도 대다수다. 이거 어디서 가져왔는지 정도는 감독도 밝혔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료 무단 도용을 의심받아도 감독은 입이 궁하다. 감독은 논란이 된 후에야 참고 자료들만을 열거했다.

내용을 포함하기에 단편이라는 형식도 맞지 않는 것 같다. 짧은 시간에 해방 전후사를 포함해 너무 많은 것들을 넣으려다 보니 정작 금정굴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해서는 개별 희생자들의 자극적이고 억울한 사연 나열에 그치고 말았다는 아쉬움이 있다. 마지막 자막은 화면 가득 빼곡하게 썼으면서 컷 전환도 빨라 일시정지를 하지 않으면 무슨 내용인지 알기도 어렵다. 그래서 <금정굴 이야기>는 장편이거나 최소한 20분보다는 훨씬 더 길었어야 한다고 본다. 애초에 단편영화를 설정해두고 만들었다면 차라리 자극적인 내용은 덜어내고, 극 초반에 보여준 신선한 이미지들과 음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치는 편이 더 좋았을 것이다. 요컨대 영화는 자막 그 자체보다 엔딩 크레딧에서 드러난 무심한 출처 표기, 내용의 선택 측면에서 아쉬움이 있다.

그런데 EBS는 왜?

그렇다고 <금정굴 이야기>가 방송 불가 결정을 받을 만큼 중대한 결함을 가진 작품은 아니다. 전술한 아쉬움을 차치하고 나면 <금정굴 이야기>는 우리 근현대사 속에서 또 하나의 비극적인 역사를 수면 위로 끄집어내어 알렸다는 점에서 다큐멘터리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기능을 충실히 다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 게 옳다. 더구나 영화가 차용한 이미지가 아니라면, 감독이 직접 쓴 자막에는 ‘참고 문헌’ 등 각주를 달지 않는 게 일반적이고 상식적이다. 영화 자막에도 각주를 달란 말인가.영화는 지식채널e가 아니다.

더구나 ‘한국의 군대와 경찰은 1950년 7월부터 10월까지 최소 10만 명의 민간인을 아무런 재판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학살했으며, 미군은 이를 묵인•방조했다’는 자막은 팩트다. 이승만 정권 수립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자행한 학살을 미국은 지금도 모르는 척하고 있지 않은가. 이게 팩트가 아니라면 우리는 왜 제주 4.3을 추모하고, 영동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을 기억해야 하는가. 여러 역사적 자료를 비춰봐도 노근리 양민 학살은 미군이 자행했다. 이 자막이 ‘불명확한 내용’이어서 ‘출처 표시 등이 부족하다’는 건 EBS가 역사와 예술에 대한 무지를 동시에 드러내는 것이다.

사실 그럴 리 없다고 본다. EBS 심의위원회는 바보가 아니다. 역사적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금정굴 이야기>를 방송 금지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사실은 자막에 출처가 표시돼 있지 않다는 놀라운 주장은 방송 금지를 위한 구실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난 이번 논란을 통해 불거진 문제 진단이라도 정확히 하기 위해 EBS가 솔직했으면 좋겠다. <금정굴 이야기>를 상영하는 것이 꼭 이승만 정부 수립 과정에 미군정의 부당한 개입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같아 외면하고 싶었다고, 아니면 <금정굴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애니메이션 풍자 표현의 수위가 높아 거북했다고 말이다. 하필이면 다른 곳도 아니고 한국교육방송을 책임지고 있는 EBS라 이 같은 결정이 더욱 아쉽다. 이 땅에 분명히 있었던 비극을 후대는 올바르게 기억할 필요가 있다. 역사 교육엔 좌우가 없지만, 우리나라의 좌우에는 중국과 일본, 미국이 있기 때문이다.


테일러콘텐츠 에디터 / 영화 칼럼니스트 신동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