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마지막 주 넷플릭스에서 또 한편의 한국 영화 <서울대작전>이 공개되었다. 유아인, 고경표, 이규형, 옹성우, 박주현 등 젊은 배우들의 에너지 넘치는 열연 속에 문소리, 김성균, 오정세, 정웅인 등 연기 만렙을 겸비한 베테랑 배우들이 무게 중심을 잡으며 공개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처음에 제목 듣고 “이거 뭐지?” 라는 생각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어감이 조금 촌스러우니깐 말이다. 하지만 영화의 시대 배경이 올림픽 개막을 앞둔 1988년 서울임을 알게 되면서, 오히려 레트로 필 충만한 작품의 작명센스에 기대감이 더 들었다.
넷플릭스 영화 <서울대작전>은? - 1988년 초특급 미션이 시작된다
<서울대작전>은 사우디에서 불법 무기 탁송으로 돈을 번 동욱(유아인)과 동생 준기(옹성우)가 귀국하여 상계동 카센터에서 슈프림팀 친구들과 재회를 하며 시작된다.
이들에게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세탁을 추적하던 안검사(오정세)가 과거 범죄 행각을 사면해준다는 조건을 걸며, VIP 비자금 배달원으로 위장하여 정보를 빼내올 것을 제안한다. 제안을 받아들인 슈프림 팀은 자신들의 기술로 위장하여 적진에 침투, 정보를 빼내서 안검사에게 전달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자신들의 정체를 적에게 들키며 목숨까지 위태로운 상황에 빠진다. 그렇다고 물러설 슈프림팀이 아니다. 이후 이들의 신박한 콤비 플레이로, 어려움에서 벗어나고 비자금을 가지고 해외로 도피하려는 자들을 막기 위해 영화의 제목 그대로 ‘서.울.대.작.전’을 펼친다. 과연 슈프림팀의 계획은 성공할 수 있을까?
빛과 그림자가 동시에 공존한 1988년, 영화는 어떻게 응답했을까?
영화의 배경으로 설정된 1988년은 두 자릿수 경제성장률을 달성하던 대한민국의 고도성장기였으며,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국제화, 세계화, 개방화의 물결이 밀려들기 시작했던 때이다. 이런 경제적/문화적 격변기와 더불어 1988년 초 전두환 정권에서 노태우 정권으로 바뀌게 되고 경제부흥기에 많은 사리사욕을 챙긴 정권의 실세들은 비자금을 숨기거나 빼돌리기에 급급했다. 빛과 그림자가 동시에 공존한 시기를 배경으로 한 <서울대작전>은 굵직굵직한 소재들 덕분에 유리한 고지에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펼친다.
레트로는 힙한데, 재해석한 뉴트로는 글쎄….
여기에 몇 년 전부터 불어온 레트로 열풍에 걸맞게 영화는 1988년의 서울을 많은 공을 들여 재현한다. 손수 그린 영화 간판이 그리운 대한극장, 당시 오픈했던 압구정 맥도날드 1호점 등 기억 속의 그때 그 모습을 그대로 그린다. 또한 멋쟁이들의 잇 아이템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 보온 도시락통 같았던 무거운 휴대폰, 천연색색 80년대의 패션 등은 작품의 분위기와 잘 맞아 떨어져 뜻 밖의 웃음을 건네기도 한다. 의도된 레트로 아이템이 기대만큼의 재미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뭐든지 너무 과하면 모자라는 것만 못하다. <서울대작전>의 레트로 요소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반가운 대상이 아니라, 피로감을 점점 가져온다. 35년 전의 과거를 알지 못하는 시청자를 위해 영화 속 요소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점은 좋지만, 영화의 큰 그림에서 중요하지 않은 작은 소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는 인상을 지우지 못한다. 이 때문에 140분이라는 짧지 않은 러닝타임이 더욱 길게 느껴진다.
뉴트로를 표방한 레트로 감성들도 때때로 영화의 이질감을 증폭시킨다. VHS 테이프 화질을 너무 무리하게 4K로 리마스터링 한 느낌이라고 할까? 과도한 뉴트로의 어필이 작품과 거리감을 더 들게 한다. 2015년 유행가인 ‘오빠차'의 가사와 최근 유행어인 “핫해 핫해" 등의 대사가 1988년에 등장하는 것은 시대를 뛰어넘은 개그 시도라기 보다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느낌이다. 의도된 촌스러움이 진짜 촌스럽게 다가오며 영화의 집중을 방해한다.
서울을 질주하라! 자동차 추격전
이런 아쉬움 속에서도 빛나는 건 단연 영화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카체이싱이다. 한국영화에 이 같은 소재의 작품이 있었나? 생각이 들 정도로 <서울대작전>은 <뺑반>이후 오랜만에 시원한 자동차 추격전을 선사한다. 특히 레트로 분위기의 작품답게 각 그랜저, 포니 등 추억의 자동차들이 등장, 나름의 튜닝을 걸쳐 웬만한 슈퍼카 못지 않은 파워를 자랑하며 역전의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과정에서 당시 유행곡들을 담은 카세트 테이프의 음악이 카체이싱과 만나 작품의 리듬감을 높인다.
다만 이 작품의 최대 매력도 <베이비 드라이버> <분노의 질주>에서 본 듯한 기시감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한다. 여기에 후반부로 갈수록 CG 퀄리티가 떨어지고, 카체이싱의 속도감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한 점도 아쉽다. 후반부에 펼쳐지는 대작전 또한 허술한 면을 많이 드러내며 기대만큼의 통쾌함을 전하지 못한다.
등장인물은 많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는 캐릭터
<서울대작전>은 <코리아>, <임금님의 사건수첩>을 연출한 문현성 감독이 메 가폰을 잡고, 연기력이 입증된 많은 배우들이 출연하는 영화이다. 이중에서도 유아인과 문소리는 영화를 끌고 나가는 가장 비중 있는 대결의 축으로 등장한다. 두 배우가 상대의 본심을 꿰뚫기 위한 소위 떠보는 멘트와 건들거림을 계속해서 보여주는데, 이 기싸움이 작품의 잔 재미를 자아낸다. 그만큼 개성 강한 캐릭터를 스토리에 잘 녹여낸 이 둘의 연기력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이를 제외하고는 많은 캐릭터가 극에 밀착되지 못하는 느낌이다. 동욱이 이끄는 슈프림팀들의 능력이나 개성이 극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 점이 제일 크다. 이로 인해 이들의 대사나 행동이 단순한 개그 정도로 그칠 때가 많다. 분명 영화는 팀플레이를 강조하는데, 동욱 혼자서 모든 일을 해결하는 인상만 받는다. <서울대작전>은 정치적이고 무거운 사회적 문제를 하이스트 무비로 경쾌하게 해결하며 강한 쾌감을 전하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극에 겉도는 캐릭터와 생각만큼 속력이 붙지 않은 카체이싱 장면이 연출의 목표를 방해한다. 좀 더 영화의 핵심 재미인 카체이싱에 비중을 더 두고, 캐릭터의 개성을 설득력 있게 키웠다면 더 재미있는 영화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음식을 만들 때는 그에 맞는 재료를 사용하여 요리하여야 한다. 재료가 많다고 다 사용하면 원하는 음식을 만들 수가 없는 것이다. <서울대작전>을 감상하는 내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과유불급'이란 단어였다. 탐나는 재료를 모두 사용하고 싶은 영화의 욕심에 알고 있는 모든 걸 쏟아 넣어 오히려 음식의 정체를 가늠할 수 없게 돼버린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물론 이런 단점 속에서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다운, “가볍게 즐길만하다”의 범주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오락영화의 본분은 다한다. 하지만 넷플릭스 영화를 보고 언제까지 “이만하면 나쁘지 않다”라고 넘겨야 할지, 그 피로도가 점점 쌓인다. 특히나 <서울대작전>처럼 화려한 분위기와 좋은 소재를 가진 작품이라면 씁쓸한 맛이 더 오래 남는다.
테일러콘텐츠 에디터 보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