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신곡 ‘Nxde’(누드)는 마를린 먼로의 삶에서 영감을 받은 가사와 퍼포먼스로 팬들과 평단의 호평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이름은 ‘예삐예삐’고 ‘말투는 멍청하지만 몸매는 섹시섹시’인 이 여자는 더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사실은 ‘철학에 미친 독서광’인 ‘로렐라이’(영화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속 마를린 먼로의 배역 이름)는, 이제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못한다 해도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다이아 박힌 티아라’ 하나에 웃는 멍청한 미인을 요구하는 세상 속에서 질식했던 마를린 먼로의 삶. 나는 ‘Nxde’의 가사를 곱씹으며 할리우드의 황금기에 비슷한 삶을 살아야 했던 수많은 여자 배우들을 떠올렸다. 비상한 두뇌와 고아한 이상을 지녔음에도 산업이 요구하는 대로 잘 웃어주는 금발 미녀를 연기해야 했던 이들은 또 얼마나 많았나.
‘Nxde’에서 시작된 생각은 <킹콩>(1933)으로까지 뻗어갔다. <킹콩> 속 영화감독 칼 덴헴(로버트 암스트롱)은 새로운 모험 영화의 주인공으로 섭외한 무명의 배우 앤(페이 레이)에게 연기를 지도하며 이렇게 말한다. “비명만 잘 지르면 돼.” 마치 <킹콩>의 후반부를 실토라도 하듯이. 나름대로 선원 잭(브루스 캐봇)과 감정도 나누며 소소하게 캐릭터를 쌓아가던 앤은, 콩의 손아귀에 들어간 이후부터 쉴 틈 없이 비명을 지르다가 실신하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제 손아귀 안에서 사지를 힘없이 늘어뜨린 금발 미녀에게 매료된 콩은, 앤이 입고 있던 옷을 조금씩 찢어가며 앤이 나신이 되어가는 과정을 즐긴다. 1933년 판 <킹콩>에서 콩을 움직이는 것은 앤을 향한 콩의 소유욕 내지는 정욕이고, 앤은 무도하고 야만적인 콩을 자극하는 밤쉘(Bombshell)이자 ‘구원을 기다리는 여인(Damsel in distress)’의 역할까지만 하고 더 이상의 캐릭터 성장을 멈춘다. 하긴, 거진 90년이 지난 요즘도 그런 작품이 없지 않은 판에, 90년 전이었다고 해서 뭐가 달랐을까.
원작이 나온 뒤 70여 년 뒤 만들어진 피터 잭슨 판 <킹콩>(2005)은, 시대를 70년대로 옮긴 1976년 판과 달리 원작의 흐름을 거의 고스란히 따라간다. 배고픔을 못 참고 사과를 훔치려다가 걸린 앤(나오미 왓츠)을 독불장군 칼 덴헴(잭 블랙)이 발견하는 장면? 있다. 바스토사우르스 렉스와의 전투 씬? 있다. “비행기 때문이 아니오. 미녀 때문에 죽은 거지”라는 마지막 대사? 있다. 심지어 원작에서 구상만 했으나 제작비 때문에 찍지 못했다던 거대 벌레들과 싸우는 씬? 굳이 이렇게까지 길게 안 넣었어도 됐을 법하게 있다. 하지만 이처럼 원작이 걸어간 길을 착실하게 따라간 피터 잭슨은, 원작이 하지 못한 일도 해내는데 성공했다. 2005년 판 <킹콩>에서 앤은 한층 더 입체적인 인물이 된다. 자신이 연기해야 할 캐릭터에 관해 극작가 잭(에이드리언 브로디)과 토론도 나누고, 콩에게 잡혀갔을 때에도 콩을 다루기 위해 육체 언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만큼 상황 적응력도 빠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앤은 콩과 교감할 줄 안다.
자신 앞에서 괜히 수컷으로서의 위엄을 과시하려다가 이윽고 풀이 죽어 혼자 지는 석양을 바라보던 콩에게서, 앤은 익숙한 감정을 발견한다. 앤은 그 종의 마지막 생존 개체인 콩이 지독하게 외롭고 권태로우며 강한 척 하는 일에도 지쳤다는 걸 눈치챈다. 그건 대공황 시기 설 수 있는 무대들이 사라지고 함께 무대를 오르던 보드빌 배우 동료들이 하나 둘 사라져가는 상황을 혼자 외롭게 견디며 겉으로는 내내 웃어야 했던 앤이니까 알아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앤은 콩의 손아귀에서 비명을 지르다가 실신하는 대신, 콩과 함께 앉아서 석양을 바라본다. 손바닥을 가슴에 가져다 대는 것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볼 때 사무치는 심정을 공유하면서. 그렇게 2005년 판 <킹콩>은, 앤을 일방적인 피해자이자 구원을 기다리는 여인으로 그렸던 1933년 판의 한계를 극복하고 앤과 콩 사이에 종을 뛰어넘은 유대관계를 그려넣는데 성공했다. 그것도 에로스적인 요소로 가득한 1976년 판의 뉘앙스는 말끔하게 지우면서 말이다.
사실 1933년 판에서 앤을 연기했던 페이 레이도, 그저 “비명만 잘 지르면 돼.”라는 말 같지 않은 연기 디렉션을 받았던 앤도, 2005년 판 앤이 그렇듯 영민하고 타자에 공감할 줄 아는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특히나 페이 레이는 더더욱. 영민하지 않고서는 그 탐욕스러운 동네에서 60년 가까이 현역으로 활동하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중 상당수는 그들을 그렇게 기억하지 않는다. 그런 면모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대중은 보고 싶은 것만 보니까. 헤디 라마가 주파수 도약 기술을 발명한 건 1942년이었지만, 그 기술을 인정받아 상을 받은 건 55년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마를린 먼로는 전공자도 한 번 완독하는 일이 힘들 만큼 난해하기 짝이 없는 <율리시즈>를 두 번이나 완독해 낸 독서광이었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의 사후에도 “멍청한 금발 이미지를 벗어보려는 콤플렉스의 발로”로 오해했다.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한 것과 그 뒤에 숨겨진 진면모 사이에서, 괴로워 한 배우들은 얼마나 많을까?
1933년 판에서는 보인 적 없던 앤의 숨겨진 면모를 찬찬히 들여다 본 2005년 판 <킹콩>의 마지막 대사는, 공교롭게도 1933년 판과 동일하다. 콩의 시신 앞에서 “비행기 때문에 죽은 거다”라고 말하는 행인들에게, 칼 덴헴은 이렇게 말한다. “비행기 때문이 아니오. 미녀 때문에 죽은 거지.” 나는 그 대사를 들을 때마다 한 때 마를린 먼로의 배우자였던 극작가 아서 밀러가 남긴 말을 떠올리곤 했다. “끔찍한 일이었다. 내가 알던 여자는 ‘마를린 먼로’와 아무 관계가 없었지만, 내내 ‘마를린 먼로’로 살아야만 했다. 우리의 결혼은 그 덫에서 헤어나오지 못했고, 마침내 그게 그를 죽였다.” 야만적인 맹수로 오해 받았으나 사실은 제 지독한 외로움을 알아주는 앤과 소통하려다가 숨을 거둔 늙은 유인원처럼, 마를린 먼로도 멍청한 금발로 오해 받았지만 사실은 자신을 몰라주는 세상 속에서 지독하게 외로워 하다가 숨을 거뒀다. 누군가와 소통하려던 듯, 전화기를 손에 쥔 채로.
이승한 TV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