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말 <왕의 귀환>으로 완결된 후, 햇수로 14년 만에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한국에서 재개봉합니다. 1월 11일 <반지 원정대>(2001)를 시작으로 한 주 간격으로 <두 개의 탑>(2002), <왕의 귀환>(2003)이 상영될 예정입니다. 14년 전과 같은 판본은 아닙니다. 각 편 당 40분 이상의 분량이 추가된 확장판 버전입니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 재개봉을 기념하며, 시리즈에 참여했던 배우들이 그 이후 보여준 활약상에 대해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프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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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라이저 우드

'반지의 제왕'의 주인공, 프로도 역의 일라이저 우드. 그는 8살 때 <빽 투 더 퓨쳐 2>(1989)에 출연하며 배우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딥 임팩트>(1998), <패컬티>(1998) 등에 출연하며 성인 배우로서도 점차 자리를 잡아가던 그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 출연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죠. 3부작의 대장정을 마친 후엔 <이터널 선샤인>(2004)에서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의 기억을 지우다가 그녀를 사랑하게 되는 패트릭을, 이듬해 <씬 시티>(2005)에서는 수족을 짐승들에게 뜯어먹히는 가운데에도 섬뜩한 미소를 지어보이던 살인마 케빈을 연기해 비슷한 시기,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서 '반지의 제왕'의 그림자를 서서히 벗었습니다. 앳된 외모의 우드는 스릴러, 액션, 코미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활발하게 캐릭터의 스펙트럼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아, '호빗' 시리즈의 첫 번째 편 <호빗: 뜻밖의 여정>(2012)에서는 프로도로 다시 한번 등장하기도 했죠.

<이터널 선샤인> / <씬 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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숀 애스틴

퉁퉁한 외모 때문에 왠지 둔해 보이는 이미지와 달리 강인한 정신력으로 프로도를 보조하던 충신 샘. 그가 없었더라면 프로도는 일찌감치 골룸의 꾐이나 반지의 유혹에 넘어갔을 겁니다. 숀 애스틴은 어드벤처물의 걸작 <구니스>(1985)의 주인공으로 발탁되며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청춘물 <캠퍼스 군단>(1991), 럭비를 소재로한 스포츠영화 <루디>(1993), 정치 블랙코미디 <불워스>(1998) 등에서 주연으로 활약하며 커리어를 다져갔죠.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 다른 캐릭터들보다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끝내 우직한 친구의 이미지만큼은 깊게 남긴 그는, <첫 키스만 50번째>(2004)에서 단기 기억상실증을 앓는 동생(드류 베리모어)을 은근히 도와주는 '망사난닝구' 오빠 더그 역으로 감초 연기를 톡톡히 보여줬습니다. 서글서글한 외모에 드러나는 유머러스한 분위기 때문인지 코미디 영화에 주로 출연하던 애스틴은, 최근 몇 년 <케빈 피버: 페이션트 제로>(2014), 드라마 <스트레인>(2014~5) 등 스릴러, 호러물에 출연하면서 푸근한 얼굴 이면의 차가움을 발산하고 있습니다.

<첫 키스만 50번째> / <스트레인>

간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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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매켈런

이안 매켈런은 '반지의 제왕' 이전에도 이미 모국인 영국에서 배우계의 거목이었습니다. 1979년 무대 예술에 대한 공을 인정 받아 대영제국 훈장 3등급을 받고, 1991년 기사작위에 서임되기까지 했죠. 커밍아웃한 게이로서 성소수자 인권운동에도 활발히 참여했습니다. 젊은 영화 팬들에게 매켈런 경은 '반지의 제왕'의 간달프 이전에 '엑스맨' 매그니토로 기억될 겁니다. 그는 2000년대 초 '간달프'와 '매그니토' 역을 병행하며 다시 한번 노년의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다빈치 코드>(2006)에서는 주인공 랭던(톰 행크스)이 크게 의지하는 성배 연구자 레이 티빙 경으로 분했고, <황금나침반>(2007)에서는 백곰 이오렉 바이어니슨의 목소리를 맡기도 했습니다. '호빗' 시리즈에서도 주연급으로 활동한 그는 <미스터 홈즈>(2015)로 영국 신사의 정석적인 풍모를 유감 없이 보여줬죠. 오는 3월 개봉하는 실사판 <미녀와 야수>에서는 괘종시계 콕스워즈 역을 맡았다고 합니다.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 <미스터 홈즈>

사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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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리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대표적인 빌런, 사루만 역의 크리스토퍼 리 경은 195cm의 장신을 내세운 압도적인 이미지로 프랑켄슈타인, 드라큘라 등의 캐릭터를 거쳐 <삼총사>(1973)와 '007'시리즈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1974)에서 활약하며 다방면의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배우의 이미지를 공고히 했습니다. 주로 판타지 영화에서 빛을 발하던 리는 평소 흠모하던 톨킨(그는 직접 '반지의 제왕'의 원작자 J.R.R. 톨킨과도 독대해본 적이 있는, 알아주는 톨키니스트라고 합니다)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 '반지의 제왕'을 작업하면서, 2000년대 제작된 '스타워즈' 시리즈에서는 듀크/다스 타이라너스를 연기했습니다. 판타지 베테랑의 면모는 팀 버튼과 작업한 <찰리의 초콜릿 공장>(2005), <유령 신부>(2005),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10), <다크 섀도우>(2012)에서도 만날 수 있었죠. 2009년 영국 정부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은 리는 마틴 스코세이지의 3D 영화 <휴고>(2011)를 작업하고, '호빗' 시리즈에서도 사루만의 위엄을 보여줬습니다. 2015년 6월 세상을 떠난 리의 유작은 <호빗: 다섯 군대 전투>(2014)입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 / <휴고>

아라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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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고 모텐슨

프로도와 함께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이끌어가는 또 다른 주인공, 바로 아라곤입니다. 비고 모텐슨은 <칼리토>(1993), <크림슨 타이드>(1995) 등 수많은 액션영화들에 조연으로서 꾸준히 참여하다가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통해 일약 주연급 배우가 됐습니다. 이후 <히달고>(2004)의 서부극 히어로를 거쳐, 스릴러의 거장 데이빗 크로넨버그와 함께 <폭력의 역사>(2005)와 <이스턴 프라미스>(2007), <데인저러스 메소드>(2011)를 연달아 작업하며 '반짝스타'의 한계를 가볍게 벗어던졌습니다. 잿더미로 변해버린 세상에서 아들과 함께 굶주림과 혹한을 버텨내는 <더 로드>(2009)의 아버지 역으로 다시 한번  묵직한 인상을 남긴 모텐슨은, 아르헨티나의 예술영화 <도원경>(2014)과 배우 맷 로스가 연출한 인디영화 <캡틴 판타스틱>(2016)에서 새로운 아버지 상을 선보였습니다.

<폭력의 역사> / <더 로드>

갈라드리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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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 블란쳇

'반지의 제왕' 이후 가장 화려한 커리어를 자랑하는 배우는 아마 케이트 블란쳇이 아닐까 싶습니다. 갈라드리엘 역이 덧붙여준 '여신'의 이미지는 어떤 역할을 맡아도 특유의 무드가 따라붙는 블란쳇의 화려한 얼굴에 강력한 아우라까지 심어줬기 때문입니다.  마틴 스코세이지, 웨스 앤더슨, 짐 자무시 등 거장들과 작업하고, 크고 작은 영화들에 부지런히 출연했습니다. 덕분에 블란쳇은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2008)과 <로빈 후드>(2010)류의 블록버스터와 <아임 낫 데어>(2007),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 같은 독특한 드라마가 고루 러브콜을 보내는 배우가 됐죠. 우디 앨런과 만난 <블루 재스민>(2013)으로는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거머쥐기도 했습니다. '호빗' 시리즈에도 참여한 그녀는 <캐롤>(2015)에서 다시 한번 절대적인 우아함을 선보였고, 목소리 연기로 애니메이션 <드래곤 길들이기 2>(2014)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무지 많고, 하나하나 다 굵직굵직한 작품들이네요. 하지만 마지막으로 하나 더! 올해 가을 발표되는 <토르: 라그나로크>에서는 메인 빌런 헬라 역을 맡았습니다.

<블루 재스민> / <캐롤>

레골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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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랜드 블룸

'반지의 제왕'에 출연한 대부분의 배우들이 연기력을 인정 받았다면, 레골라스의 올랜드 블룸은 감탄이 절로 흘러나오는 미모로 뭇 관객들의 심장을 저격했습니다. 그리고 탄탄대로는 시작됐습니다. 2000년대 최고의 흥행을 자랑하던 시리즈 '캐리비안의 해적'의 윌 터너 역에 발탁된 그는, 블록버스터 <트로이>(2004)에서 브래드 피트, 에릭 바나와 함께 당당히 주연을 꿰찼고, 이듬해 <킹덤 오브 헤븐>(2005)을 통해 '전사'의 이미지를 더욱 단단하게 다졌습니다. 커스틴 던스트와 함께 호흡을 맞춘 로맨틱코미디 <엘리자베스타운>(2005)에서는 전사의 코스튬을 벗고 달달한 로맨틱가이의 면모까지 보여줬습니다.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가 2011년 멈춘 뒤로는 '호빗' 시리즈를 제외하곤 이렇다 할 히트작이 없었는데요. 오는 5월 개봉할 <캐리비안의 해적 5: 죽은 자는 말이 없다>로 그의 커리어가 다시 회복될지 두고 봐야겠습니다.

<엘리자베스타운> / <캐리비언의 해적: 망자의 함>

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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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라이스 데이비스

짧고 뚱뚱한 풍모로 도끼를 휘두르던 김리는 '반지의 제왕'의 신스틸러죠. 김리를 연기한 존 라이스 데이비스가 분장을 덜어내고 처음 선보인 캐릭터는 <프린세스 다이어리 2>(2004)의 마브리 자작 역입니다. 선하디선한 김리와 달리, 마브리 자작은 여왕의 통치를 도울 후보 중 한 명인 니콜라스(크리스 파인)의 삼촌으로, 조카를 이용해 제노비아의 통치권을 뺏으려는 음모를 꾸미는 사람입니다. 이 작품 이후 할리우드 히트작에서는 그의 연기를 만날 순 없었지만, 꾸준히 배우 활동을 잇고 있습니다. '반지의 제왕'의 많은 배우들(특히 김리의 단짝인 레골라스 역의 올랜드 블룸까지)이 '호빗' 시리즈에서도 이어 출연한 반면, 김리 역의 존 라이스 데이비스의 모습은 볼 수가 없어 꽤 안타까웠는데요. 분장으로 인한 고생이 너무 심했어서 그걸 다시 겪고 싶지 않다고 한 인터뷰에서 전했다고 합니다.

<프린세스 다이어리 2> / <비욘드 더 마스크>

아르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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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 타일러

어마어마한 미모로 1990년대 청춘스타로 자리매김한 리브 타일러. 그녀가 연기한 아르웬은 엘프족의 여신이라는 설정이 한치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의 아름다움으로 회자됩니다. '반지의 제왕' 이후 출연 배우들의 필모그래피가 활발하게 채워졌던 것과 달리, 리브 타일러의 활동은 점점 뜸해져갔습니다. 벤 애플렉의 로맨스 <저지 걸>(2004), 스티브 부세미의 연출작 <론섬 짐>(2005),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초기작 <인크레더블 헐크>(2008)에서 주연을 맡긴 했지만, 더 화려한 커리어를 펼치진 못했습니다. 간간이 중소 규모의 작품들에 출연한 타일러는 2014년 이후로는 특별한 작품 소식을 전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신님, 보고 싶어요!

<인크레더블 헐크>

엘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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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고 위빙

휴고 위빙의 2000년대 초반은 참 화려했습니다. 그 당시 전세계 이목이 집중되던 시리즈 '매트릭스', '반지의 제왕'에서 활약했기 때문이죠. '반지의 제왕'의 엘론드는 '매트릭스'의 스미스 요원보다는 그 비중이 작았지만, "남자 엘프"라고 하면 얼추 그의 얼굴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후 그의 커리어는 '목소리'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기묘한 웃음을 띤 마스크를 쓰고 정의를 실현하는 V 역을 맡은 <브이 포 벤데타>(2005)부터 <해피 피트>(2006)의 노아,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 시리즈의 메가트론 등 히트작에 성우로 참여하면서 근사한 목소리를 뽐냈습니다. 아직 캡틴 아메리카의 영향력이 미처 커지지 않았던 영화인 <퍼스트 어벤져>(2011)에서 시뻘건 분장을 한 레드 스컬로 활약한 것과 더불어, '호빗' 시리즈에서도 모습을 드러냈죠. 내달 개봉하는 멜 깁슨 연출의 전쟁영화 <핵소 고지>에서는 주인공 데스몬드의 아버지인 톰 도스 역을 맡았다고 합니다.

<퍼스트 어벤져> / <핵소 고지>

골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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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서키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드디어 골룸 역의 앤디 서키스 차례입니다. 오랫동안 무명으로 활동하던 그는 '반지의 제왕'에서 모션 캡처 기술을 통해 골룸을 연기한 이후 세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모션 캡처 연기로 남다른 재능을 보여준 그는 '반지의 제왕' 이후 피터 잭슨 감독의 차기작 <킹콩>(2005)에서도 주인공 킹콩을 실감나게 재현했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프레스티지>(2006) 이후 몇 년 간 본연의 모습으로 연기를 선보이긴 했지만, 이전만큼의 주목은 받지 못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던 중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2011)에서 다시 모션 캡처를 이용해 만들어낸 주인공 시저 역을 맡으면서 연기력을 자랑했고, '호빗'에도 참여해 골룸의 생명력을 입증했습니다. 2014년부터 필모그래피가 아주 화려한데요. <고질라>(2014),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2014),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2015) 등 잘 만든 블록버스터 영화들에 참여했습니다. 올해는 '스타워즈', '혹성탈출'의 새로운 시리즈에서도 그의 연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 /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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