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디의 육신은 사라졌으니 이젠 '아바타'가 아니긴 한데..

비록 <어벤저스 ; 엔드게임> (2019)에 왕좌의 자리를 내주긴 했지만, 그 전 10년 동안 세계 흥행 1위는 <아바타> (2009) 였다. 그리고 그 전 12년동안 1위를 지켜온 작품은 <타이타닉> (1997> 이었다. 이렇게 2,3위를 연출한 제임스 카메룬 감독이 <아바타2 : 물의 길>(2022)을 들고 찾아왔다.

<아바타2:물의 길>의 비주얼과 극장

전작이 던져준 비주얼 쇼크답게, 2편 또한 시각언어로써 놀라움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이 화면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선 어떤 극장에서 관람해야 할까?

우선 이 영화의 스펙부터 알아보자. 용어를 대략 설명하자면

4K : 일반 극장 화질인 2K의 4배의 해상도

HFR : 부드러운 움직임 (48fps)

HDR : 밝은 부분(명부)이 더 밝고, 어두운 부분(암부)이 더 어두움. 하지만 되려 디테일은 살아있음.

그리고, 3D 인데

이 모든 요건을 충족시키는 극장체인은 '돌비 시네마 시스템'으로 상영하는 메가박스가 유일하다. 그러나 모든 지점이 요건을 만족하는 것은 아니고 남양주 현대아울렛 스페이스 원, 안성 스타필드, 서울 코엑스, 대전 신세계 아트 앤 사이언스, 대구 신세계 지점에서만 가능하다. 사운드도 '돌비 애트모스 시스템'을 이용하여 아주 좋은 편에 속한다. 그러나 극장 체인 중에서 3D안경은 가장 불편한 편이다.

CGV에는 아이맥스가 있다. 이 시설의 가장 큰 장점은 한 눈에 들어오는 큰 화면으로써, 3D를 보기위해선 큰 화면과 동시에 밝은 화면이 필요하니 기본적인 요건은 좋은 축에 속한다. 유명한 용산에는 최고의 해상도(4K)를 보여주지만, 움직임이 부드럽지는 못하다. (24fps) 압구정, 광교, 동탄은 부드러운 움직임(48fps)을 선사하지만 해상도가 떨어진다 (2K)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점의 컬리리움 상영관은 영사기가 스크린에 쏘는 것이 아닌 일종의 거대한 텔레비전이라서 아주 선명한 화면을 제공한다. 대사가 나오는 스피커가 일반 극장처럼 화면의 뒤에 있는데, 시설의 특성상 대사가 먹먹하게 들린다는 것이 흠이다.

극장에 가기 귀찮다, 난 집에서 즐길거야 : 6억원짜리 프로젝터만 사면된다.

속편의 심층적 장치들

<아바타> 1편에서 중요한 것은 교감이었다. '자신'이라는 의미를 확장시켜 또 다른 육신을 경험하면서 자아의 범위를 넓혀 갔다. 이를 통해서 자신을 에워싼 우주와 환경에 교감하는 체험을 쌓아나갔다. 마침 1편은 시각적인 측면에서도 혁명적 경험이라고 불릴정도의 파괴력이 있었다. 이는 컨텐츠의 형식과 내용이 맞물려 좋은 시너지를 냈고, 그렇게 내/외재적으로 '나'를 확장하는 것에 많은 중점을 맞췄다.

2편에서는 나를 넘어선, 공동체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정확히는 '너'를 포함한 나와 너라는 우리다. 평범함과 평범하지 않음의 구별은 사실 거창하지 않다. 1편에서 인간들은 비정상처럼 보이는 나비족들을 원숭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2편에선 인간의 신체를 지니고 있으나 생활이나 소속감은 나비족 그 자체인 스파이더가 되려 나비족으로 부터 원숭이라고 불린다. 애매하고 덧없는 정상과 비정상의 논의는 시각과 입장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차이점을 가진 캐릭터들은 갈등하지만, 결합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제이크(샘 워싱턴 분)는 악마라고 불릴 정도로 특이한 정체성을 가진 외지인의 속성이 강하므로 그의 혈육들은 모두 혼혈이다. 그들은 물의 부족이라 불리는 맷 케이나 족에 비해서 꼬리도 길고 물갈퀴도 없으며, 숲에서 이동하는 것에 익숙하여 수중에서의 호흡에 부적응하여 놀림을 받는다. 제이크의 가족에 입양된 키리(시고니 위버 분)는 아빠가 누군지도 모른다. 스파이더는 아예 인간이다. 쿼리치(스티븐 랭 분)의 군단은 아예 전부 나비족의 외모를 띄게 됐다.

그러나 다른 점을 가진 이 캐릭터들은 겉은 다르지만 비슷한 내면을 가졌으며, 비록 삶의 방식은 달라도 크게 낯설지 않은 방법으로 교감한다. 불분명한 경계가 오히려 불통의 요소가 아닌, 교감의 불을 지필 수 있는 땔감이 되는 것이다. 차이점 보다는 공통점을 발견함으로써 말이다.

이는 2편이 던지는 거대한 순환의 이미지와 맞물리며 넌지시 메세지를 던진다. 전작에서 나비족은 '우리의 에너지는 자연으로부터 빌려서 사용하는 것이며, 수명이 다한 뒤에는 돌려줘야' 한다는 순환주의적 태도를 지닌다. 속편에서 네이티리는 그들의 줄노래에 마지막 구슬이 있다고 했다. 이것는 마치 묵주나 염주처럼, 시작할 때 펼쳐진 것은 곧 끝과 맞닿는 다는 순환 그자체를 의미한다. 게다가 맷 케이나 족이 물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몸의 내부와 외부 모든 곳에 물이있다는, 순환의 의미를 비춘다. (그들과 가장 밀접한 관계의 툴쿤의 생활 양식 또한 유사하다. 삶과 죽음의 지점은 맞닿아 있다.)

49년생 시고니 누님의 10대 연기를 볼 수 있다.

여전히 위력을 가지는 인사법

1편에서 관객인 우리가 나비족에게 가진 최초의 인상은 원시성을 가진 부족이 문명의 발전을 거부한 채 공포를 심어주는 존재 쯤으로 보였다. 그러나 2편에서는 외모만 다를 뿐, 인간과 그리 다르지 않은 존재로 그려지며 젊은이들의 끓는 피나 사랑, 경쟁심리가 묘사된다. 그들 또한 관계의 서투름이나 발전을 통해서 진정한 의미로 교감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는 인간이 서로의 마음을 모르는 채 공감을 필두로 소통해 나가는 과정과 비슷하다. 실은 인간도 비슷한 실수를 하지 않는가, 자신에게 편리함으로 느껴지는 것은 일종의 둔감함이며 그러한 말과 행동은 언제나 누군가의 마음을 다치게 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마음가짐을 우리는 감수성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리 샤헤일루(교감)가 가능한 기관이 달려있는 나비족일지언정 마찬가지인 것이다.

나비족의 인사는 나는 당신을 봅니다 I see you 이다. 상대방의 겉모습이 아닌 영혼 너머의 핵심을 본다, 혹은 그러기 위해 노력한다는 뜻이다. 즉,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파트너의 진심을 보려는 태도인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비족인 로아크와 툴쿤족인 파야칸처럼 서로의 가장 깊은 상처를 보게 되고 깊게 기댈 관계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권위적인 아빠인 제이크는 아들인 로아크에게 굉장히 가부장적으로 대한다. 그러나 아들 또한 구성원의 역할을 해내고, 되려 맷 케이나 족과의 관계를 더욱 명민하게 결속시키자 철없는 자식이 아닌 존중받을 존재로서 그에게 I see you라고 인사한다. 단지 서로에 대해서 무지했을 뿐, 그것이 해소되면 상대방의 더 큰 세계를 볼 수 있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다음 세대가 되려 전 세대에게 문화를 가르치는 것은, 마치 미국 이민자 가정을 보는 인상이 들기도 한다.

혹은 현세대가 기성세대에게 디지털 기기 사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라던지.

아바타 시리즈의 방향

1편에서 육체에 의한 존재론적 의미를 물었다면 2편에서는 환경을 토대로 사회 드라마적 요소를 강화했다. 그리고 엄청난 스펙타클의 포경 (툴쿤 사냥) 을 보여주며 환경보호와 삶의 상관관계에 관한 철학을 던진다. 앞으로 개봉예정인 시리즈를 보면

3편 : 씨앗 운반자

4편 : 툴쿤의 기수

5편 : 에이와를 찾아서

인데, 부제만 봐도 지구의 환경을 파괴하고 이주하는 인간들이 보여주는 파괴에 관한 여러 면면들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판도라의 기본 섭리는 교감이다. 그에 비해 자본주의와 당장의 겉을 핥는 속성을 가진 인간이 깨달음을 가져가는 일은 요원해 보인다. 이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제임스 카메룬 감독이 던지는, 인간이 가져야할 궁극적인 태도란 무엇일지를 계속해서 감상할 수 있도록 적절한 반응과 흥행을 기대해본다.


프리랜서 막노동꾼 이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