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2009)와 <국제시장>(2014)으로 국내 최초 ‘쌍천만 감독’에 등극한 윤제균 감독이 돌아왔다. 8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영화 <영웅>을 들고서다. 한국 최초 오리지널 뮤지컬 영화 <영웅>은 1909년 10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일본 법정의 사형 판결을 받고 순국한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준비하던 때부터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까지, 잊을 수 없는 마지막 1년을 그린 영화다. 국가의 원흉을 처단할 맹세를 하던 순간부터 죽음 앞에서도 흔들림 없던 강인한 신념에 이르기까지 대한제국 독립군 대장 ‘안중근’의 마지막 1년의 이야기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강렬하게 다가온다.
한국영화 최초로 시도되는 현장 라이브 녹음으로 영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감동을 전하는 것은 물론, 인이어(In-Ear)와 마이크를 지우는 CG 작업으로 한층 완성도를 높였다. 뿐만아니라 극장 상영에 맞춰 재편곡된 넘버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촬영되어 다채로움을 더했으며, 롱테이크 촬영으로 배우들의 감정선을 더욱 현장감 있게 담아냈다. 눈과 귀를 사로잡는 풍성한 음악과 볼거리, 배우들의 열연으로 그려내며 전에 없던 영화적 체험을 선사할 영화 <영웅>의 윤제균 감독을 만났다.
오랜만의 인터뷰라 할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일까? 정해진 인터뷰 시간을 훌쩍 넘겼는데도 못한 질문이 남았다. 다음 스케줄로 이동해야 하는 상황. 자리에서 일어서던 윤제균 감독이 “오늘 밤에 통화로 좀 더 하시죠!”라며 웃었다. 쌍천만 감독의 소탈한 모습이 어찌나 고마웠던지. 덕분에 <영웅>이 세세한 비하인드 스토리와 함께, 윤제균 감독의 영화에 대한 철학을 조금 더 들어볼 수 있었다.
<국제시장> 이후 <영웅>으로 8년 만에 메가폰을 잡으셨습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마디로 떨려요(웃음). 사실 안 떨릴 줄 알았거든요. <국제시장> 이후에 <공조>도 제작하고 다른 영화 작업도 많이 했는데, 직접 연출한 영화다 보니 아무래도 제작할 때랑은 다르네요. 제작에 참여한 작품은 관객 앞에 옷을 갖춰 입고 평가를 기다리는 느낌이라면, 연출한 작품은 다 벗고 평가받는 기분이거든요. 아무것도 숨길 수 없는 느낌이랄까요?
게다가 천만 관객을 동원한 <국제시장> 바로 다음 작품이라는 기대에 대한 부담감도 크고요, 또 우리나라 최초 오리지널 뮤지컬 영화라는 기대감에 대한 부담도 커요. 코로나19로 극장에 관객이 많이 안 오는 상황에서 개봉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도 크고, 그 와중에 <아바타 2: 물의길>이라는 ‘세계 1등’ 영화랑 같은 시기에 개봉한다는 사실에 또 막 불안해지기도 하고요(웃음). 인생 살면서 모든 게 한꺼번에 복합적으로 떨리는 기분이랄까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 하자는 생각으로 홍보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오늘 인터뷰도 그렇고요.
‘쌍천만 감독’님께서 너무 엄살 부리시는 거 아니세요?
전혀 아니에요. <아바타 2>랑 붙어보세요. 남의 일이야 괜찮지. 내 일로 닥치니까 밤에 잠이 안 온다니까요(웃음).
말씀하신 대로 연말 극장가는 오랜만에 대작 경쟁으로 열기가 후끈합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 역시 13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아바타 2: 물의 길)이 12월 14일 개봉해 벌써 관객 수 32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12월 21일 기준). 감독님은 이미 쌍천만 감독님이신데요, <영웅>으로 삼천만 감독 등극, 예상하시나요?
전혀요. 진짜예요. 천만 관객을 목표로 영화를 만들려고 했으면, 뮤지컬 영화를 안 했겠죠. 그보다도 지금 영화계 전체가 어려운 상황이잖아요. <아바타2>, <영웅>을 보러 극장에 많은 관객이 오셨으면 하는 바람이 큽니다. 그래도 <영웅> 감독으로서 우리 영화 자랑하자면요, <아바타 2>가 시각적 즐거움을 주는 영화라고 하면, <영웅>은 가슴을 뜨겁게 하는 영화기 때문에 선택하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아바타 2>가 3D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한 영화지만, <영웅>은 2D 5.1채널에 최적화된 시청각 종합선물 세트 같은 영화예요. 3D 영화로는 <아바타 2> 많이 보시고, 2D 영화로 <영웅>도 많이 보시면 좋겠습니다.
<영웅> 원작 뮤지컬은 언제 접하셨고,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또 그때부터 영화화를 염두에 뒀는지도요.
2012년에 <댄싱퀸>을 제작했어요. 그때 조연으로 정성화 배우가 출연했죠. 영화가 개봉할 즈음에 정성화 배우가 뮤지컬 <영웅> 공연을 하고 있다고, 보러 오라더라고요. 아무런 정보도 없이 갔어요. 그런데 뮤지컬을 보고 제가 그만 오열을 했습니다. 언젠가는 이 뮤지컬을 반드시 영화로 만들겠다고 다짐했죠. 벌써 10년도 넘은 이야기네요.
평소에 뮤지컬 많이 보세요?
많은 분이 저를 뮤지컬 영화 마니아로 알고 계시더라고요(웃음). 제가 뮤지컬 마니아라 <국제시장> 다음 작품으로 <영웅>을 선택했다고 생각한 분도 많은데, 사실 그게 아니에요. 뮤지컬 <영웅>을 보고 감흥을 받아서 영화화하겠다고 결심한 거죠. 그 뒤부터 뮤지컬 영화를 공부했고요. 순서가 그렇게 됩니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에 촬영에 들어간 걸로 들었습니다.
2019년 가을이었죠. 9월에 촬영에 들어갔고 2020년 1월에 촬영을 마쳤어요. 4~5개월 정도 걸렸네요. 그리고 촬영이 끝나자마자 코로나19가 터졌어요. 사실 2020년 8월 개봉 예정이었거든요. 사람들이 왜 8년 만에 영화를 찍었느냐고 자꾸 묻는데, 늦게 내려고 그런 게 아니라, 2년 반은 본의 아니게 개봉이 미뤄진 겁니다(웃음).
2년 반 동안 계속 후반작업을 하신 거예요?
<담보>를 2020년에 제작했고, 그 뒤에 <공조2>도 했죠. 그러면서 <영웅> 후반작업을 계속했어요. 본의 아니게 시간이 길어진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 그동안 재촬영을 많이 했습니다. 본촬영에서 아쉬웠던 장면들을 다시 찍은 거죠. 덕분에 영화의 완성도를 더 극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습니다.
처음부터 안중근 역에 정성화 배우를 고집하셨다고요. 제작사, 투자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요. 끝까지 밀어붙였던 이유가 있나요?
정성화 배우를 고집한 이유는 목표가 명확했기 때문입니다. <영웅>을 영화화할 때 목표는 딱 두 개였어요. 첫째는 뮤지컬을 본 관객을 절대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거였습니다. 뮤지컬을 본 관객들의 눈높이, 기준은 상당히 엄격하거든요. 웹툰도 그렇지만, 원작이 있는 작품을 영상화했을 때 잘못되면 원작 마니아와 팬들의 비판 수위가 굉장히 세요. 그걸 충분히 인지했기 때문에 원작 뮤지컬을 본 관객들을 절대 실망하게 하지 않겠다는 목표를 세웠죠.
두 번째 목표는 무엇이었나요?
전 세계 시장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만들겠다는 것이었죠. 요즘 K-culture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잖아요. <영웅>이 한국 최초 오리지널 뮤지컬 영화라고 할 때, K-culture에 관심 있는 분들은 분명 찾아보지 않겠어요? 그분들이 봤을 때 창피해지기 싫었습니다.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휩쓸고, <헤어질 결심>이 칸영화제를 휩쓸었는데, 제가 K-movie에 민폐가 되면 안 되잖아요.
이 두 개가 명확한 목표였기에, 이걸 완수하려면 캐스팅에서 가장 우선되는 건 실력이었어요. 당연히 자금을 대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주인공이 네임밸류 있고, 티켓파워 세고, 검증된 이런 배우를 원했죠. 만약 목표가 흥행이었다면 저도 흔들릴 수 있었겠죠. 그런데 앞서 말했듯 이 영화를 만들 때 목표가 뚜렷했잖아요. 그래서 제일 실력이 있는 배우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러면 정성화 배우 이외에 대안이 있겠는가 라는 데 생각이 미친 거죠. 정성화 배우가 출연한 뮤지컬을 본 관객이 있을 거잖아요. 그런데 영화에서 다른 배우가 안중근을 한다?
물론 정성화 배우보다 잘하면 비판이 안 나오겠지만, 과연 그런 배우가 있을까? 전 없다고 봤어요. 영화가 나오고 난 다음에 주변에서 정성화 배우를 선택한 게 맞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감사하죠. 오히려 제가 인터뷰 때마다 기자들에게 되물어봐요. 그럼 안중근 역에 다른 어떤 배우를 생각하느냐고요. 윤 기자님은 안중근 역에 정성화 배우 말고 생각한 다른 배우가 있나요?
생각해 보면 나올 법도 한데, 영화를 보고 난 입장에서는 정성화 배우가 최선의 선택이었던 거 같습니다.
그것 보세요(웃음). 모든 기자들이 그렇게 대답하더라고요. 안중근 역에 정성화 말고 다른 배우가 하는 건 상상할 수 없다고요. 독립군 정보원 ‘설희’ 역에 김고은 배우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배우가 있느냐고도 물어봤더니, 우리나라에는 단 한 명도 없다는 대답이 돌아오더라고요. 조마리아 여사 역에 나문희 배우보다 더 잘할 배우가 있었을까요? 진주 역에 박진주 배우보다 더 잘할 배우도 없었고요.
저는 정말 최고의 캐스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그 핵심은, 사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많은 분이 의심했죠. 이 배우들에 대해서요. 더 좋은 선택지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죠.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다음 그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면서 아, 내가 처음 생각한 게 맞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
정성화 배우는 물론이고 뮤지컬 무대의 이른바 정성화 사단이 스크린으로 거의 옮겨왔다고 하더라고요. 영화 현장에서 분위기는 어땠는지, 감독님 디렉션은 잘 따랐는지 궁금해요(웃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잘 따라왔죠(웃음). 그런데 그보다 사실 이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영웅> 완성본을 보고 난 정성화 배우가 제게 감사하다고 하더라고요. 거기에 대한 제 대답이 뭐였는지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그런 이야기 하지 말라고, 진짜 감사한 사람은 나라고 이야기했어요. 김고은 배우에게도, 나문희 배우에게도 마찬가지였어요.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은 왜 제가 배우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이해가 잘 안 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영화를 본 분들이라면 아마 제가 이 말을 한 것에 100% 공감할 겁니다. 말을 잘 따라주고, 안 따라주고 하는 건 어폐가 있죠. 정성화 배우는 이미 안중근이었어요. 연기 디렉션이 거의 필요 없었고요. 김고은 배우요? 촬영할 때 김고은은 없었어요. 설희만 있었죠.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나요?
스케줄 때문에 김고은 배우 씬을 가장 먼저 찍었습니다. 김고은 배우는 성격 자체가 굉장히 유쾌해요. 밝고 귀여운 느낌이랄까요? 촬영장에 오면 모든 스태프에게 인사해요. 그런데 분장실만 다녀오면 설희가 되어 있어요. 눈부터 젖어 있고 말도 없어지죠. 그래서 촬영할 때는 김고은이 보인 게 아니라 설희가 보였어요. 그런데 분장을 지우면 다시 김고은으로 돌아와요. 재밌는 게 정성화 배우도 그랬어요. 개그맨 출신이잖아요. 얼마나 웃긴대요. 촬영장 와서 장난 치다가 분장만 하고 오면 정성화가 없어요. 이미 안중근인 거죠.
그런데 <영웅>의 모든 배우가 그랬어요. 그래서 어떤 디렉션의 문제가 아니었단 거죠. 말을 안 해도 <영웅>에 출연한 분들은 배우는 안 보였어요. 그냥 캐릭터만 보였죠. 특별히 디렉션할 것도 없었던, 너무나도 행복한 경험이었습니다. 영화 현장에서 그런 감정은 처음 느껴봤어요. 배우가 안 보이는 거요. 그래서 현장에서 김고은 배우도 이름을 안 부르고 ‘설희야’라고 불렀어요. 그게 더 익숙해졌으니까요.
기자간담회에서 “라이브에 대한 도전 정신이 제일 컸다”고 말씀하셨죠. 독립군 정보원 ‘설희’ 역의 김고은 배우는 “감정이 격한 씬에서 감정을 유지하며 노래를 해야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처음부터 노래 장면은 라이브로 가야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심플하죠. 아까 말씀드렸던 그 목표, 두 개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결론은 ‘라이브’로 가자는 거였습니다. 아주 심플합니다(웃음).
지금이야 웃으면서 말씀하시지만, 아무래도 현장 라이브 작업이 가장 힘들었을 거 같은데요. 작업하면서 ‘아 괜히 동시녹음한다고 했다’ 같은 후회는 안 하셨나요? 처음 후회하셨던 장면이 어떤 씬 촬영이었는지도 궁금해요.
첫 번째로 멘탈이 무너졌을 때가 설희가 ‘당신을 기억합니다’라는 넘버를 부르는 씬이었어요. 연못에서 명성황후를 그리워하면서 부른 영화 전체적으로 봤을 때 첫 라이브 장면이었습니다. 사실 이 장면을 찍을 때 설희는 노래 앞부분만 불러도 됐어요. 후반부는 몽타쥬로 넘어가니까요. 그런데 첫 라이브다 보니까 배우도 욕심이 나잖아요. 끝까지 다 부르겠다고 하더라고요. 저야 물론 OK했죠.
문제는 노래 첫 부분은 목소리가 쫙 들어가는데, 중반부터는 가사를 들으면 알겠지만, 굉장히 슬픈 장면이거든요. 배우가 우니까 목이 잠겨요. 코가 막히고요. 그러니 노래가 안 나오죠. 원래 김고은 배우가 노래방에서 소찬휘 가수의 <Tears>를 진성으로 부를 정도로 노래를 잘해요. 그런데 이 장면을 찍으면서 눈물이 흐르니 노래가 제대로 안 돼서 많이 힘들어했어요. 배우가 많이 힘들었던 장면이라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벌레 소리 때문에도 정말 고생했죠.
벌레 소리요?
야외에서 찍는 로케 씬들은 정말 녹음이 어렵더라고요. 밤에는 벌레 소리 때문에 사운드 통제가 안 될 정도였거든요. 김고은 배우가 합천 세트장에서 연못 씬을 찍을 때인데요, 불타는 명성황후 시신 옆에서 노래 부르는 장면이었죠. 뒷부분을 원테이크로 찍으면서 두 번째로 멘탈이 무너졌어요. 로케에서 라이브를 할 수 있겠는가, 배우 목소리가 안 나오는 건 두 번째 문제더라고요. 벌레 소리 때문에 라이브 사운드를 따기가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두 번째 촬영 때부터는 제작부가 전날 내려가서 방역차를 동원해 소독을 했습니다.
영화에서는 벌레 소리가 하나도 안 들리고, 대사도 정말 전달되던데 촬영에서는 그런 고충이 있었군요.
보통 대사를 딸 때 붐마이크를 많이 쓰잖아요. 붐마이크는 배우 입이랑 50cm 혹은 1m 정도 떨어지는데, 배우 목소리가 들어가면서 벌레 소리가 들어가니 깨끗한 소리를 확보할 수 없어요. 그래서 와이러리스 마이크를 썼습니다. 붐마이크를 보조로 쓴 거죠. 저희가 <영웅> 작업하면서 마이크를 3개 썼어요. 일단 와이어리스 마이크를 썼죠. 보통 안 보이게 옷 속에 숨기죠. 마이크에 소리를 흡수하는 머리 부분이 꽤 큰데도, 옷 속에 있다 보니 제대로 된 목소리 확보는 어려워요.
뮤지컬 공연에서는 이마 와이어로 연결된 마이크를 붙이잖아요. 우리는 소리 확보를 위해 마이크가 옷 위로 나오면 후반 작업에서 CG로 다 지웠어요. 여기에 또 뭐가 있냐면, 배우가 반주를 들어야 하잖아요. 현장에서 음악을 틀면 또 마이크에 다 들어가니까, 반주는 인이어로 해요. 문제는 마이크는 CG로 지울 수 있는데, 인이어를 착용한 귀는 지울 수 없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모든 배우들의 귀를 360로 찍었습니다. 후반작업에서 와이어 찬 마이크, 인이어 찬 귀를 다 지운 거죠. 그런 컷이 1천 컷이 넘습니다.
배우 목소리도 확보하셨고, 벌레 소리도 통제하셨지만, 현장 바람 소리는 어떻게 하셨어요?
설희의 기차 씬을 찍을 때였어요. 노래는 불러야 하는데 뒤는 난간이지, 강풍기에 머리는 날리고 옷은 펄럭이지…. 강풍기 날개 지름이 1m에요. 소리는 또 얼마나 큰지. 선풍기로 대체한다 해도 바람 소리가 다 들어가는 거예요. 라이브 안 하면 강풍기 틀고 후시 녹음했으면 되는 일인데 말이죠(웃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강풍기를 세트장 100m 밖에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지름 50cm 호스를 100m 길이로 제작했죠. 100m 밖에서 강풍기가 돌아가니 드디어 소리가 안 들리더라고요. 어유, 말도 마세요. 겨울에 찍는데, 패딩 사각대는 소리 때문에, 현장에서 슛 들어가면 패딩을 다 벗고, 컷 하면 다시 입기도 했고요. 걷는 소리 통제하려고 바닥에 담요 깔고 발 밑에 토시, 천까지 깔았습니다.
감독님이 라이브를 고집하셔서 배우들이 정말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라이브가 이렇게 어렵습니다(웃음). 세트에서 사운드 컨트롤이 카메라 컨트롤보다 훨씬 어려웠죠. 촬영장에서 배우들이 너무 예민해질 정도였으니까요. 목이 막히고 눈물이 나면 일단 노래가 안 되잖아요. 그런데 눈물 연기가 너무 좋다고 해서 감독이 OK를 낼 수는 없잖아요. 노래도 완벽해야 하니까요. 노래 장면은 거의 롱테이크다 보니 그 격정적인 장면을 세 번 정도 찍으면 배우도 탈진하는 거죠. 전 그걸 열 번씩 테이크를 갔으니 배우들이 얼마나 제가 미웠겠어요.
물론 타협하고 싶을 때도 있었죠. 하지만 말씀드렸잖아요. 전 목표가 뚜렸했다고요. 뮤지컬 공연을 본 사람은 두세 시간 동안 생생한 노래를 들었는데, 영화에서 스튜디오 목소리가 나오면 이상할 거 아니에요. 무대 목소리가 나와야죠. 그런 것들이 상상을 초월하게 힘들었습니다. 이제 라이브에 대한 노하우가 많이 생겼어요. 앞으로 라이브로 뮤지컬 영화를 찍고 싶은 감독님, 제작사가 있다면 무료로 제 노하우를 다 방출하겠습니다(웃음).
정성화 배우가 ‘장부가’ 테이크를 추가촬영까지 포함해 서른 번 갔다는 게 화제가 됐죠. 이 정도면 배우 혹사 수준 아닌가요?
그래서 추가 촬영을 앞두고 체중 감량할 시간을 2주일 줬죠. 미안해서(웃음).
나문희 배우 역시 열세 번째 테이크에서 OK가 났는데, 결국 재촬영을 했다고요. 재촬영 요청이 어려웠을 텐데 어떻게 말씀을 꺼내셨어요?
나문희 배우 매니저가 친한 동생이에요. 나문희 배우 매니저를 20년 가까이 하고 있는데, 촬영장에서 테이크를 세 번 이상 간 적이 거의 없다고 하더라고요. 첫 촬영이 뤼순 감옥 담벼락을 걸으면서 노래 부르는 장면인데요. 서대문 형무소에서 찍었어요. 세 번째에서 OK날 줄 알았는데 노래와 연기는 역시 다르더라고요. 60년 연기한 나문희 배우도 연기가 좋으면 노래가 안 되고. 어쩔 수 없이 후시 녹음을 해야겠다 생각하고 대여섯 번째인가 OK를 냈습니다. 그런데 나문희 배우가 오히려 다시 찍자고 해서 13 테이크를 갔습니다. 나중에 매니저가 그러더라고요. 살면서 나문희 배우가 13번 테이크까지 간 거 처음 봤다고요.
그런데 아까 말씀드렸지만, 후반작업 시간이 길어졌잖아요. 이것도 운명입니다(웃음). 감독 입장에서 아쉬움이 계속 생기는 거예요. 매니저에게 재촬영 좀 잘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했어요. 이야기를 전달했는데, 아 글쎄, 나문희 배우가 의외로 흔쾌히 수락했다는 거예요. 당신도 마음에 100% 들지 않았던 거죠. 그래서 추가 재촬영 장면을 배냇저고리를 안고 노래 부르는 걸로 바꿔서 찍었습니다. 이 장면 역시 열 번 넘게 테이크를 갔고요.
한국영화 최초 오리지널 뮤지컬 영화를 연출하신 데에는 이런 치열함이 있었네요. 극장에서 영화를 보니 정말 사운드에 신경을 썼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앞서 조금 설명해주긴 하셨는데요, <영웅>은 한국영화의 고질적인 음향 문제를 한 단계 넘어선 것 같아요. 어떻게 이런 기술적 성취를 이뤄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촬영에 마이크를 세 대씩 썼습니다. 보조로 붐마이크를 썼고요. 배우들에게 와이어리스 마이크를 착용시켰죠. 대사를 확보하기 위한 와이어리스 마이크를 하나 더 달았습니다. 직립 마이크는 직선으로 나오는 소리를 확보하고, 풍성하게 소리를 확보하는 마이크가 따로 있거든요. 동시에 3대의 마이크를 쓴 영화는 아마도 우리나라 최초일 겁니다.
많은 한국영화에서 대사가 선명하게 들리지 않는 건 무슨 이유 때문인가요?
붐마이크를 메인으로 쓰기 때문이죠. 배우 입으로부터 1m 높이에서 소리를 담다 보니 소음이 들어갈 수밖에 없죠. 와이어리스 마이크는 선명한 소리를 확보하는 대신 후반]작업에서 CG로 다 지워줘야 하는 수고가 발생하니, 그간 한국영화에서는 붐마이크를 주로 썼던 겁니다. <영웅>은 붐마이크를 무조건 서브로 썼고요.
또 한 가지 이야기하면요. 통상 영화 후반작업에서 사운드 작업은 한 달 정도입니다. 길어도 두 달을 넘지 않아요. 그리고 최종으로 파이널 믹싱을 하루 잡습니다. <영웅>은 파이널 믹싱만 열 번을 넘게 했어요. 아 거의 스무 번 넘게 한 거 같기도 하네요. 사운드실에서 음향감독이 다른 영화 작업해야 하는데 방해 된다고 짜증을 낼 정도였으니까요(웃음). 잊을 만하면 와서 또 파이널 믹싱을 한다고 했으니…. 그런데 파이널 믹싱은 하면 할수록 사운드가 더 좋아질 수밖에 없잖아요. 감독으로 그게 보이니까 어쩔 수 없었죠.
그렇게 했는데도 대사가 잘 안 들리는 장면이 나오면, 배우한테 비는 거죠. ‘10분만 녹음실 와달라’라고요. 거의 모든 배우가 1년에 두세 번 이상은 녹음실에 호출당했습니다. 다른 영화, 드라마 작업하는 중이라 <영웅>은 벌써 잊었는데, 그 감정선을 다시 살려가면서 녹음한 거죠.
배우들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롱테이크가 눈에 띕니다. 한국영화 최초로 4축으로 운영되는 와이어 캠을 사용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촬영하는 방식인지, 또 그렇게 촬영했을 때 얻어지는 효과가 무엇인지도 설명해주세요.
이번에 월드컵 보셨어요? 운동장 한가운데 카메라가 떠 있잖아요. 카메라가 선수, 공을 따라가서 돌기도 하고 그렇게 촬영을 해요. 운동장 네 귀퉁이에 크레인 4개를 세웁니다. 그래서 4축이라고 하죠. 컴퓨터로 조정되는 도르레를 설치합니다. 와이어를 이 4축에 걸고, 카메라 네 면의 귀퉁이에 와이어를 연결해요. 만약 왼쪽 두 와이어를 당기고, 오른쪽 두 와이어를 풀면 카메라가 왼쪽으로 이동하죠. 와이어 4개를 모두 풀면? 카메라가 아래로 내려갑니다. 카메라가 와이어를 조정함에 따라 입체적으로 땅바닥부터 하늘까지 다 움직이는 거예요.
이거랑 똑같은 원리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설희 기차씬을 예로 들어 볼게요. 세트 한가운데 설희가 서 있어요. 4축 와이어캠을 설치하면 저 멀리서 설희에게 클로즈업이 들어갔다가 설희 주변을 빙빙 둥글게 돌 수 있어요. 멀어지기도 하면서 원씬 원컷이 되는 겁니다. 스태디캠은 촬영감독이 카메라를 들고 달려야 하는데, 와이어캠은 공중에서 하는 거라 움직임에 제약이 없어요. 우리나라 영화에서도 액션 장면에서 가끔 썼다고 하는데, 드라마 장면에서는 처음으로 쓴 겁니다.
영화는 뮤지컬과 호흡이 다르죠. 그런데 어떤 관객은 ‘아, 여기서 인터미션이구나’라고 할 정도로 뮤지컬 무대를 옮겨온 느낌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영화화하면서 뮤지컬과 차별성을 둔 지점은 무엇인지, 또 구체적으로 반영된 장면을 꼽아 주신다면요?
결론만 이야기하면 제일 아쉬운 부분이긴 한데요, 관객들에게 박수 칠 충분한 여유를 못 드렸다는 점이죠. 윤 기자님은 기자 시사로 보셨을 텐데, 저는 바로 옆관에서 배급사, 제작사 관계자들과 영화를 봤습니다. 그다음에 일반 VIP 시사를 봤는데요, 깜짝 놀랐어요. <영웅> 첫 장면인 ‘단지 동맹’ 부분이 끝나자 관객들이 막 박수를 치는 거예요. 기자 시사나 배급 시사에서 절대 박수가 안 나오잖아요(웃음).
또 ‘영웅’, ‘누가 죄인인가’, ‘장부가’ 이런 넘버들이 끝날 때면 관객들이 막 박수를 치는데, 와, 박수치는 시간이 너무 짧은 겁니다. 다음 씬으로 넘어가야 하니까요. 이 부분이 많이 아쉬웠어요. 뮤지컬은 한 시퀀스에서 다음으로 넘어갈 때 자연스럽게 암전이 되고, 박수 칠 여유가 있는데, 영화에서 만약 암전을 10초를 줬다? 그건 사고잖아요(웃음). 일반 관객 시사 반응을 보면서 좀 더 시간을 줄 걸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장면 전환에 공을 많이 들였고요.
맞아요. 와이프아웃부터 거의 모든 장면 전환 기법이 나온 거 같아요.
뮤지컬에서 암전은 다음 시퀀스로 간다는 의미죠. 관객들이 충분히 받아들여요. 그런데 영화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컷이 넘어가면 어색하죠. 자연스러운 장면 전환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면서 영화, 뮤직비디오, CF 등 수백 개의 장면 전환 클립을 다 찾아봤고, 그중에 <영웅>에 차용할 수 있는 걸 골라 창의적으로 쓴 겁니다. 설희의 술잔이 연못으로 바뀌면서 노래 시퀀스로 넘어가는 전환, 독립군들이 노래 부르며 노는 장면에서 안중근이 블라디보스톡에 오는 새로운 시퀀스로 바뀔 때 수건을 카메라에 던졌던 전환이라든가요.
또 설희가 정보를 알아내야 하는 미션이 있잖아요. 하얼빈 가는 길에 ‘그날을 기약하며’ 노래를 부를 때도 지도에서 그대로 카메라가 틸팅해 올라가면 안중근 장면으로 바뀌고 했던 모든 것들이 뮤지컬과 달리 장면 전환이 자연스럽게 되도록 노력한 부분들입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연회장에서 건배할 때 스톱모션으로 처리되고 설희에게 핀라이트를 주면서 주변은 암전이 되기도 했고요. 뮤지컬에서는 스포트라이트를 줬겠죠. ‘왼쪽 손가락이 없는 남자가 블라디보스톡에 나타났다’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배우가 화면 밖으로 나가면서 ‘와이프아웃’ 효과를 보여줬고요. 또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조마리아 여사가 잠에서 딱 깰 때 성모상으로 장면 전환을 했습니다.
진주가 죽음을 맞는 장면에서 사랑을 고백하는 노래가 길다는 반응도 있어요. 이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람마다 다르지 않겠나요? 시사를 하면서 다양한 연령대의 반응을 봤는데요. 젊은 친구들은 오히려 두 사람 사랑 감정에 더 집중하더라고요. 그 장면이 젊은 친구들에게는 점수가 높아요. 감정이입을 하니까요. 반면 안중근의 서사만 따라가는 관객 중에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거 같기도 합니다. 윤 기자님이 그 장면에 감정 이입이 안 되면 사랑에 대한 감정에서 멀어진 건데, 그러면 MZ세대에서 멀어진 거라고 봐야죠(웃음).
이제 MZ 감성은 못 따라가나 봅니다(웃음). 뮤지컬에서는 필요한 넘버라도 영화 흐름상 들어낸 곡도 있을까요?
이토 히로부미가 자신의 추억을 회상하는 노래가 있었죠. 이토에게 굳이 이렇게까지 해줄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해서 들어냈습니다. 또 진주, 동하 두 사람의 아주 발랄한 ‘이것이 첫사랑일까’라는 넘버가 있는데요. 촬영은 다 했는데, 전체 영화 흐름상 독립군 이야기에서 너무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부각되는 거 같아서 뺐습니다.
반면에 뮤지컬에는 없는데 추가된 넘버도 있나요?
설희가 연회장에서 부르는 ‘그대 향한 나의 꿈’은 뮤지컬에는 없는 넘버입니다. 영화화하면서 추가된 거죠. 설희가 이토 히로부미의 첩보원으로 살면서 자기 마음을 이야기하는 씬이 분명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노래로 가면 좋겠다 싶었어요. 어머니와도 같던 명성황후가 그렇게 처참하게 살해당한 걸 눈앞에서 본 거잖아요. 어린 궁녀가 이토의 애첩이 되는 설정인데, 정말 죽고 싶지 않았을까요? 이토 앞에서는 미소를 지어야 하는데, 하루에도 몇백 번씩 이토를 죽이고 자신도 목숨을 끊고 싶지 않았을까요? 이런 가사가 있어요 ‘나 죽어도 살아야 하네, 하늘이 내게 준 운명이기 때문에, 나도 새처럼 사라질 테지만,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죽어선 안 되네’. 음악감독과 상의해서 새로운 넘버를 만들었습니다.
지금부터는 감독님의 영화 세계에 대해 좀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공포영화인 <여고괴담> 각본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이셨죠. 이후 <두사부일체>, <색즉시공> 같은 코미디 영화를 거쳐 <해운대>, <국제시장> 같은 드라마 장르로 확장하셨고요. <영웅>은 감독님 필모그래피에서 어떤 지점을 차지하는지 궁금해요. 반환점인지, <국제시장>의 연장선에 있는지요.
저는 사실 감독으로 연출작을 결정할 때 전략적인 방식으로 작품을 정하지 않습니다. 아마 감독들이라면 다 이해할 겁니다. 그러면 연출할 작품을 고를 때 어떤 기준으로 할까요? 속된 말로 저는 ‘필이 꽂혀야’ 합니다. 배우랑은 다르죠. 배우들은 전략에 따라서 이번에 이런 작품을 했으니, 다음에는 저런 작품을 해야지 하고 계획을 세우고 작품을 선정하는 경우가 많죠. 그런데 감독은 그게 어렵습니다. 한 작품을 기획하고 시나리오 작업하면서부터 짧게는 1년, 길게는 2~3년이 걸리는데, 필이 안 꽂히거나 애정이 없으면 그 기간이 지옥이 되어버리거든요.
제게는 작품을 할 때마다 그 작품이 전부였습니다. 마음속에 새긴 좌우명이 있어요. ‘산 정상을 보지 말고, 내 앞에 발만 보자’는 건데요. 내가 가는 길, 이게 정해진 대로 눈앞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언젠가 어느 산에 와 있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영웅>이 제 필모그래피에서 어떤 지점에 있는 작품이냐는 질문에는, 뮤지컬을 보고 난 후 필이 꽂혔고요, 개인적으로는 그 사이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기도 했고요. 그렇게 정한 겁니다. 연장선도, 반환점도 아니고 감독 윤제균이 필이 꽂혀서 한 작품 중 하나라고 말하는 게 가장 정확합니다.
<국제시장>에서 황정민 배우의 독백 장면도 그렇고요, 이번 <영웅>에서 나문희 배우 장면을 보면 볼수록, 한국적인 정서, 한국인 이야기에 강한 감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감독님이 생각하는 한국 그리고 한국인이 궁금합니다.
처음 듣는 질문이네요.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저는 태생적으로 뿌리 끝까지 한국 사람인 거 같아요. 두 장면 모두 개인의 취향 같아요. 돌아보면, 저는 이성적인 사랑에 대해서, 혹은 사랑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거나 울어본 적이 없는 거 같아요. 그쪽으로는 좀 둔한 거 같아요. 오히려 피에 대한 감정이 많아요. 부모, 가족, 형제… 피에 얽힌 것들이죠.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걸 믿는 거 같아요.
그래서 한국인은 제가 보기에 어떤 사람인가…. 뭔가 가 있죠.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만, 대표적으로 많이들 이야기하는 것 중에 ‘한’이라는 것도 있고요. 이건 영어 단어에도 없잖아요. 한이라는 게 우리나라 국민의 감정 저변에 깔린 특별한 부분 같아요. 거기에 피에 대한 집착과 애정이 큰 거 같고요. 저는 부모간, 형제간 이야기에 좀 감동을 많이 받는 거 같아요. 한국은 이산가족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나라잖아요. 한국인은 고향에 대한 뿌리를 찾는 마음이 다른 민족보다 좀 큰 것 같아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영화에서 그리는 가족과는 조금 결이 다른 거 같습니다. 혈연보다는 만들어가는 가족을 더 강조하잖아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 참 좋아해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같은 영화도 좋았고요. 감정이입이 되더라고요. 물론 제가 피에 대한 이야기, 가족, 형제, 부모를 중점적으로 많이 다루긴 했는데, 그래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를 보면서 감정이입이 됐다는 건, 인류 보편적인 사람의 마음을 이야기하기 때문 아닐까요? 저 역시도 그런 소재로 영화를 만들다 보면, 크게 피나 뿌리, 이런 데에만 집착해서 만들지는 않을 거 같아요.
어찌 됐든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피도 중요하지만, 만들어가는 과정도 중요하거든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 동의해요. 저 역시 낳은 정과 기른 정 중에 기른 정이 더 크다고 보거든요. 제가 각색한 영화 <담보>(2020)에서는 보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보편적 감정을 이야기했어요. 그러니 결이 다른 건 아니라고 생각되네요.
요즘 K-무비, 영상 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죠. <오징어게임>, <미나리>부터 <헤어질 결심>까지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도 많이 하고 있는데, 감독님은 개인적으로 해외 영화제 욕심은 없으신지, 또 해외 진출 계획은 있는지 궁금합니다.
누구나 다 욕심이야 있겠죠. 그런데 영화제를 노리고 영화를 만드는 건 좀 저랑은 안 맞는 거 같아요. 열심히 만들다 보면 그런 기회가 오지 않을까요? 아 그리고, 저도 해외영화제 초청받은 적 있습니다. <국제시장>이 베를린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정식 초청받았었죠. 많은 분이 모르지만요(웃음). 많은 분이 저를 상업 감독, 대중 감독이라고 하시는데, <국제시장>이 베를린영화제 초청받았던 거 좀 꼭 널리 알려주세요(웃음)!
한국 오리지널 뮤지컬 영화라 의미가 있어요. 해외 시장 공략은 어떻게 할 계획이세요?
사실 <영웅>은 우리나라 국민이 제일 많이 이해할 수 있는 소재잖아요. 그래서 글로벌적으로 어떤 파급력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해외 영화제를 가겠다는 목표가 아니에요. K-콘텐츠가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는 와중에, 여기에 관심 많은 분이라면 분명 <영웅>을 찾아볼 거라고 보거든요. 그들이 봤을 때든, 콘텐츠 산업 관계자든, K-movie 사랑하는 팬이든 어느 누가 보더라도, 한국에서 시도된 최초의 오리지널 뮤지컬 영화를 정말 잘 만들었다, 웰메이드다 하는 평가를 받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어떤 해외 영화제 수상이나 전 세계와이드 릴리즈라는 목표가 있었던 거는 아니고요. 최선을 다하다 보면 길이 열리겠죠?
감독님께 영화란 무엇인가요? 또 어떤 감독으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분명해요. 행복을 주는 감독이 되고 싶습니다. 많은 분이 제 스토리를 알고 계세요. 샐러리맨 생활을 하다가 영화 감독이 됐잖아요. 하나님이 제게 이런 재주를 주신 이유는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감동과 행복을 주는 영화를 만들라는, 그런 미션을 주신 거 같아요. 저는 공포영화처럼 센 영화들은 잘 못 봐요. 따뜻하고 행복함을 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쭉 이쪽으로 갈 거고요.
결국 2022년에 스크린에 소환한 안중근은 어떤 의미인가요?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건 무엇인지 말씀해주세요.
지금 사는 게 너무 힘들잖아요. 버티면서 힘들게 살고 있는데, 영화 제목이 <영웅>이잖아요. 제 개인적인 생각은 그래요. 각자 자리에서 열심히 살고 계시는 모든 분이 영웅이 아닐까 하는. 우리가 지금 힘든 시기에 살아서, 각자 자리에서 열심히 하는 거고, 만약 안중근의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또 모르지 않겠어요? 누가 영웅이 됐을지요. 안중근이라는 인물을 통해 조금이라도 많은 국민이 위안과 위로를 받으면 좋겠습니다. 예전에 이렇게 힘들게 인생을 살다 간 가장 평범한 한 사람이 있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윤상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