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사(히로세 스즈)는 오래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어느 아동 유괴 사건의 주인공이다. 소아성애자로 밝혀진 범인의 체포 과정은 여러 사람의 핸드폰 카메라에 담겨 인터넷 세상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검색창에 이름을 입력하는 정도의 작은 노력만 기울인다면 사라사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금세 알 수 있다. 그녀의 약혼자 료(요코하마 류세이)는 물론이고 직장 동료들까지 사라사의 과거를 알고 있다. “미안하지만 검색해봤어.” 사라사는 주변의 불편한 관심에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답한다. “익숙해요. 익숙해져야 편하죠.” 그렇다면 <유랑의 달>은 과거의 상처를 딛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피해자의 현재에 관한 영화일까. 약혼자에게 “난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불쌍한 애가 아니”라고 날카롭게 말하는 사라사를 보고 있자면 그런 것도 같다. 그런데 현재와 교차하는 과거의 장면들이 그러한 해석에 제동을 건다. 범인으로 지목된 후미(마츠자카 토리)와 사라사가 함께 지냈던 그해 여름의 풍경이 차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둘의 관계를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바라볼 여지가 생긴다. 놀랍게도 그때 그들은 한없이 즐겁고 자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사라사에겐 유괴가 아니라 후미의 체포야말로 엄청난 아픔을 안긴 사건이다. 이후 사라사와 후미는 15년 만에 우연히 재회한다. 그러나 때로 어떤 만남은 온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 당하는 법이다.

<유랑의 달>은 <훌라 걸스>(2006), <악인>(2010), <분노>(2016) 등을 연출한 이상일 감독이 6년 만에 내놓은 신작으로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삼는다. 대부분 사라사의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원작은 시종 “나도 언젠가는 위험한 사람이 될까?”라는 의문으로 물들어있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분방한 성정이나 격렬한 충동, 유년의 불행한 기억 같은 것들은 존재의 불안이 되어 현재와 미래를 흔들어댄다. 그러나 숨 쉬며 살아있는 한 “앞으로도 쭉 이것들을 이고 지고 걸어가야” 한다. 다른 누구도 공감할 수 없는 자신만의 짐을 지고 고군분투한다는 점에서 사라사와 후미는 동류다. 영화에서 재차 반복되는 “어린 시절부터 나는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는 시구가 그러한 지점을 좀 더 분명히 강조한다. 물론 이들이 지닌 특성은 적당히 별나며 어쩌면 예쁘게 봐줄 여지도 있는 독특한 개성 정도가 아니다. 가족 내 성폭력 피해와 소아성애라는 꼬리표. 이들은 앞으로도 절대 해소되지 않을 긴장과 함께 살아가야 하리라. “세상에서 튕겨져 나온 쪽”에 대한 관심은 늘 이상일 감독에게 중요한 주제였으니 소설에서 영화화 가능성을 본 것도 무리는 아니다. 상대를 단숨에 배제하고 차단하며 ‘나와 너’를 손쉽게 구분해버리는 인터넷 시대의 특성은 이 외로운 우정의 드라마에 적절한 토대를 제공한다. 이 척박한 세상에서 우리는 너무도 쉽게 도저히 이해받을 수 없는 타인이 되고야 만다.

사건과 감정을 시간순으로 차곡차곡 쌓아가는 원작과 달리, 영화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공백과 침묵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정확히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그동안 주인공은 어떤 마음으로 지내왔는지 영화는 명확히 설명해주지 않는다. 엄청난 비밀을 품고도 그리 말이 많지 않은 두 주인공은 확실히 표현하기 까다로운 인물군에 속한다. 어린 사라사는 지긋지긋한 친척 집을 벗어나고 싶어 낯선 청년을 따라나설 만큼 무모하면서도 후미의 여리고 아픈 구석을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만큼 사려 깊다. 성인이 된 사라사는 훨씬 더 움츠러든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그녀를 “만일의 경우 도망칠 곳이 없는 사람”으로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에게 의외로 강단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고레에다 히로카즈, 2015)로 이름을 알린 히로세 스즈는 종종 번뜩이는 눈빛으로 가녀린 이미지에 균열을 내며 관객을 미스터리로 이끈다. 호리호리한 몸과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눈, 후미는 그 미스터리의 중심과도 같은 인물이다. “소아성애가 아니라도 인생은 힘든 일투성이”라 말하는 그는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성인 여자를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이다. 삶에 대한 체념과 욕망이 교차하는 인상 깊은 얼굴은 국내엔 <고독한 늑대의 피>(시라이시 카즈야, 2018)로 알려진 마츠자카 토리의 섬세한 연기를 통해 완성됐다.

<유랑의 달>은 <기생충>(봉준호, 2019), <곡성>(나홍진, 2016), <버닝><이창동, 2018) 등의 촬영을 맡은 홍경표 촬영감독이 이상일 감독과 의기투합한 작품이기도 하다. 후미와 사라사의 집, 후미의 카페 등 대부분이 실내 공간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인 만큼 호수, 산, 공원 등의 자연경관을 의식적으로 끌어들인 것이 특징이다. 문득 부는 바람이나 영화 전체의 심상을 압축하는 서늘한 물결 등이 진한 잔상을 남긴다. 빛과 그림자를 운용하는 데 있어 그간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던 홍경표 촬영감독, <유랑의 달>의 ‘빛나는 어둠’ 또한 그의 세심한 손길이 빚어낸 결과다. 이를테면 <유랑의 달>을 미스터리의 영화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건 내용만이 아니라 화면에 깊게 드리운 어둠 때문이다. 프레임엔 줄곧 깊고 깊은 어둠, 말 그대로 어둠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을 새까만 구덩이가 파인다.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결코 알 수 없으리란 예감이 들기에 영화엔 종종 귀기가 서린다. 그러한 심연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이 사라사와 후미의 운명일 것이라고 제작진은 짐작했을 것이다.

그 오랜 세월 계속해서 서로를 걱정했고 다시 만난 다음에도 상대를 아끼며 공동의 미래를 생각해보기도 하는 사라사와 후미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마구치 류스케의 <아사코>(2018)나 미야케 쇼의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2018) 등 근래 등장한 일련의 일본 영화들이 변화하는 조건을 수용하는 새로운 관계와 사랑에 관해 이야기한다는 점을 떠올리며, <유랑의 달>을 조금 특이한 관계의 형식을 제시하는 영화로 볼 수도 있겠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건 어떤 이유로든 이들이 성적 끌림으로부터 이탈한 상태라는 점이다. 모종의 육체적 불능 혹은 결함으로 인해 성애적 관계는 차단된다. 적어도 인물들은 그것을 사랑의 불가능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외부 세계는 지속해서 그들을 비난할 것이다. 평범한 애정의 수행도, 주위의 축복도 그들에겐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괜찮을까? 이들은 괜찮다고 말한다. 서로를 만지고 끌어안지 않고도 같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하며 위험과 살아가리라 다짐하는 사라사와 후미는 그렇게 또 다른 관계의 형상을 제시한다.


리버스 reversemedia.co.kr

손시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