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하의 모든 내용은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및 앤트맨 시리즈의 주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관람 전이시라면 주의 부탁드립니다.

<앤트맨: 퀀텀매니아>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에서는 눈에 띄는 캐릭터가 하나 있다. MCU가 무르익었고 새로운 캐릭터들이 다수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모독(M.O.D.O.K)의 등장은 언제고 있을 일이었겠으나 정체가 좀 충격적이긴 했다. 아무래도 사이즈가 달라졌다 보니까 잊었던 얼굴이 기억날 듯 말 듯 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하여간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는 첫 등장인 이 캐릭터, '모독(M.O.D.O.K.)'의 정체는 <앤트맨> 1편에서 등장했던 '옐로 재킷' 대런 크로스였다. 행크 핌 박사가 설립한 회사인 핌 인더스트리에서 핌 입자를 전투 병기 개발에 사용하기 위해 연구를 지속하던 와중, 창립자인 행크 핌 박사와 뜻이 맞지 않자 마침 아버지와 문제를 겪고 있던 호프 반 다인과 의기투합해 그를 쫓아낸 장본인.

오랜만에 돌아온 대런 크로스의 모습이 다름 아닌 모독이었다는 점은 좀 놀라운 일이었는데, 모독의 독특한 비주얼 때문이기도 했고 원작 코믹스에서의 정체와 전혀 다른 캐릭터였다는 점 때문이기도 했다. 영화 자체에서는 크게 활약하지는 못했음에도 어쨌거나 강력한 존재감(...중의적인 의미일 듯하지만)을 보여준 이 캐릭터, 원작 스토리부터 MCU의 대런 크로스까지 다시 한번 짚어 본다.


마블 코믹스의 모독

원작의 모독은 마블 코믹스에서 상당히 자주 등장하는 단골 캐릭터다. 워낙 이상하게 생긴 덕분에... 비주얼 파괴력도 꽤 큰 편이고, 비주얼부터 악당 냄새를 진하게 풍기는 탓으로 마블 소재의 게임(<마블 vs 캡콤 3> 등등..)에서도 꽤 자주 등장했다.

캐릭터의 기원까지 파고 들어가 보면 코스믹 큐브와 연관이 깊은데, MCU의 지난 10년을 한방에 날려버릴 만큼 강력한 물건이었던 인피니티 스톤만큼이나 파워풀한 물건이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어 누가 쓰느냐에 따라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고, 레드 스컬은 이 코스믹 큐브를 이용해 캡틴 아메리카를 자기 수하로 삼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이게 바로 그 유명한 하일 하이드라를 외치던 캡틴과 관련 있는 이슈).

캡틴 아메리카 (1968) #133

모독(M.O.D.O.K: Mechanized Organism Designed Only for Killing)은 코스믹 큐브를 연구하던 악당 과학자들의 조직 A.I.M.(Advanced Idea Mechanics, 선진 계획 기술)에 의해 개조된 인간이다. 원래는 조지 탈턴이라는 평범한 인간이었으나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강제로 코스믹 큐브를 투여당한 후 조직을 괴멸시키고 스스로 모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머리에 팔다리가 붙어있는 강력한 외관에 걸맞은 커다란 뇌를 갖고 있는데, 덕분에 평범한 인간의 수준을 아득히 초월하는 지능과 염력 계열의 초능력을 갖고 있다. 어벤져스를 비롯한 수많은 히어로들의 적으로 자주 등장했기 때문에 인지도는 꽤 높은 편인데, 그래서.... 이번 등장은 좀 더 쇼킹했다고 할 수 있겠다. 모독을 원작에 기반한 새로운 캐릭터로 출연시키는 대신 앤트맨 시리즈의 첫 작품인 <앤트맨>에서 빌런으로 활약했던 대런 크로스의 재등장으로 소화했기 때문이었다.


인간 시절의(?) 대런 크로스

MCU에 오랜만에 얼굴을 비추며 '모독'이 되어 돌아온 그, 대런 크로스는 1대 앤트맨이자 현재의 앤트맨 스콧 랭의 장인어른 뻘인(아직 결혼은 안 한 것 같지만) 행크 핌과 깊은 관련이 있는 캐릭터다.

알다시피 행크 핌은 '핌 입자'를 개발해 이를 활용한 앤트맨과 와스프 수트를 만들어냈고, 이를 통해 부인 자넷 반 다인과 함께 2차 대전 당시 히어로로 활약했다. 하지만 전쟁 당시 미사일 폭격을 막기 위해 자넷 반 다인이 원자보다 작아지는 금기를 행하며 양자 영역으로 빨려 들어갔고, 이후 아내를 구해내기 위해 연구에 전념했지만 실패를 거듭해야만 했다.

젊은 시절의 행크 핌 박사

이런 상황에서 쉴드가 핌 입자 기술을 이용하려고 시도하자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의 아버지이자 쉴드의 창립멤버 일원 하워드 스타크에게 등을 돌렸고, 쉴드는 결국 핌 입자와 관련된 기술을 얻지 못한 채 현재에 이르렀던 것이다.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자신의 기술이 전쟁에 이용되는 것을 막았던 이유는 가장 소중했던 사람인 아내 자넷이 소멸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충격과도 맞닿아 있을 것 같아 보이는데.

연구를 지속하면서 행크 핌이 제자로 받아들였던 인물 중 하나가 바로 대런 크로스였다. 대런은 행크 핌의 제자로 핌 인더스트리에서 연구를 계속했지만, 이런 속사정을 모르고 있었기에 앤트맨 기술을 병기에 적용해 상업적으로 활용하자는 제안을 했던 것이었다. 당연히 행크 핌은 이에 반대했고, 결국 기업의 경영선에서 제외되고 말았다.


대런 크로스는 핌 입자 연구를 계속했지만 '축소' 자체에만 성공했을 뿐 생명체를 유지하는 데는 계속해서 실패했다. 하지만 <앤트맨> 후반부, 스콧 랭이 2대 앤트맨으로서의 훈련을 끝내갈 때쯤 핌 입자를 활용한 옐로재킷 수트의 개발에 성공한다. 옐로재킷이 상용화되면 행크 핌이 막고자 했던 일이 현실이 되는 것이기에, 행크 핌은 앤트맨에게 그를 막아달라고 부탁하게 된다.

모두가 기억하고 있듯, 옐로 재킷은 스콧의 딸인 캐시에게까지 접근해 그 유명한 토마스 기차 씬(정말… 정말 무서운 미소였다)을 남기며 전투를 벌였지만 결국 앤트맨에게 패했고, 이후 대런 크로스의 후일담은 전해지지 않았다. <앤트맨> 시리즈에서 그렇게 빌런으로 소모된 것으로 생각되었던 대런 크로스는, 시리즈의 3편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에서 재등장한다. 옐로 재킷일 때 입었던 수트의 헬멧이 <로키> 작중 버려진 들판에서 발견돼 TVA(시간 관리국)에 붙잡힌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이쪽 거대화된 옐로 재킷은 다른 타임라인의 대런이었던 듯하다.

옐로 재킷 시절

고가의 수트를 차려입은, 글로벌 기업의 경영자다운 모습은 다 어디 갔는지 정복자 캉의 노예가 되어 사람 취급을 못 받고 있었는데… 어찌 된 영문인고 하니 <앤트맨> 1편의 그 전투 직후 양자 영역으로 빨려 들어가 쓰러져 있던 대런을 정복자 캉이 데려다가 개조를 했고, 그 결과 다양한 무기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병기가 되었던 것이었다. 양자 영역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고초를 겪었는지 몸은 이미 기이한 형태로 변해 버린 상태였고, 캉은 그 위에 기계갑옷을 씌워주는 정도로만 개조한 듯하다. 이후 정복자 캉은 영화 내내, '모독' 대런 크로스가 최후를 맞이할 때까지 인간 이하 취급을 하는데 무슨 말만 하려고 하면 강제로 입을 닫아 버린다든지, 거리낌 없이 도구로 사용한다든지 하는 장면들이 그대로 영화에 등장했다.

대런이 계속해서 앤트맨 일행을 방해하던 와중 중후반부에 이르러 마음을 고쳐먹는다. 캐시 랭에게 호되게 얻어맞은 후 나눈 대화를 통해 뭔가를 깨달았는지 앤트맨 일행을 돕기로 한 대런은 결국 캉을 무력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며 스스로를 희생한다. 심지어 "그래도 죽을 때는 어벤져로 죽겠네"라고 하면서, 갑자기 어벤져스의 일원인 것처럼 마지막 대사를 읊고 최후를 맞는다. 물론 거기 있던 모두가 이 반응에 황당해하긴 했지만… 관객들도 마냥 웃기에는 좀 당황스러웠을지도. 예전이었다면 모를까, '인피니티 워' 이후 어벤져스의 어벤져라 함은… 좀 다른 의미가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충격적인 비주얼로 돌아온 대런 크로스

어쨌거나 '모독'은 원작에서 코믹한 빌런으로 꽤나 인기 있었던 만큼(물론 일반적인 인기와는 좀 다르겠지만, 보다 컬트적이다...) MCU에서 실사화된 모습으로 등장한다면 더 강력하기를 바랐건만. 커다란 머리는 명석한 두뇌 때문이 아니라 양자 영역으로 빨려 들어오면서 기이하게 변형되었을 뿐이었고 누군가를 지능적으로 괴롭히거나 A.I.M. 조직의 수장이 되기는커녕 캉에게 도구 취급이나 받았으니 꼭 이렇게 했어야만 했을까 싶은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애니메이션 <모독>은 원작에 좀 더 가깝다.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에서 확실하게 최후를 맞게 되면서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진 '모독'이지만, 애니메이션 <모독>에서는 좀 더 원작의 지능형 코믹 빌런 캐릭터에 가까운 모독을 만나볼 수 있다.

악당 과학자들(소위 매드 사이언티스트 계열)의 조직인 A.I.M.의 수장이자 한 가정의 가장인 모독은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조직 A.I.M.이 파산 위기에 처해 전기세조차 낼 수 없는 위기에 처하고 만다. 나름대로 고군분투해 보지만 답도 없는 상황 속에 결국 조직의 수장 자리에서 쫓겨나고... 가족들에게도 무시당하는 형편이다. 어쩐지 명예퇴직한 아버지가 가족들 앞에서 작아지기만 하는... 이렇듯 <모독>은 가슴 아픈 중년의 현실을 모독 버전으로 풀어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다.

대런 크로스와는 전혀 연관이 없고 코믹스 원작의 설정에 더 가까우며, 공식적으로 MCU 세계관과 연계되지도 않는다. 다른 상황이라면 MCU 세계관과 전혀 접점이 없는 건 아쉬움이 될 수도 있겠으나, MCU의 모독이 영 기대한 바와 다른 이 시점에서는 꽤 재미있는 콘텐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평가는 그리 나쁘지 않은 편이었지만 2021년 훌루 방영 당시 시청률이 좋지 않았던 관계로 시즌이 이어지지는 못해 시즌 1이 전부인 점이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모독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좀 더 원작에 가깝게 알아볼 수 있다는 점은 매력일 듯.


앤트맨 패밀리의 이야기에 대런 크로스의 재등장, 그리고 모독이라는 새로운 캐릭터로서의 복귀는 좋은 의미로 참신하지만 달리 말하자면 좀 당황스럽기는 했다. 좀 더 유머러스하게 풀어졌다면 좋았을 것 같은데, 모독의 원래 모습을 기억하는 코믹스 팬들에게는 아쉬움이 남는 것도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어쨌거나 MCU의 모독은 이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영화의 평판이 그리 좋지 못한 관계로 재등장할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앤트맨 패밀리의 향방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 소모성 빌런 캐릭터로 보이는 모독은 오죽할까.

이래저래 흐름이 좋지 않은 느낌으로 마무리되고 있는 MCU지만, 디즈니 플러스의 오리지널 콘텐츠들은 의외로 반응이나 평가가 나쁘지 않은 편이다. 오히려 페이즈의 메인 콘텐츠일 스크린 개봉작보다 오리지널 TV 시리즈가 상대적으로 평이 좋은 편인데. 부디 처음에 계획했던 원대한 그림처럼 서로에게 시너지가 되는 방향으로 가 주기를 바라며...


프리랜서 에디터 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