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차 영화와 뮤직비디오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는 요즘이다. 어떤 영화는 긴 뮤직비디오 같고, 어떤 뮤직비디오는 짧은 단편 영화 같다. 예컨대 아이돌 그룹 뉴진스(NewJeans)의 ‘OMG’ 뮤직비디오는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짧은 스토리를 풀어나가고, 3월 22일 개봉한 전종서의 할리우드 데뷔 영화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은 감각적인 영상미와 OST로 ‘107분짜리 뮤직비디오’라는 평을 얻고 있다.

그래서일까. 영화감독들은 뮤직비디오를 연출하며 ‘투잡’을 하기도 한다. 봉준호, 박찬욱 등 국내 유명 감독들이 뮤직비디오를 제작한 사례를 모아봤다.


수식이 필요 없는 봉준호! 과거 두 편의 뮤직비디오 연출

‘신 인류의 사랑’, ‘나만의 슬픔’ 등의 히트곡을 보유한 가수 김돈규. 놀랍게도 봉준호 감독은 2000년 발매된 김돈규의 ‘단’ 뮤직비디오를 연출했다.

이 당시, 봉 감독은 지하철을 통으로 빌려서 찍었다고 한다. 이후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가 나왔다는 것을 고려해 볼 때, 봉준호 감독의 열차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대목. 지금은 톱 배우가 된 박해일과 배두나의 풋풋한 신인 시절을 감상하는 것 또한 하나의 재미다.

이어 봉준호 감독은 2003년, 한영애의 ‘외로운 가로등’ 뮤직비디오를 작업했다. 강혜정, 류승범 등이 출연한 이 뮤직비디오에는 가로등 밑에서 키스하는 다양한 커플의 모습이 담겨 있다. 마치 단편 영화 같은 이 영상은 구슬프고 서글픈 듯한 노랫말과 잘 어우러져 감정에 깊이를 더한다.

봉 감독은 이 뮤직비디오를 영화 <살인의 추억> 제작진과 함께 촬영했다. 그래서 김뢰하, 박노식 등 <살인의 추억>에서 연기했던 배우들이 곳곳에 등장하기도 한다. <살인의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미장센이 일품.


박찬욱 유니버스가 뮤비에서도? <올드보이>와 똑닮은 뮤비부터 호러 뮤비까지

박찬욱 감독은 총 두 편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한 경험이 있다. 첫 시작은 2004년, 이승열의 ‘secret’. 실제로 박찬욱 감독은 이승열의 열렬한 팬이었다고.

이 뮤직비디오 속에는 박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의 ‘장도리 씬’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가득하다. 실제로 박 감독은 <올드보이>의 스토리보드에 넣었다가 삭제한 장면을 그대로 찍었다고 한다. 박찬욱 감독은 이 뮤직비디오를 실험성이 강한 단편 영화처럼 만들고자, 의도적으로 ‘조악하고 엉성해 보이도록’ 만들고자 노력했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조연으로 등장하는 이정현과 박 감독의 인연은 꽤나 깊다. 박 감독과 이정현은 2011년,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단편영화 <파란만장>으로 처음 만났다. 이후, 2013년에 발매된 이정현의 ‘V’ 뮤직비디오 연출을 맡게 된다. 무려 박찬욱은 노 개런티로 임했다고.

‘V’ 뮤직비디오에도 ‘박찬욱스러운’ 미장센은 끊이질 않는다. 호러 컨셉에 박찬욱스러운 유머가 더해져 이정현의 독창적인 스타일은 더욱 빛이 난다. 배우 진구는 이 뮤직비디오에서 이정현의 상대역으로 출연했다.

이후 이정현은 인터뷰에서 “박찬욱 감독이 자신의 영화에 단역으로라도 출연할 것을 제안한다면?”이라는 질문에 “무조건 달려간다. 배우가 크고 작은 역할 가릴 수 없지 않냐. 존경하고 믿고 따르는 분이다”라고 답했다. 결국, 10년이 흘러 이정현은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에 함께 하게 되어, 소망이 이루어진 셈.


동생 류승범 출연! 류승완 감독이 연출한 ‘리쌍-발레리노’ 뮤직비디오

영화 <베테랑>, <베를린>, <모가디슈> 등으로 최근 가장 핫한 감독 중 한 명인 류승완 감독은 과거 몇 차례나 뮤직비디오를 제작한 적이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리쌍의 ‘발레리노’. 이 뮤직비디오에는 류승완 감독의 동생인 배우 류승범이 등장한다. 류승범은 이 뮤비에서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후, 광기로 미쳐버린 남자를 소름 끼치게 연기해 많은 사람들의 호평을 받았다.

이 뮤비는 독특하고 섬뜩한 스토리 전개로 현재까지도 종종 회자되곤 한다. 류승완 감독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카메라 앵글을 따라 주인공의 시선과 마음이 따라 움직이게 하는 독특한 기법으로 영상을 연출했다. 또한 이 뮤직비디오는 영화 <아포칼립토>, <조디악> 등에서 사용된 HD 바이퍼 카메라를 뮤직비디오에 처음으로 사용한 사례이기도 하다.


영화 <소공녀>의 시퀄? 이요섭 감독이 연출한 ‘Zion.T-눈(feat.이문세)’ 뮤직비디오

이 뮤직비디오를 보고 유난히도 영화 <소공녀>가 생각난다면, 기분 탓이 아니다. 이 뮤직비디오의 묘한 기시감은 <소공녀>의 한솔 역을 맡은 안재홍이 등장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이언티의 ‘눈’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이요섭 감독은 <소공녀> 전고운 감독의 남편이다. 이요섭 감독은 영화 <범죄의 여왕> 등의 작품을 연출했다. 또한 이 감독은 <족구왕> 등을 제작한 독립영화창작집단 ‘광화문시네마’ 소속으로 <족구왕>에 연출 지원과 엑스트라로 참여한 바 있다.

자이언티의 ‘눈’ 뮤직비디오는 영화 <소공녀>의 시퀄 같기도 하다. ‘눈’의 노랫말을 찬찬히 곱씹으며 영상을 보면 더욱 그 쓸쓸함이 증폭된다. “눈이 올까요. 우리 자는 동안에”라며 오지 않는 여자친구를 기다리는 안재홍의 모습은 마치 <소공녀>의 엔딩 이후의 이야기인 것만 같다.


아내 문소리와의 첫 만남! 장준환 감독이 연출한 ‘정재일-눈물꽃’ 뮤직비디오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1987> 등을 연출한 장준환 감독은 배우 문소리와 부부의 연을 맺고 있다. 이들의 첫 만남은 사실 영화 작업이 아닌 뮤직비디오 작업에서였다.

‘눈물꽃’ 뮤직비디오는 장준환 감독의 영화 <지구를 지켜라!>와 맥락을 같이 한다. 장준환 감독은 <지구를 지켜라!>의 주인공 ‘병구’를 “모든 애정을 쏟아 만든 캐릭터. 나에게 많은 것을 준 캐릭터”라며 각별한 애착을 전했다. 다만, 영화의 주인공인 어린아이 ‘병구’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면, ‘눈물꽃’의 주인공은 해피엔딩을 맞는다. 어린 주인공의 부모 역할로는 배우 박희순과 문소리가 열연했다.

노래를 부른 주인공 정재일 역시 이 뮤비에 등장하는데, 뮤직비디오의 스토리는 어린아이 ‘병구’가 훗날 뮤지션 정재일이 된다는 설정이다. 영화 <지구를 지켜라!>에서의 병구는 상처와 눈물로만 얼룩진 아이였다면, 뮤비에서의 병구는 자신의 슬픔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창작자가 된다. 두 작품을 비교하면서 감상한다면 더욱 흥미로울 것.


씨네플레이 김지연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