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바운드> 장항준 감독. 사진 출처=바른손이앤에이

“안녕하세요! 신이 내린 꿀팔자, 윤종신이 임보하고 김은희가 입양한 남자, 눈물 자국 없는 말티즈 장항준입니다!”

장항준 감독이 이렇게 자신을 소개하자 객석을 가득 채운 기자들이 ‘빵’ 터졌다. <기억의 밤>(2017> 이후 6년 만에 복귀작 <리바운드>를 들고 돌아온 장항준 감독은 3월 28일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언론배급시사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개봉을 앞둔 떨림을 감추지 않았지만, 특유의 예능감을 발휘하며 시종일관 기자간담회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들었다.

<리바운드>는 2012년 대한농구협회장기 전국 중고교농구대회에서 단 6명의 선수로 출전한 부산중앙고 농구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과거의 영광을 잃어버린 농구 명문 부산중앙고에 부임한 고교농구 MVP 출신 신임 코치 강양현과 6명의 선수가 전국고교농구대회에서 8일 동안 일궈낸 이야기는 당시에도 화제가 되며 큰 감동을 줬다.

무려 11년 만에 스크린으로 옮겨진 <리바운드>의 각본에는 김은희 작가가 참여해 일찌감치 기대치를 올리고 있다. ‘실화가 스포일러’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리바운드> 기자간담회에서 장항준 감독의 이야기를 총정리했다.


<리바운드> 메인 포스터. 사진 출처=바른손이앤에이

<기억의 밤> 이후 이후 6년 만에 신작으로 돌아왔습니다. 본업인 영화감독으로 돌아온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원래 제 성격이 영화 개봉 때 ‘쫄리지’ 않는 스타일인데요, 이번 영화는 굉장히 쫄리고, 혹시나 유작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웃음). 사실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이 그래요. 자신이 언제 데뷔하게 될지도 모르고, 죽을 때까지 몇 작품을 할지도 모르죠. 게다가 언제 자신이 마지막 영화를 찍을지, 그리고 죽고 나서 어떤 영화로 기억될지도 모르는 인생을 삽니다. 지금 주변을 보면 제 또래 영화감독은 극소수만 살아남아 있어요. 그래서 <리바운드> 다음 작품이 유작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한국 영화 중 4월 첫 개봉영화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첫 타자로 책임감이나 부담감은 없나요?

맞습니다. 첫 타자가 되었는데 큰 부담감은 없어요. 사실 내부적으로는 내정된 개봉일이 상당히 오래전이었어요. 그때는 개봉하는 한국 영화들이 거의 없었거든요? 그러데 <리바운드>가 이제 4월로 개봉일을 잡고 나니까 만만하다고들 생각하셨는지, 좋은 작품들이 줄줄이 개봉하더라고요(웃음). 지금 한국 영화가 본의 아닌 침체기를 맞고 있는데요. 우리 영화 <리바운드>로 조금 활기를 띠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리바운드> 배우 중에는 완전 신인도 있고, 얼굴이 조금 알려진 배우들도 있지만, 영화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해서 완전 ‘싸가지’가 없어졌으면 하는 바람이고요(웃음).

<리바운드> 스틸컷. 사진 출처=바른손이앤에이

농구를 소재로 한 스포츠 영화를 처음으로 연출하셨습니다. 연출 제안은 언제 받으신 건가요?

처음 영화로 만들겠다는 생각은 2012년에 한 거니까 개봉까지 11년이 걸린 셈이네요. 감독 첫 제안은 5년 전에 받았습니다. 그때 스태프를 꾸렸고, 공개 오디션을 했어요. 체육관에서 농구 오디션만 500명은 본 것 같네요. 그런데 투자 직전에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스태프들도 다 해산했고요. 그러던 차에 마치 기적처럼 다시 투자자가 나타났어요. 사실 영화 제작 과정 자체가 ‘리바운드’ 같은 느낌입니다. 넥슨을 만나서 극적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었고, 그렇게 배우들과 함께 작품을 진행할 수 있었던 거죠. 저도 5년을 이 영화에 투자했네요. 물론 아시겠지만 간간이 예능을 했고요(웃음). 오늘이 올 거라고 상상도 못했는데, 같이 한 스태프들에게 감사하다는 마음이 듭니다.

스포츠 장르 영화는 처음인데, 자신이 있었나요?

자신이 있다기보다는 이야기의 진정성을 타협하지 않고 잘 담아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처음 대본을 받은 순간부터 연출 컨셉이 마음속에 떠올랐던 거 같아요. 이 이야기가 실화다 보니 제 피를 더 끓게 만드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래서 아무도 가보지 않았던 한국 농구 영화의 길이라는 것에 대해 겁이 났다기보다는 설렜던 것 같습니다.

<리바운드> 스틸컷. 사진 출처=바른손이앤에이

수많은 배우들이 지원했으니 그렇게 많은 오디션을 하셨겠죠. 농구선수 역을 맡을 배우를 뽑은 기준은 무엇이었을까요?

캐스팅에서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농구 실력’이었습니다. 물론 영화에서는 농구를 잘하는 선수도 있고, 잘못하는 선수도 있죠. 하지만 대부분 배우가 농구를 기본적으로 잘해야 했기 때문에 농구 실력을 우선으로 봤죠. 그다음 기준은 실제 모델이 되는 선수와의 싱크로율이었습니다. 배우들이 실제 선수의 체중에 맞춰서 어떤 배우는 10kg을 증량하기도 했을 정도니까요. 신장도 실제 모델이 되는 선수와 배우가 비슷해요. 강 코치와 안재홍 배우는 거의 키가 똑같아요. 김택 배우가 참 훈남인데요, 실제 홍순규 선수도 정말 훈남입니다. 특색 있는 훈남이라 김택 배우에게 미안한 감도 있지만요(웃음). 그리고 촬영 때에는 실제 선수들이 가진 버릇이나 농구 시술을 익히기 위해 배우들이 정말 많은 노력을 했어요. 관객이 알든 모르든 중요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이 영화를 대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믿은 거죠.

부산 사투리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고요.

강 코치 역을 맡은 안재홍 배우의 사투리를 가지고 혹시나 트집을 잡으실 관객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안재홍 배우가 사실 부산 출신입니다. 고등학교까지 부산에서 다녔어요. 사투리에 대해서 뭐라고 하면 절대 안 됩니다(웃음). 사실 강 코치로 캐스팅이 확정된 이후부터는 안재홍 배우가 강 코치의 말투를 그대로 흉내 내기 시작하더라고요. 아까 말씀드렸지만, 관객이 신경 쓰지 않아도 우리에겐 중요한 문제였거든요. 그러니 <친구>(감독 곽경택, 2001)의 사투리를 기대하고 보시면 안 됩니다. 30년 전 ‘아재’들이 쓰는 사투리가 부산 사투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요.

<리바운드> 스틸컷. 사진 출처=바른손이앤에이

<리바운드>가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는 농구 룰을 잘 알지 못해도 영화 스토리를 따라갈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농구팬이 아닌 관객에게도 농구의 매력을 어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요?

사실 이 작품을 연출하면서 가장 큰 고민이 바로 그거였습니다. 농구라는 스포츠의 룰이나 공격, 수비 패턴들을 잘 모르는 관객들이 많을 것 같아서 그걸 알기 쉽게 전달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죠. 제가 대학생 때의 경험을 떠올렸어요. 그때는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였어요. 학교에 비치된 영화를 다 보고, 자료실에 있는 영화까지 다 보고 나니 더 볼 영화가 없는 거예요. 제3세계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은 컸는데 말이죠. 일본문화원을 찾아가서 영화를 봤어요. 아, 그런데 자막이 프랑스어인 거예요(웃음). 전혀 이해할 수 없었죠. 그런데 그 작품에서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들, 그 작품이 가진 힘 같은 것들을 느꼈습니다. 지금 그걸 돌이켜 본 거죠. 언어 한마디도 못 알아듣는 상황에서 인물의 감정과 서사가 느껴졌다면, 우리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실제로 활용한 방법이 있다면요?

방법적으로 중계진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관객이 따라가야 하는 상황들이 발생하잖아요. 선수들이 느끼는 감정에 관객들이 이입할 수 있도록 해설 위원과 중계진들이 정말 현장감 있는 멘트로 설명해줬어요. 실제로 농구 경기 해설을 하는 분이 중계를 했으니, 농구를 잘 모르는 관객도 농구라는 운동과 경기 상황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리바운드> 스틸컷. 사진 출처=바른손이앤에이

그러면 농구팬도 만족할 만한 영화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부분에 집중했나요?

사실 그 지점이 저희의 지상과제였죠. 대다수 관객이 농구를 크게 즐기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우리의 목표는 현역 선수가 봐도 ‘아, 이 플레이 좋다’라는 말이 나오도록 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수많은 전문가들이 촬영 현장에서 지도했어요. 코칭을 한 거죠. 배우들이 정말 리바운드를 겁니다. 봄부터 여름까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모든 것을 불태웠어요. 편집본을 하승진 선수가 보고 나서 깜짝 놀라더라고요. ‘미쳤다’라고까지 할 정도였어요. 현역 출신 선수가 봤을 때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너무 리얼하다는 극찬이었습니다. 사실 구기종목 중에 고교예선전 초반에는 관객이 거의 없다는 점, 심판이 학생 선수들에게 반말하는 것 등등이 리얼하다고 말해줬습니다.

농구 장면이 참 박진감 넘칩니다. 어떻게 찍으신 건가요?

사실 배우들끼리 움직임에 대한 합을 짜고 콘티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제가 그만 컷 타이밍을 놓친 거예요. 그랬더니 배우들이 자기들끼리 농구를 계속하는 거예요. 진짜 고교농구 선수처럼 공수가 전환되고, 속공으로 갔다가 지공으로 반격하고요. 그렇게 몇 번을 반복했어요. 모니터를 보고 있는 제가 마치 중계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신기했죠. 배우들이 몇 달간 합숙한 이후로 매일 농구를 하다 보니 기량이 월등히 나아졌던 겁니다. 사실 영화에서 나오는 농구 시합 장면 중 1/4 정도는 합이 정해지지 않았던 컷들로 만든 장면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리바운드> 스틸컷. 사진 출처=바른손이앤에이

여쭤보지 않을 수 없는 질문입니다. 관객들이 최근 화제작인 <더 퍼스트 슬램덩크>(감독 이노우에 다케히코)와 자연스럽게 비교할 것 같아요. <리바운드> 만의 차별점, 강점이랄까요, 꼭 봐야 할 이유가 있다면요?

「슬램덩크」는 제가 정말 좋아한, 그리고 지금도 좋아하는 작품인데요, 제가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리바운드>는 굉장히 오래전부터 기획한 작품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터졌어요. 4월이 뭐 체육의 달도 아닌데 우후죽순 약속이나 한 듯이 스포츠 영화들이 개봉해요. 게다가 <더 퍼스트 슬램덩크> IMAX판 개봉일이 <리바운드> 개봉일이랑 같더라고요? 일본 측과 협의가 끝나지는 않은 것 같은데 말이죠(웃음).

아시다시피 「슬램덩크」는 워낙에 명작입니다. 많은 이들이 사랑한 작품이고, 많은 인생 이야기가 담긴 작품이죠. <리바운드>가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다른 건 지금을 살아가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뭔가 본인의 감정을 투영하고 공감대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지점이 있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엘리트 체육인이 되겠다는 꿈을 꾸지만, 여러 이유로 좌절하는 선수가 많습니다. 그들에게는 오늘 경기가 마지막일지, 내일 부상을 당하면 그것이 마지막일지 모르는 상황인 거죠. 지금 우리 청년들이 <리바운드>를 보면서 조금이나마 위안과 공감을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리바운드> 장항준 감독과 출연 배우들. 사진 출처=바른손이앤에이

마지막으로 <리바운드>를 볼 관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리바운드>를 제 나름대로 어떻게 해석을 내렸는지 말씀드릴게요. 한때 선수였지만 꿈을 접은 스물다섯 청년과,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변방의 여섯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불가능하다는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의 길을 걸어간 이야기죠. 우리는 물론 그들의 미래를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이 농구 경기장에서 느꼈던 순간순간의 열망은 그 누구보다 뜨거웠다고 말씀드리고 실어요. 한국영화가 성공하려면 몇 백억을 투입한 대작들도 중요하지만, 중급영화가 허리를 받쳐줘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희 영화 <리바운드>에 애정을 갖고 봐주시기 바랍니다.


윤상민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