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영화제작자 아쉬가르 파라디는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작가이자 중요한 영화감독 중 한 명이다.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이 영화에서 주로 다루는 것, 그러니까 좋아하는 주제가 있다면 아마도 ‘도덕적 딜레마’일 것이다. 전작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2011)에서는 이민에 대한 의견 차이로 씨민과 나데르가 별거를 하면서 문제가 시작된다. 사회적 위치와 도덕적 규범을 아우르는 딜레마에 대해 다뤘다면, <세일즈맨>(2016)에서는 연극배우 부부가 붕괴 위기에 처한 집을 떠나 이사를 하면서 겪게 되는 비극으로 죄책감과 복수 그리고 용서의 딜레마를 그렸다. 그가 ‘딜레마의 감독’으로 불리는 이유다.
윤리적 딜레마로 가득한 그의 영화들은 촘촘한 스토리텔링과 맞물려 관객에게 강렬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스릴러 영화가 아닌데도 말이다. 그렇게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서는 관객의 마음은 무거워진다.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영화는 상영이 끝났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라는 감독의 소신이 실현되는 또 하나의 ‘영화적 순간’이다.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또 한편의 논쟁적인 영화 <어떤 영웅>이 3월 15일 국내 개봉했다. 제74회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제93회 전미비평가위원회 2관왕(각본상·외국어영화상), 제33회 팜스프링스국제영화제 3관왕(국제비평가협회 각본상·국제비평가협회 남우주연상·Bridging the Borders상) 등 전 세계 영화제 13개 부문 수상 및 38개 부문 노미네이트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국내에서는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첫선을 보여 호평을 받았지만, 3주 가량의 짧은 개봉 기간에 관객 4천여 명을 겨우 동원하며 씁쓸하게 극장가에서 퇴장했다.
<어떤 영웅> 역시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전작과 같이 일상 속 딜레마를 그리고 있다. 사업을 하다 생긴 빚을 갚지 못해 수감 중인 라힘(아미르 자디디)은 특별 귀휴를 받아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이번 귀휴는 특별하다. 애타게 그를 기다리는 여자친구 파르크혼데(사하르 골두스트)가 라힘을 감옥에서 풀려나게 할 방법을 찾았기 때문이다. 파르크혼데는 우연히 주운 가방에서 금화를 발견했고, 이 금화를 팔아 라힘의 빚을 갚아 출소를 계획한 것. 하지만 금 시세가 떨어져 모든 빚을 변제할 수 없게 되자, 라힘은 생각을 고쳐먹는다. 가방 주인을 찾아주기로 한 것이다.
라힘은 가방의 주인을 찾아주며 일약 영웅으로 떠오른다. 교도소에서는 최근 가혹행위로 재소자가 사망한 사건을 은폐하기 급급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라힘의 선행을 적극 홍보한다. 방송을 보고 그의 석방을 돕기 위해 나선 자선단체에는 말을 더듬는 아들까지 동원해 사람들의 동정심을 자극한다.
라힘은 ‘금화 가방을 돌려준 선량한 재소자’라는 타이틀로 방송과 신문을 통해 단숨에 스타가 되었지만, 그때그때마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했던 사소한 거짓말들이 부메랑이 되어 라힘을 위협한다. 실제로 가방을 주운 사람은 여자친구인데, 방송에 출연한 그는 자신이 가방을 주웠다고 말한다. 그때의 상황까지 리얼하게 묘사하면서.
여기에 그가 교도소 안에서 불법으로 휴대폰을 소지했다는 점, 전 부인과 장인에게 재산상 피해를 끼쳤다는 점 등등이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가방 주인을 찾아주는 선행으로 계획한 가석방과 재취업의 길에는 먹구름이 드리운다. 우발적인 그의 선행은 서서히 라힘의 인생을 무너뜨린다. 이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명예’라는 가치마저 위협하면서. 과연 선행에도 대가가 따르는 것일까?
선행을 비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거짓말, 순수한 의도로 행해지지 않았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거기서 바로 <어떤 영웅>의 딜레마가 시작된다.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은 조지 밀러 감독과 한 '인디와이어' 인터뷰에서 “내 모든 영화에서 드라마는 아주 작은 실수에서 나온다. 매우 구체적인 실수, 내게는 이것이 이야기의 핵심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의 전작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어떤 영웅>의 라힘 역시 불완전한 세상의 가혹한 현실 속에서 자신의 이상을 저울질당한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결과는 가혹하다. 선행은 좋은 것이고 옳은 것이라 믿었기에 실천했던 라힘은, 아주 작은 실수들로 인해 그 선행 자체를 부정당하게 된다. 그렇다면 선행을 하는 영웅은 더 이상 나타나기 어려운 것일까?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말을 조금 더 들어보자. “사람이 사회에서 일종의 영웅이 되면, 사람들은 그가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그가 나쁜 일을 해서는 안 되며, 전생이나 내생에조차 잘못을 저지를 권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실수하지 않는 삶은 끔찍하다고 믿기 때문에, 이 지점이 매우 중요하게 느껴진다. 요즘 유명한 사람들을 보면 어떤 작은 실수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영웅>은 어떻게 보면 극한의 상황 속에서 올바른 가치 판단을 하지 못하는 지극히 평범한 한 인물의 이야기이다. 영화는 라힘의 상승과 추락뿐 아니라 라힘을 이용해 이미지를 쇄신하려는 교도소장, 라힘을 방송에 노출해 시청률을 높이려는 방송국 PD, 라힘의 사연으로 대형 모금행사를 여는 자선 재단 등 여러 집단의 양면성과 이해관계를 다방면으로 충돌시킨다. 그 결과는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믿은 한 성인의 파국으로 귀결될 뿐이다.
하지만 <어떤 영웅>이 특별한 영화가 되는 또 하나의 지점은 선행을 둘러싼 어른들의, 이렇게나 다양한 욕망의 충돌에 아이 세대의 시선을 불어넣는다는 점이다. 아이들의 눈을 통해 바라본 어른들의 사회상의 딜레마는, 어른들만 이야기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전환한다. 또래에 비해 지적 성장이 느리고 말을 더듬는 아들 시아바시를, 라힘은 처음에는 이용한다. 하지만 아들의 눈물과 사랑, 진심을 느끼고 난 후 라힘은 변화한다.
처음에는 교도소장의 계획에 따르던 라힘이 후반부 아들을 촬영해 동정심을 자극하려는 교도소 측의 계획을 강력하게 막아서는 후반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영화 내내 타인이 원하는 대로, 타인이 짜 놓은 상황에 끌려다니던 라힘이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존재인 아들을 지키려는 마음의 발로인 것이다.
가족 공동체의 유대감이 강한 이란은 엄격한 종교적 규범 아래 명예를 중시하는 사회이다. 실제 영화의 말미에는 명예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실추된 라힘의 명예가 그의 인생은 물론 누나네 가족의 삶까지 망가뜨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라힘은 대중의 영웅에서는 추락했지만, 아버지로서 더 이상 해서는 안 되는 또 다른 양심의 선택을 한다. 한 아이의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로 남는다는 선택.
그런 맥락에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첫 장면과 묘하게 겹쳐진다. 첫 장면에서 귀휴를 받은 라힘은 간발의 차이로 노란 버스를 놓친다. 마지막 장면에서 라힘이 다시 교도소로 들어가는 장면에서는 만기 출소한 부부가 여유로운 모습으로 노란 버스를 탄다. 잘못의 대가를 치르고 자유의 몸이 된 이와 선행으로 출소를 꿈꿨던 이의 대비가 극명하게 이뤄지는 장면이다. 하지만 교도소로 돌아가는 라힘의 뒷모습이 그렇게 쓸쓸하게만, 어둡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는 첫 장면, 라힘이 매형의 일터로 찾아가는 장면에서도 의미심장하게 보여진다. 영화의 배경이 된 도시는 쉬라즈. 이란에서 5번째로 큰 도시이자 이란의 7대 역사 도시 중 하나이다. ‘쿠란의 문’, ‘핑크 모스크’, ‘에람 정원’ 등 이란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고대 유적과 한때 찬란하게 꽃피웠던 페르시아 문화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 곳이다. 이틀의 귀휴를 허가받은 라힘이 힘겹게 유적지의 계단을 올라가 매형을 만나는 장면은 그가 잃어버린 자신의 삶, 명예를 되찾고 싶은 상승 욕구를 수직적인 이미지 이동으로 보여준다.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반복하고 변주한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정성일 영화평론가는 최근 진행한 GV에서 “매번 같은 것이 반복된다면 매너리즘이지만, 반복을 통해 새로운 것을 도출한다면 가치가 있다. 파라디의 영화에서는 등장인물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매번 바뀐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어떤 영웅>에서 그 가치는 아마 ‘명예’인 것처럼 느껴진다. 라힘이 결국 교도소로 돌아갈 결심을 하는 것은 아들 시아바시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서다. 그것이 사랑이다. 라힘과 시아바시, 그리고 파르크혼데는 사랑으로 서로의 명예를 지켜주기로 결심했다. 세상 사람들이 그에게 돌을 던졌지만.
과연 <어떤 영웅>은 리얼리즘의 극단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를 보다 보면 라힘, 파르크혼데, 시아바시가 마치 이란의 한 도시에서 만날 법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기 위해 끝없이 길고도 세심한 리허설을 고집하는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소원은 “언젠가 사람들이 극장에 가서 영화라는 것을 완전히 잊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어떤 영웅>으로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은 벌써 소원을 이룬 것처럼 보인다. 한 편의 영화가 아니라 인생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윤상민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