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투게더> 포스터

왕가위 감독, 장국영 양조위 주연의 사랑 영화 <해피 투게더>가 다시 한번 재개봉 했다. 왕가위가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해 보다 두터운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다. <해피 투게더>를 비롯해 지난 30년 간 칸 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영화들의 엄선해 소개한다.


난니 모레티

나의 즐거운 일기

Caro diario

1994

이탈리아 감독 난니 모레티는 처음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에체 봄보>(1978)로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처음 초청됐지만, 이후 16년 만에 다시 칸에 입성해 <나의 즐거운 일기>로 감독상을 받았다. 연출, 각본, 제작, 그리고 주연까지 도맡은 <나의 즐거운 일기>는 베스파 바이크를 타고 한적한 8월의 로마를 돌아다니는 '나의 베스파', 친구와 함께 이탈리아의 여러 섬을 여행하는 '섬들', 가려움증에 시달리다가 유명한 의사들에게 형식적인 진료를 받는 '의사들' 세 파트로 나뉜다. 자국 이탈리아 사회를 향한 서슬퍼런 풍자가 담겼던 1980년대 작품들과 달리, 한결 가볍고 여유로운 태도로 제 주변을 둘러보는 시선이 엿보인다.


코엔 형제

파고

Fargo

1996

처음 칸 경쟁부문에 초청된 <바톤 핑크>(1991)로 황금종려상, 감독상, 남우주연상을 휩쓴 코엔 형제는 (1994년 <허드서커 대리인>을 거쳐) 5년 후 <파고>로 감독상을 수상했다. 빚에 허덕이는 자동차 세일즈맨이 사람을 동원해 아내를 유괴해 장인에게 돈을 받아내려 하지만 자꾸만 일이 꼬이고, 만삭인 여자 경찰이 해당 사건을 수사하는 이야기를 건조한 블랙코미디의 톤으로 그려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 7개 부문 후보에 올라 여우주연상(프랜시스 맥도먼드)과 각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코엔 형제는 또 5년 후 흑백의 누아르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2001)로 다시 한번 감독상을 받아 칸 영화제 감독상을 3번 차지한 유일한 사례로 남았다.


왕가위

해피 투게더

春光乍洩

1997

'구름 사이로 잠깐 비치는 봄빛'이라는 뜻의 '춘광사설'을 원제로 한 <해피 투게더>는 왕가위가 전작 <아비정전>(1990), <동사서독>(1994)에 출연한 톱스타 양조위와 장국영을 연인으로 캐스팅 해 화제를 모았다. 아휘(양조위)와 보영(장국영)은 아르헨티나 이과수 폭포로 가는 길에 헤어지고, 홍콩에 돌아갈 돈이 없어 그대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머무르면서 만남과 이별을 반복한다. 흔히 왕가위를 칸 영화제의 총애를 받는 감독 중 하나로 손꼽는데, <해피 투게더>는 그가 처음으로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감독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이후 <화양연화>(2000), <2046)(2004),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2007)가 연달아 경쟁 후보에 올랐으나 모두 무관에 그쳤다.


에드워드 양

하나 그리고 둘

一 一

2000

허우 샤오시엔, 차이밍량과 함께 대만 뉴웨이브를 대표하는 감독 에드워드 양. 전대미문의 걸작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 다음에 만든 <독립시대>(1994)가 처음 칸 경쟁부문에 초청되고, 2000년대를 여는 해 <하나 그리고 둘>을 칸을 통해 발표해 감독상을 거머쥐었다. 카메라로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그들의 뒷모습을 찍는 8살 소년 양양을 중심으로 30년 만에 첫사랑을 다시 만난 아빠, 외할머니가 쓰러지고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절로 떠난 엄마, 옆집 애가 사귀던 남자에게 호감을 갖게 되는 누나 등 한 가족의 사연이 느릿느릿 촘촘하게 엮인다. 에드워드 양은 <하나 그리고 둘>이 공개된 해에 대장암을 투병하기 시작해 결국 신작을 만들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데이비드 린치

멀홀랜드 드라이브

Mulholland Drive

2001

2001년의 감독상은 두 작품에 돌아갔다. 코엔 형제에게 세 번째 감독상을 안긴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와 더불어,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 역시 감독상을 받았다. 할리우드 근처 특정 도로의 이름을 따온 영화는 린치의 여느 영화가 그렇듯이 결코 간단하게 서술할 수 없는 모호한 서사와 이미지가 2시간 30분에 걸쳐 이어진다. 감독 스스로 DVD에 영화의 실마리가 될 만한 (외려 더 헷갈리게 만드는) 10개 힌트를 기입했을 정도. 하지만 세상은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난해함에 환호했고, 시간을 더할수록 영화의 가치는 더욱 드높아져 21세기 최고 영화의 왕좌를 차지하게 됐다.


임권택

취화선

2002

<길소뜸>(1986)과 <태백산맥>(1995)으로 베를린 영화제, <씨받이>(1987)로 베니스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임권택 감독은 2000년 판소리를 영화로 옮기는 데에 도전한 97번째 영화 <춘향뎐>으로 처음 칸 경쟁 후보가 됐다. 조선 화가 장승업의 삶을 그린 <취화선>(2002)도 같은 부문에 초청돼 폴 토마스 앤더슨의 <펀치 드렁크 러브>(2002)와 함께 감독상을 받았다. 한국 감독의 작품이 칸 영화제의 본상을 수상한 경우는 <취화선>이 처음.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인 <취화선>은 감독상 수상 이후 약간의 편집을 거쳐 청소년용 판본으로도 개봉한 바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2년 후 최민식의 또 다른 주연작 <올드보이>(2004)는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구스 반 산트

엘리펀트

Elephant

2003

구스 반 산트만큼 필모그래피가 변화무쌍한 경우도 드물다. 감동적인 성장 영화 <굿 윌 헌팅>(1997)과 <파인딩 포레스터>(2000) 사이 알프레드 히치콕의 걸작 <싸이코>(1960)를 숏바이숏으로 똑같이 찍(었지만 비평/상업적으로 몰매를 맞)은 <싸이코>(1998)를 발표하고, 2002년 파격적인 내러티브와 이미지로 똘똘 뭉친 '죽음' 3부작을 시작하는 <게리>를 내놓았다. 1999년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을 모티브로 한 다음 작품 <엘리펀트>로 반 산트는 처음 칸 경쟁 부문에 초대돼 바로 황금종려상과 감독상을 가져갔다. 해리스 사비데즈의 유려한 카메라워크가 돋보이는 촬영으로 학살이 벌어지기 전후 학교의 상황을 건조하게 담아낸 영화는 공개되자마자 극찬을 불러모았고 그해 최고작으로 두루 손꼽혔다.


베넷 밀러

폭스캐처

Foxcatcher

2014

다큐멘터리로 감독 커리어를 시작한 베넷 밀러는 <카포티>(2005), <머니볼>(2011) 등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들로 특유의 연출력을 자랑했다. 2014년 작 <폭스캐처>는 굴지의 재벌 기업 '듀폰'의 상속자 존 듀폰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슐츠 형제와 레슬링팀 '폭스캐처'를 운영하고, 결국 데이브 슐츠를 죽이는 시간을 천천히 따라간다. 코미디언 출신 배우 스티브 카렐이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영화 전체를 압도하는 영화는 제대로 어머니에게 인정 받아보지 못한 존 듀폰이 서서히 열등감에 잠식되어가는 과정이 지독하리만큼 건조하게 묘사된다. <폭스캐처>가 칸 감독상을 수상한 지 벌써 9년이 흘렀지만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영화화한다는 소문만 오래 전 돌았을 뿐 베넷 밀러의 신작은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이다.


허우 샤오시엔

자객 섭은낭

刺客聶隱娘

2015

대만의 거장 허우 샤오시엔의 필모그래피는 오르세 미술관이 제작한, 줄리엣 비노쉬 주연의 <빨간 풍선>(2008) 이후 오랫동안 멈춰 있었다. 짧게는 1년, 길어야 4년 사이에는 신작을 내놓던 감독치곤 공백이 오래된 셈. 그동안 그는 첫 무협 영화 <자객 섭은낭>(2015)을 만들기 위해 매진했다. 당대 가장 위대한 감독 중 하나인 허우 샤오시엔이 연출한 무협 영화는 뭔가 달라도 달랐다. 화려한 미장센, 재빠른 편집, 묵직한 타격감, 그리고 이들을 가능케 하는 CG 같은 게 <자객 섭은낭>엔 없다. 스승으로부터 과거 사랑했던 전계안(장첸)을 죽이라는 명을 받은 암살자 섭은낭(서기)의 망설임을 찍는 데에 공을 들이면서도, 간혹 등장하는 액션 신의 숨막히는 리듬과 움직임으로써 탄성을 자아낸다. 1993년 <희몽인생>부터 외국어 영화인 <카페 뤼미에르>(2004)와 <빨간 풍선>을 제외한 모든 작품을 칸 영화제 경쟁 부문을 통해 처음 공개한 허우 샤오시엔은 2015년 <자객 섭은낭>으로 감독상을 거머쥐었다.


레오스 카락스

아네트

Annette

2021

공백기로는 레오스 카락스가 허우 샤오시엔을 뛰어넘는다. 1999년 <폴라 X>부터 2021년 <아네트> 사이 22년간 장편은 <홀리 모터스>(2012) 단 한 작품만 보탰고, 세 작품 모두 칸 경쟁부문 후보로 올랐다. 칸이 자국 프랑스 감독에게 비교적 후한 것과 달리 카락스는 <아네트>로 처음 본상인 감독상을 수상했다. 미국 록 밴드 스팍스(Sparks)의 두 형제 멤버가 구상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스탠드업 코미디언 헨리(아 드라이버)와 오페라 가수 안(마리옹 꼬띠아르)이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아이까지 낳았지만 부부 관계는 파국을 향해 가는 과정을 이제껏 본 적 없는 방식의 뮤지컬 영화의 연출로 선보였다.


박찬욱

헤어질 결심

2022

<올드보이>로 2004년 칸 그랑프리를 받은 박찬욱 감독은 <박쥐>(2009)와 <아가씨>(2016)에 이어 탕웨이 박해일 주연의 로맨스 <헤어질 결심>으로 다시 한번 칸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박쥐>부터 여러 작품을 함께한 정서경 작가와 쓴 절절한 사랑 이야기 <헤어질 결심>은 영화제가 진행되는 중 영화 매체로부터 가장 높은 평점을 받으면서 수상이 유력한 영화로 점쳐졌고 결국 감독상을 차지하게 됐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