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감
퀄리티나 프랜차이즈 운영 등 모든 면에서 매우 실망스럽다는 평을 듣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페이즈 4(<블랙위도우>(2021)~<블랙 팬서 : 와칸다 포에버>(2022)+<완다비전>(2021)~<변호사 쉬헐크>(2022))에 이어 페이즈 5의 시작 <앤트맨 : 퀀텀 매니아>(2023)도 불안했다. 그런데 더 이상 희망이 느껴지지 않았던 마블의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전성기에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는 퀄리티의 시리즈 최고작이 나왔다. 주저하지 않고 딱 잘라 말하자면, 지난 주에 개봉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2023)는 <어벤져스 : 엔드게임>(2019) 이후 최고의 마블 영화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014)가 개봉한 것이 어느덧 10년 전이니, 한 세대에 걸친 이야기가 드디어 마무리된다. 이는 속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2017) 이후 6년만의 공개인데, 마블 영화의 속편 중에서 텀이 가장 긴 시리즈에 속한다. 긴 시간에 걸친 그들만의 마무리는 역시 그들다웠다. 영웅보다는 시정잡배에 가까운 캐릭터들이면서 무려 은하계를 지키는 이 수호자들은 특정 캐릭터 하나에 집중한 전설적인 행적보다는 팀의 매력을 쏟아내는데 주력한다. 이렇게 나사 빠진 캐릭터들의 허술함은 연민을 자아내며 깊은 호소력을 뿜는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는 상업영화에선 드물게 타자에 대한 연민의 감정과 자기연민을 동시에 뿜어내지만, 동시에 동정에만 머물지 않게한다. 거기엔 역시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인 '루저들의 연대'가 한몫하고 있다.
제임스 건 감독
3편의 주인공은 그동안의 피터(크리스 프랫)가 아닌 로켓(브래들리 쿠퍼)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는 너구리(혹은 오소리·강아지·멧돼지 등등으로 불린) 로켓의 어두운 과거가 조명되며 이야기는 펼쳐진다. 하이 에볼루셔너리(척우디 이우지)라는 미친 과학자는 우주의 하등한 생물을 개조한다는 일념 하에 동물들에게 온갖 비윤리적인 실험을 강행했다. 이 과정에서 로켓은 지능과 언어를 가지게 되었지만 친구들을 잃었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까지 느끼게 된다.
하이 에볼루셔너리의 목표는 완벽한 존재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진심으로 우주의 미래와 비전을 걱정하며 자신의 신념을 행동으로 옮긴다.(이는 마블 페이즈 3 메인 빌런, 타노스(조시 브롤린)의 신념이기도 하다. 우주의 반에 해당하는 생명체를 없애는 행위를 진정 우주를 위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기에 하이 에볼루셔너리의 시선에서 보기에 한참 모자란 것들이 단결하여 자신에게 대항하는 것에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가디언즈는 연대의 힘으로 대항해 나아간다.
이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를 연출한 제임스 건 감독의 테마이기도 하다. 우주의 이방인들을 모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직조술뿐만 아니라, 잠깐 DC로 외도하여 만들었던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2021)에서도 루저들을 향한 따스한 시선을 읽을 수 있다. 그의 다음 작품으로 알려진 <슈퍼맨 레거시>(2025) 또한 외지인이라는 정체성과 떨어지기 힘든 슈퍼맨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한다.
오프닝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하면 올드팝을 적재적소에 배치한 최고의 음악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3편 또한 훌륭한 전통을 이어나간다. 언급했던 대로 이번에 주인공은 로켓이다. 그는 자신의 과거 때문에 생긴 트라우마로 인해 존재에 대한 회의까지 느끼고 있다. 이러한 로켓의 상태는 연민과 좌절, 그리고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하고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영화의 오프닝에서 선보이는 것은 밴드 라디오헤드(Radiohead)의 메가히트곡 'creep'이다.
라디오헤드의 멤버인 보컬 톰 요크는 2018년 영화 <서스페리아>의 음악을 담당하기도 했고, 기타리스트 조니 그린우드는 <데어 윌 비 블러드>(2008) 이후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모든 영화음악을 담당하고 있다. 그들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곡 'creep'은 그 특유의 음울함 때문에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사운드트랙으로 쓰이기도 했다. 트란 안 홍 감독의 <씨클로>(1995)에서는 베트남 민요들로 가득 채워진 가운데 갑작스레 'creep'이 흐르며 인물이 춤을 춘다. 하지만 곧 불안을 감추지 못하는 시인(양조위)의 클로즈업이 비치면 'creep'이 애인을 팔아버리려는 시인의 죄의식을 대변한다는 것을 알게된다.
이처럼 자괴스러운 정서에 안성맞춤인 이 곡은 로켓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설명하기에 더 없이 어울린다. 'creep'의 성공엔 가사의 역할이 크다. 톰 요크는 작사 당시에 마음에 드는 여인이 있었으나 말을 걸지 못했다. 그러다 술을 진탕마시고 고백했는데 여자는 질겁하며 도망쳐버렸고 이 이야기를 곡으로 옮겼다. 즉 이 곡은 사랑에 실패할 때의 자조적이고 암울한 마음을 표현한 진실함 때문에 겉도는 외톨이들이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인싸들의 동정심까지 사로잡게 되어 많은 이들의 사랑을 얻게됐다. 뭔가 하나씩 부족한 인상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멤버들이 자조적 태도를 띄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곡과 이 시리즈의 운명이 비슷하다는 느낌을 준다.
수미쌍관
영화의 엔딩부에서는 흐르던 음악을 멈춘 피터가 다른 음악을 재생시킨다. 그 때 흐르는 것은 밴드 10cc의 'I'm not in love' 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의 팬이라면 이 장면에서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시리즈 1편에서 외계로 잡혀가기 전의 피터가 엄마의 임종을 지켜보며 그 슬픈 마음을 억누르며 나오는, 첫 시리즈의 첫 장면에서 흐르는 음악인 것이다. 10년에 걸친 시리즈의 엔딩은 최초의 오프닝과 연결하며 매듭을 짓는다.
실제로 이 곡의 가사는 너무 사랑하는 대상에 대하여 '사랑하지 않는다'며 애써 부정하는 내용이다. 피터는 지구를 떠나며 가졌던 마지막 인상은 엄마의 마지막을 보지 못하게 한 할아버지에 대한 분노였다. 당시 피터는 'I'm not in love'를 들으며 그 어두운 감정을 억눌렀다. 이윽고 엔딩에서 또 이 곡이 흐르면, 피터는 다시 할아버지를 찾아가 재회한다. 대안 가족의 형태를 띄고 살아왔던 그였지만, 비로소 가족을 만날 마음이 마련된 정서를 음악도 함께 표현한 것이다.
시리즈의 미덕
이 사랑스러운 '뭉충이들'은 팀의 의미를 강조하며 심지어 적인 아담(윌 폴터)에게도 기회를 준다. 낙오자에게도 두 번째 기회를 주는 여유야말로 이들의 진정한 힘이 아닐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멤버들이 만들어낸 완벽한 공동체는, 결국 완벽하지 않은 구성원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이런 경애한 여유가 현실에서도 부디 사치가 아니길 바란다.
프리랜서 막노동꾼 이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