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자전거 도둑>은 영화사(史)의 10대 걸작이니, 가장 위대한 영화니 하는 것들을 꼽을 때면 으레 리스트에 오르곤 한다. 이창동, 홍상수,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중국의 지아 장 커,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 등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올랐거나, 현재 주목받고 있는 많은 감독들이 1940년대 후반 이탈리아에서 파생된 네오리얼리즘의 영향권 아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1년 초등학생이었던 봉준호 감독이 집에서 시청한 <자전거 도둑>을 계기로 영화감독을 목표로 하게 되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영화 역사상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영화 <자전거 도둑>이 75년 전 극장에서 상영된 아날로그 필름을 디지털 포맷으로 바꾸는 리마스터링을 거쳐 최고의 화질과 사운드로 극장에 공개됐다. 영화 관람 전, 영화의 탄생 배경과 감독의 좌절, 수치, 희망의 문법을 훑어보자. 전쟁 말기 열악한 영화 제작 환경과 당시 주류를 이루고 있던 정치적 선전 영화나, 허황된 코미디 또는 멜로 영화를 거부하고 사회적 문제들을 진솔하게 다루기 위해 시작된 문화적 흐름을 알고 영화를 보면 안 보였던 장면이 읽힌다.
"네오리얼리즘은 모든 인간에게 용기를 주어 인간이 되고자 하는 의식을 갖게 만드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네오리얼리즘이라는 용어에는 광범위한 의미에서 시나리오 작가를 포함하여 기술적인 전문가로서의 제작진을 없애는 것도 함축되어 있다. 지침서, 프로그램, 문법 등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근접 촬영이나 역광 촬영 등과 같은 명칭들도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 모두는 우리 모두의 각자 개인적인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체사레 자바티니 1953년 인터뷰
영화사의 위대한 한 걸음이라 할 수 있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은 2차 세계대전 패전 후의 좌절 속에서 탄생했다. 고통과 좌절을 통해 진보와 희망을 찾는 삶의 아이러니처럼, 재능 있는 젊은 감독들이 거리로 나가 전후 황폐한 이탈리아 사회를 화면에 고스란히 옮기며 네오리얼리즘은 꽃 피게 된다. <자전거 도둑>의 감독도 그중 한 명이었다. '비토리오 데 시카'가 감독하고 '체사레 자바티니'가 각본을 쓴 영화 <자전거 도둑>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아버지 안토니오(람베르토 마지오라니)가 자신의 유일한 재산인 자전거로 벽보를 붙이는 일을 하던 중 자전거를 도둑맞으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작품이다. 직관적 제목만큼 스토리 또한 단순하지만, 영화는 이탈리아 거리와 사람들을 단순히 묘사하는 것을 넘어 인간 내면의 풍경을 영상예술로 승화시킨다.
스튜디오 촬영은 단 한 컷도 없어
영화는 전후 이탈리아 로마의 황폐한 전경을 담담히 비춘다. 아버지 안토니오와 아들 브루노 부자가 도둑맞은 자전거를 찾기 위해 배회하는 여러 공간, 상점, 사람으로 북적이는 버스, 시장, 광장, 자전거 가게, 전당포 등은 당시 로마 시내에 실제로 있었던 장소로, 이 영화에서 스튜디오 촬영 장면은 단 한 컷도 없다.
감독은 거리에서 롱 쇼트(피사체를 먼 거리에서 넓게 잡는 촬영법으로 주변의 물건과 인물의 관계까지 보여줄 때 주로 사용됨)와 롱테이크(하나의 쇼트를 길게 촬영하는 것) 기법을 이용해 극심한 가난으로 인한 서민들의 주름진 풍경을 포착한다. 감독은 안토니오가 포스터를 벽에 붙이는 요령을 배우는 장면에서 주인공 주변을 배회하는 아이들, 아이들을 쫓아내는 어른, 쫓겨난 아이들이 행인을 뒤따라가며 구걸하는 장면을 롱 쇼트와 롱테이크로 보여주는데, 이는 영화가 단순히 안토니오라는 한 개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이탈리아 사회 전반에 대한 이야기임을 역설한다.
이러한 촬영 방법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을 대표하는 스타일로, 사운드 또한 현장 녹음을 원칙으로 했다. 안톤이 자전거 도둑을 잡고 추궁하는 장면에서 뜬금없는 음악 소리가 들리는데, 이것은 의도한 배경음이 아닌 현장녹음으로 인해 얻은 뜻밖의 효과라고 전해진다.
전당포 장면은 특히 자주 언급되는 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 안토니오는 아내 마리아(리아넬라 카렐)의 도움으로 침대보 6장을 전당포에 맡기고 이미 저당 잡혀 있던 자전거를 찾아온다. 자전거를 찾는 순간, 카메라는 롱 쇼트로 전당포 자전거 관리인의 뒤로 누군가의 침대보를 가져가는 직원의 모습을 비추는데, 걸어가는 직원 뒤로 수백, 수천 개의 보따리들이 쌓여 있는 모습이 화면에 잡힌다. 곡예하듯 보따리 사이를 넘나드는 직원의 움직임으로 강조되는 탑처럼 쌓인 물건은 가난한 이탈리아의 현실에 대한 또 다른 직유다. 그 어떤 미사여구 없이 현실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화면이 주는 감동은 의외로 크다.
아마추어 배우 기용
감독은 영화에 나온 배우도 아마추어 배우를 기용하거나, 거리에서 캐스팅해 리얼리즘을 높인다. 그는 어느 공장의 무명의 노동자 람베르토 마지오라니를 주인공으로 기용했고, 길에서 꽃을 파는 아버지의 일을 돕다가 영화 촬영 현장을 지켜보던 엔초 스타이올라를 브루노 역으로 캐스팅했다. 안톤의 아내 또한 전문 연기자가 아닌 당시 기자였던 리아델라 카렐이 연기했다. 영화 속 브루노는 단연 눈에 띄는데, 브루노 역을 맡은 엔초 스타이올라의 풍부한 표정과 다소 과장스러운 연기는 조용한 영화에 생기를 불어 넣는다. 아버지가 처음 일을 나가던 날 아침 열심히 자전거를 닦고, 어린 동생을 위해 창문을 닫는 장면은 왠지 모를 애잔함도 불러온다.
가난과 사회에 대한 보편적 이야기
'위대한', '-ism'같은 수식어를 빼고 바라본 이 영화의 특별함은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성에 있다. 영화 내내 군중에 이리저리 치이는 안토니오는 보통 사람의 표상이다. 그래서 '물건을 잃은 사람은 찾을 권리가 있다'라는 당연한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 속에서 도둑맞은 이가 도둑으로 전락하는 절박한 상황의 아이러니는 남 일 같지 않다. 영화는 가난한 인간의 몸부림과 초조함을 아이가 바라보게 함으로써 모멸감과 수치심을 극대화하기도 하는데, 이 설정은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을 옥죈다.
이 모든 부조리를 관찰한 관객은 질문하게 된다. 중대한 결정의 순간, 침대보를 강단 있게 처분하는 마리아 같은 사람이 왜 미신과 같은 비이성에 기대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지. 왜 경찰이 아닌 도난당한 사람이 직접 자전거를 찾아 나서야 하는지. 순수함이나 인간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사람들이 되려 차별받고 조롱당하는 세상은 뭔가 잘못된 게 아닌지.
자전거 도둑잡기에 소극적인 경찰에게 안토니오는 '내가 처한 상황을 당신이 이해한다면…'이라고 조용히 읊조린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위대해진다. 동시대인들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했던 그가 처한 부조리의 본질을 2023년을 사는 우리가 포착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영화는 시대를 초월한 울림을 준다.
영화의 마지막, 안토니오는 순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길가에 세워둔 남의 자전거를 훔쳐 달아난다. 이 어설픈 도둑은 이내 잡히고, 온갖 수모를 겪은 안토니오는 실성한 사람처럼 흐느적거리며 걸어간다. 영웅과도 같던 아버지의 초라한 모습을 목도한 아이는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를 연신 얼굴에서 닦아낸다. 그런 아들을 내려다보며 참았던 한 줄기 눈물을 떨구는 안토니오. 아들은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그의 손을 잡는다. 그렇게 맞잡은 두 손을 희망이라고 보아도 좋을까? 그렇다고 믿고 싶다.
문화기획자 하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