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소시스트: 더 바티칸>

악마에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과연 거짓일까 진짜일까. 판타지나 오컬트 장르 영화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기이한 일들이 현실에서도 벌어질까. 물론 현실에서도 엑소시즘이라고 하는 악마 퇴치 의식은 존재한다. <엑소시스트: 더 바티칸>은 바티칸이 인정한 공식 구마 사제 '가브리엘 아모르트'라는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첫 번째 영화다. 물론 이전에도 엑소시즘을 행하는 사제가 등장하는 작품은 많았다. 대표적인 영화가 영화 역사에서 손꼽히는 명작 <엑소시스트>(1973)다. 하지만 이 영화도 윌리엄 피터 블래티라는 작가의 소설이 원작이었기 때문에 실존 인물의 이름이 공식적으로 등장하진 않았다.

어린 소년의 영혼을 지배하기 시작한 인류 역사상 최악의 악마를 퇴치해야 하는 사제가 바티칸이 숨겨온 비밀과 마주하게 되는 영화 <엑소시스트: 더 바티칸>은 지금까지 만들어진 수많은 엑소시즘 관련 영화들이 도전했으나 실패했던 것들, 결국 다루고자 했던 본질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이번에는 주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던 엑소시즘 영화들과 개봉 당시 다양한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문제작들에 대해서 소개한다.


실존했던 구마 사제 이야기,

<엑소시스트: 더 바티칸>은 어떤 영화?

<엑소시스트: 더 바티칸>

5월 10일 개봉한 <엑소시스트: 더 바티칸>은 가브리엘 아모르트 신부의 구마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영화의 기본 뼈대가 된 이야기는 그가 생전에 집필한 몇 권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할리우드를 비롯해 전 세계의 많은 영화 제작자들이 가브리엘 아모르트의 회고록을 영화화하기 위해 수년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고 한다. <엑소시스트: 더 바티칸>의 프로듀서 마이클 패트릭 카츠마렉은 “아모르트 신부의 회고록은 그가 악마를 퇴치했던 수백 가지 이야기와 일화, 그리고 실제 사례들이 담긴 보물창고와 같아서 영화화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했다. 우리는 이 작품을 ‘엑소시스트 계의 제임스 본드’라고 불렀다”고 말한다.

영화 촬영 전에 줄리어스 에이버리 감독과 제작진이 바티칸을 직접 방문해 가브리엘 아모르트 신부의 흔적을 되짚어 보면서 실존 인물인 가브리엘 아모르트 신부의 모습을 영화로 옮기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아모르트 신부를 연기한 러셀 크로우는 그에 대해서 “람브레타 스쿠터(<로마의 휴일>에 등장했던 베스파의 경쟁사 모델)를 타는 개성이 넘치는 신부님의 독특함, 정형화되지 않은 구석이 좋았다”고 출연 소감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엑소시스트: 더 바티칸>

현재 <엑소시스트: 더 바티칸>은 비평가로부터 여러 평가를 받고 있다. 엑소시즘을 행하는 가톨릭 사제를 연기한 러셀 크로우의 연기는 평론가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영화가 다루는 바티칸의 숨겨진 비밀, 그러니까 수 세기 동안 필사적으로 숨겨왔던 어떤 진실을 묘사한 부분은 논란이 되고 있다. 가브리엘 아모르트 신부 등이 주축이 되어 20세기부터 활동을 이어왔고 2014년에 바티칸으로부터 공식 인준을 받은 국제 엑소시스트 협회는 이 영화의 묘사가 “<다빈치 코드>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소지가 있다”라며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교회 입장에서는 영화가 다루는 내용이 불편했던 모양이다. 물론 영화는 어디까지나 영화일 뿐이다.


잔인한 장면 없이 엑소시즘 다룬 법정 드라마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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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

공포영화의 하위 장르로 분류되는 수많은 오컬트 영화에 거는 기대를 거스르는 방식의 영화다. 엑소시즘을 다루는 영화들에는 흔히 악마에 맞서는 구마 사제나 정의로운 주인공들이 벌이는 스펙터클한 퇴치 의식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엑소시즘이란 것도 결국은 믿음의 영역이며 그것을 상식적인 법체계의 관점에서는 어떻게 바라보고 다스려야 하는지를 질문하는 일종의 법정 드라마 형식을 띄고 있다. 그래서 개봉 당시에는 평가가 상당히 엇갈렸다. 관객을 소름 돋게 만드는 엑소시즘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하지만 이 영화의 뒷배경을 알고 나면 영화가 좀 더 궁금해질지 모르겠다. 독일의 안넬리제 미셸(1952-1976)이라는 실존했던 여성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사실에 가상의 이야기를 더한 일종의 팩션 영화다. 16살 무렵부터 발작 증세와 정신병 진단을 받았던 소녀 안넬리제가 약물 치료로도 호전되지 않자, 그녀의 부모는 종교적인 해법을 찾기에 이른다. 무려 67번의 엑소시즘 의식을 치르고 영양실조와 탈수 증세로 안넬리제가 사망하자, 독일 법원은 부모와 사제를 과실치사 혐의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 많은 학자들이 이 사건을 두고 정신질환을 잘못된 방식으로 다스린 사례라고 보기도 하는데, 그녀의 무덤은 (끝까지 악마에 맞서 싸웠다는 의미로) 지금까지도 수많은 순례자들이 찾는 곳이 되었다고 한다. 2013년에는 그녀가 살았던 집이 불에 타서 크게 보도가 되기도 했다. <엑소시스트: 더 바티칸>에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의식하고 있는 듯한 대사가 등장하기도 한다. 주인공 가브리엘 신부는 자신이 접했던 수많은 엑소시즘 사례가 실은 정신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었다는 투로 말을 한다.


샤머니즘, 오컬트, 그리고 미드센추리의 만남

<엑소시스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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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소시스트2>

여전히 오컬트 영화 중 최고라고 평가받는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의 1973년작 <엑소시스트>는 꽤 많은 시리즈를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아류작이 많아서 공식적인 시리즈인지 아닌지를 잘 따져봐야 한다. <엑소시스트2> 역시 전편의 원작자인 윌리엄 피터 블래티의 소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다. 그렇다고 공식적인 속편이 아니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엑소시스트>에서 이야기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으며 심지어 전편에서 리건을 연기해 호러의 아이콘으로 등극한 린다 블레어가 그 역할 그대로 등장한다. 원작자의 터치가 아니라 윌리엄 프리드킨의 뒤를 이어 새롭게 연출을 맡은 존 부어맨 감독의 재해석이 들어간 일종의 외전 같은 영화라고 보시면 되겠다.

지금도 이 영화에 대한 인터넷 반응은 혹평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관점을 달리 하면 나름의 미덕을 찾아볼 수 있다. 솔직히 선과 악의 대결 구도라는 측면에서 엑소시즘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재미라는 건 전형적일 수밖에 없다. 방에 갇혀 악마에 빙의되어 괴로워하는 환자와 사제 간의 고독한 싸움을 아무리 스펙터클하게 보여준다 한들, 보여줄 수 있는 이미지의 한계라는 게 존재하니까. 그런데 <엑소시스트>는 각종 특수촬영을 동원해 그 한계를 극복하려 했던 것이다. 존 부어맨 감독은 방구석(?) 엑소시즘을 좀 더 확장해서 선악 사이의 경계를 사이키델릭한 미지의 어떤 것으로 표현함과 동시에 아프리카 샤머니즘과 가톨릭의 세계를 연결 짓고 만악의 근원을 파헤치려 하는 시도를 한다. 1970년대 뉴욕의 근사한 도시 풍경과 당시 미술, 의상 디자인 등을 덤으로 즐길 수 있다. 이색적인 방향을 띈 오컬트 영화를 보고 싶다면 한 번은 추천한다.


최악의 오컬트 파운드 푸티지

<데블 인사이드>(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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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블 인사이드>

<데블 인사이드>

대체 영화가 얼마나 재미없으면 최악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수 있는지 호기심이 발동해 찾아보게 만드는 영화다. 공포 영화 역사에서 파운드 푸티지라는 하위 장르는 <블레어 위치>라는 영화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후 수많은 공포 영화에서 이러한 형식을 차용해서 만들었는데 <데블 인사이드>는 엑소시즘을 다룬 오컬트 영화와 파운드 푸티지의 잘못된 만남에서 비롯된 영화인 셈이다. 이 영화는 네이버 검색에선 ‘데빌 인사이드’라고 해야 해당 정보를 찾을 수 있고, 티빙에선 ‘데블 인사이드’로 검색해야 찾을 수 있으니 유의하자.

주인공 이사벨라 로시는 자신의 엄마가 과거에 악마에 빙의 된 경험이 있었고, 실은 엑소시즘을 행하던 현장에서 사람도 죽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후에 엑소시즘과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게 되면서 오랫동안 정신질환 정도로 알려져 있던 병세의 비밀이 밝혀지게 된다. 영화 전체가 하나의 다큐멘터리 형태를 띄는 모큐멘터리이면서 영화 곳곳에 실제 촬영본을 연상시키는 파운드 푸티지 장르 특유의 카메라워크가 인상적이다. 사실 혁신적인 특이점 외에 오컬트 영화로서의 매력은 굉장히 떨어진다.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대사나 묘사되는 장면 역시 인간의 믿음에 관한 질문들로 이뤄져 있다.


김현수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