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린터> 포스터. 사진 제공=영화사 만화경

한때 대한민국에서 가장 빠른 100미터 선수였던 30대 현수(박성일).

아직 고등학생이지만 점점 기록이 오르고 있는 단거리 선수 10대 준서(임지호).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빠른 단거리 선수 20대 정호(송덕호).

국가대표 선발전을 앞두고 세 선수는 각자의 이유로 레인에 선다.

그래도, 계속 달려야 하니까. 제자리에. 차렷. GO!

<수색역>(2016)의 최승연 감독이 7년 만에 돌아왔다. 잃을 것 없는 청춘들의 아픔을 욕설과 폭력으로 풀어냈던 최 감독은 5월 24일 개봉을 앞둔 영화 <스프린터>에서 같은 감독이 맞나 싶을 정도의 변화를 보여준다.

<스프린터>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다시피 육상을 소재로 한 영화다. 은퇴만 남은 신기록 보유자 현수, 최고의 자리를 잃을까 두려운 정호, 유망주였지만 팀 해체 위기에 놓인 준서가 각기 다른 이유로 달린다. 그리고 그들 옆에는 조력자들이 있다.

제47회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고, 제10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에서 감독상과 배우상을 수상했다. 흔히들 ‘인생은 마라톤’이라고 하지만, <스프린터>의 주인공들은 단거리 육상 선수다. 영화는 ‘인생은 단거리 육상’이라고 반론을 펼치지 않는다. 오히려 육상은 소재의 하나일 뿐, 이 세 명의 단거리 선수들의 모습에서 우리네 일상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 일상과 아주 가까운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작은 규모의 영화지만 스포츠라는 장르적 재미가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이 영화를 보고 많은 이야기가 나왔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최승연 감독을 만나 <스프린터> 이야기를 들어봤다.


<스프린터> 최승연 감독. 사진 제공=영화사 만화경

두 번째 영화 개봉입니다. 지금 기분이 어떠세요?

정말 열심히 준비는 했지만, 독립영화도 스코어에 대한 부담이 있거든요. 데뷔작으로 개봉을 한 번 해봤으니, 어찌 되었든 한 번 열심히 해보자는 마음으로 열심히 홍보하고 있습니다.

데뷔작이 강렬했어요. 서울 가난한 변두리에서 평범했던 우정이 허우적대며 파국으로 치닫는 청춘들을 조명한 <수색역>(2016)이죠. 두 번째 작품인 <스프린터>까지 텀이 좀 있는데, 어떻게 보내셨나요?

<수색역> 이후에 큰 영화를 준비했어요. 제작사에서 시나리오와 함께 제안을 한 거죠. 그런데 이 작품이 결국 엎어진 겁니다. 아마 2016년부터 2019년 사이였던 거 같네요. 그때 제가 영화 안 해야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어요. 저는 대학 때도, 영화아카데미 때도 계속해서 영화를 공부했잖아요. 주변에도 영화하는 친구들이 많았고요. 한 번도 영화를 안 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사실 대학에서도 그만둔 친구들을 봤고, 졸업작품 찍고 관두거나, 연출부 하다가 관두기도 한 친구들은 정말 많이 봤죠. 그런 상황을 보면서 저랑은 먼 이야기라 생각했거든요. 늘 영화 잘 만든다는 이야길 많이 들었으니까요. 물론 내부에서였지만요.

그러다 영화판에서 크게 데이신 거네요.

학교 내부랑 여기 영화판이 정말 세계가 다르다는 걸 큰 영화를 준비하면서 조금 알게 된 거 같아요. 그러고 자연스럽게 <스프린터> 시나리오를 쓴 거죠. 영화진흥위원회나 서울영상위원회, 경기영상위원회에서 제작 지원을 받게 되면서 2019년, 2020년이 흘렀죠.

<스프린터> 스틸컷. 사진 제공=영화사 만화경

어떤 마음으로 영화 <스프린터>를 만드신 건가요?

육상에 대한 영화예요.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면 ‘육상영화가 아니구나’ 하는 느낌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상업영화와 다른 데이트용 영화라고 할까요? 진지하지 않게 볼 수 있는 상업영화가 있잖아요. 평점이 굳이 높지 않아도 여자친구랑 엄마, 아빠랑 팝콘 먹으며 보는 것들요. 그와 다른 독립영화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관객들에게 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무겁지 않고 가볍게 청계천 갔다가 광화문 카페 갔다가 영화 보고 집에 갈 수 있는 정도의 영화로 받아들여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죠.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다시피 달리기 영화입니다. 아이디어는 어디서 찾으셨나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영화를 관두려고 했던 시기라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스프린터>는 무언가를 하기 위한 과정들, 디테일들을 담은 영화라고 보면 될 거 같은데요. 현수(박성일)가 새벽에 일어나서 발판을 놓고 준비하는 과정이 5분 정도 나오잖아요. 처음에는 그 장면을 클로즈업으로 다가가서 되게 진지하게 보여주는 영화였는데요, 사실 영화가 어떻게 될지, 장편으로 갈 수 있을지 계획도 없었으니 그냥 그렇게 쓰기만 한 거죠. ‘어떤 과정을 꾸준하게 하는 사람을 짧게 담는다!’라는 생각으로요. 그런데 현수 부분을 쓰다 보니까, 육상에 대한 것들이 자연스럽게 더해졌고요, 거기에 현수의 과거를 생각하면서 준서나 정호가 떠올랐죠. 그리고 그들을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들이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거예요.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나온 시나리오가 아니라, 글 쓰면서 계속 붙어나간 거죠. 시나리오 초고까지는 한 달만에 빠르게 썼죠.

촬영은 몇 회차로 하신 거예요?

15회차 정도로 끝낸 거 같아요. 한 35~40일 정도 걸린 거 같네요. 경기장 장면은 예천에서 7박 8일로 찍었고, 나머진 전부 서울에서 했어요. 경기도 2회차가 있긴 하네요.

<스프린터> 스틸컷. 사진 제공=영화사 만화경

실제 운동을 좋아하세요? 시나리오를 쓸 때 떠올렸던 인물이 있을 거 같아요.

보통 또래 남자들 좋아하는 수준으로 야구나 축구 좋아하는 편입니다. 제가 이종범 선수를 좋아해요. 이종범 선수의 은퇴를 염두에 두면서 <스프린터> 시나리오 작업을 했던 거 같습니다. 사실 운동선수는 최고의 수준에서 은퇴를 하잖아요. 이승엽 선수도, 선동렬 선수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이종범 선수는 억지로 은퇴했어요. 본인이 은퇴하기도 싫었는데, 구단이 은퇴를 시킨 거죠. 당시 감독이 선동렬이었는데, 개막하고 이종범 선수를 2군으로 보냈어요. 이종범 선수가 은퇴식에서 처음 눈물을 보이더라고요. 구단 레전드로서 대우를 못 받는 상황을 <스프린터> 시나리오 작업하면서 조금 떠올려봤어요.

영화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 볼게요. 영화는 세 명의 인물을 다룹니다. 30대의 현수(박성일)는 한때 한국 신기록을 두 번이나 갈아치웠지만, 지금은 소속도 없이 홀로 훈련을 이어가고 있으며, 고교 최고 기록을 세운 뒤 제자리걸음 중인 10대의 준서(임지호)는 육상부 해체에 직면해 마지막 기회를 잡으려 안간힘을 쓰고, 20대의 정호(송덕호)는 기록에 대한 압박감으로 약물에 손을 댑니다. 3명의 인물 모두 매력적인 캐릭터예요. 그런데 육상 경기 레인에는 8명이 서 있어요. 다들 이야기가 있을 법한데, 이렇게 세 명의 캐릭터를 설정한 이유, 거기에 집중한 이유가 궁금해요.

사실 여덟 명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했고요(웃음). 딱 세 명만 생각했어요. 한 명은 1등, 한 명은 순위권에 간당간당한 사람, 마지막 한 명은 순위권에서 떨어진 사람이죠. 사실 이 세 명의 이야기가 여덟 명을 포괄적으로 다 보여준다고 봤습니다. 이야기는 육상이지만 일상과 가깝게 하고 싶었기에 세 명 이야기로도 다 포함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던 거죠. 그 세 명을 대학 졸업생으로 치환시켜 보면, 1등은 지금 막 취업을 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요, 학생으로 치면 가고 싶었던 대학에 막 들어간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거죠. 또 다른 인물들을 보면 회사에서는 막 은퇴해야 하는 사람, 취업을 하려는데 안 되는 사람일 수도 있는 거고요. 그렇게 세 명으로 분류하고 싶었던 거 같아요.

<스프린터> 스틸컷. 사진 제공=영화사 만화경

세 캐릭터의 이야기가 모자이크처럼 겹치지 않으면서도 매끄럽게 연결돼요. 어떻게 씬 구성을 하려고 노력하셨는지 궁금해요.

사실 <수색역> 이후 되게 거친 시나리오 의뢰가 많이 들어왔어요. 첫 영화 아니면 다시는 이렇게 찍지 못할 거란 생각으로 쓴 시나리오기도 했지만요. 그래서 ‘아, 이 감독이 다른 영화도 찍을 수 있구나’ 하는 걸 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스프린터>인 거죠.

세 캐릭터의 쿼터가 나뉘어있는데, 초반에는 완전히 다른 영화로 보여주고 싶었던 거 같아요. 특히 현수 장면은 유튜브에 익숙한 관객이 보면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컷이 좀 길어요. 달리기 장면도 길게 보여주고, 미디엄샷인데도 일반 컷보다 2~3초 이상 길어요. 그런데 준서 파트로 넘어가면 일반 시간대로 바뀝니다. 현수를 만약 일반적인 시간대로 갔다면, 준서 부분에서 집중도가 떨어졌을 거예요.

또 색깔로도 구분을 좀 주려고 했어요. 현수는 초반에 좀 우중충한 색깔의 옷을 입잖아요. 준서는 파랑, 노랑 이런 밝은색을 입고요. 정호는 명암 대비가 좀 뚜렷한 편이죠. 위에서 찍거나 가까이 가서 찍으면서 좀 스타일리시하게 나오게 컷도 구성했죠. 코치도 수염을 기른다거나, 정호 머리도 스포츠머리로 해서 현대 장르극 같은 느낌이 나게 했어요.

<스프린터> 스틸컷. 사진 제공=영화사 만화경

세 명의 캐릭터가 그냥 다르기만 하다고 생각했는데, 감독님께서 치밀하게 짠 부분이었군요!

일반 관객들이 볼 때 다 같은 육상 선수라 비슷한데 뭔가 다르다는 느낌, 차이를 두려고 한 거죠. 세 캐릭터가 비슷한데 왜 이 컷은 스피디하게 넘어가지? 이런 차이를 주려고 한 겁니다. 현수 부인인 지현이도 헬스장에서 일할 때 초반에는 우중충한 분홍색, 처진 초록색 옷을 입고 운동도 단조로운 것들만 해요. 그런데 후반부로 가면서 의상이 밝아지죠. 준서는 그대로 유지되고, 정호는 스타일리시했던 머리를 벗어던지고 스포츠머리 스타일로, 그런 변화들을 주면서 차이를 두려고 했어요. 촬영감독, 조감독과 정말 논의를 많이 했습니다.

영화가 챕터로 구분되는 것도 그런 구성을 염두에 둔 것이었네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제가 타란티노 감독을 정말 좋아하는데요. 타란티노 감독이 영화에서 챕터를 나누는 방식을 많이 써요. 저도 그래서 3명 캐릭터의 챕터를 다 쓰고 마지막 챕터 제목을 ‘스프린터’로 했습니다.

제목은 처음부터 <스프린터>였나요?

네. 처음부터요. 바꿀 생각도 없었어요.

<스프린터> 스틸컷. 사진 제공=영화사 만화경

대사들이 너무 팍팍 꽂힙니다. “육상해서 뭐하냐”, “나도 전국 1등도 해보고 금메달도 따보고 국가대표도 돼 봤어. 근데 다 우울하게 끝나”, “유망주 소리도 들어봤지만 결국 정규직 자리 하나 하려고 이러고 있다고. 끝에는 다 울면서 끝난다고 결국에는.” 이런 대사들은 어떻게 쓰신 건가요?

대사를 쓸 때 뭐 이렇게 막 대단한 고민을 하고 쓰는 건 아니에요(웃음). 그냥 가는 대로 쓰는데요. 우리가 이런 말들을 일상에서 매일 하는 건 아니겠지만, 이런 유의 이야기들은 많이 하면서 사는 거 같다는 생각이에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거의 모든 대사들이 그렇게 나온 거죠. 대신에 그런 건 있죠. 하나 꽂히는 대사는 있어야겠다는 생각? “나도 전국 1등이든 뭐든 다 해봤어”라든가 “아, 내가 예전에 다 여기 씹어먹었었는데”, “니 인생이 달렸어. 10초 안에”, “마지막으로 한번 해볼게”. “저 이거 아니면 할 게 없어요” 이런 대사들은 고민한 거 같아요. 시나리오에 다 있었고, 배우에 맞게 딱 떨어지게 하기 위해서 리딩할 때나 촬영 현장에서 계속해서 시도했어요. 현장에서도 계속 생각하고 있다가, 배우에게 그 대사 말고 이렇게 바꿔달라고 디렉션을 주기도 했어요. 편집 과정에서 뭘 쓸지 모르니까요.

다른 대사도 꽂히지만, “니 인생이 달렸어. 10초 안에”라는 대사가 정말 서늘하게 와닿더라고요. 아무것도 모르는 초등학생 시절에 올림픽 보던 기억을 소환할 정도였어요. 저는 그때도 100m 달리기 종목이 가장 잔인하단 생각이 들었거든요. 4년 동안의 훈련 결과가 10초 안에 다 결정되니까요. 이 부분에 다른 스포츠 대신 육상 단거리 종목을 소재로 삼은 이유일까요?

아까 말씀드린 부분과 좀 비슷한데요, 한 가지 이유로 육상을 선택한 건 아니에요. 그 당시 당장 찍을 수 있는 여건이 육상이었던 것도 있죠. 만약 제가 당시 100억짜리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여건이었다면, 그 규모에 맞는 스포츠 영화를 찍지 않았을까요? 좀 큰 그림을 그리면서요(웃음). 하지만 영화를 준비하지 않는 기간이 길어지면 다음 영화를 찍기가 점점 어려워질 텐데, 그러면 이 시기에 어떤 영화를 찍어야 할까 하는 생각하면서 욕도 좀 안 나오고, 거칠지 않게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 거죠.

한 가지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첫 번째였던 거 같아요. 아마 모든 감독, 작가가 다 비슷할 거 같아요. “다음 영화 뭐 준비하세요”라는 질문에 “전 SF로 할리우드 갈 겁니다”라고 하면 정말 허황된 거잖아요. 당시 여건 안에서 제가 소화할 수 있는 영화를 찾은 겁니다. 인물도 적게 나오고, 규모는 몇 억원 이하. 그리고 올해, 내년 안에 무조건 찍을 수 있는 영화! 시나리오를 보면 재밌다고 할 수 있는 영화를 고민하다가 육상이라는 소재가 들어온 거죠. 이런 이야기를 관객이 들으면 뭔가 대단한 의미가 있는 거 같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정말 아니에요. 여건과 환경이 99%를 좌우한다고 봐요. 그다음에 아이템을 찾는 과정이 점점 좁혀지는 것 같습니다.

<스프린터> 스틸컷. 사진 제공=영화사 만화경

세 명의 선수가 모두 안쓰럽습니다. 현수 부인 지현(공민정)이 말하죠 “우리는 나이 들고, 시간은 흐른다”라고요. 종서에게 진 선수도 말해요 “시간은 흐르는데, 내 기록은 안 나아지는데, 점점 더 잘하는 후배들이 계속 생겨난다”라고요. 우리가 흔히 시간은 노력을 배신하지 않는다고 믿는데, 영화에서는 꿈을 접게 만드는 것이 시간이기도 합니다. 감독님은 꿈을 접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잘 모르겠어요. 뭔가 하나가 특출나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가끔 보면 그런 거 같아요. 제가 중학생 때 농구부가 있었어요. 키가 큰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농구부에 들어갔어요. 이상하게 특출난 부분이었으니까요. 저는 연극영화과를 나왔는데, 딱 봐도 잘 생긴 친구들이 있었어요. 연기는 잘 못하는데 말이죠. 어릴 때부터 워낙 잘 생겼으니, ‘넌 커서 배우 해야겠다’라는 소리를 계속 들은 거겠죠. 일상 대화의 90% 이상이 얼굴 이야기였대요. 뭐 하나 특출한 게 있다는 거죠. 이런 특출난 분야는 누군가가 발견을 해야 하는 거잖아요. 달리기도 마찬가지고요. 달려보니까 내가 남들보다 빠른 겁니다. 그래서 달려야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는 거고요. 어떤 한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은 그런 거 같아요. 내가 잘하는 걸 할 수밖에 없고, 포기하기도 싫은 거죠.

그럼 포기하게 만드는 건 사회 구조적인 문제라고 보시나요?

아니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거 같아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요. 내가 유명하든, 영화감독이든, 누구나 자연스럽게 겪는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이라서 관둔다? 라고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달리기는 몸이 중요하니까 남보다 잘 달리고 어린 친구들이 나오는 건 당연한 거잖아요.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의 차이라고 봐요. 포기하게 되는 이유는 누구나 같아요. 축구선수 손흥민이나 박지성이라고 언제까지 경기장 안에 있을 수는 없는 거잖아요. 아무리 머리가 똑똑한 사람도 언젠간 굳어가겠죠. 이 자연스러운 걸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인 겁니다.

몸이 쳐지는 걸 알고는 선수처럼 더 부단한 노력을 하면서 받아들이는 현수 같은 사람도 있고요, 정호처럼 못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겠죠. 준서처럼 어떻게든 발전하려는 사람도 있겠고요.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의 차이라고 봅니다. 달리기라서 포기하는 건 아니고요.

<스프린터> 스틸컷. 사진 제공=영화사 만화경

결국 무소속 선수인 현수는 부인의 도움을 받고요. 준서는 정규직 되려고 자길 버리려 했던 코치의 도움을 받습니다. 정호는 좀 다르긴 한데, 코치랑 거래를 하면서 여하튼 도움을 받아요. 꿈을 향해 나아가는 데는 연대가 필요하다는 메시지일까요?

시나리오 설정이랑 좀 비슷한데요. 현수는 지금까지 잘 해왔기에 아무도 안 도와줘도 잘해왔다는 설정이었고요, 준서를 가르치는 코치가 사실 영화에서 가장 사회적인 인물로 다루고 싶었죠. 평생직장이라는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은 대기업 아무리 다녀도 공무원이 아닌 이상 40대 후반, 50대 초반이면 퇴사해야 하잖아요. 관두고 다른 걸 하고 또 관두고 다른 걸 시도하는 건데, 준서의 코치에게서 그런 부분을 좀 보여주려고 했어요. 영화를 보는 관객과 가장 비슷한 사람이라고 할까요? 영화를 보고 나면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쉽게 이입할 수 있는 캐릭터로 만들려고 노력했죠. 반면에 정호의 코치는 좀 다르죠. 제자가 1등을 하기에 그 옆에서 어두운 부분을 감춰주고, 이득을 챙겨 먹는 걸로 설정한 거죠. 사실 이 세 명을 통틀어 조력자라고 표현할 수는 있겠지만 각각의 조력 성격이 다른 거죠.

결국 <스프린터>를 통해서 관객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요즘 독립영화나 저예산영화의 90% 이상은 뭔가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는 거 같아요. 유튜브나 숏폼도 그렇고요. 사실 그런 거 보면 받아갈 게 있긴 하죠. 저도 영화를 공부한 사람으로 영화에 메시지가 있으면 좋다는 걸 알죠. 유명한 감독들 많잖아요? 그런데 전 그런 경지에 도달한 것도 아니고, 굳이 메시지가 없어도 된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스프린터>가 그렇습니다. 일상과 닮아 있고, 마음을 내려놓고 편하게 볼 수 있거든요. 친구와 애인과, 가족과 영화를 함께 보고 나서도 이야기가 되는 영화에요. ‘나는 저거 이렇게 생각해’, ‘나는 저렇게 생각해’라고 말하면서요. 특별하게 던지는 메시지라면 그냥 우리 일상과 비슷한 영화라는 점입니다. 두 시간 동안 전혀 지루하지 않고 재밌고요. 이번에는 현수 입장에서, 다음에는 지현이 입장에서 볼 수도 있어요.

<스프린터> 스틸컷. 사진 제공=영화사 만화경

바야흐로 운동 영화 붐입니다. 감동 코드로 가는 <리바운드>(감독 장항준, 2023)도 있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드림>(감독 이병헌, 2023)도 있어요. <스프린터>는 어떤 차별점이 있나요?

<스프린터>는 감동 코드라기보다는 공감이 많이 가는 영화죠. 현수가 탈락했다고, 준서가 노력했다고 감동하는 건 아니고요. 물론 이야기에 감동할 사람도 있겠지만,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서요. 감동이 아니라 일상에 포커스를 맞췄기에 그냥 공감대 형성이 쉬운 영화, 그러니까 혼자 보는 것보다 둘이나 셋이서 보면 더 이야기할 거리가 많은 영화라고 생각해요. 스타일리시하거나 죽이거나 하는 영화는 혼자 봐도 되는데 이 영화는 여럿이 봐야 좋아요. 4인 가족이 봐도 되고요(웃음).

개봉 시기가 묘하게 겹치는데, 혹시 의도하신 건가요?(웃음)

전혀 아니죠.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100억짜리 영화들인데 저예산 영화가 같이 엮인 거니까 호재죠(웃음). 오히려 기분 좋습니다. 영화 시장이 지금 안 좋기 때문에 다들 영화들이 묶이는 게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 같아요.

<스프린터>가 대박 나면 차기작 준비가 좀 더 빨라지겠죠?

그렇죠. 그런데 정말 모르는 일이에요. 영화 끝나고 나면 다들 다음 영화 빨리 들어갈 거라는 느낌을 받는데요, 실제로 3년에 하나 찍으면 정말 빠른 편이에요. 봉준호나 박찬욱 감독도 마찬가지거든요. 신인 감독이 3~4년이면 엄청 빠른 겁니다. 그 사이에 영화 한 편이 엎어지면 5~6년이 훌쩍 지나거든요.

<스프린터> 스틸컷. 사진 제공=영화사 만화경

감독님 이야기를 조금 여쭤볼게요. 영화감독의 꿈은 언제부터 가지신 건가요?

사실 이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는데, 없어요. 정말. 고등학생 때 생활기록부 장래희망에는 카피라이터라고 썼어요. 지금이야 역할별로 더 세분화되어 있겠죠? 그래서 중앙대 광고홍보학과를 가고 싶었어요. 무슨 광고인지는 모르지만요. 아버지께서 KBS 라디오 엔지니어셨어요. 방송국을 자연스럽게 드나들었죠. 아버지 덕분에 반 친구들이랑 방송국 견학도 하긴 했네요. 막연히 영상 관련 일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광고홍보학과 대신 연극영화과로 진학하셨어요.

제가 입학할 때 영화과랑 연극과가 각각 30명씩이었어요. 영화과는 100% 수능이었고요. 연극과는 절반은 수능, 절반은 연기로 뽑았죠. 연기하는 신입생 중에 한 열 명 정도가 100:1의 경쟁을 뚫고 온 학생들이에요. 연예인도 아닌데, 고등학생 때부터 연기학원을 다니면서 갈고닦은 거예요. 저는 물론 영화과로 들어왔고요.

대학에서 본격적으로 영화를 공부한 거네요. 영향받은 감독이 있다면요?

정말 많죠. 가장 좋아하는 감독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입니다. 딱 영화의 정석을 찍는 거 같아요. 뭔가 과하지도 않고 딱 정확한 스타일이라고 할까요? 마틴 스콜세지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같은 자체 브랜드라기보다, 딱 강의용이라고 할까요? 영화는 이렇게 찍어야 한다는, 마치 교과서적인 느낌이죠. 물론 스콜세지 감독과 타란티노 감독은 감상용으로 정말 좋아하는 감독들입니다. 감상용 영화는 최대한 스타일리시한 걸로 보는 거죠. 스콜세지, 타란티노, 봉준호, 류승완 감독 정도죠. 시나리오를 쓰거나 창작을 할 때는 이스트우드 감독이나 한국 감독으로는 이준익 감독 영화를 보는 편이에요. 굉장히 정석으로 찍은 느낌이라서요.

<스프린터> 스틸컷. 사진 제공=영화사 만화경

차기작은 뭐로 준비 중이세요?

드라마를 2020년부터 준비하고 있어요. 편성이 되거나 캐스팅이 완료되면 들어가는 거라 영화랑 같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경찰 이야기라는 정도까지만 말씀드릴 수 있을 거 같아요. 영화는 개인적으로 준비하는 거고요. 드라마는 제작사랑 계약된 걸로 준비 중입니다.

앞으로 꼭 찍어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어떤 영화일까요?

사실 아주 어렸을 때는 많이 생각해봤던 주제에요. 나 이런 걸 꼭 찍어야지 하면서요. 그런데 지금 저에게 있어서 꼭 찍어야 하는 영화라면, 아마 다음 영화겠죠(웃음). 저는 다음 작품이 망하면 안 되는 사람이기 때문인데요, 유명한 감독님들은 망해도 상관없지만요(웃음). 준비하고 있는 드라마가 잘 된다면, A급 배우가 제 영화 시나리오를 읽고 “어, <수색역>이랑 <스프린터> 감독님이 연출한다고? 해볼래”라며 올 수 있게 만드는 거죠. 요즘 극장 상황이 너무 안 좋은데요, 정말 좀 많이들 극장에 와서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스프린터>를 볼 관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실 독립영화들은 GV를 많이 합니다. 홍보 수단이니까요. 그런데 <스프린터>는 GV를 최대한 줄였어요. 왜냐면 관객들이 보면 바로 이해가 되는 영화잖아요. 어려운 장면도 없고, 보면 머릿속으로 이해하고 소화하기 쉬운 영화라서요. GV 대신에 무료예매권 이벤트를 많이 하려고 해요. 그러니까 꼭 극장에 와서 봐주세요!


윤상민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