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인간을 닮는 걸까, 인간이 AI를 닮아가는 걸까. AI가 창작한 작품은 오리지널리티가 있다고 봐야 할까, 없다고 봐야 할까.

할리우드에서 지난 2일부터 이어진 미국작가조합(Writers Guild of America, WGA) 파업은 AI의 발전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작가조합은 "대본 작성 시 AI의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라고 말하며 파업에 나섰다. 이 여파로 할리우드 작품 다수가 제작이 중단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AI가 각본, 그리고 심지어는 영상까지 감쪽같이 만들어내는 시대다. 도무지 AI가 창작해낸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높은 수준의 작품도 다수 존재한다.

조금 가벼운 얘기로 돌아와보자. 요즘, AI 툴을 이용해 만들어낸 영상들이 유튜브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발렌시아가 스타일을 압은 해리포터라던가, 구찌를 입은 마블 히어로라던가.

(왼쪽) 유튜브 demonflyingfox ‘Harry Potter by Balenciaga’ 캡처, (오른쪽) 유튜브 Interdimensional TV ‘Marvel by Gucci’ 캡처

미드저니(Midjourney)라는 AI 이미지 생성 툴은 그중 패러디 영상 제작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소프트웨어다. 원하는 이미지 스타일을 묘사한 텍스트를 입력하면, 미드저니는 내용에 맞추어 이미지를 제작해 준다. 지난 2022년, 한 미술대회에서 미드저니가 그린 그림이 1등을 수상하며 논란을 빚기도 했다.

그럼에도, 미드저니는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놀잇감이다. 미드저니에 감독의 스타일을 구구절절 입력하지 않아도, 감독 이름 하나만 입력하면 미드저니는 그 감독의 스타일을 소름 돋게 모방하기 때문. 이 포스팅에서 미드저니 등의 툴을 사용해 영화감독의 고유한 스타일을 따라 만든 팬메이드 이미지들을 구경해 보자.


“웨스 앤더슨이

<어벤져스>, <스파이더맨>, <터미네이터> 등을 만든다면?”

유난히도 웨스 앤더슨은 그의 영화 스타일을 따라한 팬메이드 영상이 많은 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영화 한 장면 한 장면은 지문 수준으로 웨스 앤더슨의 작품임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완벽한 대칭 구도, 동화 같은 색채, 무표정한 캐릭터들의 얼굴, 정적인 카메라 워킹, 고전적인 배경 설정 등.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과 <문라이즈 킹덤> 등의 작품을 한 번이라도 접해봤다면, 웨스 앤더슨의 스타일을 단박에 이해할 수 있을 것.

미국의 코미디 쇼 SNL(Saturday Night Live)에서는 2019년, ‘웨스 앤더슨 호러 무비 트레일러’(Wes Anderson Horror Trailer)라는 패러디 영상을 공개해 많은 화제를 낳았다.

유튜브 Saturday Night Live 'Wes Anderson Horror Trailer - SNL' 캡처

바야흐로 2023년, 이제는 AI로도 웨스 앤더슨을 모방 가능한 시대다. 많은 크리에이터들은 그의 스타일을 본떠 ‘상플’(상상플레이의 준말로,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행위를 일컫는 신조어)을 비주얼로 구현하기 시작했다.

웨스 앤더슨의 작품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배우는 단연 오웬 윌슨, 애드리언 브로디, 틸다 스윈튼이다. 그 때문에, 웨스 앤더슨의 영화를 모방한 패러디 작품에는 이 배우들이 빠지지 않고 등장해 웃음을 자아낸다. 웨스 앤더슨의 스타일을 입힌 <스파이더맨>, <어벤져스>, <터미네이터>를 감상해 보자.

스파이더맨

유튜브 Geoffrey Humbert ‘Spider-Man by Wes Anderson Trailer (100% AI)’ 캡처

어벤져스

유튜브 Synthetic Screen ‘Avengers by Wes Anderson Trailer’ 캡처

터미네이터

유튜브 Yellow Medusa ‘Terminator by Wes Anderson’ 캡처


“픽사가 <해리 포터>, <조커>를 만든다면?”

누구나 가슴속에 픽사 애니메이션 한 편쯤은 품고 있다. <토이 스토리>, <몬스터 주식회사>, <인크레더블>, <니모를 찾아서>, <라따뚜이> 등에 이르기까지. 거를 타선이 하나 없다. 그렇다고 픽사가 비단 추억의 영화만을 제작한 건 아니다. 2010년대에도 <인사이드 아웃>, <코코> 등의 작품을 내놓으며 여전히 세계 최고의 애니메이션 제작사로 평가받고 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픽사의 애니메이션이 주는 울림은 동일하다. 아이에게는 꿈과 희망을, 어른에게는 동심을 선사하며 픽사의 애니메이션은 대체 불가능한 입지에 이르렀다. 픽사 스타일로 재탄생한 <해리 포터>, <조커>를 감상해 보자.

해리포터

유튜브 CactAI 'Harry Potter As PIXAR Characters - Midjourney AI Art'

조커

유튜브 Yellow Medusa ‘Joker but it's a Pixar Film’ 캡처


“지브리가 <해리 포터>, <반지의 제왕>을 만든다면?”

미국에 픽사와 디즈니가 있다면, 일본에는 지브리가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대표하는 스튜디오 지브리. 스튜디오 지브리는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설립한 회사다. <이웃집 토토로>(1988),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 등은 지브리의 대표작이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은 서정적이면서도 섬세한 그림체와 서사를 자랑한다. 왠지 히사이시 조의 음악이 BGM으로 깔릴 것만 같은 지브리 스타일의 <해리 포터>, <반지의 제왕> 이미지들을 모아봤다.

해리포터

유튜브 Yellow Medusa 'Harry Potter as a Hayao Miyazaki anime film’ 캡처

반지의 제왕

유튜브 Midgard Guardian ‘Lord of the Rings Movie by Ghibli Studio Trailer’ 캡처


“팀 버튼이 마블 영화를 만든다면?”

기이하고 오싹한, 그러나 환상적인 세계를 영화에 담는 팀 버튼 감독. 고딕풍의 동화, B급 공포영화를 연상시키는 팀 버튼의 색깔은 확고하다. 2010년대부터 부침을 겪는 듯했으나 최근 여전한 연출력을 뽐낸 넷플릭스 시리즈 <웬즈데이>가 큰 인기를 얻으며, 다시금 그의 필모그래피를 복습하는 팬들이 늘어나고 있다.

팀 버튼은 <배트맨>(1989), <가위손>(1990), <크리스마스의 악몽>(1993) 등 어두운 색채가 지배적인 작품은 물론, <빅 피쉬>(2003),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5) 등의 작품으로 알록달록한 색채를 기반으로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기상천외한 나라를 구축해왔다.

배우 조니 뎁은 단연 팀 버튼의 페르소나로 꼽힌다. 한때 팀 버튼의 연인이기도 했던 헬레나 본햄 카터 역시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팀 버튼의 스타일을 패러디한 팬메이드 영상에서는 이 두 배우가 자주 등장해 실소를 터트리게 한다. 팀 버튼의 스타일로 만든 <어벤져스>, <로키>도 예외는 아니다.

어벤져스

유튜브 Lucas x Hayley 'The Avengers: Shadow of Destiny - Directed by Tim Burton | Unofficial Teaser Trailer' 캡처

로키

출처: 미드저니 디스코드 채널


“쿠엔틴 타란티노가

<호빗: 뜻밖의 여정>, <나 홀로 집에>를 만든다면?”

그가 연출한 작품으로 그의 소개를 대신하자면, <펄프 픽션>, <킬 빌>,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장고: 분노의 추적자> 정도를 읊으면 될까. 쿠엔틴 타란티노의 작품 세계는 ‘펄프적 감성’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는다. 싸구려 단편 소설을 뜻하는 펄프 픽션(pulp fiction)처럼, 그의 영화에는 B급 정서가 진하게 배어 있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B급 정서를 세련되게 구현해 내는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B급의 탈을 쓴 S급 작품”이라는 말이 그의 작품을 설명하는 적당한 표현이다. 타란티노의 작품들은 범죄와 폭력이 서사의 중심이 되며, 그는 범죄와 폭력을 의도적으로 과잉되게 묘사한다. 팬들이 만든 <호빗: 뜻밖의 여정>과 <나 홀로 집에> 역시 타란티노 스타일의 핵심이 녹아있어 웃음을 자아낸다.

호빗: 뜻밖의 여정

유튜브 Yellow Medusa 'The Hobbit as a Quentin Tarantino Film' 캡처

나 홀로 집에

유튜브 Yellow Medusa 'Home Alone as a Quentin Tarantino Film' 캡처


씨네플레이 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