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우림, 더 원더랜드>

우리 모두는, 크게 작게, 자우림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진심으로 생각한 적이 있다. 새벽녘, 옥상에서 어슴푸레 떠오르는 도시를 바라보며 '사실은 살고 싶다'라고 읊조렸던 10대 시절의 나. 선택받지 못할까 두렵지만, 불안함을 애써 감추며, 화장실 거울 속 자신에게 '넌 최고야'라고 웃어보던 20대 때의 당신. 밥벌이의 고단함을 '하, 하하, 하핫', 복식 호흡과 사자후로 그럭저럭 견뎠던 30, 40대의 우리들. 삶의 곳곳에 자우림의 노래가 배경처럼 깔려 있다. '자우림의 노래가 몇 명을 살렸을까?'라던 한 누리꾼의 댓글은, 어쩌면 과장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자우림은 음악으로 우리를 위로하고 누군가를 살렸다. 무려 26년 동안이나.


자우림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자우림, 더 원더랜드>

데뷔 전 프로필 사진 @김윤아 트위터

자우림의 데뷔는 1997년. 4년 모자란 30년이다. 차은우와 정국이 97년생이니, 26년은 생각보다 긴 시간. 그 사이 수많은 밴드들이 명멸을 거듭했다. 하지만 자우림만은 11장의 정규 음반을 포함해 총 25장의 앨범을 발매하고, 1300여 회의 콘서트를 진행하며, 항상 거기 있었다. 여전히 건재한 그들에게 축배를 들며 <자우림, 더 원더랜드>가 개봉됐다. 영화는 지난해 결성 25주년을 맞아 기념 리메이크 앨범과 콘서트를 준비하는 과정과 함께 1997년 결성 이래 자우림이 걸어온 발자취를 회고한다. 배철수, 임진모, 배순탁, 옥상달빛, 원슈타인, 서현진의 인터뷰와 25주년 기념 콘서트 장면에 과거 TV 방송 출연 영상이 교차하는 다큐는 그들의 25년을 간추린 일종의 소책자다.

<자우림, 더 원더랜드> 스틸컷. 콘서트 할 때가 제일 멋져.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봤지만, 좋은 건 한 번 더. 영화의 극장 개봉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갔다. 두 번째 관람이지만, 울음이 터지는 구간은 같다. “여전히 어디로 갈지 몰라서 갈팡질팡하고 가슴 안에는 폭풍이 가득 차 있다”라며 “앞으로도 어리석고 불안하게 자우림의 음악을 하고 싶다”라고 영화의 서두를 여는 김윤아의 고백에서 한 번.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팬이야'를 꼽는 '자몽'(자우림 팬덤의 이름)이들을 보며 그들의 심정이 이해돼서 또 한 번. 20년의 시간 동안, 자우림의 노래가 건넨 시기적절했던 위로의 순간들이 떠올라, 사실 셀 수 없이 울컥했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콘서트에 온 것 마냥 손을 흔들며 환호하던 영화관 앞줄 한 관객을 따라 나도 소심하게 손을 흔들어 그들의 위로에 감사를 표했다.


김윤아 - 독보적인 존재감

<자우림, 더 원더랜드> 스틸컷. 보컬, 작사, 작곡, 퍼포먼스까지.. 당신은 도대체..

자우림의 중심에는 김윤아가 있다. 한 인터뷰에서 김윤아는 “아직도 제 이름이 '자우림'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꽤 계신 거 같다”라고 웃었고, 이선규는 “여고생들이 '우림이 언니 사인해 주세요'라고 하더라”라고 받아친다. 김진만은 한술 더 떠 “만약 쟤(김윤아)가 우리를 안 만났으면 아시아를 대표하는 글로벌 싱어송라이터가 돼서 유럽 투어를 막 다녔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고 농을 붙인다.

또 다른 인터뷰에서 김진만은, 앨범을 준비하며 김윤아가 20곡을 쓸 때 이선규는 3곡, 김진만은 0~1곡을 쓴다는 소문에 대해 실제로는 김윤아가 15곡을 쓸 때 이선규가 2곡, 김진만이 2곡을 쓴다고 정정했지만, 더 노력하자는 생각을 26년째 하고 있다고 덧붙이며 자학적 웃음을 유발했다. 자우림 곡의 반 정도는 김윤아가 작사/작곡을 했는데, 특히 대중들의 사랑을 받은 곡들, 이를테면 '스물다섯, 스물하나', '매직 카펫 라이드', '팬이야', '일탈', '있지' 등등등…을 그녀가 만들었다.

<자우림, 더 원더랜드> 스틸컷

보컬은 또 어떤가. 영화 속 그녀의 라이브를 듣다 보면, 보컬 프로듀서 김홍집의 말처럼 어쩌면 김윤아의 보컬은 “대중이 생각하는 것 그 이상”이며, 아직 우리는 그녀의 진가를 100% 알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연히 참여한 영화 OST로 운 좋게 데뷔를 하고, 잊힐 때쯤 자신들의 음악이 CF에 사용되면서 대박이 터지더니, 상실한 청춘의 찰나를 기억하게 해 급기야 동일 제목의 인기 드라마를 탄생시킨 '스물다섯 스물하나'로 20대에게도 사랑을 받게 됐다며, 운이 칠할이라며 자신을 낮췄지만, 우리는 꾸준하게 독보적인 것을 '실력'이라고 한다.


옷을 까다롭게 입는 김진만, 근본적으로 부드러운 이선규

김진만(왼쪽)과 이선규(오른쪽)는 서로가 자신의 이상형이라 밝힌 바 있다.

“저는 언제나 진만·선규 형이 절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영화 속 김윤아의 고백처럼,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며 각자의 역할을 해온 세 명의 멤버들의 합이 26년을 가능케했다. (물론, 김윤아의 약간의 채찍질은 필요했다.) 취향이 까다로워(?) 한 가지 옷만 고집하는 김진만의 태평함과 근본적으로 부드러운 남자 이선규의 천진함이 김윤아의 뾰족함을 감싸고 있는 것 아닐까. 비싼 티켓 사서 일부러 찾아온 콘서트에 왜 똥칠을 하냐며, 극구 거부했지만, 김윤아의 적극적 리드에 못 이긴 척, 25주년 콘서트에서 어느새 보컬 솔로 공연을 하는 두 남자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이 가슴속의 폭풍은 언제 멎으려나.

바람 부는 세상에 나 홀로 서있네.

풀리지 않는 의문들, 정답이 없는 질문들 나를 채워줄 그 무엇이 있을까.

이유도 없는 외로움, 살아 있다는 괴로움, 나를 안아줄 사람이 있을까.

목마른 가슴 위로 태양은 타오르네.

내게도 날개가 있어, 날아갈 수 있을까?

별이 내리는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 바보처럼 나는 그저 눈물을 흘리며 서 있네.

이 가슴속의 폭풍은 언제 멎으려나.

바람 부는 세상에 나 홀로 서있네.

지금이 아닌 언젠가, 여기가 아닌 어딘가, 나를 받아줄 그곳이 있을까.

- 자우림 ‘샤이닝’ 가사 중에서

자우림이 지금까지 큰 사랑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현재’를 노래하기 위해 공감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는데 있다. 자신들의 2006년 노래 '샤이닝'에게 여전히 위로받는 청춘들이 눈에 밟혀, 17년 전보다 어쩌면 더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미안해, 인터뷰 중 흘리는 김진만의 눈물이 자우림의 정체성이 아닐지. 그래서 영화에는 갸우뚱하게 하는 장면도 나온다. 데뷔 25주년을 맞아 떼창 오디션을 진행해, 합격자들을 새 앨범의 코러스 작업에 참여시키는 프로젝트를 하는데, 놀랍게도 참가자 대부분의 얼굴은 앳돼 보인다.

<자우림, 더 원더랜드> 스틸컷

실리적인 관점에서 견지해도 <자우림, 더 원더랜드>는 꼭 봐야 할 영화다. 15만 원에 육박하는 티켓을 사서 작년 25주년 콘서트도 직접 가봤지만, 라이브 실황이 다수 포함된 영화는 콘서트장을 방불케한다. 영화관의 선명한 사운드가 오히려 콘서트보다 더 몰입하게 만든다. 인도식 떼창을 부르고 싶은 욕구가 영화 내내 불쑥 불쑥 튀어나온다. 30주년 기념 콘서트, 50주년 디너쇼를 기다리는 수밖에.


문화기획자 하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