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서의 심장을 가진 복싱 유망주 건우(우도환)는
대회 결승전에서 만난 우진(이상이)과
해병대라는 공통항에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팬데믹으로 건우 엄마(윤유선)가 악덕 사채업체에 돈을 빌리고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을 갚지 못하자 깡패들은 가게를 부순다.
건우는 한때 사채업 일을 했던 우진의 도움으로
사채업계의 전설 최 사장(허준호)를 만나 빚을 갚고
악덕 사채업체를 잡는 ‘사냥개들’이 되기로 결심한다.
코로나로 힘들었던 이들에게 희망은 올 것인가?
2023년 가장 바쁜 감독을 꼽으라면? 3월 개봉한 <멍뭉이>와 6월 9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사냥개들>의 김주환 감독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김주환 감독은 영화 홍보팀에서 투자지원, 마케팅 등의 일을 하며 영화계와 인연을 맺었다.
햄버거 가게 창업에 도전하는 청춘들의 패기와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코알라>(2013)로 데뷔한 이후, 경찰대에 다니는 두 주인공의 열정과 용기를 그린 영화 <청년경찰>(2017)을 통해 또 한 번 피 끓는 청춘을 스크린에 그려냈다. 탄탄한 스토리와 화려한 액션, 등장인물들의 유쾌한 콤비 플레이로 관객들에게 큰 웃음과 즐거움을 선사하며 565만 관객을 동원하고 제54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 후보에 오르며 단번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2019년에는 격투기 챔피언 주인공이 구마 사제를 만나 강력한 악에 맞서는 내용을 그린 오컬트 영화 <사자>로 긴장감 넘치는 액션과 몰입도 높은 스토리텔링을 선보이며 관객들에게 새로운 영화적 체험을 선사했다.
<사냥개들>은 김주환 감독의 첫 드라마 연출작이자, <사자>에서 함께 했던 우도환 배우와의 재회작이기도 하다. 맨주먹 하나로 불법 사채의 세계에 뛰어든 두 청년의 이야기로 첫 시리즈 연출에 나선 김 감독은 “청년들이 행하는 권선징악에 항상 관심이 간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희망과 정의가 그런 이야기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희망과 용기가 필요한데, 이 청년들이 우리를 이끌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김주환 감독을 만나 <사냥개들> 이야기를 들어봤다.
3월에 개봉한 <멍뭉이>에 이어 6월 넷플릭스 시리즈 <사냥개들> 공개까지 상반기 가장 바쁜 감독이시죠. 지금 기분이 어떠신가요?
코로나19 때문에 개봉이 밀렸던 <멍뭉이>를 올해 관객들에게 보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사냥개들> 역시 우여곡절 끝에 개봉한 터라, 이 작품이 세상에 나온 것이 감사하죠. 간신히 버틴 지점들도 힐링이 되는 느낌입니다.
<사냥개들>은 감독님의 첫 드라마입니다. 영화랑 어떤 점이 다르던가요?
영화의 러닝타임 2시간과 드라마 8시간의 차이는 그냥 4배의 차이가 아니더라고요. 8시간 분량의 이야기를 만들려면 더 많은 서사와 밀도가 있어야 하고, 볼거리와 대중과의 공감대 역시 훨씬 넓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다행히 원작이 가진 좋은 줄기와 코어가 있어서 여기에 제 상상을 덧댈 수 있었지만요. 만약 또 기회가 온다면 공부를 더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쓰는 와중에 백그라운드를 더 만들어둬야 부족할 때 보충할 수 있겠더라고요.
극 흐름이 매끄러워서 드라마 문법에도 익숙하신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전작 <사자>도 드라마로 만들었어도 재밌었을 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찍는 과정이 정말 힘들었어요. 시간은 촉박한데 분량은 많으니까요. 단순 비교하기는 그렇지만, <청년경찰>에서 53회차에 110분 분량을 만들었는데, <사냥개들>은 153회차에 8시간 분량을 만들어야 했거든요. 회차는 3배인데 분량은 더 늘었어요. 정말 힘들었죠.
<사냥개들> 촬영에 들어가면서 가졌던 목표가 있을까요?
처음에 기획하면서부터 ‘K-액션’의 간판을 한 번 세워보자는 원대한 꿈이 있었습니다(웃음). 그러다 보니 욕심을 너무 많이 낸 것 같아요. 카체이싱 장면을 찍으면서 ‘나, 내가 왜 이 장면을 넣었을까’하고 후회도 했고요(웃음). 차가 부딪히는 게 이렇게 어렵구나, 자본도 많이 투입되는구나 하는 걸 느낀 거죠. 이런 일련의 상황들을 겪으면서 더 준비가 필요하다는 걸 느낀 겁니다. 체력, 정신력이 필요하단 거죠. 그랬다고 해서 뭐 큰코다쳤다는 느낌까지는 아니고요.
<사냥개들>에 유독 밥 먹는 장면이 많더라고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봉준호 감독님 작품을 보면서 늘 느끼지만, 밥을 같이 먹는 게 식구 아닌가 싶어요. 밥 먹는 것만큼 친해지는 과정이 없는 거 같거든요. 개인적으로도 안 친한 사람과는 밥 먹는 게 힘들어요. 술도 그렇고요. <사냥개들>에서는 밥 같이 먹은 사람들은 배신을 안 합니다. 술도 마찬가지고요. 끝까지 대화한 사람은 라면까지 가는 거고요(웃음).
2화에서 보면 억지로 술 먹이고 권력 발휘했더니 토하잖아요. 탈이 나는 거죠. 강용 역할을 맡은 최영준 배우가 그때 연기를 정말 잘했어요. 사실 술 마시는 장면 찍기가 정말 힘들어요. 보리차를 계속 마셔야 하잖아요. 그런데 연기하면서 한 잔도 남김없이 다 드세요. 김명길 역을 맡은 박성웅 배우를 찍는데, 카메라 뒤로 꿀꺽꿀꺽 소리가 나는 겁니다. 박성웅 배우 감정선을 맞춰준다며 카메라에 잡히지도 않는데 같이 마시는 걸 보고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이제 배우 이야기를 여쭤볼게요. 건우 역을 맡은 우도환 배우와는 두 번째 만남입니다. <사자>에서 빌런 역을 맡았었죠. <사냥개들>에서는 선한 역할의 프로타고니스트입니다. 처음부터 우도환 배우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 각색을 하셨나요?
사실 우도환 배우부터 시작한 이야기는 아니죠. 제가 각색 작업을 여러 번 거쳤습니다. 웹툰 원작 버전으로 2화까지 썼는데, 더 이야기가 진행이 안 되어서 다른 버전으로 썼어요. 그리고 넷플릭스와 작업을 하면서 <청년경찰>의 브로맨스를 강조한 지금 버전이 탄생한 겁니다. 그때가 우도환 배우 제대 몇 년 전이었어요. 그래서 연락했죠. ‘같이 하자, 해야지’이러면서요(웃음).
우도환 배우만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기존에 지배적으로 맡은 역할을 하던 배우가 새로운 역할을 도전하는 것이 의미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우도환 배우는 굉장히 날렵한 역삼각형 얼굴형에 눈빛도 강한 사내의 인상이 있다고 봐요. <사냥개들>에서 마냥 착한 건우라는 캐릭터로는 잘 그려지지 않죠.
그런데 전 친해서 그런지 우도환 배우에게서 그런 모습을 봤습니다. 친해서 그런지는 몰라도요. 이런 모습을 좀 강화시키면 ‘늑대개’가 나오겠다 싶었어요. 겉은 사나운 늑대개인데, 속은 시츄 같은? 그런 맥락에서 강인범 역을 맡은 태원석 배우도 변신을 크게 합니다. 4화를 먼저 찍었는데, 그때가 110kg 몸무게의 거구라는 설정이었어요. 한 달 있다가 1화를 찍는데 10kg를 감량해서 오더라고요. 본인이 분장 설정을 해서 몸의 부피를 줄이는 걸로 소화시킨 거죠. 이런 배우들의 디테일한 변신들 덕분에 서사도 풍성해지고 이야기 플롯도 도움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건우 역을 맡은 우도환 배우가 ‘너무 착하게만 보인다’, ‘현실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웹툰 원작에서는 악에 받혀 인간 병기 수준으로 변신하는데 드라마에서는 너무 착하고, 효자이기까지 하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관객들의 호불호가 생기는 거 같기도 하고요.
원작 웹툰에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건 맞지만, 주제가 달라졌어요. 코로나19라는 거대한 배경이 들어오면서, 운동하는 이들, 청년들에게 어떤 주제를 줄까, 어떻게 해야 관객들에게 좋은 마음을 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그 답이 희망, 순수, 열정이라고 생각했어요. 주인공이 그 가치들을 내포하면서 건우라는 인물로 생성된 거고, 건우가 워낙 사회성이 떨어지기에 또 다른 자아 같은 홍우진(이상이)을 형상화해서 버디극으로 탄생한 거죠.
이야기를 주조하는 방법은 많아요. 그런데 저는 주제가 더 중요합니다. <청년경찰>이 제게는 ‘열정, 집념, 진심이 과연 세상을 범죄로부터 구할 수 있는가’를 탐구한 영화거든요. 연기했던 강하늘, 박서준 배우 둘 다 현실적인 인물이 아니에요. 비현실적으로 잘 생기기도 했고요(웃음). 그런데 그런 가치를 내포한 주인공들이 장애물과 맞설 때 제가 탐구하고자 하는 주제가 극대화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팬데믹 상황에 있을 법하게 주조되는 인물 틀이 잡히더라고요. 평가나 판단을 하기보다는요.
구체적으로 어떤 장면에서 우도환 배우의 그런 면들이 잘 드러났다고 보세요?
1억 원을 받을 때가 그랬어요. 돈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정말로 많잖아요. 저 역시 입봉을 준비하면서 밥벌이 못 했던 때가 있었거든요. 나중에 그 장면 보고 울컥했어요. 연기도 과하지 않았고요. 또 우진을 살리러 병원에 갔다가 우는 장면이 있는데, ‘와, 우도환 배우 연기 정말 잘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친하다는 이유로 한 번도 그런 말 한 적이 없는데, 정말 더 존경하게 된 장면입니다. 배우로서 더 멋있고 크게 성장할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죠.
홍우진 역할을 맡은 이상이 배우는 현장에서 어땠나요?
이상이 배우의 유머 코드가 은밀합니다(웃음). 속삭이는 유머라고 할까요? 혼자서 드립을 많이 해요. 올드 개그도 하고, 아재 개그도 하고요. 그냥 둘이 대화할 때 했던 유머를 한 번은 카메라 렌즈를 보고 하는 거예요. 모니터를 보던 저랑 눈이 마주친 거죠. 정말 혼자서 미친 듯이 웃었습니다. 이상이 배우가 “형 웃기려고 그랬어”라는데, 그런 은밀한 개그 코드들이 너무 웃겨서 좋았어요.
연기적인 측면에서 보면, 우도환 배우와 앙상블이 정말 좋았습니다. 실제 이상이 배우가 우도환 배우보다 한 살 형이기도 했고요. 아웃복서 체형의 홍우진 배역처럼 팔도 진짜 길어요. 치고 빠지는 것도 잘하는 스타일이고 명민함이 있죠. 홍우진 역할에 완벽했다고 봅니다. 건우와 우진이 있어야 재미있는데, 둘 사이의 케미도 완벽했고요. 첫 드라마라서 저도 후반부에는 체력도 달리고 두통도 와서 힘들 때 도움도 많이 줬어요.
배우 체형이 정말 복서 같더라고요. 후반부에 벌크업이 되기도 하고요.
처음에는 철저히 사실주의로 갔습니다. 캐릭터가 복싱 선수니까 거기에 입각해서 만들려고 했고, 배우들도 그걸 알았어요. 가슴 근육도 별로 안 키웠고요. 그 와주에 캐릭터 살려야 하니 이상이 배우는 ‘체지방 7% 언더’라는 기준을 정했고요. 우도환 배우는 어깨 갑옷이 살아야 멋있으니 어깨를 키웠죠.
후반부에서는 그냥 단백질 다 때려 넣은 ‘캡틴 아메리카’로 가자고 했어요(웃음). 건우와 우진에게 맞으면 인범도 쓰러질 수밖에 없을 정도로 보여야 한다고요. 너무 훌륭하게 근육 갑옷을 만들어왔더라고요. 사실 복싱 선수가 격투기 선수를 이기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그런 부족한 부분을 근육들이 설득해준 거 같습니다(웃음). 아 그리고 복싱 장면을 2.5회차 정도 촬영했는데요, 물 마시면 부기가 올라온다고 해서 그 뜨거운 조명에도 캐릭터 살리느라 두 배우가 물도 안 마시고 헌신적으로 노력해준 점이 정말 고마웠어요.
그래서인지 후반부에서 건우와 우진의 체형이 비슷하게 보이더라고요.
맞아요. 둘이 해병대 반바지 입고 뛰는데, 이제야 둘이 ‘다이나믹 듀오’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차이점이 있던 둘인데, 스타일은 안 변했지만 둘이면 어디 가서 붙어도 이기겠다는 존재감이 형성된 거죠. 그러면서 극의 빈약할 수 있는 부분도 채워줬고요.
공교롭게도 복싱 액션 영화 두 편이 나란히 관객을 만나고 있어요. <범죄도시>(감독 이상용, 2023)도 복싱 액션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는데, <사냥개들>의 복싱 액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범죄도시> 다 봤는데요. 거긴 확실히 펀치가 ‘헤비급’입니다. 저희는 원펀치 개념은 아니고, 스탭이 많은 정석 복싱 개념이죠. 원투 치고 훅 들어가는 미들급 티어 느낌이랄까요? 움직임이 더 많아요.
그리고 잽이 참 찍기 어려워요. 치는 사람도 맞지 않게 툭툭 끊어줘야 하고, 맞는 역할도 뒤로 옆으로 머리를 툭툭 넘어가는 거라서 몇 번 하다 보면 목에 담이 올 정도거든요. <사냥개들>에서는 인범 역의 태원석 배우가 그걸 정말 많이 해줬어요. 건우가 성장하는 걸 측정해주는 바로미터 같은 인물이죠. 처음에는 건우라는 순수 복서가 싸웠을 때 무참히 당했는데 말이죠. 4화에서 태원석 배우는 거의 모든 펀치를 다 받아주는 역할이었어요. 정말 열심히 해줬고요. 이게 <범죄도시>의 펑펑 터지는 복싱 액션과 다른 점 같아요.
김새론 배우의 하차로 7~8화에서 정다은 배우가 출연해요. 무기가 활이라는 게 신선하더라고요.
사실 봉준호 감독님에게 배운 겁니다(웃음). 활이라는 건 액션 장의 넓이도 넓혀주고, 공간을 초월하는 느낌도 주거든요. 어릴 때 봤던 봉준호 감독님 영화가 머릿속에 있다가 그냥 나온 거죠.
활 쏘는 장면을 배우가 소화해야 했을 텐데요. 급하게 섭외해서 연습할 시간이 부족했을 거 같아요.
‘연습해~’라고 말했죠, 그냥(웃음). 제가 활을 쏠 줄 모르니까 디테일한 연기 주문을 할 수는 없었고요. 그런데 정다은 배우가 연습하면서 사진을 찍어 보냈는데, 잘하더라고요. 그런데 화살 씬들은 과학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CG로요(웃음). 정다은 배우가 <청년경찰> 찍을 때 중2였어요(정다은은 '가출여고생 효진' 역으로 <청년경찰>에 출연했다). 그 꼬마가 여리여리하게 몸을 키워서 활을 쏠 정도로 버텨준 거죠.
촬영에 난이도가 가장 높았던 장면이 있다면요?
칼잡이 황양중(이해영)이 임장도(하수호)를 고문하는 장면이었어요. 이 잔인함을 과연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고민이었죠. 그런데 정말 두 배우가 너무 잘하시더라고요. 집중력이 대단하니 몰입도가 살아서 너무 멋있었어요. 또 최사장 역을 맡은 허준호 배우는 해외 리뷰에도 많이 거론되는데요, 그걸 보면서 ‘아, 허준호 선배 연기는 자막이 필요 없구나’하는 걸 느꼈죠. 지금 미국에 계신데 공개일에 보고 문자를 주셨더라고요. ‘고마워요’ 딱 한 문장이었는데, 그걸 보고 정말 많은 감정이 들더라고요. 감사하기도 하고 듬직하기도 한.
감독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선과 악의 문제에 관심이 많으신 거 같아요. <청년경찰>에서도 그랬고요.
제가 군 생활을 통역 장교로 오래 했어요. 그러면서 물리적인 위협에 대한 관심이 좀 많아진 것 같습니다. 매일 정보회의를 통역하는데, 어디에 새로운 지뢰가 만들어졌고, 기존에는 2m 반경에 매설됐고, 뭐 이런 내용들을 매일 들으면서 악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계속 생각했던 거 같아요. 원래 국제정치학을 공부해서 세상에 일어나는 폭력에 관심도 많고요. 요즘은 마약 뉴스를 관심 깊게 보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박살 내는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경찰을 좋아해요. 세상에 좋은 사람인 거죠. 경찰들이 힘을 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악을 응징하는 역할로는 늘 젊은 배우들과 함께 하시는 이유는 뭘까요?
악이 있다면 영웅도 있어야잖아요. 그런 악과 싸우는 인물들이 내포하는 가치는 젊죠. 타협되지 않은 정의, 용기니까 자연스럽게 인물들도 젊어지는 거 같아요(웃음). 그래도 저는 ‘타협된 존재’라는 주제도 와닿아요. 작품을 하면서 몸과 마음이 많이 망가져서 회복되지 않는 지점도 있거든요. 언젠가는 저도 회색적인 인물을 묘사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들죠. 뭐 아직 그럴 때는 아닌 거 같고요(웃음).
<사냥개들>로 전하고 싶은 주제가 있다면요?
사실 주제는 제가 만들어내는 건 아니고요. 세상에 이미 있는 현명한 것들을 빌려서 이야기의 뇌수와 척추를 만드는 거라고 봐요. 그럼에도 시대마다 필요한 주제가 있는 거 같습니다. 저는 팬데믹 시기에 필요한 주제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너무 안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났잖아요. 해외에서는 동양인 증오 범죄도 일어났고, 혐오하고 갈라치는 세상으로 바뀌었고요. 그래서 저는 ‘좋은 마음이 좋은 마음을 낳는다’는 마음으로 <사냥개들>을 만들었습니다. 그 마음을 벗어날수록 세상은 더 차갑고 삭막해질 거라고 봤어요. 그 마음으로 ‘액션동화’를 만든 거죠.
당연히 만화적으로 느껴지는 지점이 있고, 또 지독히 현실적인 부분도 있어서 둘이 섞이는 걸 고민하는 부분도 있겠죠. 그런데 그런 것들이 다 이 작품이 가져가는 큰 그림 같다는 느낌도 있어요. 워낙 거대한 시장을 상대로 작품을 선보이다 보니까 리액션이 정말 다양해요. 그런데 브라질인가 독일에서도 비슷한 리액션이 있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 인간은 결국 비슷한가 싶은 생각도 들긴 합니다. <사냥개들> 공개 후 세상을 느끼는 기분이 좀 오묘해졌어요.
호쾌한 액션, 통쾌한 복수 다 좋습니다. 그런데 구조적으로 보면 정의를 실현하고 복수하는 이유가 재벌의 치부 동영상 삭제 때문이죠. 물론 드라마에서 건우와 홍 이사(최시원)는 라면까지 함께 먹은 끈끈한 사이로 그려지긴 하지만요. 그래도 정의를 실현하는 목적 치고는 좀 아이러니하더라고요.
그렇게 보실 수도 있죠. 어느 지점을 중심으로 보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한테는 건우와 우진의 좋은 우정과 마음이 재벌 홍 이사를 변화시켰는가 아닌가가 중요한 거 같아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좋은 마음이 좋은 마음을 낳는다’가 주제입니다. 홍 이사는 좋게 말하면 외교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자기중심적인 인물이죠. 사실 홍 이사가 건우와 우진을 위해 뭔가 한 적이 있긴 한가 하는 의문도 들죠. 그런데 마지막에 건우 얼굴 상처를 보면서 ‘지워줄까?’하고 물어보잖아요. 홍 이사를 연기한 최시원 배우도 “이 정도면 자기가 봐왔던 실리적인 인간은 아니다”라고 하더라고요. 그쯤에는 친해졌다는 거죠.
사실 저는 홍 이사도 이 두 사람을 통해서 변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두 주인공이 주도적으로 사람들을 이끌어갈 수 있지 않았나 싶고요. 칼잡이 강용이도 굉장히 날카롭고 사리분별이 빠른 캐릭터인데, 두 아이들과 술 마시고 라면 먹으면서 융화되었다고 봐요. 도움을 청한다면 발을 빼지 않을 거라고 하잖아요. 제가 생각한 그림이 거기까지였습니다.
여쭤보기 조심스러운 질문이지만, 김새론 배우 사건 이후로 드라마 후반부가 많이 바뀌었다고 들었어요. 후반부가 다른 드라마처럼 느껴졌다는 시청자들도 있고요.
상식적인 톤으로 보면 원래는 현주(김새론)의 할아버지를 잃은 분노와 부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우진의 이야기가 이어지겠죠. 그래서 건우와 현주가 극 후반부를 끌고 가는 것이 원래 대본이었어요. 그런데 사건이 발생하면서 다 고쳐야 했죠. 압박이 정말 컸습니다. 시간적인 촉박함도 있었지만, 메시지 전달부터 편집까지 또 찍어둔 앞부분과의 연결성까지도요.
어떤 선택을 하신 건가요?
결론적으로 7, 8화는 의도적으로 톤을 바꿨습니다. 화면비도 2:1에서 2.35:1로 바꿔서 건우와 우진의 이야기라는 포커싱을 줬어요. 브로맨스를 더 살린 거죠. 7, 8화만 놓고 보면 하나의 영화로 볼 수 있을 정도로 플롯을 구성했습니다. 사실 6화까지 누적된 피로감이 있어요. 주인공이 아닌 조연 중에 좋은 사람이 많이 죽었고, 4~5개월이 지난 시점의 이야기였으니까요. 두 주인공이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사고 트라우마로 억눌려 있어야 할까, 기운차게 올라가야 할까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했어요.
사건 이후 촬영이 중단되었잖아요. 얼마 만에 재개한 건가요?
한 달입니다. 넷플릭스에서 7, 8화를 준비할 시간을 한 달을 준 거죠. 좀 예민한 이야기지만, 촬영을 못하더라도 비용은 발생합니다. 스태프들 인건비부터요. 속이 많이 탔죠. 그래도 저를 믿고 온 스태프들인데 끝까지 가야 하잖아요. 책임감이 생겼죠. 저는 거의 바로 제주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가자마자 이틀 만에 오한이 오고 손 마디가 저리고, 설사가 나는데, 드디어 코로나에 걸렸구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병원에 새벽 한시 반에 갔는데, 스트레스로 급성 장염이 온 거였어요. 링거를 맞으면서도 말로 줄거리를 이야기하고 옆에서 연출부가 받아 적었어요. 그렇게라도 안 하면 스케줄을 맞추지 못할 분량이었거든요. 3주에 30쪽 쓰면 많이 쓰는 건데, 4주에 80쪽을 썼어야 하니까요. 살면서 이렇게 열심히 쓴 적은 처음인 거 같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을 거 같아요.
쓰자마자 바로 촬영에 들어가야 했다는 거죠. 1화부터 6화까지 찍으면서 액션 장면에서 나름대로 빌드업해온 공든 탑이 있어서, 7, 8화 액션은 더 잘해야지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시간도 촉박하고 연습할 시간도 없고 체력도 바닥이 났으니까요. 그런 부분들이 최선을 다했음에도 좀 아쉬웠던 지점이죠. 그래도 내용적으로는 오히려 더 밝게 간 점이 더 좋았던 거 같습니다.
‘좋은 마음이 좋은 마음을 낳는다’는 주제가 와닿습니다. 다만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이 너무 단순한데, 만약 시즌 2를 한다면 좀 더 꼬인 시나리오를 써보고 싶은 생각은 없으신지 여쭙니다. 주요 캐릭터가 너무 많이 죽어서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해야겠지만요.
너무 많이 죽여서 정말 죄송합니다(웃음). 만약 시즌 2를 한다고 하면 시청자들 마음을 더 아프게 할 거 같아요.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회색으로 바뀔 수밖에 없을 거 같고요. 이 아이에게 트라우마를 얼마나 주면 바뀔까, 이 아이의 생살을 얼마나 찢으면 이 좋은 마음이 변할까, 이런 것들을 실험해보고 싶어요. 시즌2 실현 여부는 저는 모릅니다. 다만, 저도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건 말씀드리고 싶어요. 시즌 1은 팬데믹 상황에서 무너지는 사람들 속에서 그걸 뚫고 나가는 이야기를 한 건데요, 시청자들에게 힘과 공감대를 주고 싶어서요. 만약 시즌2를 한다면 다른 이야기로 찾아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윤상민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