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늙지 않는 사람은 없다. 젊은 시절 전성기를 구가했던 엄청난 외모의 소유자도 끝내 나이를 먹으면 노화의 과정을 겪기 마련이다. 데뷔 이래 가장 아이코닉한 외모를 지녔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타이타닉>(1998)의 모습은 사라지고 이제는 푸근한 동네 아저씨 레오로 불리운다(물론 그가 엄청난 연기력을 보여 주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터미네이터 2>에 등장한 에드워드 펄롱은 어떤가? 화려했던 존 코너의 외모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채 퇴폐적인 그의 외모와 멀리 동떨어진 인생을 살고 있다.
하지만 영원한 액션 스타 톰 크루즈만은 다르다. CGI 시대에도 여전히 스턴트 액션을 고수하는 그의 액션 활극은 42년 전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유효하다. 두바이 고층 빌딩에서 달리다가 뛰어내리는 장면부터 HALO 등반까지 정상적인 인간의 육체로는 감당할 수 없는 액션도 톰 크루즈라면 가능하다. 1996년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과 함께했던 <미션 임파서블>은 톰 크루즈가 액션 스타라는 인식을 본격적으로 만들어 준 작품이다. 그는 이후 27년간 7개의 시리즈에서 이단 헌트를 연기하며 60이 넘은 나이에도 부르즈 할리파를 오르내리고 있다.
하지만 당신이 간과한 게 있다면, 이미 1990년대의 톰 크루즈는 드라마, 로맨스, 액션을 가리지 않고 엄청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외모와 액션에 가려져 저평가된 빼어난 연기력을 조망할 기회가 다시 생긴 것 같다. CGV 아트하우스에서는 6월 7일부터 7월 4일까지 ‘톰 크루즈 특별전’을 열기 때문이다. 리즈 시절 톰 크루즈의 새로운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상영작 7편을 지금부터 만나보자!
<탑건> (dir. 토니 스콧)
작년 한 해 최고의 흥행작은 단연코 36년 만에 돌아온 <탑건> (1986)의 후속작 <탑건: 매버릭>이다. 이 때문에 본작인 <탑건>을 미리 보았던 관객들도 많지 않았을까? 하지만 아직도 <탑건>을 보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지금이 기회다. 80년대 할리우드 영화를 상징하는 수많은 작품이 있지만, <탑건>은 그 시절 할리우드의 모든 요소를 반영하고 있다. 전투기의 활강이 주는 스펙터클, 화려한 톰 크루즈의 외모, 가죽 자켓과 가와사키 GPZ-900R을 모는 모습, 80년대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들의 사운드트랙까지. 이야기는 비록 직선적이고 평이하게 보일지 몰라도, 적국의 전투기를 섬멸하고 능청스럽게 웃는 매버릭의 매력에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다. <탑건: 매버릭>에서는 해변에서 One Republic의 “I Ain’t Worried”가 흘러나오며 재연된 비치 발리볼 씬은 <탑건>에서도 손꼽히는 명장면 중 하나. <탑건>을 보게 된 후 두 장면을 비교한다면, Kenny Loggins의 “Playing with the Boys”에 훨씬 더 마음이 가리라 확신한다.
<매그놀리아> (dir. 폴 토마스 앤더슨)
<탑건>이 할리우드가 지닌 화려한 매력의 정점이라면, <매그놀리아>(1999)는 90년대 미국 영화 미학의 정점이다. 지난해 <리코리쉬 피자>로 또 한 번 평단의 극찬을 받은 폴 토마스 앤더슨의 대표작을 꼽는다면, <매그놀리아>는 3순위 안에 무조건 안착할 작품이다. 군중물의 대가 로버트 알트만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작품인 <매그놀리아>는 9명의 절망에 빠진 인물들이 등장한다.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줄리안 무어, 존 C.라일리, 필립 베이커 홀, 윌리엄 H. 머시 등 내로라하는 명배우들의 연기가 펼쳐지지만, 가장 파격적인 존재는 톰 크루즈의 변신이다. 프랭크 맥키 역을 맡은 그의 정체는 ‘여성공략법’이라는 책까지 저술하고 강연을 다니는 픽업 아티스트다. 올백 장발, 가죽조끼에 마초성을 극대화한 그의 캐릭터는 우리가 알던 깔끔하게 잘생긴 톰 크루즈가 맞나 싶다. 하지만 그는 훌륭하게 영화에 녹아들었고 새로운 매력을 발산하는 계기가 되었다. 기자의 사심을 덧붙이자면, <매그놀리아>는 당신을 현대 영화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영화적인 체험으로 초대할 작품이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dir. 닐 조던)
브래드 피트와 톰 크루즈의 조합이다. 말만 들어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만남 아닌가? 심지어 이들은 퇴폐적이고 섹시한 캐릭터인 뱀파이어를 연기한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1994)에서 톰 크루즈는 퇴폐적이고 쾌락을 즐기는 뱀파이어 레스타트를 연기한다. 반대로 브래드 피트는 레스타트에 의해 강제로 뱀파이어가 되고 자신의 존재와 윤리에 대해 고민하는 뱀파이어 루이를 연기한다. 장발의 브래드 피트가 고뇌하는 모습도 너무나 매력적이지만, 톰 크루즈의 퇴폐미는 그보다 더 치명적이다. 그가 사람들의 목덜미를 물고, 손목을 뜯는 행위가 이렇게 고혹적일 수 있을까? 영화의 말미 금문교를 달리며 흐르는 Rolling Stones의 “Sympathy for the Devil” 그리고 흩날리는 톰 크루즈의 머릿결은 두고두고 회자할 장면이다.
<아이즈 와이드 셧> (dir. 스탠리 큐브릭)
<뱀파이어와의 인터뷰>가 톰 크루즈의 외모만으로 퇴폐적인 매력을 배가시켰다면, <아이즈 와이드 셧>(1999)은 스탠리 큐브릭이라는 거장의 터치로 인해 매력이 폭발한 작품이다. 당시 톰 크루즈와 실제 부부 관계였던 니콜 키드먼이 동반 출연하여 부부를 연기한 것으로도 크게 화제를 모았다. 더불어 스탠리 큐브릭의 유작으로 남은 작품이었던 만큼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이다. 그의 다른 영화처럼 상당히 난해한 지점이 많지만, 그럼에도 부부 관계에 도사린 성적인 위험으로부터 비밀 난교파티에 잠입하게 되는 일련의 섹슈얼한 미스터리가 주는 매력과 큐브릭 특유의 완벽주의적인 스킬이 돋보인다. 소유의 제도, 그리고 인간 본연의 욕구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 빌 하퍼드를 훌륭히 연기해 낸 톰 크루즈의 원숙함 역시 주목할 부분이다.
<어 퓨 굿 맨> (dir. 롭 레이너)
<탑건>에서 공군을 연기했던 그가 이번엔 해군을 연기한다. 하지만 <탑건>에서 전투기를 몰았던 것처럼 그가 배를 몰거나 바다에 뛰어들거나 하지는 않는다. 로브 레이너 감독의 <어 퓨 굿 맨>(1992)은 법정 영화이기 때문이다. 톰 크루즈가 연기한 대니얼 캐피 역은 하버드 로스쿨을 갓 졸업한 신참 해군 중위 법무장교다. 그리고 그와 대립각을 세우는 인물들은 무려 잭 니콜슨과 케빈 베이컨이다. 괴물 같은 배우들 사이에서 곱상하게 생긴 젊은 청년이 잘 버틸 수 있을까 싶지만, <어 퓨 굿 맨>에서 보이는 재판 장면은 오히려 톰 크루즈를 괴물처럼 보이게 만든다. 특히 잭 니콜슨을 증인으로 부른 뒤 심문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 힘과 권위를 연기하는 잭 니콜슨과 능청과 영리함을 연기하는 톰 크루즈의 간의 선이 다른 연기가 교차하는 순간은 어느 누구의 손을 들어주기 어려울 정도로 완벽한 연기 대결이었다.
<레인 맨> (dir. 배리 레빈슨)
<어 퓨 굿 맨>에서 잭 니콜슨과의 피 튀기는 연기 대결이 있기 전, 또 다른 대배우와 합을 맞춘 작품이 바로 <레인 맨>(1988)이다. 더스틴 호프만이 서번트 증후군에 걸린 자폐성 장애인 레이 역으로 오스카상을 거머쥔 이 작품에서 톰 크루즈는 그의 동생 찰리 역을 맡았다. 완벽에 가까운 연기를 보인 더스틴 호프먼에게 스포트라이트 대부분이 집중되었지만, 톰 크루즈는 훌륭한 서포터가 되어 극을 뒷받침했다. 300만 달러의 유산과 형을 데리고 가려는 초반의 불순한 의도와 달리, 레이와의 동행을 통해 진정한 형제애를 깨닫게 되는 일련의 과정에서 톰 크루즈의 세밀한 감정 연기가 빛난다. 찰리가 레이가 받은 유산의 절반을 원했던 것처럼, <레인 맨>에서 톰 크루즈는 더스틴 호프먼만큼이나 탄탄하게 영화의 절반을 담당하고 있다.
<바닐라 스카이> (dir. 카메론 크로우)
톰 크루즈만큼 성공한 남자의 이미지가 잘 어울리는 배우가 있을까? 그는 <바닐라 스카이>(2001)에서도 부모가 물려준 막대한 재산과 잘생긴 외모를 자랑하는 데이빗 역을 맡았다. 원작 영화인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오픈 유어 아이즈>(1997)에 출연했던 페넬로페 크루즈와 카메론 디아즈 두 배우 사이에서 톰 크루즈는 행복한 고민을 해야 한다. 물론 얼굴은 반파되었고, 인생의 낙은 없으며, 완벽하게 무너져 내린 남자가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꿈인지 아니면 현실인지, 모든 것이 불확실하게 그려지는 <바닐라 스카이> 속 세계에서 톰 크루즈는 수직으로 추락하기도 하며, 동시에 희미한 경계를 수평적으로 오가기도 한다.
이번 톰 크루즈 특별전은 7월 12일 개봉 예정인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7번째 작품인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2023)을 기념하여 진행한다고 한다. 또한 할리우드 배우 중 최다 방한 횟수를 자랑하는 톰 크루즈가 11번째 내한 행사를 확정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미 작년 <탑건: 매버릭>으로 10번째 한국을 찾았지만, 1년 만에 다시 한번 한국을 방문한다는 것. 그의 방한을 기다리며 화려했던 톰 크루즈의 대표작들을 관람해 보는 것은 어떨까?
씨네플레이 최현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