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잘 날 없는 시대다. 저 멀리서 벌어지는 전쟁부터 바로 코앞에서 벌어지는 수도 없이 많은 사건사고까지. 우리는 그 많은 '소식'의 홍수 속에서 각자 힘겨운 무게를 짊어지고 살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점차 '큰일'에만 신경을 기울이고 작은 일을 뒤편으로 미뤄두기도 한다.

우리가 제대로 보고 있지 못한 '작은 일' 중 어떤 일들은 지역민에게 큰일이다. 원주에서 진행 중인 '원주 아카데미극장 철거' 관련 소식이 그렇다. 원주의 유일한 단관극장 '아카데미극장'은 1963년 이후 원주민들의 문화를 책임지며, 하나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2006년 운영을 중단한 후 남아있던 아카데미 극장은 2023년 4월부터 적잖은 진통을 앓고 있다. 극장을 철거하려는 원주시청과 이를 막고자 하는 '아카데미의 친구들'의 대립 때문이다.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보존 중인 단관극장

원주의 단관극장 다섯 곳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아카데미극장 (사진 출처=안녕아카데미)

지금 우리가 '극장'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쇼핑몰이나 백화점 안에 있는 광경일 가능성이 높다. 다수의 상영관을 보유한 멀티플렉스는 대중에게 편의성을 도모하며 1998년 CGV 강남점 개관을 시작으로 점차 늘어났다. 멀티플렉스는 분명 효율적이다. 극장이란 공간에 다양한 영화를 상영할 수 있도록 설계해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고, 관객에게 선택의 자유를 제공할 수 있으니까.

그러다 보니 멀티플렉스의 등장 이전 국민들의 문화 생활을 책임진 단관극장들은 폐관하거나 다른 사업으로 생존 방향을 물색하게 됐다. 그나마 실버영화관(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재상영관)으로 명맥을 유지하는 허리우드 극장같은 곳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폐관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국내 최초 멀티플렉스를 시도할 정도로 극장가에서 굳건한 위치였던 서울극장(메트로극장)조차 2021년 폐업을 신고했을 정도다.

아카데미 극장의 전경 (사진 출처=안녕아카데미)

그렇기에 원주의 아카데미극장 철거 선언은 단순 지역민들의 문제를 넘어 영화, 문화계의 화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단관극장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와중, 2020년에 원주시가 극장을 보존하겠다며 32억 원을 들여 매입했는데(당시 시민들은 1억 300만원 모금했다) 지금 와 철거를 발표했으니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

심지어 아카데미극장은 단순한 극장 이상의 의미가 있다. 1960년대 개관해 지금까지 남은 극장은 인천의 애관극장, 광주의 광주극장, 원주의 아카데미극장 딱 세 곳인데 그중 아카데미극장만이 유일하게 별다른 사고 없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애관극장과 광주극장은 화재나 전쟁으로 인한 반파 등을 겪고 복원한 형태이다. 즉 1960년대 원형을 그대로 유지한 건물이라 건축사적으로도 무척 귀한 사료인 건물인 셈이다.

원주 아카데미극장을 영화에 담은 영화 <오마주> 포스터


철거 찬성 측 “위험+지역 발전 위한 새로운 시설 정비”

물론 원주시의 결정도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먼저 아카데미극장 철거에 동의한 단체들이 가장 먼저 지적한 사안은 '위험성'이다. 1963년에 건설해 지금까지 유지된 만큼 건물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찬성 측 단체들은 “아카데미극장은 안전 진단 평가 D등급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고, 설령 보존·복원을 하려고 해도 안전성을 보강하기 위해 내외관 모두 훼손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원주시가 공개한 문화공유플랫폼(아카데미극장) 조감도

원주시가 밝힌 아카데미극장 철거 계획은 이렇다. 아카데미극장 위치에 야외 공연장과 주차장을 포함한 '문화공유플랫폼'을 조성하는 것. 그래서 원주시의 유동 인구와 방문객을 유치한다는 것. 복원을 하기엔 사업비와 운영비로 막대한 예산 지출이 예상되고 인근 재래시장에 피해를 줄 수 있기에 지역 활성화에 도움 되는 새로운 건축물을 유치한다는 요지의 정책이다.

이런 원주시의 정책은 지역 예술인과 재래시장 상인들에게 환영을 받고 있다. 상인들은 아카데미극장이 2006년부터 운영은 하지 않아 '폐건물'로 인식되고 있단 점을 강조하며 주차난 해소를 위한 주차장 건설을 찬성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지역 예술인 또한 야외공연장을 통해 풍물시장과 연계한다는 기획에 동의하는 입장을 내비쳤다.


철거 예산안 통과…‘고발’로 이어진 보존 운동

4월부터 시작된 '아카데미극장 철거'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 골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찬반 입장을 띈 단체, 시청의 공방이 여러 차례 오가는 와중, 5월 25일 원주시의회에서 원주 아카데미극장 철거 예산안이 통과됐다. 철거 용역과 업체 선정 등을 통해 7월 중 철거로 예상되고 있다.

철거 예산안이 통과된 것에 따라 철거 반대 측의 움직임도 다시금 가속되고 있다. 김혁성 원주 시의원이 6월 12일 시의회 발언 중 기습 삭발을 하는가 하면, 6월 12일 100개 단체가 참여한 ‘(가칭)원주 아카데미극장 보존을 위한 전국공동대책위원회’가 발족 기자회견을 가졌다.

6월 19일 ‘아카데미의 친구들 범시민연대’는 원주시장과 문화예술과장을 직권남용 및 권리 행사 방해죄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지난 3월 시정정책토론 청구서류의 보완 관련해서 원주시가 '정책토론 청구인 서명부'에 주민등록번호 및 등록기준지 주소를 요구하고, 시정정책 토론회 개최를 허용하지 않았다는 사유였다.

원주 시장과 문화예술과장을 고발한 아카데미의 친구들 범시민연대 (사진출처=안녕아카데미)

이전부터 아카데미의 친구들이 이번 철거안에서 가장 심각하다고 지적하는 문제는 원주시의 일방적인 태도이다. 아카데미의 친구들은 원강수 원주시장이 비공개면담에서 “최종 검토해보겠다”고 말하고 바로 다음날 철거안을 기습 발표했다고 밝혔다. 아카데미 극장을 보존하겠다는 정책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의 2023년 유휴공간 문화재생사업으로 국비를 지원받기로 돼있는 상황이었음에도 원주시가 이를 고려하지 않고 철거를 밀어붙인다고 설명했다. 또 아카데미극장이 원주시가 소유한 '공유재산'임에도 공유재산심의위원회를 서면으로 대체한 것도 적법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상호 간의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 채 철거가 확정된 현재 시점에서, 보존을 주장하는 측은 공정하지 않은 절차·필요 이상의 개인정보 요구 등 원주시의 위법을 '고발'하는 방식을 택했다. 처음부터 쉽게 타개되지 않을 문제였지만, 보존을 위해 마음을 모아온 시민들을 무시한 행태가 갈등을 더욱 짙게 만들고 있다. 원주시가, 그리고 원주시민들이 어떤 결단에 다다르게 될지 이 바쁜 세상에서도 잊지 말고 지켜봐야, 혹은 힘을 실어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