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자> 스틸컷

<옥자>(2017)가 신호탄이었다. 넷플릭스가 한국 창작자들과도 본격적으로 콘텐츠를 만들 거라는 일종의 대공습 예고. 그로부터 약 6년이 흐른 지금, 넷플릭스를 OTT 서비스라고만 인식하는 사람은 없다. 넷플릭스는 더 이상 콘텐츠 스트리밍 서비스가 아니라 제작사다.

“넷플릭스 뭐 봐?”라는 물음이 아이스브레이킹의 공식 질문인 시대. 넷플릭스를 보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들어본 오리지널 콘텐츠는 있을 터. <옥자>를 시작으로 <킹덤>, 어떤 지표로 보나 역사상 가장 성공한 콘텐츠인 <오징어 게임>이나 <D.P.> 등은 점심시간에 저마다 꺼내는 화제의 소재가 되었다.


넷플릭스의 K-콘텐츠 사랑

DVD 대여 서비스로 시작한 넷플릭스. 넷플릭스의 테드 서랜도스(Ted Sarandos) 공동 최고 경영책임자(CEO)는 젊은 시절 DVD 대여점에서 일했다. 그때 접한 영화 <괴물>(2006)은 그가 봉준호 감독, 그리고 한국 영화를 제대로 인지하게 된 시발점이었다. 테드 서랜도스는 그때 <괴물> 영화 뒤에 붙은 봉준호 감독의 ‘디렉터스 코멘트’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긴 사간이 흐르고 흘러 두 사람은 <옥자>로 만나게 됐다.

넷플릭스의 K-콘텐츠에 대한 사랑은 각별하다. 넷플릭스는 향후 4년간 K-콘텐츠에 35억 달러(약 3조 3000억 원)에 달하는 투자 계획을 내비친 바 있다.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최고 경영책임자(CEO). 사진 제공=넷플릭스

22일 오전 광화문 인근 포시즌스 호텔에서 진행된 ‘넷플릭스와 한국 콘텐츠 이야기 간담회’에서는 넷플릭스의 K-콘텐츠를 향한 사랑의 이유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됐다.

이 자리에는 넷플릭스의 테드 서랜도스 CEO를 비롯해 김동한 넷플릭스 한국 콘텐츠 총괄 VP(부사장), 김민영 넷플릭스 아시아 태평양 지역 콘텐츠 총괄 VP 등 넷플릭스의 임원들과 임승용 용필름 대표(<20세기 소녀> 제작), 김지연 퍼스트맨스튜디오 대표(<오징어 게임 2> 제작), 변승민 클라이맥스 스튜디오 대표(<D.P.> 제작), 김수아 시작컴퍼니 대표(<솔로지옥2> 제작), 손승현 웨스트월드 대표(<스위트홈> 등 VFX) 홍성환 스캔라인VFX/아이라인 스튜디오 코리아 지사장(<블러드 레드 스카이> 등 VFX) 등 다양한 창작자들이 참석해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25년까지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5편 중 한 편이 신인 작가 혹은 감독의 작품이 될 것”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최고 경영책임자(CEO). 사진 제공=넷플릭스

넷플릭스는 한국의 차세대 재능에 주목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서랜도스 CEO를 비롯한 넷플릭스 관계자들은 향후 4년간 이어질 35억 달러에 달하는 투자가 비단 오리지널 콘텐츠의 양적•질적 확대에만 쓰이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

넷플릭스는 이 투자를 “한국 콘텐츠 생태계에 대한 투자”라고 칭했다. 넷플릭스는 한국의 신진 창작자들을 발굴하는 동시에 잠재력을 지닌 창작자들을 교육•육성할 계획이다. 넷플릭스의 서랜도스 CEO는 “2025년까지 오리지널 작품 5개 중 한 편은 신예 작가 혹은 감독의 작품이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실제로 현재 넷플릭스는 미래의 주역이 될 창작자들과 워크숍 등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넷플릭스의 자회사 스캔라인VFX/아이라인스튜디오는 한국에 아시아 최초의 특수효과 영화제작 시설을 위해 2027년까지 6년간 1억 달러(약 1,271억 원) 규모의 투자를 담보하기도 했다.


숏폼 전성시대? "중요한 것은 포맷이 아니라 이야기"

(왼쪽부터) 이성규 넷플릭스 한국 및 동남아시아·대만 프로덕션 총괄 시니어 디렉터,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최고 경영 책임자(CEO), 손승현 웨스트월드 대표, 홍성환 스캔라인VFX아이라인스튜디오 코리아 지사장. 사진 제공=넷플릭스

“젊은 세대는 쇼츠 영상이나 영화 요약본 등을 주로 보는데, 넷플릭스는 이들에게 어떤 돌파구를 가질 수 있나”라는 한 취재진의 질문에 서랜도스 CEO는 “중요한 것은 스토리”라며, “젊은 세대가 숏폼만 보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숏폼과 동시에) 미드폼과 롱폼 영상 역시 시청한다. 실제로, <기묘한 이야기>, <웬즈데이> 등이 나온 주말, 젊은 세대의 시청 시간이 길었다”라고 전했다. 그는 ‘프로페셔널한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아무리 숏폼 등의 짧은 콘텐츠가 유행하더라도 스토리의 힘은 여전히 유효한 것임을 지적했다.


K-콘텐츠가 하나의 코드로 작용하는 특수한 상황… 한국 콘텐츠의 경쟁력은

지난 17일, 브라질 상파울루에서는 넷플릭스의 글로벌 팬 행사 ‘Tudum(투둠)’이 열렸다. 독특한 것은, ‘한국관’이라는 섹션 아래 K-콘텐츠가 한데 모아져 있었던 것. 한국의 콘텐츠가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오징어 게임> 캡처.

한 나라의 콘텐츠가 그 나라에서 생산되었다는 이유만으로 한데 묶이는 현상은 세계 어디를 둘러봐도 희귀한 일임은 분명하다.

‘넷플릭스와 한국 콘텐츠 이야기’에서는 한국 콘텐츠의 성공 요인에 대한 대담 역시 진행되었다. 서랜도스 CEO는 “한국은 스토리텔링의 힘을 가진 나라다. 한국의 역사가 스토리에 반영된다. 패션, 음악, 음식, 스토리텔링이 한데 어우러져 아름다운 이야기 속에 묻어난다. 상업적으로도 훌륭할뿐더러, 크리에이티브하다. 또한 이야기의 공식이 없고, 예측 불가능하다. 이런 부분에서 글로벌 시청자들이 마음을 얻는 게 아닐까 싶다”라고 밝혔다.


한국 콘텐츠의 글로벌화 전략? 한국 시청자에게 사랑받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핵심

(왼쪽부터) 강동한 넷플릭스 한국 콘텐츠 총괄 VP,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최고 경영 책임자(CEO), 임승용 용필름 대표, 김지연 퍼스트맨스튜디오 대표, 변승민 클라이맥스 스튜디오 대표, 김수아 시작컴퍼니 대표. 사진 제공=넷플릭스

요즘은 처음부터 글로벌화에 염두를 두고 제작하는 콘텐츠가 많아진 실정이다. 간담회에서 넷플릭스의 서랜더스 CEO는 글로벌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국 시청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워낙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며 자란 한국의 시청자들은 그만큼 눈높이가 높아져 있고, 한국에서 성공하는 콘텐츠가 곧 글로벌한 콘텐츠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구가한 <오징어 게임>은 한국인만이 이해할 수 있는 코드가 여럿 심어져 있다. <오징어 게임>을 제작한 김지연 퍼스트맨스튜디오 대표는 “’제작자들 사이에서는 ‘모든 것이 넷플릭스로 몰린다’라는 얘기가 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해외로 나가야 한다’라는 아젠다에만 집중하면 안 된다”라고 전했다. 한국적인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가장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것. 김지연 대표는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시장으로 나갈 수 있는 플랫폼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제작자들에게 힘이 되는 부분이 있다”라고 덧붙이며, 지역(로컬)에서 성공을 거둔 콘텐츠는 자연스럽게 전 세계(글로벌)에서도 인기를 얻을 수 있을 것임을 강조했다.


넷플릭스가 바꾼 콘텐츠 생태계.. 방송사 단위가 아닌 스튜디오 단위로, 그리고 주당 제작에서 사전제작으로

많은 창작자들은 넷플릭스와의 협업이 좋은 이유로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라는 점을 꼽는다. 간담회 전날 진행된 ‘넷플릭스&박찬욱 with 미래의 영화인’ 행사에서 박찬욱 감독은 “넷플릭스가 좋은 지원을 약속해 줘서 즐겁게 일하고 있다”라며, “영화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라고 밝힌 바 있다. 박찬욱 감독은 넷플릭스와 <전, 란>의 각본 겸 제작자로서 작업하고 있다.

‘넷플릭스와 한국 콘텐츠 이야기’에 참석한 제작사들 역시 넷플릭스와의 작업 경험을 긍정적으로 회고했다. <솔로지옥>, <19/20>등을 제작한 시작컴퍼니의 김수아 대표는 “넷플릭스가 예능의 생태계를 바꿨다”라고 전했다. 김수아 대표는 “기존에는 방송사 단위로 제작됐던 예능이 이제는 스튜디오 단위가 되었다. 방송국이나 네트워크의 힘 없이도, 우리 시작컴퍼니처럼 (아이디어만 있으면) 프로그램을 스튜디오 단위로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라고 전했다. 또한 김수아 대표는 매주 제작되던 예능 프로그램이 사전 제작 형식으로 바뀌며, 기획 단계부터 다른 접근을 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왼쪽부터) 이성규 넷플릭스 한국 및 동남아시아·대만 프로덕션 총괄 시니어 디렉터,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최고 경영 책임자(CEO), 손승현 웨스트월드 대표, 홍성환 스캔라인VFX아이라인스튜디오 코리아 지사장. 사진 제공=넷플릭스

포스트 프로덕션 과정에서도 넷플릭스는 콘텐츠 제작의 흐름을 바꿨다. VFX의 발전은 좀비물, SF 등 장르물의 성공에 큰 기여를 한 일등공신이다. <스위트홈>, <지금 우리 학교는>, <택배기사>, <더 글로리> 등의 VFX를 담당한 웨스트월드의 손승현 대표는 “약 8개월가량의 프리프로덕션 기간이 있어 함께 사전에 필요한 기술을 준비하며 작품의 퀄리티를 높일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씨네플레이 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