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이 오면 심장이 쫄깃해지는 스릴러 영화가 제격이다. 영화 전문 웹사이트 ‘테이스트 오브 시네마(Taste Of Cinema)’는 2000년대의 가장 위대한 스릴러 영화를 선정해 순위를 매겼다. 눈에 띄는 건 4위에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2003), 3위에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2003)이 올랐다는 것. 그럼 도대체 1위는 어떤 영화일까? 10위부터 차근차근 알아보자.

(*'테이스트 오브 시네마'에서는 20위까지 선정했으나, 편의상 이곳에는 10위까지만 정리했다.)


10위. <디파티드>(2006)

<디파티드> 포스터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디파티드>(2006)는 홍콩 영화 <무간도>(2002)를 원작으로 한 영화다. 경찰의 스파이가 된 범죄 조직원을 연기한 유덕화의 역할은 맷 데이먼이, 범죄 조직의 스파이가 된 경찰을 연기한 양조위의 역할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했다.

<디파티드>는 몰입도 높은 범죄 서사시다. 테이스트 오브 시네마는 이 영화를 “마틴 스콜세지의 ‘베스트 히트 앨범’에 수록해야 할 작품”이라고 평했다. 유난히도 상과 인연이 없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제79회 오스카 시상식에서 <디파티드>로 감독상을 수상했다.


9위. <아메리칸 사이코>(2000)

<아메리칸 사이코> 포스터

영화가 나온 지 23년이 넘은 지금, 이 작품을 다시 본 시청자들은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일”이라는 감상을 남기곤 한다. 영화의 내용이 우리의 소소한 일상을 다룬 이야기라서가 아니다. 영화의 내용은 포스터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시피 그와는 정 반대다. 나르시시스트,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등의 특징을 모두 가진 주인공 패트릭(크리스찬 베일)이 저지르는 행위는 줄곧 수위가 높다.

<아메리칸 사이코>(2000)는 1980년대 미국의 모습을 풍자한 작품이다. 사회적•경제적으로 성공한 뉴욕의 상류층이 저지르는 잔혹한 살인은 설령 극단적으로 표현되었을지언정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 심리적 불안 등을 담아낸다. 테이스트 오브 시네마는 <아메리칸 사이코>를 “단순한 슬래셔 영화(살인마가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는 영화)라고만 봤다면, 다시 생각해 봐야 할 영화”라고 평했다.


8위. <도그빌>(2003)

<도그빌> 스틸컷

‘문제적 감독’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라스 폰 트리에. <브레이킹 더 웨이브>(1995), <어둠 속의 댄서>(2000) 등의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매번 논쟁적인 작품을 발표하는 감독이자, 관객마다 호불호가 강한 대표적인 감독으로 손꼽힌다. 그러나 <도그빌>(2003)은 그의 영화 중 상대적으로 호불호가 덜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의 형식은 독특하다. ‘도그빌’이라는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마을을 연극의 세트처럼 꾸몄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연극과 닮아 있다. <도그빌>의 이런 형식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더욱 서늘하게 내비친다. <도그빌>은 2003년 제56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이자, 제16회 유럽영화상에서 유러피안 감독상과 유러피안 촬영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큰 호평을 받았다.


7위. <메멘토>(2000)

<메멘토> 스틸컷

영화 <메멘토>(2000)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유난히도 ‘시간’의 속성에 관심을 기울이는 감독이다. 그의 초기작 <메멘토>에서도 크리스토퍼 놀란은 시간을 철저히 쪼개 시간의 역행, 순행을 교차시키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메멘토>는 10분만 기억할 수 있는 단기기억상실을 앓고 있는 한 남자가 아내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는 이야기다. 주인공 레너드(가이 피어스)는 중요한 단서를 기억하기 위해 폴라로이드와 메모, 문신 등을 사용해 복잡한 흔적을 따라간다. 주연을 맡은 가이 피어스는 이 작품으로 커리어의 정점을 맞았다.


6위. <히든>(2005)

<히든> 스틸컷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히든>(2005)은 한 중산층 지식인의 죄의식과 기억에 관한 영화이자, 프랑스의 식민지 지배 역사를 상기시키는 영화이자, 프랑스 내의 이민자 차별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는 한 부부가 누군가가 자신들을 관찰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전개된다. 누군가가 그들의 모습을 담은 비디오를 보내고, 범인만 찾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 믿었던 부부는 점차 과거의 잊혔던 기억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고, 점차 더 큰 악몽을 맞이한다.

<히든>은 2005년 칸 영화제에서 미하엘 하네케에게 감독상의 영예를 안긴 작품이기도 하다. 명실상부 칸이 사랑하는 감독이다.


5위. <조디악>(2007)

<조디악> 스틸컷

심리 스릴러, 저널리즘 영화, 범죄 영화를 촘촘히 넘나드는 데이빗 핀처의 걸작 <조디악>(2007)은 희대의 연쇄살인마 ‘조디악’을 모티브로 한다. 제이크 질렌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마크 러팔로 등 쟁쟁한 배우들이 펼치는 연기는 영화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실제사건을 다루고 사건을 쫓는 사람들의 시간을 다룬다는 점 때문에 (영화팬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할리우드판 <살인의 추억>'이라고 자주 언급되곤 한다.


4위. <살인의 추억>(2003)

<살인의 추억> 스틸컷

테이스트 오브 시네마는 봉준호 감독의 커리어가 탄탄해진 현재, 그의 초기작들을 다시금 보면 감회가 남다를 것이라고 제안한다. <살인의 추억>(2003)은 봉준호가 <기생충>(2019)으로 오스카를 수상하기 16년 전의 작품이지만, 봉 감독의 커리어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이라는 것이 매체의 설명.

매체에 따르면, <살인의 추억>은 “80년대에 한국을 공포에 떨게 했던 연쇄 살인범을 추적하는 과정을 담은 날것 같고, 거칠고, 어둡게 코믹한 영화”다. 본 사람들은 동의할 만한 꽤 정확한 요약이다.


3위. <올드보이>(2003)

<올드보이> 스틸컷

<올드보이>(2003)를 보지 않았더라도 한국인이라면 으레 군만두만을 먹고산 오대수를 알기 마련이다. 테이스트 오브 시네마는 3위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를 소개하며 ‘지난 20년 동안 전 세계의 모든 영화학교에서 <올드보이>의 원테이크 복도 싸움 장면(장도리 신)을 보여줬을 것’이라며 <올드보이>의 스포일러를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농담을 덧붙였다.


2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스틸컷

코엔 형제의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가 2위에 랭크되었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각색상, 감독상, 남우조연상(하비에르 바르뎀)을 수상한 명작이다.

영화는 텍사스의 황량한 사막에 널브러진 시체들 사이에서 우연히 돈 가방을 발견한 모스(조슈 브롤린)와 그를 추적하는 살인마 안톤 시거(하비에르 바르뎀), 사건을 맡은 보안관 벨(토미 리 존스)의 이야기를 담았다. 완성도도 훌륭하지만, 무엇보다 '안톤 시거'라는 희대의 캐릭터를 남기며 꾸준히 사랑 받고 있는 영화.


1위.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

<멀홀랜드 드라이브> 포스터

데이빗 린치 감독의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가 1위에 올랐다. 데이빗 린치는 ‘컬트 무비의 귀재’라고 불리는 감독인데, 스릴러 영화 중 그의 작품이 1위에 올랐다니, 조금 의아할 수도 있겠다. 다시 한번 이 리스트는 ‘테이스트 오브 시네마’ 지의 한 필자가 선정한 것임을 염두에 두자.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한번 보고는 도통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영화다. 테이스트 오브 시네마는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스릴러라고 부르건, 네오 누아르(1940~50년대 고전 필름 누아르의 요소를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한 장르 스타일)라고 부르건, 반-할리우드적 영화라고 부르건, 혹은 공식 설명에 있는 것처럼 ‘꿈의 도시에서 펼쳐지는 러브 스토리’라고 부르건 간에 이 영화는 유의미하다”라고 평했다.


씨네플레이 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