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순간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이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되는 음악이 있다. 라이언 고슬링과 엠마 스톤의 ‘City Of Stars’를 들으면 <라라랜드>(2016)의 LA 밤 하늘이, 신승훈의 ‘I Believe’를 들으면 <엽기적인 그녀>의 견우와 그녀가, 클래지콰이의 ‘She Is’를 들으면 <내 이름은 김삼순>의 김선아와 현빈이.
반대로, 어떤 음악은 OST로 시작했지만 작품보다 더 유명해진 경우도 있다. 그래서 모아봤다. “이게 OST였어?”라는 물음이 절로 나오는, 영화, 드라마보다 더 유명해진 곡.
휘성-Rain Drop
: 영화 <우리 집에 왜 왔니>(2009)
아이유의 리메이크 버전으로도 유명한 곡 ‘Rain Drop’. 휘성이 부른 원곡이 사실 영화의 OST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 <우리 집에 왜 왔니>(2009)는 21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큰 반응을 낳지는 못했다. 다만, 뒤늦게 이 영화를 접한 시청자들은 좋은 평을 남기고 있다.
<우리 집에 왜 왔니>는 뮤직비디오 감독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황수아 감독의 장편 영화 데뷔작이다. 영화는 자살 시도를 하는 병희(박희순) 앞에 노숙자 수강(강혜정)이 나타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배우 강혜정과 박희순이 연기한 캐릭터는 전형적이지 않고 개성이 넘쳐, 이들의 열연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영화를 볼 가치가 충분하다.
엘리 굴딩(Ellie Goulding)-Love Me Like You Do
: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2015)
영화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이 화려한 영화를 꼽으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꼽을 것. 이 영화의 OST에 참여한 아티스트는 무려 위켄드, 비욘세, 시아, 롤링 스톤스, 프랭크 시나트라 등이다. 그중 엘리 굴딩의 ‘Love Me Like You Do’는 엘리 굴딩 본인의 커리어에서도 최고점을 찍은 곡이자, 우리나라의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진 히트곡이 되었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음악 감독은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대니 엘프만이다. 그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등의 블록버스터 영화는 물론, <찰리와 초콜릿 공장> 등의 팀 버튼 영화를 다수 작업한 바 있다. 그가 영화음악을 시작하게 된 것 역시 팀 버튼이 자신의 영화 <피위의 대모험>(1985)의 음악을 의뢰하면서부터였다고.
나윤권-나였으면
: 드라마 <황태자의 첫사랑>
가수 나윤권의 메가 히트곡이자 현재도 노래방 차트 순위에 있는 전설의 그 곡, ‘나였으면’ 역시 OST다. 2004년에 방영한 MBC 드라마 <황태자의 첫사랑>은 차태현과 성유리가 주연을 맡았지만, 저조한 반응으로 인해 조기종영의 아픔을 겪은 작품이다.
드라마는 리조트 회장의 아들 최건희(차태현)와 리조트 직원 김유빈(성유리)의 사랑을 그려냈는데, 해외 리조트를 배경으로 한 덕분에 일본 삿포로, 발리, 남태평양의 타히티 등의 풍경이 아름답게 담겨 있다. 무더운 여름, 시원한 바다를 보고 싶다면 제격이다.
이승철–말리꽃: 영화 <비천무>(2000)
이승철-서쪽 하늘: 영화 <청연>(2005)
한때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가수 이승철은 그만큼 많은 OST를 불렀다. 잘 알려진 곡으로는 2004년 MBC 드라마 <불새>의 OST ‘인연’, 영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2009)의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등. 이승철을 잘 모르는 사람도, 반주가 나오면 따라 부를 수 있는 주옥같은 히트곡들이 많다.
이승철의 또 다른 히트곡, ‘서쪽 하늘’과 ‘말리꽃’ 역시 영화의 OST인데, 작품보다 OST가 더 많은 인기를 누렸다.
영화 <비천무>(2000)는 흔치 않은 한국 무협 영화로, 당시 한국 영화 사상 최고의 제작비, 약 40억 원을 들인 영화다. 영화에는 배우 신현준과 김희선, 정진영 등이 출연했고, 작품 역시 흥행에는 성공했으나, 평은 엇갈렸다. 현재로서는 영화 <비천무>보다 이승철의 ‘말리꽃’이 더 유명해지게 된 셈.
이승철의 ‘서쪽 하늘’을 남긴 영화 <청연>(2005)은 故 장진영과 故 김주혁이 주연을 맡은 작품으로, 우리나라 최초 여성 비행사 ‘박경원’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단순히 영화적인 완성도와 재미,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로만 보면 훌륭한 작품임이 틀림없지만, <청연>은 개봉 당시 영화의 모티프가 된 실존 인물 ‘박경원’의 친일 행적이 도마에 오르며 불매운동이 일었다.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Happy
: 영화 <슈퍼배드 2>(2013)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곡, ‘Happy’. 물론, <슈퍼배드> 시리즈의 미니언즈도 유명하지만, 퍼렐 윌리엄스의 ‘Happy’는 영화와는 별개로 큰 히트를 쳤다. <슈퍼배드 2> OST 앨범의 수록된 ‘Happy’가 소위 ‘대박’을 친 나머지, <슈퍼배드 3>에서는 OST 앨범의 16곡 중 9곡을 퍼렐 윌리엄스가 채웠다.
로꼬, 유주–우연히 봄
: SBS 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
'벚꽃 엔딩', '봄봄봄', '봄 사랑 벚꽃 말고', '봄인가 봐' 등.. 봄이면 생각나는 노래 리스트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곡, ‘우연히 봄’. 매년 봄이면 다시 차트에 오르는 덕분에, 드라마보다도 더욱 흥행한 OST가 되었다.
‘우연히 봄’에서의 ‘봄’은 계절 봄과 ‘보다’라는 뜻의 중의적인 표현이다. <냄새를 보는 소녀>는 냄새를 눈으로 볼 수 있는 한 여자(신세경)와 무감각한 한 남자(박유천)이 그려내는 로맨틱 코미디, 미스터리 서스펜스 드라마다.
폴킴-모든 날, 모든 순간
: SBS 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
가수 폴킴의 노래 중 하나만 꼽으라고 하면 ‘너를 만나’ 혹은 이 노래이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숱하게 커버한 ‘모든 날, 모든 순간’은 SBS 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의 OST다.
<키스 먼저 할까요?>는 ‘리얼 어른 멜로’를 표방하는 작품으로, 40대에 들어선 두 사람의 중년 로맨스를 그려냈다. 드라마에서 주연으로 활약한 감우성과 김선아는 2018년 SBS 연기대상을 공동 수상하는 등 배우들의 연기력과 작품성은 인정받았지만, 시청률과 화제성은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악뮤(AKMU, 악동뮤지션)-I Love You
: SBS 드라마 <내 연애의 모든 것>
‘I Love You’는 2013년에 방영된 SBS 드라마 <내 연애의 모든 것> OST로, 악뮤의 자작곡이다. <내 연애의 모든 것>은 정치적 신념이 다른 두 정당의 국회위원들이 비밀 연애를 한다는, 다소 독특한 소재의 로맨틱 코미디다. 배우 신하균과 이민정이 주연을 맡았음에도 불구, 드라마의 성적은 다소 아쉬웠지만 웰메이드 드라마라는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장범준-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진거야
: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
작품보다 유명한 OST의 대명사와도 같은 곡, ‘흔꽃샴’(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진거야). 장범준이 작사, 작곡한 OST 곡이다. <멜로가 체질> 드라마 내에서는 이 곡이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곡이라는 설정이다. 결국 OST가 발매된 후, 현실에서도 모두가 따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유명한 곡이 되었으니, 드라마의 설정이 현실화된 셈.
정작 드라마는 1%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반응은 미미했지만, 이병헌 감독의 독특한 연출 스타일로 인해 많은 마니아를 낳았다.
씨네플레이 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