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한 편의 영화가 삼라만상의 이치를 모두 담을 수 있을까? 이 명제는 아무리 봐도 터무니없게 느껴진다. 마치 하늘의 권위에 도달하기 위해 꼭대기를 높게 쌓으려 노력했던 성경 속 바벨탑을 지으려는 시도처럼, 끝내 성공하지 못할 영화에 도전하는 셈이다. 하지만 영화감독 고드프리 레지오와 촬영감독 론 프릭크 만큼은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1982년 세상에 공개된 다큐멘터리 <코야니스카시>는 86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을 총 14장으로 나누어 대자연으로부터 현대 기술이 집약된 도시의 문명까지 인간을 둘러싼 지구의 모습을 전부 다루려고 노력했다. 흔한 나레이션과 대사 하나 없이 독특한 촬영기법으로 불가능한 영화를 만들려고 했던 이들의 작품은 컬트적인 인기를 끌며 지금까지도 대중문화에서 회자되고 있다.
지난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의 ‘시네필 전주’ 섹션 중 하버드필름아카이브(HFA)의 헤이든 게스트 원장을 초대하여 한 차례 상영한 적 있는 영화 <코야니스카시>는 이후 35mm 필름 프린트를 한국영상자료원에 기증되었다. 그리고 이번 7월, 드디어 서울에 있는 관객들에게도 무모한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 이 전설적인 작품을 볼 기회가 생겼다. 한국영상자료원의 7월 디렉터스 초이스 프로그램이 바로 <코야니스카시> 35mm 필름 상영이기 때문이다. 이미 7월 1일 한 차례 상영을 완료한 이번 프로그램은 7월 7일 김홍준 한국영상자료원장, 유운성 평론가와 함께하는 대담과 함께 다시 한번 상영할 예정이다. 영화를 보기에 앞서 이 기묘한 작품에 대한 뒷이야기들을 한번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균형 잃은 인간을 다룬 대서사시
영화의 제목인 <코야니스카시>는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단어일 것이다. ‘Koyaanisqatsi’라고 표기되는 이 정체불명의 단어는 미국 애리조나주에 거주 중인 아메리카 원주민인 호피족의 언어 호피어에서 비롯되었다. ‘균형 잃은 삶’이란 뜻을 의미하는 코야니스카시는 곧 영화의 주제와 직결된다. <코야니스카시>는 어떤 서사가 존재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흥미로운 대상을 조명하거나, 사회 현상의 인과 관계를 집요하게 탐구하거나, 어떤 문제를 강경하게 고발하거나, 묵묵히 시간의 흐름을 관조하는 영화도 아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코야니스카시>는 마치 신의 위치에 서서 문명의 발전으로 자연을 수탈하다 못해 끝내 자멸하는 인간들을 여러 각도로 목도하고 있다. 때문에 <코야니스카시>는 흐름을 읽어내는 영화라기보다는 균형을 잃고 헤매는 문명과 자연의 이미지를 경험하는 작품에 가깝다. 이는 당신이 직접 스크린 위에서 이 작품을 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관객들을 압도하는 촬영 기법
<코야니스카시>가 경험해야 하는 영화인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객석을 압도하는 촬영 기법 때문이다. 슬로우 모션과 타임랩스를 넘나들면서 빠르게 변화하는 인간의 문명사와 한없이 정교하고 느리게 흘러가는 대자연의 모습을 대조시킨다. 모든 것을 우러러보면서 동시에 자그마한 생물의 태동마저 느낄 수 있는 신의 관점처럼 극단적인 클로즈업과 롱 쇼트(특히 항공 숏)를 활용하여 세상의 모든 만물을 바라보려 한다. 다큐멘터리 감독으로도 유명한 론 프릭크가 촬영감독을 맡아 다룬 세상의 삼라만상은 마치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는 착각과 문명의 이기로 몰락하는 인류의 자화상을 함께 보여주게 된다. 독특한 리듬과 다양한 크기의 이미지로 이루어진 <코야니스카시>의 촬영 기법은 경이로움을 불러일으킨다.
현대음악의 거장 필립 글래스의 터치
<코야니스카시>가 전설적인 작품이 될 수 있는 데에는 음악의 덕이 매우 컸다. <코야니스카시>의 영화 음악은 현대음악계의 거장 필립 글래스가 참여했다. 미니멀리즘으로 대두되는 그의 음악 세계가 맥시멀리즘에 가까운 <코야니스카시>의 영화 세계와 맞닿으면서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했다. 영화의 서두에서 고대의 벽화와 함께 코야니스카시라는 말만을 되풀이하는 OST 스코어의 첫 곡은 영화가 지닌 기묘하고 신비한 느낌을 강화한다. 마치 선사시대 원시인들의 제의 의식을 연상하게 만드는 노래가 지나가면, 필립 글래스의 미니멀리즘에 가까운 음악이 도시의 분주하고 반복되는 움직임 너머로 흐른다. 미니멀리즘 사조를 두고 필립 글래스는 ‘반복되는 구조’라는 개념을 강조한 만큼, 분주하고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공허한 감정이 웃도는 <코야니스카시>에서 보이는 기계적인 도시의 모습은 오로지 하나의 동기만을 반복적으로 연주하는 필립 글래스의 음악과 빼어난 조화를 보인다.
<코야니스카시>를 제작하게 도와준 귀인
사실 <코야니스카시>는 신참 감독 고드프리 레지오의 데뷔작이었다. 해당 분야의 거장들이 모두 모여 진행한 방대한 프로젝트의 조타수가 42세의 신입 감독이라는 점이 놀라운가?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을 찾아본다면 모든 의문이 풀릴 것이다. 바로 <대부> 트릴로지로 유명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코야니스카시>의 이 작품의 큰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당시 고드프리 레지오는 MGM의 포스트 프로덕션을 담당하는 사무엘 골드윈 스튜디오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우연한 계기로 코폴라와 만나 <코야니스카시>의 가편집본을 보여주게 되었다. 코폴라는 이 작품을 시사한 뒤 ‘사람들이 무조건 보아야 할 작품’이라고 평하며 작품의 배급과 제공에 큰 도움을 주게 된다. 작품의 가치를 알아본 코폴라가 적극적으로 <코야니스카시>의 제작에 힘을 쓰면서, 영화는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다.
영구 보존될 가치를 인정받은 영화, 대중문화에도 영향을 끼치다
미국 의회도서관은 1989년부터 매년 12월 중반 도서관에서 영구 보존할 영화들을 25편씩 선정한다. 작품 선정의 기준은 “문화적, 역사적, 미학적으로 중요한 작품”이다. <코야니스카시>는 1982년 개봉 이후 18년 만인 2000년이 되어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미국 의회도서관에 영구 보존되었다. 화려함을 자랑하는 론 프릭크의 촬영기법과 현대음악의 대부인 필립 글래스가 함께 참여한 <코야니스카시>의 가치를 널리 인정받게 된 것이다. 이런 <코야니스카시>의 명성은 대중문화에서도 하나의 아이콘처럼 사용되기도 했다. 게임 GTA와 잭 스나이더의 영화 <왓치맨>에서는 필립 글래스가 작곡한 <코야니스카시>의 OST들이 삽입되었고, <심슨가족>에서는 두 번의 에피소드에서 레퍼런스로 사용되며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다. 물론 <코야니스카시>가 내포한 인류의 붕괴에 대한 내용과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사용되었지만, 대중문화에서 이 다큐멘터리를 인용한다는 것 자체가 현대 문화에 있어서 이 작품이 주는 영향이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코야니스카시>의 35mm 필름 상영은 디지털미디어시티역 근처에 있는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이뤄진다. 이미 7월 1일 한 차례 상영을 완료했으며, 7월 7일에는 영화를 둘러싼 특별한 GV가 진행될 예정이다. 자세한 내용은 공식 사이트에 직접 방문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씨네플레이 최현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