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이목구비와 금발, 할리퀸, 살아있는 바비 인형. 마고 로비를 수식하는 말들. 그러나 매력적인 외모에 대한 수식어는 마고 로비를 설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물론, 훌륭한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마고 로비는 배우로서의 활동 못지않게 제작자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인물이다.
마고 로비는 한때 ‘마틴 스콜세지가 발견한 최고의 금발 미녀’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는 마틴 스콜세지가 연출한 영화 <더 울프 오브 더 월 스트리트>(2013)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상대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 하지만 ‘금발 미녀’라는 단순한 칭호로 인해서일까, 그는 미녀 캐릭터의 전형성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웠다. 마고 로비는 한 인터뷰에서 “나에게 온 영화 대본을 읽을 때마다 늘 남자 캐릭터를 맡아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제안받은 여자 캐릭터의 매력을 못 느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개성 있는 여성 캐릭터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제작사를 설립
왜 매력 있는 여성 캐릭터가 적을까? 그래서 마고 로비는 직접 제작사를 차려, 자신이 원하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마고 로비는 2014년, 지인들과 함께 럭키챕 엔터테인먼트(LuckyChap Entertainment)를 설립했다. 공동 설립자 중 한 명인 톰 애커리는 현재 마고 로비의 남편이기도 하다.
럭키챕 엔터테인먼트(LuckyChap Entertainment)는 진정성 있는 여성 서사가 담긴 영화와 시리즈를 제작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실제로 럭키챕 엔터테인먼트는 비평가로부터 호평을 받고,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영화나 드라마를 다수 제작하고 있다.
럭키챕 엔터테인먼트의 첫 제작 작품, <아이, 토냐>(2017)
‘금발의 예쁜 미녀 역할’은 대개 관람객들에게 하나의 감정만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제작사 럭키챕 엔터테인먼트가 지향하는 길은 그들이 선택한 첫 제작 영화를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다면적이고, 선과 악이 분명하지 않고, 때로는 연민 혹은 비난을 부르고, 얄밉기도 하고 짠하기도 한,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여성 캐릭터가 이끄는 이야기. 그들의 첫 번째 영화는 <아이, 토냐>(2017)였다.
<아이, 토냐>는 흔히 ‘악녀’라고 불리던 피겨스케이팅 선수, 토냐 하딩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한다. 마고 로비는 이 영화의 주연과 제작을 겸했다. 사실은, 논란이 많은 실존 여성을 영화화한다는 것 자체가 무모하리만큼 도전적인 시도 아니었을까. 하지만 영화는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럭키챕 엔터테인먼트는 순항하기에 이른다. 이 영화를 통해 제작자로서의 마고 로비의 모험적인 시도, 그리고 배우로서 토냐 하딩을 입체적으로 연기한 마고 로비의 연기력이 빛을 발했다.
시상식 휩쓴 작품까지 배출! <프라미싱 영 우먼>(2020)
배우가 아닌 제작자로서의 마고 로비의 역량은 <프라미싱 영 우먼>(2020)으로 정점을 맞았다. <프라미싱 영 우먼>은 마고 로비가 제작에 참여했지만 이례적으로 마고 로비가 출연하지 않은 영화다.
<프라미싱 영 우먼>은 각종 시상식에서 다수의 상을 안기며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이 영화는 2021년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수상했으며,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편집상 후보로 올랐다.
‘프라미싱 영 우먼(promising young woman)’은 ‘전도유망한 여성’이라는 뜻인데, 흔히 성폭력 가해자를 ‘전도유망한 남성(promising young man)’이라고 칭하며 두둔하는 행위에 대한 패러디다. 한편, <프라미싱 영 우먼>은 정말로 전도유망한 여성들이 영화에 큰 공헌을 했다. 주인공 ‘카산드라’를 연기한 캐리 멀리건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연출과 각본을 맡은 에머랄드 펜넬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다.
성범죄를 다룬 영화는 많지만, <프라미싱 영 우먼>은 여타 성폭력 소재 영화와는 차별화되는 지점이 분명하다. 피해자의 시점이 아닌 주변인의 시점으로 영화가 전개된다는 것, 그리고 피해 장면이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성범죄 가해자를 단지 '악마'로만 그리지 않는다는 것 등이 그 예다.
드라마까지 제작..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조용한 희망>(Maid)
마고 로비는 시리즈 제작에도 뛰어들었다. 하지만 영화건 시리즈건, 여성이 중심이 된 작품을 제작하고자 하는 원칙은 변함이 없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조용한 희망>은 출장 청소부로 일하는 싱글맘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한편, 이 드라마는 스테파니 랜드의 회고록을 원작으로 한다.
드라마가 싱글맘의 가난과 고통만을 조명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주인공이 처한 현실은 분명 객관적으로 보면 매우 비극적이지만, 드라마는 극적이지 않고 오히려 담백한 편이다. 작품의 한국어 제목처럼, ‘조용한 희망’을 향해 묵묵하고 잔잔하게 나아가는 여성의 여정을 그려내는 일. 그게 바로 마고 로비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단지 바비 인형만은 아닌, 영화 <바비>(2023)
그리고 마침내, 영화 <바비>(2023)다. 마고 로비는 영화의 주연을 맡았을 뿐만 아니라 제작에도 참여했다. 다만, <바비>를 장난감 바비가 실사화된 핑크빛 영화라고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영화에도 역시 여성 창작자들이 참여했다. 감독과 각본은 <레이디 버드>, <작은 아씨들> 등의 그레타 거윅이 맡았다.
그러나 그레타 거윅 역시 처음부터 <바비>를 연출하겠다고 나선 건 아니다. 오히려 처음에는 ‘바비 인형’이 가진 전형성 때문에 마고 로비의 제안을 수락하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고.
영화 <바비>는 원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바비랜드’에서 살아가던 ‘바비’(마고 로비)가 현실 세계와 이어진 포털의 균열을 발견하게 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켄’(라이언 고슬링)과 예기치 못한 여정을 떠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전형적인 바비’ 역을 맡은 배우이자 <바비>의 제작자인 마고 로비는 3일 진행된 내한 기자회견에서 “상상의 여성상은 실제 여성의 삶과 연결돼 우리의 엄마, 동료가 된다. 그런데 인형은 살아있는 여성이 아니다. 모든 것이 완벽할 수 없다. 이 영화를 통해 생각할 거리를 던지고 싶었다. 바비를 싫어하는 사람을 포함해 모두가 의견을 내는 영화가 되길 바랐다”라고 전했다. 더불어 <바비>에서 ‘글로리아’를 연기한 아메리카 페레라는 “(영화는) 현실과 가상의 세계에서 여성이란 어떤 의미인가를 다루고 있다”라고 밝혔다.
‘바비 인형’의 전형성과 이상적인 여성상에 균열을 낼 것으로 기대되는 영화 <바비>는 올 7월 중 개봉한다.
씨네플레이 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