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전기> 포스터. 사진 제공=블루필름웍스

군산이라는 도시를 ‘도시재생’ 측면에서 조명한 다큐멘터리 <군산전기>(감독 문승욱·유예진)이 7월 6일 개봉했다. 군산은 1899년 개항 당시 한국인 509명, 일본인 77명이 살았던 작은 어촌 마을로, 일제강점기 시절 쌀 수탈을 위해 개항되며 전국의 이방인들이 모인 국내 최초 계획도시다. 해방 후에는 미군의 주둔과 원조물자로 기회의 땅이 된 군산은 이후 부흥과 쇠락을 거듭했다. 2013년 경기 침체, GM대우 자동차공장 폐쇄 등으로 인구는 급감하고 있다. 오랫동안 방치된 군산의 구도심은 몰락의 상징처럼 보인다.

하지만 소멸해가는 군산의 여러 공간을 다채롭게 채우는 이들이 있다. 젊은 예술인들. 사진작가, 건축가, 문화 사업가, 도시재생 시민단체 등의 활동은 들은 군산 구도심을 유기적인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며 오늘날 군산을 문화도시로 만드는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문화적인 접근이 도시 재생에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이들이 채워넣는 다양한 활동이 군산이라는 도시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군산전기>는 우치국립영화학교의 첫 한국인 유학생 출신의 문승욱 감독과 유예진 감독이 공동연출했다. 문승욱·유예진 감독은 “군산이라는 도시가 하나의 캐릭터로 다가왔다. 군산을 고향으로 두지 않고 타지에서 온 대부분의 사람들을 보면서 모순적이고, 낭만적이고, 다채로운 한 인간의 모습이 떠올랐다”라고 말한 바 있다. 늘 이방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그가 발견한 것들을 카메라에 담아온 문승욱 감독의 <군산전기>는 어쩌면 문화지역을 보존한 타임머신 같은 존재가 될 지도 모르겠다. 문 감독을 만난 날, 춘천에서 망대를 철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전작 <망대>(2015)가 개봉한지 8년이 지나서야 이룬 쾌거였다. 과연 <군산전기>는 군산에 또 어떤 변화를 불러올까? 문승욱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군산전기> 문승욱 감독. 사진 제공=블루필름웍스

짧은 오프닝이 강렬합니다. 여성 외국인 무용가가 모자이크 같은 화면들 위에서 춤을 추죠. 어떻게 떠올린 아이디어인지, 관객들에게 어떤 이미지 또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안무가 안나 안데렉(Anna Andergg)을 등장시킨 건 군산이라는 도시가 거기서 오랫동안 살았던 사람이 만든 도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어요. 군산은 20세기 초반 일본이 쌀 수탈을 위해 임의적으로 만든 계획도시였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주민의 90%가 타지인이죠. 그래서 이방인의 도시라는 상징성을 살리도록 외국인을 처음에 등장시켜서 도시의 정체성을 알리고 싶었어요. 또한 안나 안데렉이 멀티화면을 배경으로 춤을 추는데요, 이 역시 군산의 역사를 집약해서 보여주는 역사관이 배경입니다.

스위스의 안무가이자 무용가인 안나 안데렉(Anna Anderegg)은 한국과 2021년 광주비엔날레에도 참여했더군요. 어떻게 섭외하셨는지, 또 감독으로서 어떤 주문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안나 안데렉은 우리에게 생소한 안무가죠. 건축과 환경을 주제로 춤을 추는 전위예술 무용가입니다. 건축가들과도 종종 협업하고, 실험영화에도 많이 출연하는. 스위스에서는 이름 있는 무용가에요. ‘자연, 환경, 인간’을 주제로만 춤을 추는 안무가이자, 몸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종의 환경운동가라고도 할 수 있어요.

전시회에서 안나를 만나 군산에 대한 이야기를 했더니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 멸망해가는 한 도시를 좀 슬픈 시선으로 바라보는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는데, 당신이 몸으로 그 슬픔을 대신 표현해줄 수 있겠느냐고 요청했어요. 군산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화려한 몸짓은 아니지만, 안나의 몸짓을 통해 우리가 군산이라는 도시의 소멸을 굉장히 슬프게 바라보고 있다는 점을 표현하고 싶다고요.

춤으로 <군산전기>의 한 축을 담당한 스위스 안무가 안나 안데렉. 사진 제공=블루필름웍스

<군산전기>를 보면 군산이라는 도시의 흥망성쇠를 담고 있는 거 같습니다. 1899년 개항, 일제강점기, 미군부대 주둔기, 대우자동차 부도 등 일련의 사건과 시간들을 보면요. 도시라기보다는 살아있는 사람? 또는 캐릭터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감독님께서도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만드셨나요? 그렇다면 어떻게 영화에서 사람 또는 캐릭터처럼 보이도록 구현하려고 하셨는지 사용한 장치들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사실 도시를 예술적 다큐멘터리로 만드는 모든 연출가의 꿈은 그 도시가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거예요. 기자님께도 일정 정도 그렇게 보였다면 만든 사람으로 대단히 기쁘고요. 영화에 한 인터뷰이가 군산을 이렇게 말해요. 전성기가 지나간 복서라고요. 다시 재기를 꿈꾸는. 이미 중년이 넘어서 누가 봐도 재기가 불가능한데,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는 느낌이랄까요? 과거 한 때 잘 나갔던 복서의 느낌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저 역시 그런 느낌으로 찍었습니다. 동의하는 지점이고요. 그런데 군산이라는 도시가 인구 수가 줄면서 겉으로는 사라져가는 도시는 맞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방치하고, 개발하지 않는 면이 오히려 지금의 군산을 살리는 요인인 거 같기도 합니다.

도시를 개발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군산을 살리고 있다고요?

한국의 토목개발사업과 관련이 있는데요. 국토를 개발하는 과정을 보면, 결국 과거의 기억이나 역사를 지우는 일들이 벌어지잖아요. 다 무너뜨리고 새롭게 뭔가를 건설하는 일이니까요. 군산은 그런 특혜를 받지 않다 보니, 오히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공간이 되었다는 거죠. 그점이 제가 군산을 좋아하게 된 이유였던 거 같아요. 처음 군산을 가 보고, '와, 이렇게 영화적인 공간이 우리나라에 있었네' 하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카메라만 들어도 뭔가 사연이 있을 듯한 공간이었던 거죠. 유럽에 가면 늘 부럽던 게 바로 그런 점이었는데 말이죠. 참 인상적이었어요. 아무도 관심이 없는 버려진 땅이었다면, 그렇지 않았겠죠. 벌써 아파트가 들어섰을 테고요. 한물 간 복서의 애잔함이 마음에 들었던 겁니다.

<군산전기> 스틸컷. 사진 제공=블루필름웍스

<군산전기>는 ‘도시재생’ 측면에서 접근하는 영화입니다. 다큐멘터리 제작에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군산이라는 도시를 알게 된 계기가 있어요. 영화에도 나오는 송선진 파라디소 기획가가 ‘리터닝’이라는 예술전시회를 열었는데요. 주제가 과거 군산에 살다가 타지로 떠난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희망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영상 전시로 참여하면서 군산을 접했는데, 너무 좋았어요.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한국 같지 않은 정취가 너무 좋았거든요.

그래서 군산이란 도시를 좀 알아봤죠. 이방인의 도시더라고요. 지역색이 거의 없고, 타지에서 온 사람들이 부유하면서 만든 도시에요. 너무 영화적인 도시인 거죠. 마치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나 미국의 뉴욕 같은 느낌이랄까요? 타지인들이 만든 도시. 너무 재미있잖아요. 그래서 군산이 더 알고 싶었어요. 시간이 날 때마다 오면서 점점 더 군산의 매력에 빠졌고, 그렇게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한 거죠. 오랫동안 함께 작업했던 유예진 감독에게 소개했을 때도 정말 좋아했고요.

본격적으로 도시재생에 대해 고민하시면서 군산의 어느 지역에 가장 집중하게 되셨나요?

겉으로는 도시가 망해가고 있는데, 특히나 속도가 빠른 곳이 구도심이었어요. 가치가 없는 지역으로 평가되어서 아무도 손을 대지 않죠. 100년 된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더라고요. 물론 관리가 안 되어서 엉망이긴 하지만요. 그런데 또 그걸 손을 대서 망가뜨리는 것보다는 낫겠더라고요. 앞서 말씀드린 리터닝 전시회 주제처럼요.

서울 같은 타지에서 환멸을 느낀 예술가들이 모여들었고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에서 영감을 얻고 싶은 예술가들도 모였어요. 그렇게 군산 구도심에 묘한 커뮤니티가 형성되었죠. 영화에서도 일부 나옵니다. 서울에서 살던 활동가가 군산으로 내려오기도 하고, 재즈 연주자가 군산에 정착하기도 하고요. 이것이 결국 자연스러운 도시재생의 하나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죠. 물론 눈에 확 띈다거나, 수치적으로 확 느는 건 아니지만, 오래도록 도시를 다시 살릴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거죠. 물론 큰 기업이 들어오면 도시가 살아나죠. 일시적으로요. 그래도 도시재생의 진정한 방향 중 하나는 공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문화로 발전시키는 것이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군산전기> 스틸컷. 사진 제공=블루필름웍스

실제 촬영에서 맞닥뜨린 군산의 속살과 감독님이 예상하셨던 부분에서 괴리는 없었나요?

애초에 기대하지 않아서 괴리감 같은 건 없었어요. 다만 생각보다 빨리 사람이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죠. 속도가 굉장히 빠르구나 하는. 그런 이유 중에 새만금도 한 부분인 거 같아요. 도시 분위기가 뭐랄까요, 붕 떠있다고 해야 할까? 예전에 GM대우가 군산에 자리를 잡았을 때 북적거렸는데 결국 떠나고 나서, 새만금간척사업으로 뭔가 기대를 하는 거 같아요. 그런데 신기루 같은 느낌이 있잖아요. 젊은 사람들이 큰 기대를 갖지 않고 군산을 떠난 이유기도 하죠. 남은 사람들 중에는 그래도 한 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약간 도박 같은 분위기도 느껴졌어요.

이건 영화를 보다가 우연히 발견한 건데요. 바둑판 같은 군산 구도심을 부감으로 보여주는 장면에서 차가 거꾸로 가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구도심도 나중에 보여줍니다. 이렇게 구성한 이유가 있을까요?

정상으로 돌리니까 그게 바둑판처럼 안 보이더라고요(웃음).

<군산전기>는 군산이라는 도시의 일대기를 담았지만, 어쩌면 서울 중심 또는 메가수도권시티 시대에 점차 소멸해가는 모든 지방 도시의 이야기를 대변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독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일정 정도 동의해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권위적인, 자본주의적인 국토개발의 광풍에 휩싸이지 않은 도시들은 다 군산처럼 비슷한 처지에 있지 않을까요. 이미 광풍이 휩쓸고 간 곳은 사라지고 없겠죠. 다행히 가치가 없다는 평가를 받고 버려진 도시가 오히려 더 보석 같은 곳이 된 게 아닐까 싶어요.

<군산전기> 스틸컷. 사진 제공=블루필름웍스

영화를 보고 나면 자연스레 ‘도시재생’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군산으로 이사 온 음악가, 문화기획자들도 있고요.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죠. 이른바 폐건물을 활용한 미술 전시회나 힙한 전통시장, 재즈바, 공연 같은 것들이요. 서울 같은 대도시의 숨 가쁜 일상에서 벗어나서요. 그런데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니, 조금 조심스럽습니다만, 궁금한 게 생기더라고요. 과연 문화로 도시재생이 가능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랄까요? 회의감이 들더라고요. 군산이 가장 번성했던 시기 역시 경제적인 부분이 뒷받침되었던 시기이기도 하니까요. 물론 영화에서 ‘도시재생은 젊은 사람들이 살고 싶은 동네로 만드는 것’이란 이야기가 나오긴 합니다만.

<군산전기>라는 영화는 제가 도시재생 시민 활동을 오래 해서 만든 영화가 아니에요. 저는 도시가 영화적이었기에 군산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다음에 쭉 군산이라는 도시를 파다 보니 도시재생이라는 주제가 나온 겁니다. 그런 관점에서 제 개인적인 생각은, 도시의 문화가 튼튼하다면, 어떤 자본주의적인 바람이 지나가거나 머물거나, 광풍이 불더라도, 뭔가 순기능을 해낼 수 있겠다는 거예요. 물론 문화와 자본이 만나면 더 활짝 꽃이 피겠죠. 그런데 문화가 없는 지역에 자본주의 광풍이 불면 도박처럼 되는 거죠. 마치 라스베가스처럼요. 자본이 투입되는 순간 확 꽃을 피웠다가, 광풍이 지나가고 나면 초토화되는 거죠.

문화가 존재한다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겁니다. 문화와 자본 중에 뭐가 먼저냐고 묻는다면 저는 문화가 먼저라고 봅니다. 대기업이 들어와서 거대한 문화예술회관을 건설한다고 해서 문화가 발달한다고 보지 않아요. 자생적으로 발달할 수 있는 문화적 토양을 기르는 것이 중요한데요. 그건 사실 정책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다고 봅니다. 사실 문화예술인 스스로가 발견해야죠. 정책적으로는 방해하지 않고 은근히 도와주는 센스가 필요한 거죠. 젠트리피케이션과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문화, 예술이 돈이 된다 싶으면 자본이 들어와서 그 공간을 망가뜨리는 거죠. 새록새록 재미를 갖춰가고 있는 토양을요.

군산에 내려가신 지 1년 정도 되신 건데요. 말씀하신 문화적 토양은 좀 자리를 잡아가나요?

좋은 예술가들이 많아요. 영화에도 나오는 송성진 기획가는 구도심에서 자란 분이에요. 군산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 토속 자본을 가져와 문화공간을 만들려고 하는 거죠. 그런 움직임도 보이고, 다양한 음식 문화를 실험하려는 젊은 분들도 있죠. 음악가, 사진가도 군산에 와서 작업을 합니다. 최근에는 소설가 황석영 선생님도 오셨어요. 아마 모두 저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것 같아요. 서울, 경기도 출신 예술가들이 대도시에 실증나서 지방으로 온 거니까요. 사실 지방은 피해의식이 좀 있잖아요. 모든 걸 다 빼앗겼다,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걸 서울 사람들이 빼앗아 간다는? 그런데 군산은 좀 그런 면들이 덜 한 거 같기도 하고요.

<군산전기> 스틸컷. 사진 제공=블루필름웍스

군산이 이방인의 도시라 그런 걸까요?

그런 거 같아요. 아주 없지는 않겠죠. '너 군산 출신이야?' 하고 따지는 게 비교적 적은 도시인 건 분명해요.

방금 말씀하신 출신지를 따지는 것도 도시재생에 걸림돌이 될 거 같기도 해요.

그렇죠. 지역주의요. 군산은 그런 게 없어서 좋았습니다.

유럽 여러 도시를 보면 도시마다 특색이 뚜렷하잖아요. 반면에 우리나라는 예를 들어 불국사에 가도, 해인사에 가도 기념품이 똑같아요. 아쉬운 지점인데요, 혹시 도시재생에서 그런 부분도 생각을 해보셨나요?

그런 건 자생적으로 생겨야 하는 거잖아요. 어쨌든 정책은 센스 있게 뒷받침해주는 거고요. 저는 우선 정책입안자들이 일단 그 공간을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간을 사랑한다면, 그 공간을 부수고 아파트를 짓자는 결정을 하기가 쉽지는 않을 거예요. 말씀하신 대로 우리 고향에 어떤 것이 유명해서 특산품으로 만들자고 하는 것도, 공간을 사랑하면 자연스럽게 나올 겁니다. 이걸 수치나 실적, 획일화, 표준화하면 다 똑같이 되는 거고요. 기념품을 만들 때도 싸게 만들어야 하니, 디자인도 비슷하게 되고요. 물론 경제적으로 비용 절감 효과는 있겠죠. 그런데 다 똑같아져요. 그 지역 특유의 문화를 만들고 싶다면, 지역 예술가들을 도와줘야 합니다. 공간을 사랑하는 사람이 정책을 입안해야 하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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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전기> 스틸컷. 사진 제공=블루필름웍스

오프닝도 눈에 띄지만, 영화 후반부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시도가 나옵니다. 노래를 부르는 씬인데요. 가수로 시작해서 지역주민으로 넘어갔다가 나중에는 배우 둘이 마주 보면서 듀엣으로 불러요. 안무가 안나의 무용이라는 큰 줄기 하나와, 피아노, 첼로, 노래까지 음악이라는 또 하나의 줄기를 잘 엮으신 거 같아요. 군산을 배경으로 한 조금 긴 뮤직비디오 같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처음부터 이런 구성을 염두에 두신 건지, 또 이렇게 작업하신 이유도 궁금해요.

<군산전기>를 공동 연출한 유예진 감독이 영화에서 안나를 어떻게 활용할 고민하다가 나레이션처럼 전반에 걸쳐 쓰자는 제안을 줬어요. 우리 원칙은 나레이션을 빼는 거였거든요. 딱이었죠. 그래서 춤이 있으면 노래가 따라와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영화는 대단히 주관적인 다큐멘터리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바라보는 것들을 다양한 언어로 표현해야하지 않겠나 해서 안나의 춤과 노래 그리고 짧은 뮤지컬이 나오게 된 거죠. 노래를 부르는 배우도 군산에서 활동하는 음악가들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고요.

전작 <시티 오브 크레인>(2009)은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려 나날이 바뀌어 가는 인천의 모습을 포착하고자 시도했고, <망대>에서는 사라지는 망대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군산전기>는 군산 일대와 구도심을 다뤘죠. 꾸준하게 공간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있을까요?

아까도 조금 말씀을 드리긴 했는데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조금 꼰대 같긴 하지만(웃음), 저는 영화라는 예술이 사람 플러스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영화는 사람이 어떤 공간에서 걸 움직이는 걸 담는 거잖아요. 그동안 저는 공간이 뛰어난 영화들에 매료되었던 거 같아요. 그러니까 공간과 사람이 부딪히면서 나오는 이야기들에 끌렸던 거죠. 사람의 이야기만 두드러진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어요. 늘 제게는 사람과 공간이 어우러지거나, 갈등을 일으키거나 하는 것에 관심이 갔었고요. 첫 영화도 폴란드라는 공간을 설정한 거고. 두 번째 <나비>에서도 맘에 드는 건 공간 묘사가 잘 되었다는 점이고요.

영화를 공부하고 상업영화 시장으로 들어갔는데 여러 지점에서 저랑 맞지 않는 부분들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예산 영화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는데, 그때 ‘아, 내가 공간을 좋아했지? 공간 자체가 드라마가 있는 건데 말이야’하는 생각이 스치더라고요. 공간을 찍는 것에는 거대한 자본이 투입되지 않아도 되고, 그렇다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얼마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공간에 관심을 갖게 된 거죠.

혹시 고향이?

서울입니다(웃음).

<군산전기> 스틸컷. 사진 제공=블루필름웍스

엔딩크레딧을 보니 ‘2019 군산 콘텐츠 팩토리 프로젝트 지원작’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더라고요. 어떤 프로젝트였나요?

처음 촬영을 시작했을 때는 저희 개인 자본으로 진행했어요. 그러다가 덩치가 커지면서 전북 콘텐츠진흥원에서 진행한 지원사업의 도움을 받았죠. 덕분에 군산의 곳곳을 촬영한 풍성한 화면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몇 회차로 찍으신 건가요? 2019년에 지원을 받고 2023년 개봉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말이죠.

사실 촬영은 2019년 1월부터 2020년 초까지 1년 정도였어요. 2021년에 영화제에 초청을 많이 받았는데, 코로나19 때문에 개봉이 힘들어졌던 거죠. 그래서 잠시 묵혀뒀다가 최근에 경기영상위원회에서 배급지원을 받으면서 개봉하게 된 겁니다.

촬영 감독은 설마?

제가 다 했습니다. 드론도요(웃음).

아니, 우치국립영화학교 첫 한국인 유학생으로 연출을 전공하셨는데 말이죠!

하다 보면 다 그렇게 됩니다(웃음). 출발이 다른 거 같아요. 저에게 군산이 영화적 공간으로 다가와서 스타트 한 것처럼요. 제가 '군산을 살려야 해!' 하고 시작한 게 아니니까.

<군산전기> 문승욱 감독. 사진 제공=블루필름웍스

<나비>(2001)와 <로망스>(2006) 같은 극영화를 연출하다가 다큐멘터리를 연출하게 된 계기나 이유가 있나요?

저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굳이 구분하지는 않는 편인데요. 일단 100% 컨트롤이 가능한 방식을 선호합니다. 둘의 장르가 다르지만, 다큐멘터리 역시 만드는 사람의 시선이 강하게 들어가는 매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전문적인 배우가 나오지 않고, 취재하는 대상에 의존하긴 하지만요. 어찌 보면 다큐멘터리를 통해 저만의 극영화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다큐멘터리만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극영화가 가진 내러티브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 극영화는 억지로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니까요.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차이점 중에 극영화는 거짓말을 잘해야 하거든요, 아기자기하게요(웃음). 다큐멘터리는 굳이 그런 데에 집중할 필요가 없죠. 극영화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살짝 낯설긴 하겠지만요. 극영화를 하다 보면 한계가 좀 있어요. 이야기와 이야기를 연결하려면? 인물 A와 B가 만나려면? 등등을 고민해야 하는 거죠.

다시 극영화를 만들 계획은 있으신가요?

없어요. 저만의 방식으로 OTT는 해보고 싶어요. 그런 시도도 하고 있고요.

<군산전기> 스틸컷. 사진 제공=블루필름웍스

넷플릭스나 디즈니 플러스가 은근히 다큐멘터리 ‘맛집’이라는 이야기도 많아요.

그렇죠. 저도 역사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어요. 재현과 역사와 다큐멘터리! 극영화와 다큐멘터리가 뒤섞일 수 있게, 실험적으로 해보려고 해요.

조금만 더 설명해 주세요.

임진왜란 때 숨겨진 한 장군의 이야기입니다. 자유롭게 살다 간 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조용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만요(웃음).

차기작은 뭘로 준비 중이세요?

지금은 우리나라 건축가들에 관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있어요. 도시에서 시작해서 그 도시에 일부를 만들어가는 예술가들, 그러니까 건축가죠. 공간을 예술로 생각하는 건축가들에 관한 영화입니다.

<군산전기>를 시작으로 다른 도시 이야기도 영화로 만들 계획이 있으신지 여쭙니다.

아직은 없어요.

아카이빙 차원에서라도 의미가 있을 텐데요. 영화도 너무 아름답게 찍으셨고요.

누군가 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있죠. 의도적인 것보다는 자연스럽게요. 예전에 ‘한국 영화를 만나다’ 시리즈에 참여한 기억이 나네요. 그렇지만 한 도시를 영화에 담으려면 적어도 1년 이상은 살아봐야 하는데, 그러기가 쉽지 않잖아요. 말씀하신 아카이빙 차원도, 우리나라에서 그런 풍토가 조성되면 좋겠어요. 로마 같은 도시는 그런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거든요. 예전에 이재용 감독이 서울에 관한 이야기를 로마식으로 해보려고, 하루 동안 수백 개의 카메라를 돌려서 찍는 실험을 하긴 했어요.

쭉 말씀을 들어보니, 한국에서 영화를 제작하는 데 있어서 감독님이 느끼는 아쉬움이 제게도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한국 영화가 예술적으로 취약한 부분 중 하나가 공간을 다루는 지점입니다. 저도 그렇고요. 사실 우리나라에서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휴먼 다큐가 대부분이에요. 극영화도 사람과 내러티브가 중심이 되죠. 그런데 외국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는 이유 중 하나가 공간이거든요. 공간과 사람이 절묘하게 어우러져요.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요. 우리도 그런 틀을 깨야 훌륭한 영화가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오랫동안 한국영화가 무시해왔거나 안 다뤘던 부분이죠. 누군가 어딘가에서 공간을 찍고 있을 테니, 잘 발굴해서 모으면 재미있을 거 같긴 합니다.

<군산전기>를 볼 관객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군산전기>는 극장에서 보셔야 도시의 드라마를 느끼실 수 있습니다. 한국의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느껴보세요!


윤상민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