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죽으러 출근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노동자들은 끝내 퇴근하지 못한다. 그 수많은 죽음 중 일부는 일의 성격 자체가 극도로 위험한 일이라서 생긴 비극이지만,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죽음은 ‘충분히 막을 수 있고 응당 막았어야 하는’ 죽음이다. 비용 절감을 위해서 안전장비에 투자를 하지 않아서, 인건비 절감을 위해 2인 1조로 해야 하는 업무를 1인에게 전부 떠넘겨서, 1일 3교대로 돌아가야 하는 생산라인을 1일 2교대로 돌려서, 부당한 업무 지시를 받은 노동자를 보호해 줄 만한 노동조합이 없어서, 야근에 특근에 추가 근무를 하느라 제때 퇴근할 수가 없어서, 돈이 아깝다는 이유로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아서… 돈은 아깝고 노조는 싫고 직원들은 더 돌려야 직성이 풀리는 사용자들의 ‘경영상 불가피한 사유’의 대가로 노동자들은 목숨을 잃는다.
소희(김시은)도 그랬다. 소희라고 죽으러 출근했겠는가? 춤추는 걸 좋아하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목소리를 높이며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 잘 웃고 호탕한 성격의 소희였다. 특성화고 반려동물관리학과에 재학 중이던 소희는 “대기업이나 다름 없”다는 담임(허정도)의 호들갑과 함께 통신사 하청업체 콜센터에 현장실습을 나간다. 전공과 무관한 현장이라는 게 수상하지만 그래도 사무직 아닌가. 전공과 무관하게 택배회사 상하차 업무나 공장 생산직 업무에 투입되는 남학생들에 비하면 형편이 낫지. 그래서 우리는 소희가 “이제 사무직 여직원”이라며 남자친구 태준(강현오)에게 자랑하는 모습도 봤고, 출근 첫 날 팀장(심희섭) 앞에서 “한번 열심히 해보겠습니다!”라며 의욕을 다지는 광경도 봤다. 그랬던 소희는,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저수지에서 시신으로 발견된다.
2017년 발생한 전주 LG U+ 콜센터 현장실습생 자살사건을 다룬 영화 〈다음 소희〉(2022)는, 빠져나갈 수 없는 지옥에 갇힌 듯한 답답함을 보는 이들에게 전달한다. 제대로 된 콜센터 응대 교육을 받지 못한 소희는 해지방어 부서에 투입되고, 고객들의 진상과 폭언에 시달린다. 고객들이 원하는 대로 서비스 해지를 도와주면 일이 간단하겠지만, 부서의 이름부터 명확히 ‘해지방어’인 탓에 소희는 그렇게 해주지 못한다. 고객님, 지금 해지하시면 위약금이 너무 커서요. 고객님, 지금 연장하시면 저희가 상품권이 지급되시는데요. 고객님, 지금 저희가 인터넷 TV와 결합상품이 있는데요… 어떻게든 고객들을 구슬려 해지를 막아내지 못하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질책부터 쏟아진다. 목표치로 주어진 해지방어율을 지켜내지 못하면 인센티브는 삭감되고, 콜수를 채우지 못하면 월급이 깎인다.
소희는 일을 제대로 해보고 싶었다. 특히나 자신을 잘 대해주던 팀장이 콜센터 직원들의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세상을 떠난 이후로는, 그냥 일에 미치고 싶었다. 회사는 세상을 떠난 팀장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각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했고, 끝까지 서명을 미루던 소희는 새로 온 팀장(최희진)의 닦달에 못 이겨 끝내 서류에 제 이름을 적어낸다. 자신들의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세상을 떠난 전 팀장의 죽음을 헛되게 했다는 자괴감 때문이었을까. 소희는 미칠 듯이 일만 했다. 자신이 받을 인센티브를 꼬박꼬박 계산해 가며. 하지만 실적을 내면 목표치가 따라 올라갔고, 업무량도 점점 증가했다. 그런데도 급여는 여전히 수습 급여였고, 준다던 인센티브는 주지 않았다. 대체 왜 월급이 이 모양이냐며 자신이 셈 해둔 월 수령액을 보여주자, 새 팀장은 온화하게 웃으며 말한다.
“소희는 실습생이잖아. 이건 정직원 됐을 때나 그렇고. 그리고 인센티브는 이 달에 바로 안 나와. 자꾸 그만두잖아, 실습생들이? 한두 달 후에 지급될 거야.”
“내가 실습생이라서요? 그만 둘까봐 돈을 안 준다고요? 그럼 그만 두면요? 그 돈 영영 못 받아요?”
“뭐, 회사로서도 보험을 들어두는 거지. 근데 그걸 왜 지금 걱정해? 안 그만두면 되지. 저금해놨다고 생각하고 계속 열심히 하면 되지.”
어쩐지 직원들의 상당수가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인 곳, 아무리 일을 잘 하려 해도 그 노력에 대한 보답을 받지 못하는 곳, 소희는 그 지옥 속에서 헤매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 지옥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걸까? 교육을 제대로 받고 투입되어도 어려운 콜센터 해지방어 부서에, 아직 고등학생인 데다가 교육도 제대로 안 받은 소희가 투입되는 순간부터? 소희가 어떤 업무를 맡아서 보게 될지 제대로 확인도 안 한 담임이 취업률을 높이겠다는 일념 하나로 소희를 콜센터에 밀어넣을 때부터? 아니, 학생들이 현장에서 어떤 대우를 받으면서 일하는지 일일이 감시할 여력도 없는 교육청에서 취업률로 특성화고를 줄 세우기 시작할 때부터? 교육부가 각 시도교육청의 특성화고 취업률을 비교해서 경쟁을 붙일 때부터? 노동부는 교육부에, 교육부는 노동부에 학생들의 노동환경 관리 의무를 떠넘길 때부터?
〈다음 소희〉라는 제목은 소희의 죽음 뒤에 또 다른 소희가 나와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으로 지어졌다. 극 중 소희의 죽음과 관련된 진실을 추적하는 형사 오유진(배두나)은, 소희와 마지막으로 통화했던 남자친구 태준과 만난다. 자신이 욱하는 버릇 때문에 원래 일하던 곳에서 나와서 택배를 뛰고 있다며, 자신이 그때 참았어야 했다고 말하는 태준에게 유진은 말한다. “또 욱하면 누구한테라도 말해. 나한테라도. 괜찮아. 경찰한테 말해도 돼.” 그 한 마디에 태준의 눈에는 눈물이 고인다. 유진은 왜 그런 말을 한 걸까. 소희의 죽음의 원인을 알아냈지만 관련자들을 처벌할 수 없었던 무력함 때문이었을까? 소희를 죽음으로 몰아간 사람들을 처벌할 수 없었다는 죄책감을, 또 다른 소희를 막으려 노력하는 것으로 만회하겠다는 다짐이었을까?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를 본 이후로, 나는 한동안 〈다음 소희〉를 피해 도망 다녔다. 감당하기 어려워 가위에 눌릴 만큼 끔찍한 경험이었으므로. 영화가 일반에 개봉한 후에도 “영화 어땠냐”는 질문에 “좋았다”고만 답하고 긴 말을 피했을 만큼, 영화는 무겁고 참담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오늘날의 현실은 소희를 구하지 못했던 영화 속보다 훨씬 더 끔찍하다.
아무도 죽으러 출근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도 어딘가에선 누군가 퇴근하지 못할 것이다. 코스트코 하남점에 캐셔로 입사했던 20대 마트노동자 A씨도 그랬을 것이다. 2019년 입사해 캐셔로 일하던 A씨는, 2023년 6월 5일부터 카트 및 주차관리를 하는 보직으로 변경되면서 근무환경이 열악해졌다. 주차장에는 에어컨이나 냉방 장치가 없었고, A씨는 초여름 폭염 속에서 하루 평균 22km를 카트를 밀며 걸었다. 35도의 폭염 속에 43,712걸음을 걸었던 6월 19일, A씨는 끝내 ‘온열에 의한 과도한 탈수로 발생한 폐색전증’으로 사망했다. 그러나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코스트코는 산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누구도 출근했다가 죽어선 안 된다. 그런데 교육현장에서는 노동 관련 교육이 지워지고 있다. 서울시의회는 지난해 본예산 심사에서 서울시교육청이 올린 노동인권교육 예산 3억 2600만 원을 전액 삭감했고, 지난 7월 5일 서울시교육청이 2차 추경예산으로 올린 노동인권교육 예산 1억 7276만 원을 전액 삭감했다. 교육부는 2024학년부터 적용될 교육과정 개정안에서 ‘노동의 의미와 가치’를 삭제했다. 이제 학생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요구하고 주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한 채 노동 현장에 투입될 것이다. 안 그래도, 안 그래도 끔찍하리만치 관련 교육이 없었던 세상인데 말이다.
영화 속 유진은 ‘다음 소희’가 나오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뛰어다닌다. 하지만 유진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영화보다 더 끔찍한 현실 앞에서 우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쩌면 우리 한 명 한 명이 유진이 되는 것이 방법일지도 모른다. 관련 부처에 노동환경 관리 감독을 더 철저하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주변에 응당 보장받아야 할 노동권을 침해당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고, 그것이 남의 일이라고 그냥 넘어가지 말고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다가가고… 그런 거라면, 이 영화의 제목은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당부인 건지도 모르겠다. 부디 모두가 유진의 마음으로 ‘다음 소희’가 나오는 걸 막아달라는 당부.
이승한 TV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