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영화는 장면으로 기억된다. 어떤 영화는 캐릭터로 대표된다. 음악으로 리플레이되는 영화도 있다. 이 세 가지를 모두 성취한 영화라면 그것은 시대를 초월한 걸작 또는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프랜차이즈일 것이다. 아무래도 그렇다. 긴장감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아날로그 액션과 에단 헌트(Ethan Hunt)라는 매력적인 캐릭터, 단박에 기억되는 사운드트랙까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는 장면, 캐릭터, 음악이 삼위일체를 이룬 블록버스터 프랜차이즈다.


브라이언 드 팔마의 <미션 임파서블> 1편(1996), 전설의 시작

영화를 위해 써진 오리지널 스코어는 아니었다. 드라마가 먼저였다. 한국어 제목으로는 <제5전선>이었는데 원제는 똑같다. <미션 임파서블>이다. 드라마는 미국에서 1967년부터 1973년까지 방영되었다. 이상한 일이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고, 오리지널 버전 주제가까지 들었던 생생한데 1977년생이니까 말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한국에서는 KBS를 통해 뒤늦게 방영되었다고 한다.

작곡은 랄로 시프린(Lalo Schifrin)이 맡았다. 어쩌면 낯설 수 있는 이름이다. 드라마나 영화의 네임 밸류에 비한다면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낮은 게 사실이다. 물론 다음처럼 추측 정도는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은 후대에 전승되었지만 드라마는 거의 잊혔다. 대신 톰 크루즈(Tom Cruise)와 함께 영화 프랜차이즈로 부활해 대성공을 거뒀다.

작곡가 랄로 시프린과 <제5전선>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됐던 <미션 임파서블>

단, 영화화되면서 변한 게 하나 있다. 1편에서는 유투(U2)의 두 멤버인 아담 클레이튼(Adam Clayton)과 래리 뮬린 주니어(Larry Mullin, Jr.)가, 2편에서는 록 밴드 림프 비즈킷(Limp Bizkit)이 주제가를 성공적으로 커버하면서 원작자의 아우라가 상당 부분 소실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다들 알겠지만 기본적인 멜로디 전개와 곡 만듦새에는 거의 변함이 없는 까닭이다.

랄로 시프린은 아르헨티나 태생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다.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거장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의 아버지인 엔리케 바렌보임(Enrique Barenboim)을 사사했다. 이후 20살이 되어 파리 음악원에 들어간 그는 밤에는 재즈 클럽에서 연주하면서 우리가 이름 정도는 무조건 알고 있는 뮤지션과 파트너를 이루기도 했다. 바로 아스토르 피아졸라(Ástor Piazzolla)다. 이후 재즈는 그가 어떤 음악을 하건 그 바탕을 이루게 된다. 랄로 시프린 세계를 정의하는 핵심 키워드다.

이후 아르헨티나로 귀국한 랄로 시프린은 당대 가장 인기 있는 음악가로 명성을 떨쳤다. 이 당시 그의 관심사는 더욱 재즈로 향해 있었다. 16인조 재즈 오케스트라를 결성해 TV 버라이어티 쇼 무대를 평정한 랄로 시프린은 영화 <아비정전>의 ‘Maria Elana’로 널리 알려진 라틴 재즈 뮤지션 자비에르 쿠가(Xavier Cugat)의 악단에서 편곡자로 일하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 랄로 시프린은 모던 재즈의 상징이라 할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에게 곡을 써주기도 했다. 이후 곡에 감명받은 디지 길레스피는 그를 뉴욕으로 초대해 악단의 피아노를 맡겼다고 한다. 랄로 쉬프린은 1963년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했고, 1969년이 되어서는 미국 시민으로 귀화를 결정했다. 군 문제는 없었다.


랄로 시프린 원곡의 악보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모두가 알고 있는 <미션 임파서블>의 바로 그 테마가 주제곡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랄로 시프린이 주제가를 써왔지만 제작자인 브루스 겔러(Bruce Geller)는 이게 썩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겼다. 대신 브루스 겔러가 고른 건 랄로 시프린이 추격전 신을 위해 만든 음악이었다. 결과적으로 랄로 시프린은 브루스 겔러에게 큰 빚을 졌다고 봐야 한다. 추격전 음악이 메인으로 승격되면서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인지도 높은 텔레비전 시리즈 테마들 중 하나가 되었으니까 말이다. 과연, 이 곡 하나만으로도 영화 음악의 역사는 랄로 시프린을 위해 별도의 장을 따로 마련해야 마땅하다.

그가 클래식 이론을 갖춘 재즈 뮤지션이라는 건 ‘Mission Impossible’만 들어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우선 박자를 한번 세어보기 바란다. 이 곡의 박자는 5/4박자다. 한데 재즈 쪽에서 5박하면 딱 떠오르는 곡이 하나 있다. 그렇다. 재즈를 아무리 안 들었어도 제목쯤은 알고 있을 바로 그 곡, 데이브 브루벡 쿼텟(Dave Brubeck Quartet)의 ‘Take Five’(1959)다. 실제로 ‘Take Five’가 거대한 히트를 기록한 이후 5/4박자는 대유행을 탔다. 랄로 시프린도 그 중 하나였던 셈이다.

5박자인 이유를 랄로 시프린은 이렇게 설명하기도 했다. “다리가 5개인 드라마 속 사람들을 위한 거예요." 반쯤은 농담이었지만 그만큼 긴박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었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전체를 지배하는 음계인 “빰빰빰빰”의 경우, 첩보 드라마답게 모르스 부호 “_ _ ..”에서 따온 것인데 여기에서 ‘_’는 1.5박을, ‘.’은 1박을 차지한다. 다 더하면 5박이 되는 것이다. 그는 정확하게 계측하는 작곡가다. 그러면서도 탄력적이고, 음의 낭비가 없는 곡 쓰기를 통해 이 위대한 연주에 탁월한 기동성을 부여한다. 끊임없이 곡에 활력을 부여하는 퍼커션 소리도 빼놓아서는 안 된다. 그가 재즈 중에서도 라틴 재즈의 계승자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증거일 테니까.


<더티 해리>와 <용쟁호투>, 랄로 시프린의 키치적 상상력

꼭 강조하고 싶은 게 있다. 랄로 시프린의 유산이 오직 <미션 임파서블> 하나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소룡 특유의 샤우팅에 재즈, 펑크(funk), 클래식 오케스트레이션을 창조적으로 믹스해 찬사를 이끌어낸 <용쟁호투>(Enter The Dragon) 주제가는 가히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와 비견될 만한 키치적인 상상력으로 가득하다. 3편을 제외한 모든 작품에 참여한 <더티 해리>(Dirty Harry) 시리즈 역시 랄로 시프린을 상징하는 결과물들 중 하나다.

그중에서도 ‘Dirty Harry’s Creed’(1971)는 일렉트릭 베이스, 현악 앙상블, 타악기, 일렉트릭 피아노(펜더 로즈) 등을 다채롭게 활용해 서사적 긴장감을 극대화한, 랄로 시프린 세계의 또 다른 정점이다. 이 곡, 꼼꼼하게 감상해보길 권한다. 1990년대 후반 불었던 재즈 펑크(Jazz Funk)/애시드 재즈(Acid Jazz) 열풍이 대체 누구로부터 비롯된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


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배순탁의 비사이드>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