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의 중요한 스포일러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파이더맨의 창조주 스탠 리는 살아생전에 “피터 파커가 한번 웃으려면 세 번은 울어야 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만큼 스파이더맨은 그 능력보다는 그가 감내해야 하는 불행이 더 돋보이는 캐릭터란 의미일 테다. 다른 슈퍼히어로들도 여러 가지 고충과 불행을 감내하고 살지만, 스파이더맨의 불행은 유달리 돋보인다. 스파이더맨은 배트맨이나 아이언맨과는 달리 지극히 소시민적인 사람이고, 슈퍼맨처럼 위풍당당하게 군림하지도, 캡틴 아메리카처럼 선두에 서서 지도하지도 않는다. 불행을 피해 갈 만한 안전망도 권위도 없는 스파이더맨은, 자신에게 몰아닥치는 불행을 그냥 온몸으로 견뎌낸다.

새 시대의 스파이더맨,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2023)의 마일스 모랄레스(샤메익 무어)의 불행도 선대 스파이더맨인 피터 파커의 불행 못지않다. 피터 파커와 달리 양친이 모두 살아 계시지만, 대신 마일스는 선대 스파이더맨인 피터 파커(크리스 파인)와 사춘기의 기댈 구석이었던 애런 삼촌(마허샬라 알리) 모두를 눈앞에서 잃었다. 경제적으로 피터 파커만큼 곤란하지는 않지만, 기껏 들어간 비전스 아카데미는 슈퍼히어로 활동을 하느라 학점 방어가 쉽지 않다. 누구보다 사랑하는 부모님에게도 끊임없이 거짓말을 해야 하고, 그 때문에 부모님과의 사이는 점점 틀어진다. 심지어 아버지 제프(브라이언 타이리 헨리)는 스파이더맨에 대해 썩 마땅치 않게 생각한다. 무엇보다, 자신을 이해해 주는 친구들이 있지만 그들은 모두 자신의 손이 닿을 수 없는 다른 차원에서 살고 있다. 차라리 애초에 아무도 없었다면 모를까, 자신이 겪고 있는 고충과 외로움을 모두 이해하는 존재들이 있음에도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은 마일스를 고통스럽게 만든다.

그랬으니, 그웬(헤일리 스타인펠드)이 자신을 찾아온 날 마일스가 느꼈을 해방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마일스와 그웬이 함께 웹스윙을 하며 지구-1610B의 뉴욕 시내를 누빌 때의 우아하고 자유로운 몸놀림은,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을 비로소 만났을 때의 해방감을 고스란히 시각적으로 담아낸 명장면이다. 심지어 수많은 차원의 스파이더-피플이 한데 모여 활약한다는 ‘스파이더 소사이어티’ 소식에 마일스는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 불행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그곳에는 두 가지 아이덴티티를 지닌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 줄 사람들이 가득하다고? 마일스가 그웬에게 자신도 스파이더 소사이어티에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조르는 건 단순히 그웬을 향한 마음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원가정이 제공해 주지 못하는 이해와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대안적인 공동체에 소속되고 싶은 마음이 컸을 것이다.

원가정과 대안 공동체. 아마 그웬의 서사를 보며 가장 많은 사람들이 떠올린 주제일 것이다. 지구-65에서 친구인 피터 파커(잭 퀘이드)를 구하지 못한 것도 충분히 불행한데, 그도 모자라 아버지 조지 스테이시(셰이 위검)는 스파이더우먼을 피터의 살인범으로 오인하며 뒤를 쫓고 있다. 끝내 조지에게 체포당할 위기에 처한 그웬은 가면을 벗고 제 정체를 드러내지만, 조지는 딸 그웬의 호소를 듣고도 그웬을 체포하려 든다. 그웬은 아버지에게 실망하고, 미겔(오스카 아이작)과 제스(이사 레이)의 뒤를 따라 지구-65를 떠나 스파이더 소사이어티에 합류한다. 수많은 LGBTQ 관객들은 이 대목에서 커밍아웃을 떠올렸을 것이다. 원가정에 제 정체성을 고백했으나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끝내 원가정을 떠나 자신을 이해해 주는 대안 공동체로 떠나는 과정이 꼭 좋지 않게 끝난 커밍아웃의 과정과 닮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원가정을 지키기 위해 스파이더 소사이어티를 떠나는 마일스의 행보는, 결국 원가정이 대안 공동체보다 더 중요하다는 보수적인 결론으로 귀결되는 걸까? 글쎄, 구도가 그렇게 단순한 건 아니다. 비록 마일스가 스파이더 소사이어티에서 떠났다 하더라도, 마일스를 돕기 위해 그웬의 뒤를 따라 길을 나선 ‘스파이더맨 인디아’ 파비트르 프리바카르(카린 소니)나 ‘스파이더 펑크’ 호비 브라운(대니얼 칼루야) 모두 스파이더 소사이어티에서 만난 동료들이니까. 마일스를 아끼는 수많은 스파이더-피플들이 스파이더버스 속으로 뛰어드는 마지막 장면 앞에서, 원가정이 낫냐 대안 공동체가 낫냐 하는 질문은 의미를 잃는다. 그러니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에서 중요한 건 ‘원가정 vs. 대안 공동체’라는 대결구도가 아니라, 각 공동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해당 공동체에 소속된 각각의 개인들이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점이다.

그웬이 ‘원가정’ 지구-65를 떠나는 과정을 보자. 그웬은 아버지 조지에게 자신이 피터를 죽인 것이 아니며, 어쩔 수 없는 사고였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조지는 그웬의 이야기를 듣는 대신, 총을 겨눈 채 ‘스파이더우먼은 피터 파커의 살인 용의자이고, 경찰인 나는 스파이더우먼을 체포해야 한다’는 내러티브를 강요한다. 억지로 강요된 내러티브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웬은 지구-65를 떠난다. 그럼 마일스가 ‘대안 공동체’ 스파이더 소사이어티를 떠나는 과정을 보자. 미겔은 스파이더-피플이라면 모두가 공통적으로 겪어야 하는 수난으로 ‘가까운 경찰서장의 죽음’을 겪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그렇지 않으면 멀티버스 사이의 혼돈을 피할 수 없다는 내러티브를 강요한다. 아버지 제프를 살리고 싶은 마일스는 그를 거부하나, 미겔은 무력으로 마일스를 제압하려 한다. 억지로 강요된 내러티브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마일스는 스파이더 소사이어티를 떠난다.

결국 그웬도 마일스도, 자신이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미리 규정 지어놓은 존재들이 강요하는 내러티브 때문에 떠난 것이다. 원가정이냐 대안 공동체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어떤 곳에서든 억지의 삶을 강요하는 존재들이 있을 것인데, 그 순간 개인으로서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가 하는 질문이야말로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가 묻는 질문인 셈이다. 심지어 마일스가 피하고자 하는 내러티브는 스파이더맨이 스파이더맨일 수 있도록 만드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 ‘불행’이다. 이미 전편인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2018)에서 충분한 불행을 겪은 마일스가, 오직 ‘스파이더맨은 이런 존재이기 때문에’ 더 거대한 불행을 맞이해야 하는가? 필 로드와 크리스토퍼 밀러는 그 명제에 저항하는 내용으로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를 채웠다.

압도적인 애니메이션 실험만으로도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하지만 그 기념비는, 스파이더맨 서사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에 의문부호를 띄우고 운명론에 저항하는 질문을 던진다는 서사의 모험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크게 빛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내러티브를 거부하고, 안정된 테두리를 깨고 나와서 나만의 길을 걷는 단독자로서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가 남긴 질문은 그처럼 무겁다.


이승한 TV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