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밀수>: 류승완 감독의 12번째 장편영화다. 두 여성 배우(김혜수, 염정아)를 메인 캐릭터로 하는 이번 작품은 <피도 눈물도 없이> 에 이어 류승완 감독의 두번째 여성 리드의 케이퍼 영화다. 약 180억 정도의 제작비가 투여되었다고 알려진 영화, <밀수>는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첫 블록버스터 영화이기도 하다.

<밀수>는 1970년대의 작은 바다 마을, ‘군천’(순천과 군산의 합성 도시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하다)을 배경으로 한다. 어업과 해녀들이 채취해 오는 해산물이 주된 생계 사업인 군천에 화학 공장이 들어서면서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기 시작한다. 돈을 벌기 위한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 해녀, '춘자'(김혜수)는 밀수꾼들에 의해 바다 속에 던져진 물건을 건져 올려주고 돈을 받는 또 다른 ‘직업’을 소개 받게 되고 해녀들의 리더 '진숙'(염정아)에게 함께 해볼 것을 제안을 한다. 진숙은 아버지와 실업 위기에 빠진 동료 해녀들을 위해 마지못해 일을 수락한다. 새롭게 시작한 일은 큰 돈이 되지만 역시 위험천만한 일이다. 해녀들의 수상쩍은 행보를 밀수 단속반, 이장춘 계장(김종수)이 암거래를 눈치채면서 이들의 새로운 커리어에도 제동이 걸린다.

박정민 배우의 수려한 연기가 이번 작품에서도 백미다

<밀수>는 1950년대 말, 신토호(新東宝: 토호에서 만든 또 하나의 제작사로 마이너한 장르영화를 제작했다)에서 제작되었던 ‘해녀 영화’들을 연상시킨다. ‘아마 시리즈’로 불리었던 해녀 영화들은 해녀를 주인공으로 했던 (각종) 장르영화다. 미스터리, 호러 등 주로 저예산 B급 영화로 기획되었던 해녀 영화는 1960년대에 들어 핑크 영화의 한 분야로 흡수되었다. 이 영화들은 다양한 스토리 안에서도 살인이나 자살 등 예기치 못한 사건의 실마리를 푸는 해녀를 기본 골자로 한다. ‘아마 시리즈’의 해녀들은 성적으로 대상화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럼에도 영화 속 여성 주인공들은 해녀의 정체성을 관습화하는 주체적이고 강한 캐릭터들이었다. <밀수>의 춘자와 진숙, 그리고 그들의 동료들 – 옥분(고민시), 돼지엄마(김재화), 양금네(박준면), 똑순이(박경혜), 억척이(주보비) – 역시 홀홀단신으로 자립한 상태이거나 집안의 가장으로 등장한다. 이들(해녀들)이 보여주는 생존 본능(‘아마 시리즈’에서 처럼)은 단순한 휴먼 드라마의 형식이 아닌 장르적 요소로서 영화의 주요한 사건의 근간이 된다.

<진주 여왕의 복수>(Revenge of the Pearl Queen, 토시오 시무라, 1956)

<무서운 맨션의 해녀>(Girl Divers of Spook Mansion, 모리헤 마가타니, 1959)

또한 <밀수>에서는 춘자와 진숙이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오해를 풀어가는 과정, 그리고 그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정을 지키는 과정이 이야기의 중추로 보여진다. ‘우정’과 ‘연대’는 감독의 전작, <짝패>에서도 강조되었던 테마이기도 하고 동시에 류승완 감독만의 전매특허이기도 하다. 비슷한 맥락에서, <주먹이 운다>, <모가디슈> 등의 작품에서도 두 캐릭터는 운명적으로 대립할 수 밖에 없는 인물들이지만 적대적인 관계가 아닌, 일종의 연대적 관계로 결말을 맺는다.

다만 이번 <밀수>에서 춘자와 진숙의 관계는 앞선 작품들만큼 섬세하고 설득력 있는 빌드업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이 약점으로 작용한다. 예컨대 춘자는 어떤 배경에서 이 마을에 정착하게 되었고(후반에 간단히 언급됨에도), 어떠한 연유로 진숙과 친해지게 되었으며, 이들의 우정이 서로에게 어떤 의미인지 충분히 설명되지 않거나 생략된다. 영화의 전반에서 보여지는 춘자의 행동과 후반에서 내놓는 그녀의 행동 동기에 대한 감흥이 덜한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수>는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여름 대작임이 분명하다. 러닝타임 129분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주옥 같은 음악 넘버들이 그렇고 주연배우들을 필두로 한 박정민과 고민시, 김종수 배우의 호연이 그렇다. 무엇보다 영화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수중촬영 장면들은 이 영화의 메인 스펙터클이자 류승완 감독의 새로운 도전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과연 데뷔 25년 동안 끊임 없는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베테랑 감독의 필모그래피 한 켠을 차지 할 만한 영화다.


2. <비닐하우스>: 이솔희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비닐하우스>는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섹션인 ‘비전’에서 첫 공개 되었고 CGV상, 왓챠상을 포함 3개의 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외딴 도시의 비닐하우스에 살고 있는 간병인, ‘문정’(김서형)은 소년원에 간 아들과 함께 살 제대로 된 집을 구하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는 중이다. 그녀가 돌보고 있는 노부부는 병으로 눈이 멀게 된 ‘태강’(양재성)과 치매를 앓고 있는 그의 부인 ‘화옥’이다. 태강이 동창 모임으로 외출한 어느 날, 문정이 혼자 화옥을 돌보다가 갑작스러운 사고가 일어나고, 이는 결국 화옥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문정은 아내의 시체를 앞에 두고도 아무것도 볼 수 없는 태강을 속이며 내키지 않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

<비닐하우스>에서는 두 개의 공간이 주된 장소로 등장한다. 하나는 문정이 살고 있는 ‘비닐하우스’고 하나는 노부부가 살고 있는 (동시에 문정의 직장이기도 한) ‘양옥집’이다. 이 두 공간은 여러가지 면에서 상징적이다: 첫째로 확연히 다른 두 장소는 계급성을 갖는다. 비닐하우스는 문명과 단절된 노동자의 공간이고 양옥집은 대학교수였던 태강이 은퇴하고 살고 있는 윤택한 중산층의 공간이다. 따라서 비닐하우스는 문정이 살고 있는 현실이고, 양옥집은 문정이 꿈꾸는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양옥집에서는 문정이 때때로 필요한 차를 쓸 수 있으며 그곳에서 얻은 돈으로는 아들과 새롭게 시작할 집을 구할 것이다.

이 두 집은 문정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공간이지만 그럼에도 섞이거나 동일시해서는 안 되는 공간으로 암시된다. 예컨대 양옥집에서의 ‘사건’은 문정의 목소리가 집안 곳곳에서 들리기 시작하면서(앞이 보이지 않는 태강에게 문정이 책을 읽는 것을 녹음해 준 테이프를 태강이 틀어 놓는 것으로), 즉 문정이 양옥집의 실질적 주인이 되기 시작한 시점에서 일어난다. ‘양옥집 사건’은 비닐하우스의 주체가 양옥집의 경계를 허물었기 때문에 벌어진 사건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영화는 김기영 감독의 <하녀>와도 비슷한 지점을 보여준다. 하녀가 양옥집으로 입성하면서부터, 그녀가 계급의 상승을 꿈꾸던 시점부터 비극이 시작되는 것이다. 따라서 계급의 전복은 모두에게 공멸이자 사회적 평정을 헤치는 행위다.

물론 영화 <비닐하우스>는 <하녀>가 만들어지고 60여년이 흐른 후 나온 작품인만큼 계급과 사회 계층에 대한 여러가지 새로운 해석과 설정이 눈에 띈다. 얘를 들어 주인공은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케어 테이커이고 ‘중산층’의 아이콘은 단란한 4인가족이 아닌 은퇴한 치매 노인들이다. 그만큼 <비닐하우스>는 단순히 계급적 설정과 풍자를 넘어 사회 이슈와 시대의 화두(zeitgeist)를 더한 진보성을 보여준다.

불행의 극단을 오가는 케어 테이커, 문정 역 김서형 배우의 표정 연기는 가히 완벽에 가깝다. 다른 주요 인물들, 특히 문정의 일상에 어떻게든 기생하려는 3급 장애인, ‘순남’ 역의 안소요 배우 역시 눈을 떼기 힘들 정도로 인상적인 연기를 구현한다. 무엇보다 양재성, 정종준을 포함해 독립영화에서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는 노배우들의 활약은 영화의 장면을 초월해, 인생의 한 단면을 응축한 것을 관조하는 것만 같은 숙연함을 갖게한다.

결론적으로 <비닐하우스>는 극찬이 아깝지 않은 데뷔작이자 장르영화다. 영화는 스릴러와 미스터리 그 언저리에 있지만 그 이상의 깊이와 통찰, 그리고 저력을 보인다. 감독 이솔희의 창대한 시작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김효정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