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에서 독점 공개되는 금토 드라마 <연인>이 화제다. <연인>의 김성용 감독은 남궁민이 투입된 임무에서 실패를 모르는 독보적인 국정원 요원 한지혁으로 출연했던 드라마 <검은 태양>(2021)을 연출하며 이미 멋진 호흡을 보여준 바 있다. 한번 목표가 설정되면 지옥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근성과 동물적인 순발력을 지녔던 한지혁은 지금의 남궁민을 대표하는 캐릭터 중 하나이기에 <연인>은 그 두 사람의 만남만으로도 기대를 모은다. 게다가 2013년 드라마 <구암 허준> 이후 남궁민의 10년 만의 사극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영화 <쌍화점>(2008)을 각색하기도 했던 황진영 작가는 <제왕의 딸, 수백향>(2013),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2017) 등의 드라마를 통해 이미 탁월한 사극 전문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진 바 있다. 두 드라마 각각 실존 인물이라 할 수 있는 홍길동의 삶과 사랑과 투쟁, 백제 무령왕의 딸 수백향의 일대기와 파란만장한 가족사를 그렸기에 <연인>에서 남궁민이 연기하는 이장현이라는 허구의 인물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황진영표 사극’ 안에서 <연인>을 향한 호기심은 바로 거기서 출발한다.
‘몹시 그리워하고 사랑한 연인(戀人)’이라는 부제가 붙은 <연인>은 1636년 병자년 겨울을 배경으로, 병자호란을 겪으며 엇갈리는 연인들의 사랑과 백성들의 생명력을 다룬다. ‘황진영표 사극’의 핵심도 바로 그 역사 속의 멜로드라마라는 점에 있다. 부족한 것 없이 자란 양반집 규수 유길채(안은진)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선비 이장현(남궁민)의 만남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그 무대는 바로 길채가 태어나 오래도록 살아온 가상의 마을 능군리다. 이 능군리에 어느 날 갑자기 장현이 오게 되는 것인데, 그와 함께 다니는 하인 구잠(박강섭)의 설명에 따르면, “식혜와 홍시 맛이 좋고 술로는 죽순주가 일품이며, 마을 어른들 인심이 온후하여 백성들도 믿고 따르는 지라 관에서도 함부로 건들지 못하는” 마을이 바로 능군리다. 덧붙여 “내외의 법도가 맹탕이라 툭하면 여인과 사내들이 사사롭게 어울리는” 곳이어서 장현의 관심을 끄는 곳이다. 구잠이 ‘요물’ 혹은 ‘여시’에 비유하는 길채는 마을 남자들의 인기를 한몸에 독차지하고 있는 여인이다.
지금껏 공개된 1화와 2화만으로도, 황진영 작가의 이전 작품들처럼 역사와 개인의 서사가 치밀하게 맞물려 들어가는 오프닝은 탁월하다. 1화는 주요 시대 배경인 1636년 병자호란으로부터 한참 뒤인 ‘1659년 효종 10년 봄’에서 시작한다. 감찰기관인 사헌부의 정5품 관직인 지평 신이립(하경)이 등장해 마치 궁중 스릴러처럼 전개되는 것. 돋보기로 무언가를 들여다보던 한 관리가 선세자인 소현세자 저하가 승하한 뒤 발견된 것이라며 사초를 보여준다. 사초란 사관(史官)이 기록하여 둔 사기(史記)의 초고를 말한다. 거기에는 소현세자에 대한 불충의 말로 가득하기에 응당 씻겨졌어야 할 말들이나,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는 것. 사초에 빈번히 등장하는 한 사내가 있는데 그자의 행적에 뭔가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기에, 신이립으로 하여금 그에 대해 조사해 사초의 진위를 밝히도록 임무를 내린다.
사초의 내용은 이러하다. “그때의 군관무리 중 혹 군관답지 못한 자가 있어 보도하는 도리를 잃어 과연 세자를 미혹하여 그릇된 일을 담기게 하니, 무리 중 하나가 하늘의 벌을 받아 점차 광증이 생겨 상께서 이르길 ‘다시는 해를 볼 수 없게 하라’.” 군관답지 못할 뿐더러 세자를 미혹한 그 인물이 바로 이장현이다. 그런 다음 신이립은 조선시대 가난한 백성들을 무료로 치료하던 관아인 혜민서로 이동해, 정신질환자들만 모아 놓은 곳으로 가서는 등을 돌리고 서 있는 한 사람에게 “자네를 데리러 온다는 자가 이장현인가?”라고 묻는다. 그는 이장현의 충복으로 알려진 인물이지만 얼굴은 보여주지 않는다. 그리고는 다시 묻는다. “기이한 이야기에 이장현이라는 자가 나오더군. 자네가 그 사내를 아는가? 자네는 미친 게 아니야, 이장현에 대해 얘기해 줄 수 있는가?” 그런 다음 다시 장면이 바뀌면, 피투성이가 된 장현이 바닷가에서 검을 들고 서 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그를 포위하여 다가서는 가운데, 장현이 나지막히 혼잣말을 한다. “들리는가, 이 소리. 꽃 소리.”
이제 ‘1636 인조 14년 봄’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능군리에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1636년은 공교롭게도 이제는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감독으로 유명한 황동혁의 <남한산성>(2017)과 시대 배경이 겹친다. <남한산성>에서 임금 인조(박해일)와 조정이 청의 대군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숨어들고, 순간의 치욕을 견디고 나라와 백성을 지켜야 한다는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과 청의 치욕스런 공격에 끝까지 맞서 대의를 지켜야 한다는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의 대립이 펼쳐졌다. 그 사이에서 인조의 번민이 깊어지고 청의 무리한 요구와 압박은 더욱 거세지면서, 나아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는 고립무원의 남한산성에 나라의 운명이 갇힌다. 영화 속 세 인물은 <연인>에도 등장한다. 인조(김종태)를 가운데 두고 오랑캐의 기세가 심상찮기에 사신을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최명길(김태훈)과 오랑캐에게 절대 무릎을 꿇어서는 안 된다는 김상헌(최종환)이 등장해, 평화로운 능군리 이야기와 별개로 드라마의 위기감을 고조시킨다. 그들의 ‘전쟁’은 아마도 3화부터 본격화될 것이다.
능군리에서도 그 조정의 대화가 이어진다. 길채는 “또 재미없는 얘기들 한다”고 투덜대지만 길채가 흠모하는 연준 도령(이학주)은 “오랑캐가 조선을 ‘너희 나라’라고 오만방자하게 불렀다”며 “오랑캐 왕을 달래기 위해 왕이 사신을 보낸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천명’을 위해 상소를 올리자고 외치고, 주변 선비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한다. 하지만 장현은 “명나라가 오랑캐를 이긴다는 보장이 있소? 오랑캐가 명나라를 이길 거란 생각을 해보진 않소?”라며 반박한다. “명나라 이전에 몽골이 세운 원이었고, 원 이전엔 오랑캐 여진족이 세운 금이었지요. 오랑캐들 생각에 천명은 오랑캐에게 있소이다”라며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덧붙여 “아, 이 조선의 의리 있는 도령들이 나가서 싸워주시겠구만. 용맹한 서생분들은 전쟁이 나면 무엇으로 싸우리오? 붓으로 성을 쌓으시겠소? 먹을 갈아 검을 삼으시겠소?”라고 비아냥대기까지 한다. 능군리에 불쑥 찾아온 미스터리한 남자 장현에 대한 호기심이 극대화되는 장면이다.
하지만 <연인>의 가장 큰 재미는 역시 멜로라는 점이다. 일단 장현은 조선의 ‘원조 비혼주의자’라 할 수 있다. 일종의 ‘썸’을 타던 여인에게 장현은 “서로를 혼인으로 묶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소. 그래서 전 오래전부터 전 비혼으로 살기로 했지요”라고 말하는데, ‘비혼’이라는 단어 자체를 처음 들어본 여인은 “비혼이 뭡니까? 그럼 나를 왜 만난 것이요?”라고 따져 묻는다. 그러자 “아니할 비, 혼인할 혼, 하여 혼인을 아니 하기로 했다, 뭐 그말이지요. 여인과 사내가 꼭 혼인을 해야만 만날 수 있소?”라고 반문한다. 그러자 곧장 그 여인은 “오라버니~~~, 이 자가 저를 능멸하였어요” 라고 울부짖는다. 이후 은애(이다인)를 연준 도령에게 괜히 소개해줬다며 자책하는 길채에게 장현이 시를 읊어주는 장면도 압권이다. “난 너를 믿었던 만큼 내 친구도 믿었기에, 난 아무런 부담 없이 널 내 친구에게 소개시켜 줬고, 그런 만남이 있은 후부터 우린 자주 함께 만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함께 어울렸던 것 뿐인데”라고 상황을 묘사하는데, 그것은 그로부터 무려 350여 년 뒤 나올 가수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 가사 패러디인 것. 물론 그렇게 끝이 아니라, “아무리 봐도 연준 도령과는 가망이 없는 것 같으니 헛된 희망 품지 말고 나한테 오시오”라는 멋진 직진 ‘심쿵’ 대사로 3화부터 본격적으로 펼쳐질 로맨스를 암시해준다.
더불어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2화의 회혼례신이다. 회혼례란 부부가 혼인하여 함께 맞이하는 예순 돌을 기념하는 잔치를 말하는데, 일종의 기부입학으로 서원에 들어가려는 장현은 막대한 양의 쌀을 내놓으며 한 가지 부탁을 하게 된다. 바로 자신과 함께 지내는 송추 할배(정한용)와 부인 이랑(남기애)의 회혼례를 서원에서 치러 달라는 것이다. 원래 양반들만 그렇게 하는 것이긴 하나 서원의 두 어르신은 “예는 정에서 나온다 했어”라며 흔쾌히 그렇게 하자고 말한다. 그를 감동적으로 들은 장현은 그 말을 다시금 음미하며 “이 마을에서 참으로 죽향이 나는 것 같다”며 미소짓는다. 오히려 서원 어르신들은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송추 할배 부부가 결혼한 지 벌써 예순 해가 되었냐며, 그리고 두 사람이 연상연하 커플인데 이랑이 정말 동안 아니냐며 순진하게 놀랄 뿐이다. 양반도 아닌 이들의 회혼례를 서원에서 올리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이냐며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장현이 내놓은 쌀 때문에 마지못해 하는 것도 아니라, 그 순간만큼은 반상의 경계를 넘어, 그리고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에서의 입장 차를 넘어 유교적 예(禮) 이전의 인간적 정(情)을 얘기하는 근사한 장면이다.
하지만 비극과 희극은 한 몸이라 했던가. 회혼례를 즐기는 마을 사람들의 평화로운 모습과 한양을 향해 달려오는 청나라 군사의 교차편집으로 2화가 마무리된다. “오랑캐가 쳐들어왔소. 오랑캐가 임금을 가두었소!” 역대급 오프닝이라 할 만한 <연인>의 장대한 이야기는, 아름답게 눈발이 날리는 가운데 허공을 가르는 그 외침으로 이제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주성철 씨네플레이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