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순간> 포스터. 사진 제공=영화로운 형제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는 사진과 움직임을 기록하는 영화는 사뭇 다른 것 같으면서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 이미지를 다룬다는 점에서 우선 두 매체, 아니 예술 장르는 참 닮았다. 그리고 사진이라는 프레임 안에, 영화라는 플랫폼 안에 사람과 이야기를 가둔다는 점에서도 닮아 있다.

사진과 영화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넘어서는 영화 <너의 순간>(감독 이상준)이 8월 15일 개봉해 관객을 만나고 있다. 2019년 크랭크업했지만, 2020년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고, 3년 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작품이다. 눈 밝은 배급사 덕분에 다행히 관객을 만나게 되었지만, 8월 국내 영화 대작 4편의 뒷심이 흔들거릴 즈음, 세기의 천재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펜하이머>와 같은 시기에 극장에 걸린다. 이는 2009년 연출부로 시작해 15년 만에 입봉작을 선보인 이상준 감독에게 축복인가, 저주인가.

이상준 감독은 <친정엄마>(감독 유성엽, 2009) 연출팀을 시작으로 영화계에 첫발을 디뎠다. 이어 <혈투>(감독 박훈정, 2011), <이웃사람>(감독 김휘, 2012), <암살>(감독 최동훈, 2015), <밀정>(감독 김지운, 2016) 등 다양한 영화의 연출팀에서 일하며 차근차근 연출 실력을 쌓아온, 기초가 튼튼한 감독이다. 또한 드라마 <크리미널 마인드>, <바람과 구름과 비> 등의 조감독을 거치며 섬세한 드라마판에서도 연출 실력을 키워왔다. 이번 영화 <너의 순간>은 그의 연출 데뷔작이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한국 경쟁 부문에 초청받았다. 광화문 인근 카페에서 이상준 감독을 만났다.


<너의 순간>으로 장편 데뷔한 이상준 감독. 사진=영화로운형제

장편 감독 데뷔를 축하드립니다. 영화가 막 개봉했는데, 주변 반응은 어떤가요?

영화를 완성하고 나서도 코로나19 때문에 개봉이 어려웠어요. 영화제도 많이 막혔었고요. 하마터면 이 영화가 세상에 보이지 못하고, 관객을 만나지 못하고 묻힐 뻔한 걸, 좋은 기회가 생겨 선보이게 되어서 감사하죠. 주변에서도 축하한다는 연락이 많이 와요. 기분이 좋습니다.

영화가 개봉하게 되어 정말 다행입니다. 원작 시나리오를 은사님께 받았다고요? 어떤 점에서 끌리셨나요?

처음 원안을 쓴 시나리오 작가는 김명진 작가입니다. 그걸 대학 때 교수님으로부터 전해받은 거고요. 제가 멜로 시나리오를 쓰지 않았는데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부분이라 오히려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게 매력적이었던 점이죠.

<너의 순간> 스틸컷. 사진 제공=영화로운형제

각색 과정에서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뭐였는지 궁금합니다.

정후 아버지로 나오는 이상일 선생님은 실제로 사진작가셔서 원작 시나리오 작가인 김명진 작가와 시나리오 수정과정에서 함께 자문을 받았습니다. 이상일 선생님은 이후 정후 아버지역으로 연기까지 제안드렸습니다.

처음 시나리오와 가장 달리진 부분도 함께 설명해주세요.

공간이에요. 원래 시나리오에서 정후(우지현)는 부산의 빈 곳을 임대해서 사진관으로 꾸미며 살거든요. 각색 과정에서 공간을 캠핑카로 바꿨어요.

정후의 캐릭터가 완전히 바뀌었겠네요.

정후는 아버지로부터 상처를 받고, 거리를 두면서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 살아가는 캐릭터인데요, 왠지 한 공간에 머물러 있지는 않을 것 같았어요.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는 사람으로 바뀌었지만, 결국 아버지로 벗어날 수 없는 이미지, 그러니까 상처를 입은 공간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걸 생각해서 이렇게 바뀐 거죠. 공간이라는 가장 큰 지점이 바뀌니까 정후 역시 한 공간에 정착하는 게 아니라 떠돌게 되는 캐릭터가 된 겁니다.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달아나지 못하는 인물처럼요. 그에 따라 주변 인물들도 조금씩 영향을 받았고요.

<너의 순간> 스틸컷. 사진 제공=영화로운형제

대사가 참 마음에 와닿더라고요. 특히 사진에 대한 철학이라고 할 만큼 사진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누군가의 사진을 찍어준다는 건 그 사람의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을 만큼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거겠죠”, “사진이 꼭 행복한 순간만을 보여주는 건 아니에요” 같은 대사들요.

제가 사진에 대한 큰 철학이 있는 건 아니에요. 다만 사진을 소재로 영화를 찍다 보니까 사진 안에도 스토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이상일 선생님이 각색 과정에서 자문을 많이 주셨어요. 이 선생님의 모든 작품 자체가 이야기 담고 있더라고요. 사진이란 매체가 영화와 비슷한 지점이라고 느꼈던 순간입니다.

사진은 멈춘 순간을 포착하는 매체입니다. 반면 영화는 움직임을 포착해 기록으로 남기죠. 감독님 생각에 두 매체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또 영화에서는 어떻게 차별점을 구현하려고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사진과 영화의 차이점이 있다면, 사진은 순간의 기억을 붙잡아서 보는 이로 하여금 사진 속 스토리를 해석하게 만들고. 영화는 순간의 기억을 나열해 보여줌으로서 등장 인물의 경험을 공유하게 만드는 게 차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너의 순간> 스틸컷. 사진 제공=영화로운형제

비슷하면서도 다른 사진과 영화가 <너의 순간> 후반부에서는 막 섞이는 거 같더라고요. 사진 찍는 행위를 영상으로 담았는데, 이것이 영화 안에서 인화되어 나와 또 이미지가 되기도 합니다.

사진 이미지가 영상으로 자연스럽게 전환되는 방법에 대해 촬영감독과 고민을 많이 했어요. CG 도움을 받을 것인지, 기존 형식으로 찍을 것인지, 많이 논의하다가, 고전적으로 가자고 합의를 했습니다. 충분히 감정을 쌓은 후에 화면을 전환하는 걸로요. 현장에서 사진 통해서 과거 회상 장면으로 넘어갈 때 그렇게 감정적으로 전환했더니, 시나리오를 크게 훼손하는 느낌도 없었고요.

사진으로 남았던 대나무숲에 정후가 가는 장면은 그런 장면의 전환도 있지만, 사운드도 실험적이더라고요.

사진으로 남은 대나무숲이 있죠. 그러니까 영(옥자연)이라는 사람이 대나무숲에 간 겁니다. 담기는 건 이미지지만, 그 안에서 영이 성장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대나무숲이라는 공간 안에 수많은 스토리도 있고, 바람도 있고요. 그런 느낌이 들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후반작업 믹싱에서도 많이 실험했죠. 마치 여기저기서 영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처럼요. 그런 부분을 관객이 체험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너의 순간> 스틸컷. 사진 제공=영화로운형제

결국 영화는 어린 시절의 사진을 통해 자신의 아픈 기억을 마주하고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영은 자신의 어린 시절의 아픔을 극복한 것처럼 보이는데, 정후는 그렇지 않고 오히려 또 길을 잃은 거 같아요. 이렇게 읽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마지막 부분 대나무숲에서 정후가 영의 행로를 따라가는 장면에서 감독님은 어떤 부분을 표현하려고 하셨던 건지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다양하게 해석되어 기분 좋은 질문입니다. 사실 정후도 성장하는 캐릭터라고 의도했고, 그걸 목표로 캐릭터를 완성시켜갔습니다. 정후가 영의 자취를 쫓아 대나무숲으로 가는 장면은 원래 시나리오엔 등대를 찾아 가는 것이었습니다. 영을 처음 만난 곳이 등대였고, 그곳에 있는 인파 속에서 영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촬영을 하다가 생각해보니 떠난 영을 찾던 정후가 가는 곳이 등대가 아닌 영이 깨달음을 얻는 공간이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어 대나무 숲으로 공간을 바꿨습니다. 보출 예산 등 현실적인 부분도 없진 않았습니다. (웃음)

영화 제목이 <너의 순간>인데 원제가 다르죠? 여쭤본 이유가, 자꾸 대나무숲 이야기를 해서 좀 죄송하긴 한데요. 어떻게 보면 멜로영화에서 호러영화로 전환되는 느낌도 들더라고요. 마치 영이 실존하지 않는 유령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라고 할까요?

원제는 <빛의 기억> 이었습니다. 이야기에 부합하는 좋은 제목인데 사람들의 기억에 각인되는 제목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후반 작업 과정에서 제작사와 시나리오 자문을 해주신 이상일 선생님과 상의 끝에 기베르의 책 <유령이미지>를 제목으로 했습니다. 시나리오 과정에서 작가님이 참고한 책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개봉 전 배급사에서 좀더 대중적인 제목으로 바꿨으면 한다는 의견을 주셔서 여러 안들 중 최종 <너의 순간>으로 변경되게 되었습니다.

<너의 순간> 스틸컷. 사진 제공=영화로운형제

알겠습니다. 이제 배우 이야기를 여쭤볼게요. 독립영화계에서는 잘 알려진, 그러니까 ‘수퍼스타’ 우지현 배우를 정후 역으로 캐스팅하셨어요. 처음부터 염두에 두신 건가요?

아니요. 사실 정후 캐스팅은 정말 고민이 많았어요. 이미지를 딱 특징짓지는 않았는데, 외형적으로 어떤 이미지면 좋을까 생각해봤죠. 대중적으로는 덜 알려진, 신선한 이미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춘천, 춘천>(감독 장우진, 2018)이라는 영화를 우연히 봤는데, 우지현이라는 배우가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그 영화에서도 표정이 많지 않았는데, 편안하게 연기하면서 관객을 몰입시키더라고요. 대사도 많지 않았는데. 검색해 보니, 소속사가 있더라고요. 마침 작은 연이 있던 분이 대표인 소속사요(웃음). 시나리오 보내도 되냐고 문의했고, 덕분에 수월하게 캐스팅할 수 있었죠.

지금은 많이 친해지셨나요?

제 성격이 좀 그래서 지금도 뭐 살갑게 지내는 편은 아닌데요,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인 거 같아요. 영화를 찍는다는 건요. 저는 그 안에서 관계를 발전시키려고 노력하는 거고요.

우지현 배우 현장에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현장에서 딱히 디렉션을 준 기억은 별로 없어요. 동선 이야기 정도로 작은 부분들이죠. 에피소드라고 하면 정후가 아버지 사진관을 찾아가서 소리치고 캠핑장으로 돌아오는 씬을 찍을 때였어요. 영과 함께 있는 씬이었죠. 그때 정후의 불안정한 상태를 저는 풀샷으로만 찍고 싶었어요. 배우에게는 미안했지만, 그 에너지를 그대로 끌고 오고 싶어서 테이크를 여러 번 갔습니다. 배우가 힘이 어느 정도 빠졌을 무렵에 타이트하게 한 번 찍자고 이야기했죠. 그때 옥자연 배우가 베개를 눌렀다가 뗐을 때, 우지현 배우 표정이 있어요. 저는 눈물을 흘리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무표정한 얼굴로 멍하게 힘 빠진 상태를 담고 싶었죠. 그런데 그 타이트한장면에서 우지현 배우가 무표정한 표정으로 눈물 한 방울을, 딱 한 방울을 주르륵 흘리더라고요. 아, 역시 배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영화는 감독이 혼자 만드는 게 아니란 것도 깨달았어요. 배우의 호흡이 함께 담겼을 때 더 좋은 장면이 나온다는 걸 알게 된 경험입니다.

<너의 순간> 스틸컷. 사진 제공=영화로운형제

상업, 비상업 영화를 오가는, 요즘 가장 핫한 옥자연 배우를 영 역할로 캐스팅하셨죠. 처음부터 염두에 두셨다고요. 두 분의 인연은 언제부터인지, 또 옥자연 배우의 어떤 매력에 끌리셨던 건지 궁금해요.

제가 김지운 감독님 <밀정>(2016)의 연출부로 일하면서 오디션을 진행했어요. 정말 수백 명의 배우를 봤습니다. 그때 옥자연 배우를 처음 봤죠. 연극 무대에서 활동하다가 막 상업영화 오디션을 하나둘 보던 시절이었죠. 그때 느꼈어요. 옥자연 배우가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가 있구나, 그 목소리가 상대를 편하게 해주는구나 하는걸요.

그렇게 옥자연 배우가 <밀정>에서 송강호 부인 역으로 캐스팅되었죠. 상업영화 현장을 처음 경험한 배우가, 심지어 송강호라는 당대의 기가 센 배우의 상대역으로 연기를 하는데, 하나도 떨지 않는 겁니다. 나중에 본인은 떨렸다고 하던데, 제가 현장에서 느낀 건, 굉장히 차분하게 씬들을 소화하더라고요. 그걸 보고 앞으로 정말 잘 될 것 같은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의 작은 인연이 이어졌어요. 이후 작품할 때 연락을 주고받고 하면서 이번 영화에 출연을 부탁했던 거죠.

<너의 순간>에서도 옥자연 배우의 그런 매력이 잘 표현되었다고 생각하세요?

<너의 순간>은 나레이션이 특히 많은 영화잖아요. 소리가 중요한 영화라는 생각을 했어요. 영이 처음 만난 상대에게 ‘하룻밤 재워주실 수 있어요?’라고 말하잖아요. 사람이 그래요. 어떤 목소리 톤을 가졌느냐에 따라 신뢰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처음 옥자연 배우를 만났을 때 느낌이, 영 역할에 너무 잘 어울릴 거 같았거든요. 영이라는 캐릭터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며들게 만들어야 했어요. 정후의 아버지를 처음 찾아갈 때도, 목소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물론 목소리만 가지고 캐스팅한 건 아닙니다(웃음). 최종 낙점 전에 캐스팅 회의를 여러 번 했고요, 다른 배우들을 물망에 올려놓고 찾아보기도 했어요. 옥자연 배우에게는 이런저런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는 이야기 정도를 하면서요. 그냥 작은 역할이라도 제 영화라면 출연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 말에도 감사했어요. 최종 시나리오 나올 무렵 옥자연 배우가 단발이었어요. <백두산>(감독 이해준‧김병서, 2019) 촬영을 막 마친 상태였거든요. 그 짧은 머리 이미지가 <너의 순간> 영의 이미지와도 잘 어울렸던 거 같아요. 정형화되지 않은, 약간 중성적인 캐릭터 느낌도 있었고요.

<너의 순간> 스틸컷. 사진 제공=영화로운형제

정후의 고향 친구로 등장하는 차희 배우, 어린 정후의 엄마로 출연한 박지연 배우 그리고 정후 아버지의 젊은 시절로 등장한 유상재 배우 등 출연 배우들의 합이 좋았다고요.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현장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던 건가요?

정후의 어린 시절 에피소드를 찍을 때 이야기입니다. 다대포 해수욕장에서 찍었어요. 어린 시절 정후가 아버지, 어머니와 바닷가에서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었죠. 사실 찍을 분량이 많았어요. 엄마가 바다로 들어가는 장면을 해가 질 무렵에 찍어야 했고요. 그다음에는 아빠가 뛰어 들어가야 하는 장면, 그다음은 어린 정후가 그 광경을 보는 장면, 마지막으로 이 모든 장면을 영화를 위한 사진으로 남기는 것까지요.

날씨가 많이 안 좋았어요. 동선을 철저히 계산하고 보니, 한 테이크 안에 다 담아야 하는 상황이더라고요. 한 컷이라도 틀어지면 해도 지는 상황이라 연결해서 찍을 수가 없을 정도였죠. 모든 스태프들이 긴장한 상황이었어요. 수심이 깊지 않아서 엄마가 바다에 빠지려면 굉장히 멀리 60~70m를 걸어가야 했어요. 연출부가 멈추라고 소리를 질러도 안 들릴 정도로 멀리 걸어갔죠. 물론 촬영 중이라 중간에 디렉션을 줄 수도 없어서, 오롯이 배우에게 맡긴 장면이죠. 걸어가다가 바다에 빠지고, 최대한 물 안에서 숨을 참고 있다가 나오자마자, 그 옆에서 프레임 밖에서 준비하던 아빠가 뛰어 들어가고, 그다음에 어린 정후 장면을 찍고, 이렇게 유기적으로 모든 컷들이 딱 맞아떨어지게 한 테이크로 찍은 거예요. 배우, 스태프 할 것 없이 모두 환호성을 질렀죠. 결과물도 잘 나왔고요(웃음).

색감도 화면도 너무 예쁘게 나와서 여러 번 찍으신 줄 알았는데, 그걸 한 번에 하신 거군요! 갑자기 드는 궁금증인데요. 보통 캠핑카가 작은데, 정후의 캠핑카는 엄청 크게 느껴지더라고요. 촬영의 노하우가 있었던 건가요?

예산만 충분했으면 조명을 많이 쳤겠죠. 그런데 이번 영화는 촬영감독이 조명도 같이 했어요. 몇 개 안 되는 라이트로요. 정후 아버지 친구가 운영하는 사진관 씬도 사실 낮씬인데, 해가 떨어지고 찍은 거예요. 몇 개 안 되는 라이트를 촬영감독이 잘 살려서 해준 거죠. 캠핑카도 마찬가지였어요. 기존에 캠핑카에 달려 있던 라이트에 보조 라이트를 더해서 완성한 거죠. 비 오는 장면은 분무기 하나로 창문에 물 뿌려가면서, 마치 대학생 때 단편영화 찍듯이 그렇게 재밌게 찍은 거 같아요. 아, 영이 처음 정후의 캠핑카로 뛰어오는 장면은 정말 비가 올 때 담았습니다(웃음).

<너의 순간> 스틸컷. 사진 제공=영화로운형제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화면이 정말 예쁩니다. 러닝타임이 80분이 조금 넘죠. 정후 친구이자 아버지 제자나, 아버지 친구 사진사 같은 분들 에피소드를 좀 더 늘리고 싶은 욕심은 없었나요?

처음부터 85분~90분이 목표였어요. 관객이 지루할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최대한 90분은 넘기지 말자는 걸 염두에 뒀죠. 씬 길이도 그렇게 조절했고요. 조연 배우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영화의 포인트는 영과 정후에게 맞췄습니다.

알겠습니다. 이제는 감독님 이야기를 좀 여쭤볼게요. 영화감독의 꿈은 언제부터 가지신 건가요?

고향이 김천이에요. 집 앞에 극장이 있어서 자주 갔어요. 주말에는 집에서 토요명화를 봤고요. 더 적극적으로는 동네 작은 서점에서 「키노」나 「스크린」 같은 잡지를 사서 봤어요. 너무 좋았죠. 그렇게 조금씩 혼자 영화 보는 걸 10대에 즐겼던 거 같아요. 저녁밥 먹고 바로 극장 가서 영화 보는 식으로요.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영화를 공부하게 된 건 언제, 어디서였나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영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상경했습니다. 그런데 뭐 지금처럼 인터넷이 활발한 시절이 아니라서, 어디서 무얼 할지도 모르니까 영화학과를 가야겠다고 해서 대학에 갔고요. 그러다가 제대하고 나서 복학까지 8개월이 남았는데, 최동훈 감독의 입봉작 <범죄의 재구성> 회사에서 제작부 막내를 구한다는 공고를 보고 무작정 찾아갔어요. 제작부장이 절 예쁘게 보셨는지 같이 하자고 하시더라고요. 당연히 하겠구나 하고 고향에 잠깐 내려왔는데, 연락이 왔어요. 한 작품이라도 경험해 본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정말 미안한데 못 하게 되었다고요.

<너의 순간> 스틸컷. 사진 제공=영화로운형제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제작부장이 일을 소개해주셨어요. 일을 정말 열심히 할 거 같아 보였나 봐요. <목포는 항구다>라는 영화가 막 촬영을 시작했는데, 제작 지원을 뽑는다고, 소개해주겠다고 하더라고요. 바로 배낭 하나 메고 목포로 갔습니다. 지원을 간 건데 끝까지 함께 하자고 하셔서 처음으로 같이 한 작품이죠. 그때 맺은 인연으로 다른 영화 작업을 하다가 유성엽 감독의 <친청엄마>(2010) 연출부로 시작한 거죠.

이후 많은 영화 작업을 하셨어요. 이런 질문은 좀 그렇지만 가장 영향을 받은 감독이 있다면요? 좋아하는 영화라든가요.

‘가장’이라는 말을 빼면, <어비스>(감독 제임스 카메론, 1990)인 거 같아요. 수중 안에서 이미지가 기억에 많이 남아 있죠. 사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을 모를 시절인데, 그렇게 대작 영화였다는 걸 알게 되면서 이후부터 영화를 많이 찾아봤어요. 블록버스터든, 저예산 영화든 가리지 않고요. 특별히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좋아하는 감독이 많죠. <너의 순간> 찍을 때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어떻게 배우를 캐스팅했는지 배웠고요, 안드리아 아놀드 감독의 <폭풍의 언덕>(2012)도 봤죠. 같은 감독의 다른 영화들도 찾아봤고요, 물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영화도 너무 좋아해요. 왕가위 감독도 좋아하고요. 다양하게 보려고 노력했던 거 같아요.

<너의 순간> 스틸컷. 사진 제공=영화로운형제

한국 감독 중에서는요?(웃음)

너무 많은데, 한 분만 말씀드리면 다른 감독님들이 서운해할 거 같긴 합니다만(웃음). 여러 편을 같이 했던 김지운 감독님은 정말 배울 점이 많은 분인 거 같아요. 연출적 능력을 배울 수는 없지만, 영화를 대하는 태도랄까, 상대방을 관찰하는 방법이랄까 정말 배울 점이 많더라고요. 가장 최근에 많은 작품을 함께 해서인지 존경의 마음이 크네요.

차기작은 뭐로 준비 중이신가요?

지금 우울증에 관련된 신약 이야기 시나리오를 쓰고 있어요. 지방 소도시 큰 병원에서 벌어지는 신약 실험 이야기죠. 장르는 아마 드라마가 강한 스릴러가 될 거 같아요.

<너의 순간> 스틸컷. 사진 제공=영화로운형제

마지막으로 <너의 순간>을 볼 관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여곡절 끝에 영화가 대중을 만나게 되어 개인적으로 너무 기쁩니다. 사실 한국 영화가 지금 투자도 많이 못 받고 어려운 시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너의 순간> 같은 다양한 영화들이 조금이라도 관객과 만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요즘 대작 영화들이 많은데, <너의 순간>은 살면서 조용하게 다가올 수 있는 영화라고 봐요. 그런 감성을 경험하고 싶은 분들은 극장을 찾아주시면 좋겠어요. 주변에 소문을 내주시면 더 좋고요.


윤상민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