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의 최대 적은, 클리셰가 다분한 스토리라인 일지 모른다. ‘10년 만에 출소한 남자가 납치된 자신의 딸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라는 이야기에서 우리가 끄집어낼 수 있는 키워드는 지극히 한정되어 있다. 그걸 읽은 건 선배 배우이자 감독인 정우성에게 연기자의 관계로 함께 뛰어든 김남길도 마찬가지였다.
김남길이 연기하는 ‘우진’은 이 두 ‘설계자’들의 고심 끝에 만들어진 참으로 기상천외한 악역이자, <보호자>에 독특함과 활력을 주는 캐릭터다. 우진은 이 영화에서 청부업자, 이른바 돈을 받고 더러운 일을 처리해 주는 해결사인데, 그의 이번 미션은 정우성이 연기하는 수혁을 지구 끝까지라도 따라가서 처단하는 역할이다. 이야기가 흥미진진해지는 건 여기서부터다. 김남길은 마치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악역들과 비교해 얼마나 더 나빠질 수 있는지 경쟁이라도 하듯, 그 ‘악역의 역사’를 해체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보호자>의 우진은 사악하고 천진하고 불쌍한 지점들이 캐릭터 하나 안에서 쉴 틈 없이 가동되어 스릴 가득한 롤러코스터처럼 우리를 이 악행의 흐름에 태운다. 분명한 건, 당신이 <보호자>를 보면 지금까지 한국 누아르물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이 새로운 악역을 만날 수 있다는 것, 그 캐릭터가 자꾸 파보게 만드는 연구대상이라는 점이다.
겹겹의 ‘악행’에 숨결을 불어 넣는 작업은 우리가 익히 알았던 배우, 최근작만 언급하더라도 벌써 TV 시리즈 <열혈사제>의 코믹한 모습부터 역시 TV 시리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같은 리얼한 장르물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실망시키지 않고 자신의 진가를 보여줬던 김남길이다. 디테일한 캐릭터 읽기와 실행으로 캐릭터를 완성한 <보호자>의 해결사 김남길을 만났다.
배우 정우성이 아닌 ‘신인 감독 정우성’과의 협업이셨어요. 캐스팅 과정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제안을 받고 나서 ‘정우성’과 오랜만에 다시 누아르를 하는 건가 하면서 시나리오를 읽는데, 좀 독특했어요. 감독님이 클리셰가 있는 영화라는 말을 하셨지만, 이 영화는 확실히 좀 독특한 지점이 있는 작품이었어요. 캐릭터가 좀 이상하더라고요. 계속 끌려다니고, 붙잡혀 있고 이게 뭘까 싶더라고요. 캐릭터의 독특한 지점을 잘 살리면 재밌는 이야기가 되겠다 싶었죠. 솔직히 며칠 고민해 볼 기회도 없었어요. 사실 우성 형이 ‘할래?’ 이러면 그냥 ‘네’ 이런 스타일로 대화가 진행되는 편이라, 바로 하기로 했죠. (웃음) 이런 캐릭터를 표현할 때 ‘김남길이란 배우가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동안 선배님에 대해 가졌던 믿음 같은 것에 보답하고 싶기도 했고요.
그 믿음의 바탕이 어떤 것이었나요.
이번 작품에서는 철저하게 조연 입장에서 ‘내가 더 나가지는 말자’라는 생각으로 만들어 나갔어요. 앞서 갤럭시 S4의 브랜드 필름 <나와 S4 이야기>(2013)로 함께 작업하면서 쌓아 온 감독님에 대한 신뢰가 있었고, 우성 형이 가지고 있는 독특함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배우 정우성에 대한 신뢰가 컸죠. 정우성이라는 배우가 연기자로 쌓아 온 현장에 대한 경험이야 말할 게 없고요. 그리고 또 감독이나 배우도 그 사람의 기본적인 성향이나 태도가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해요. 제가 우성 형과 같이 지내오면서 좋아하는 부분 중 하나가, 후배들이나 같이 작업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한결같은 태도예요. 본인도 사실 힘들고 외롭고 지치는 일이 많거든요. 그런데 항상 후배들을 더 챙기려고 하고 현장에서 스탭들에게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이번 현장에서도 배우도 하면서 연출도 하는 게 사실 쉬운 것도 아니고 되게 힘들 법한데 그런 걸 잘 내비치려고 하지 않아요. 그래서 너무 빈틈을 안 보이다 보니까 오히려 인간미가 없어 보일 때가 있죠. 괜히 그럴 때 “힘드세요?” 하고 다가가지 않으려 하고 멀리 떨어져 있으려고 해요. (웃음)
우진은 기존 범죄누아르 장르에서 본 악역의 전형성에서 많이 벗어나 있어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천진함과 장난스러움이 오히려 그의 악행을 부각시켜 주죠.
천진난만함에서 오는 공포를 살리고 싶었어요. 아이 같은 면모를 드러내고, 불확실성에서 오는 공포를 줘야겠다 싶었어요. 대사에서 조금 힌트를 얻은 게, 우진이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는데, 성장기의 아픔,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과거의 기억 안에 머물러 있는데요. 피터팬증후군 같은 게 좀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했어요. 한편으로는 우진의 그런 천진한 악역의 면모가 너무 부각되면 항상 같은 공간에 있는 우성 형이 연기하는 수혁이 중심이 되는 묵직한 스토리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내 캐릭터가 너무 튀지 않을까 했어요. 그 고민을 이야기했더니 감독님은 오히려 “더 나가도 돼!”라고 자유롭게 열어주시더라고요.
장난스러움과 결부된 행동들을 볼 때 <배트맨> 시리즈의 조커가 연상되는 광적인 면모도 보이는데요. 애초 캐릭터를 구상할 때 참고했던 인물이 있었나요.
다른 영화들을 찾아봤는데, 킬러나 해결사 같은 캐릭터는 대부분 비슷하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소시오패스적인 면모가 있거나 사이코패스 같은 역할. 어둡거나 광기가 넘쳐흘러서 그게 오히려 밝은 모습으로 표현되는 캐릭터들을 생각했어요. 누군가를 해하고 나서 어린아이같이 돌아서서 표정을 바꾸는 양면성을 보여주는 거죠.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하고 나니 기존 캐릭터들과 비슷할 것 같더라고요. 그러던 중 감독님께서 “그냥 네가 가진 남길이의 성향들을 우리가 조금 확장해서 우진 캐릭터에 가져와도 되지 않을까?” 하셨어요. 그 방향이 우진이를 표현하는데 좋은 해결책이 될 것 같다고요. 거기서부터 발전시키다 보니 우리가 찾던 우진의 모습이 제가 어릴 때 봤던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에서 본 캐릭터들과 좀 비슷한 것 같았어요. 제가 원래 애니메이션을 보고 목소리 톤을 많이 따라 해요. 개그맨 따라 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웃음) 우진이도 만화적인 부분들을 살려서 접근했죠. 조커나 사이코패스 같은 걸 대입 시키다가 딜레마에 빠지고 진전이 되질 않다가, 그걸 버리고 아예 어릴 적 기억을 끄집어낸 거죠.
혹시 얘기해 줄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 있나요? (웃음)
조카가 자주 보는 애니메이션 중에 <브레드 이발소>라고 있어요. 이게 은근히 잔인해요. 총을 쏴서 머리가 날아가는데, 그걸 그냥 보고 있어요. 이걸 애들이 봐도 되는 거야, 싶을 정도로 잔인한데, 그런 게 애니메이션에서는 또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져요. 그런 부분들을 좀 참고했어요. 평소라면 밝고 귀여울 수 있는, 형에게 귀여운 동생 놈이 될 수 있는데 지금은 기괴한 거잖아요. (웃음) 아주 하이톤도 아니고 그렇다고 또 저음도 아닌데, 긍정적인 말투는 가진 그런 면모를 반영했죠.
못이 발사되는 네일 건 같은 특이한 도구가 우진 캐릭터의 장난스러운 광기를 부각시켜 주는 것 같아요.
특이하죠. 시나리오에 있었던 설정인데, 우진이 아이 같다 보니 중학생 애들 같은 상상을 해봤어요. 구슬 같은 것도 생각해 보다가 못이 들어간 총을 쏘면 삐죽한 이미지가 주는 아픔이 있으니까 그걸 해보자, 그렇게 일반 총보다는 우리 방식대로 해보자, 폭탄에도 다 그림을 그려놓잖아요.
우진의 외형적인 부분은 어떻게 나오게 된 건가요.
염색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머리 색깔이 완전 까매서 염색도 잘 안 먹어서 잘 안 하는데, 우진 머리에 색을 입히면서 탈색을 네 번인가 했는데도 색이 잘 안 보이더라고요. 블루블랙으로 하고 나서 자꾸 지워져서 나중에는 파란색 염색약을 했어요. 의상도 좀 독특하게 가려고 의상감독님이 코트를 하나만 입는 게 아니라, 붙여서 만들자 했어요. 양말, 신발 하나까지 독특하게 가려고 했죠. 그 코트는 지금도 겨울에 입고 다녀요. (웃음)
우진과 수혁의 관계성은 좀 더 해석이 필요할 것 같아요. 수혁은 우진이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 원수이고, 이어서 우진은 고용된 해결사로 수혁을 처단하는 게 목적인데요. 그 과정에서 우진이 오히려 수혁의 고통을 지켜보면서 흥미로워하고 그게 공감으로 이어질 것 같은 여지를 지속적으로 남겨요. 감독님과 함께 이 둘의 관계성을 어떻게 설정하셨나요.
서로에게 조금은 영향을 받는 캐릭터죠. 우진이는 성장기에 부모에 대한 기억보다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더 큰 인물이에요. 본능적이고 아이스러운 면모가 큰 편이라,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계산을 하기보다 상황에 빠져드는 편이죠. 수혁과 다니다가 그가 하는 것들에 동화되고, 호기심도 생기기 시작하는 거예요.
함께 해결사 메이트로 활약하는 진아(박유나)와의 관계도 해석의 여지가 있는데요. 어떤 전사가 있다고 생각하셨나요.
친남매인지 아니면 연인인지, 이런 관계성에 대해 고민을 좀 했어요. 확실한 건 둘의 관계에 있어서 우진의 보호자는 진아였거든요. 그런데 둘의 관계를 너무 발전시키면 곁가지 이야기가 커져 버려서, 감독님과 큰 틀에 대해서 설정을 하고 심플하게 접근하자는 생각으로 만들어 갔어요. 그런 흐름에서 편집된 신 중 하나가, 우진이 과거에 관해 이야기하듯이 진아도 둘이 수영을 할 때 자신의 과거에 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둘의 아지트인 수영장이 사실은 진아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사업체였는데, 사정상 망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그걸 담담하고 어른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진아 캐릭터가 더 살아나요. 사실 수영할 때 장난치면서 머리 위에서 누르고 이러는 게 좀 있었는데, 자칫하면 이성적으로 너무 깊은 관계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서 ‘궁금증을 더 줄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해서 감독님도 그 지점을 편집하신 것 같아요.
액션 신이 다양하게 설계되어 있는데 인상적인 신을 언급해 준다면요.
카체이스 신을 찍을 때 우성 형이 하는 걸 보면서 ‘어디까지 직접 하려고 그러지?’ 싶었어요. 저도 웬만하면 직접 다 혼자 한다고 하는데, 우성 형은 저런 것까지 혼자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같은 배우로서도 대단하더라고요. 뒤에 타고 있을 땐 조마조마하기도 하고. (웃음) 터널 안에서 폭탄 터지는 신은 폭탄이 떨어져서 불이 들어오는데, 실제로 터트린 거예요. 맨 얼굴에 폭탄이 터지는 걸 이렇게까지 직접 하는구나,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어려운 장면들을 다 하는 걸 보면서 정말 그 근성에 다시 한번 놀랐죠.
정우성 연출의 <보호자>에 앞서서, <헌트>(2022)는 이정재 감독이 연출을 맡고 <클로젯>(2020)은 하정우 배우가 제작자로 참여하기도 했어요. 같은 연기 동료가 자신의 영화에 제작이나 연출자의 포지션으로 참여하게 될 때 어떠신가요.
배우에게는 좋기도 하기도 어렵기도 한 협업이에요. 같은 배우다 보니 연출자로 이야기할 때 좀 더 명확하죠. 배우의 호흡을 알고 연출을 하다 보니 장단점을 알아서 편해요. 명확하게 ‘우린 이렇잖아’ 하는 배우들만이 가지고 있는 언어로 서로 알아듣고 소통이 되는 거죠. 그런데 한편으로는, 숨이 막혀요. (웃음) 너무 잘 아니까. 예를 들면 가끔은 저도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보통 감독님들은 배우의 호흡을 몰라서도 있지만, 알면서도 서로 입장이 다르니까 적당히 넘어가 주기도 하는데, 배우들이 저 자리로 가면 제가 생각하는 걸 귀신같이 알고 있어서 도무지 숨을 데가 없는 거죠.
<보호자>가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가면 좋을 것 같나요.
촬영하며 만족감이 큰 영화였어요. 캐릭터 무비로 볼 때 정말 유니크하다, 한국영화에 모처럼 독특한 장르영화가 나왔다는 공감대가 퍼졌으면 좋겠어요. 당연히 많이들 봐주셔야 하고요. (웃음)
이화정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