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밤 ‘빅4’는 가고 남은 건 추석 ‘빅3’. 이번 추석에는 <1947 보스톤>,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거미집>이 일제히 9월 27일로 개봉 일자를 확정하며, 동시에 레이스를 시작한다.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은 귀신을 믿지 않지만 귀신같은 통찰력을 지닌 가짜 퇴마사 ‘천박사’(강동원)가 지금껏 경험해 본 적 없는 강력한 사건을 의뢰받으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는 후렛샤(글)·김홍태(그림) 작가가 2014년 네이버웹툰에 연재한 <빙의>를 원작으로 한다.

연출을 맡은 김성식 감독은 이번 영화가 장편 데뷔작이다. 그는 사실 혜성처럼 ‘짠’하고 등장한 감독이라기보다는, 차곡차곡 경력을 쌓아 오며 데뷔를 준비해온 인물이다. 그의 이력은 화려한데, 무려 <헤어질 결심>의 조감독, <기생충>의 조감독,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조감독 출신이다.

천박사는 추석 극장가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을까. 지난 19일 열린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이하 <천박사>)의 언론/배급시사회에서는 영화를 보고 배우, 감독, 기자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필자가 <천박사>를 미리 관람한 소감과 당일 현장에서 나온 감독, 배우의 코멘트를 토대로, <천박사>의 승산을 미리 점칠 수 있는 포인트를 정리해 봤다.


미스터리 오컬트라기보다는 판타지 액션

사진 CJ ENM

“제 또래 친구나, 언니 오빠들이 보면 재밌을 것 같아요!”라던 2012년생 11살 박소이 배우의 말마따나, 추석 연휴, 가족이 함께 극장으로 나들이를 온다면 가장 볼 만한 영화임은 분명했다(<천박사>는 12세 관람가지만, 보호자가 동행하는 경우에는 초등학생도 관람할 수 있다). 찝찝함과 복잡함을 남기지 않는 전개, 빅3 중 가장 짧은 98분의 러닝타임, 적당히 버무려진 코믹과 액션의 비율, 힘 들인 화려한 CG까지. 추석맞이 종합선물세트처럼, 연령을 불문하고 즐길 수 있는 상업 영화다.

다만, <천박사>의 부제처럼 ‘설경의 비밀’을 둘러싼 미스터리 오컬트물을 기대한다면 자칫 실망할 수도 있다. <검은 사제들>같은 강동원의 퇴마물을 기대했어도 마찬가지. <천박사>는 그보다는 오히려 코믹 판타지 액션에 가깝다. 설경의 비밀과 천박사의 미스터리한 정체는 극중 등장인물의 설명 등으로 빠르게 해소된다. 짧은 러닝타임과 타겟, 개봉 시기 등을 고려한 선택으로 보인다. 당초 가제였던 ‘빙의’를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로 바꾸게 된 이유도 위와 같을 터.


“장르가 강동원” 강동원으로 시작해 강동원으로 끝난다

사진 CJ ENM

김성식 감독이 배우 강동원을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영화는 ‘장르가 강동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강동원으로 시작해 강동원으로 끝난다. 김성식 감독은 “제 그릇이 작아서 강동원이라는 위대한 피사체를 잘 담아내지 못한 것 같다”라고 했지만, 강동원을 ‘잘 살린’ 영화임은 틀림없다. 능글맞고 유머러스하지만, 액션까지 소화해야만 하는 캐릭터 ‘천박사’가 유난히도 강동원과 착 달라붙기 때문.

강동원은 ‘천박사’가 “<전우치>, <검사외전>의 중간에 있는 캐릭터”라면서도 “내면의 아픔이 있는 캐릭터이기에, 감정 표현의 레이어를 신경 썼다. 또, 극을 이끄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유머를 섞고자 했다”라고 그가 여태 맡았던 역할과는 차별화되는 지점이 있음을 분명히 했다.

강동원이 연기한 천박사는 설정 자체가 흥미로운 인물이다. 천박사는 ‘신병’이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병이라고 믿고, 자신의 정신과 의사 경력을 살려 ‘짜고 치는 굿판’을 벌이는 인물. 다만, 영화가 전개될수록 천박사의 괴짜 같은 면모보다는 히어로 같은 능력이 부각되어, 영화가 끝난 뒤에는 그저 강동원이 ‘멋있는 역할’로 나오는 작품이라는 인상만이 남는다.


벌써부터 속편이 기대되는 이유

(왼쪽부터) 이동휘, 허준호, 김종수

캐릭터들의 설정이 흥미로운 데에 비해, 영화에서 그 장점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천박사> 시즌2가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만큼, 더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다.

독특하고 개성 있는 천박사의 캐릭터와 주변인들의 설정은 활용도가 높다. <천박사>에서는 천박사를 제외한 인물들의 서사가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았지만, 도령이지만 사실은 그저 퇴근하고 싶은 직장인인 ‘인배’(이동휘)부터 어쩌다가 골동품점을 하고 있는지 모를 ‘황사장’(김종수), 귀신을 보는 ‘유경’(이솜) 등 ‘천박사 팀’의 캐릭터들은 궁금증을 낳기에 충분하다. 이 영화가 단발성으로 끝나기엔, 캐릭터들의 케미가 좋아서 아쉽다.

김성식 감독은 후속편 제작이 예정되어 있냐는 질문에 “(속편은) 관객이 선택해 주셔야 하는 것”이라면서도 “선택을 받으면 즉시 만들 것”이라고 의지를 내비쳤다. <천박사>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범천’ 역을 맡은 배우 허준호 역시 “액션을 처음 해봤다. <천박사>를 찍기 전에는 액션 때문에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찍고 나니) 또 한 번 액션을 더 할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었다”라며 의욕을 보였다.


CG 만큼이나 화려한 카메오들

사진 CJ ENM

수식어가 필요 없는 강동원부터 압도적인 카리스마의 명배우 허준호, 다양한 장르에서 연기력을 입증한 이솜과 코믹 연기 장인 이동휘, <밀수> <무빙> 등의 흥행부적 김종수까지. <천박사>는 화려한 주연 캐스팅만큼이나, 영화 곳곳에 특별출연한 배우들의 라인업 역시 화려하다.

먼저 <기생충>의 부부, 이정은과 박명훈이 초반부의 웃음을 담당한다. <기생충>에서는 부잣집에 기생하던 그들이, <천박사>에서는 기생충의 부잣집을 닮은 호화로운 주택의 주인으로 등장한다는 것 자체가 웃음 포인트. 김성식 감독은 “(<기생충>을 함께 한) 봉준호 감독에게 허락을 구했다. 이들을 출연시킨 이유는 원래 시나리오에 부잣집이라는 설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부부의 딸로 등장한 배우 조이현 역시 반갑다.

‘다작왕’ 김원해의 존재감도 압도적이다. 드라마 <악귀>에서는 악귀를 믿지 않던 경찰 김원해가 이번에는 악귀를 물리치는 무당으로 변신했다. 한편, ‘카메오 박정민’은 어느새 고유명사가 됐다. <밀수>에 이어 박정민과 한 번 더 호흡을 맞춘 김종수는 “박정민은 팔색조 같은 배우다. 박정민의 출연 분량을 이틀 밤새워서 찍었는데, (피곤한 것보다) 박정민의 연기를 보는 게 즐거웠다”라고 전하며, <천박사>에서도 여지없이 장기를 발휘한 박정민의 연기를 언급했다.

특히, 영화 중 블랙핑크 지수의 등장은 모두를 놀라게 한 부분. 극중 지수는 ‘선녀’ 역으로 깜짝 등장한다. 김성식 감독은 지수를 카메오 출연시킨 이유로 “선녀 역할에 어울리는 배우를 고민했다. (지수를 캐스팅한 이유에는) 팬심이 50%, 그리고 운이 50% 정도 작용한 것 같다”라며 우스갯소리를 건넸다.


씨네플레이 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