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하 본문에서 영화 <거미집>은 <거미집>으로, 영화 안에서 촬영하는 영화 속 영화는 "거미집"으로 표기한다.

김지운 감독 (사진 제공=바른손이엔티)

김지운이 돌아왔다. 4년 만의 신작 영화를 들고서. 2019년 <인랑>이 흥행이나 비평 모두 썩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음에도, 김지운 감독의 귀환은 관객이라면 누구나 기다렸을 수밖에 없다. 2000년대 한국 영화 르네상스를 이끈, 이른바 '박봉김'(박찬욱, 봉준호, 김지운)의 김이기에 그의 신작 <거미집>은 눈여겨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다시 말하자면, 정말로 김지운이 돌아왔다. 영화가 정부의 검열을 받던 1970년대, 결말만 다시 찍으면 "거미집"이 걸작이 될 거라는 감독 김열(송강호)의 믿음에서 시작된 좌충우돌 소동극은 코미디와 예술가의 광기를 모두 아우른다. 영화 현장의 돌발상황과 인물 간의 기묘한 신경전, 그리고 인정받고 싶은 예술가의 욕구가 한데 뒤얽힌 그곳은 관객을 웃게 하면서 관객의 마음에 끈끈한 거미집을 드리운다. 그리고 김지운이란 그 이름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만난 김지운 감독과의 인터뷰 시간을 아래 전한다. 굵직한 저음의 목소리로 차분하면서도 거침없이 영화와 <거미집>을 말하는 그의 모습을 문자로는 완전히 담아낼 수 없단 점이 안타깝다. 9월 27일, 추석 연휴 대전에 뛰어든 <거미집>을 김지운 감독과 함께 더욱 깊게 들여다보자.


<거미집>

영화를 직접 보니 칸 영화제 경쟁 부문이 아니라 비경쟁 부문 진출이 아쉽더라.

칸 영화제가 그동안의 '올드보이즈'라고 해야 하나, 그쪽에 치우쳤다는 얘기를 많이 하더라. 영국 감독 켄 로치도 거의 마지막 작품이 있기도 했고. 이런 배려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 영화를 만들 때 비경쟁이 맞다고 생각했다. 이제 경쟁부문을 가면 더 비싸게 팔리는 게 있어서(웃음) 프랑스 배급사나 다른 사람들이 경쟁 부문 가야 한다 그럴 때, 그렇지만 나는 이 영화가 경쟁하는 영화가 아닌 것 같았다. 재밌게 잘 만들어놓고 스트레스 받을 필요가 뭐가 있나.(웃음) 그런 얘기를 하면서 반대했었다. 아마 나만 반대했을 거다.

이번 영화 성격상 영화에 대한 오마주들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동안 각본을 직접 쓰셨는데 이번에는 각색과 연출을 맡았다. 시나리오의 어떤 부분이 흥미로우셨는지.

팬데믹 기간에, 세상에 모든 게 다 멈췄을 때 나도 영화계도 타격을 입었다. 영화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야 되는 것이서 더더욱 직접적으로 타격이 왔다. 세계 모든 영화계가 멈췄다. 나뿐만 아니라 세상의 영화인들이 다 같은 느낌을 가졌을 것 같다. 그래서 유독 최근 2~3년 사이에 영화에 대한 영화 얘기가 되게 많이 나왔다. <바빌론>(데이미언 셔젤)도 그랬고 스필버그도 그랬고(<파벨만스>) 난니 모레티도 그랬고(<찬란한 내일로>). 그래서 나만 영화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각자가 자신한테 영화란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한번 소환하고 재정립하고 재정의하는 시간을 갖게 되는 때였구나라는 생각을 하던 차에 그런 소회라든가 성찰, 상념들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반영할 수 있는 작품 <거미집>이 딱 찾아왔다. 이렇게 영화의 위기 시대에 영화에 대한 얘기를 근본적으로 다시 하는 게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특히나 영화계의 회복력이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되게 늦다. 더더욱 지금 우리나라 영화에 필요한 영화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내가 처음 영화를 알게 됐고 영화를 사랑하게 됐던 때에 그 당시에 했던 영화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들, 그리고 내가 영화를 만들면서 현장에서 느꼈던 여러 가지 감정들. 이런 것들을 영화 안에 반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딱 됐다.

김지운 감독 (사진 제공=바른손이엔티)

신연식 감독이 쓴 시나리오가 어떻게 감독님에게 찾아오게 됐나.

송강호 씨를 통해서 얘기를 들었다. 이런 영화가 지금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데 좀 기술적으로 표현해 주시기 바라는데 투자를 받을 수가 없는 상태라고 했다. 기획 자체가 사실 지금 영화계 상황에서 계획되기가 좀 어려운 것이었다. 그래서 “그럼 내가 한번 해보겠다. 내가 이렇게 죽은 시나리오 잘 살려낸다”. <악마를 보았다>도 그랬다. (웃음) <악마를 보았다>도 한국 최초로 하드고어 스릴러를 표방한 작품이라 투자가 어려웠다. 실제로도 극단적으로 반응이 갈리는 그런 영화가 됐다. 외국에선 '익스트림 아시아 영화'의 대표적인 영화처럼 걔네들한테 소비되고 있어서 반응이 좋았다. 난 항상 맹숭맹숭하게 이것저것 다 고려하고 안배하면서 하는 것보다 그냥 내 개성과 이런 거를 세게 잘 집어넣을 수 있는 작업을 해왔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거미집>도 대중성 확보에 결핍되는 곳이 있을지 모르겠지만은 이렇게 새로운 어떠한 영화를 찾는 관객들이 분명히 있을 거다, 그래서 이것저것 섞으면서 순화시켜서 맹탕 영화를 만드는 것보다는 내가 생각했던 영화를 만드는 것이 좋겠다 싶어 지금의 <거미집>이 나왔다. 그나마 대중적인 접근법을 많이 생각하면서 만든 그런 결과물을 낸 거고 또 이제 그래서 결국 영화를 만들게 됐던 거고 그래서 영화적인 자존심을 지켰다. 이게 내 자평이다. 왜 그러냐면 어려운 기획이어서 선뜻 투자를 어디서 받기가 너무 힘들었다. 사실은 OTT의 유혹이 있었다. 거기 가면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거미집>이) 영화 얘기인데, 현실은 영화 판에서 이 영화 얘기를 한다는 게 너무 어려운 상황이고 OTT는 너무 쉽게 갈 수 있을 것 같고. 그런 의미에서 내가 영화적 자존심을 지켰다는 얘기를 한 말씀 드리는 것이다. 기어코 김열 감독(송강호)이 극중 "거미집"을 만들었듯이 나도 결국 영화를 만들어냈구나. 영화로.

각색한 부분 중 구체적인 부분을 짚어준다면.

예를 들어서 신상호 감독의 존재, 그리고 쁠랑세캉스(한 씬을 컷 없이 한 번에 찍는 것), 그리고 영화 속 영화의 후반부 장면들. 이런 것들이 가장 두드러지게 제가 추가한 것들이고. 그리고 (영화 속 "거미집"에서) 여성 캐릭터를 욕망의 캐릭터로 바꾼 지점. 그러니까 되게 순종적이고 헌신적인 고전적인 여성 캐릭터를 바꿔 욕망이 넘치는 캐릭터로 바꿔 여성 서사를 만드는 점. 이런 것들이 약간 두드러지게 바뀐 점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제 후반부에 소동극이 일어나는 거. 이런 것들이 이제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이렇게 완전히 아수라장 소동극으로 만들어낸 거, 이런 것들이 바뀌었다.

<거미집> 촬영 현장

그 소동극은 쁠랑세캉스를 먼저 생각하시고 난 다음에 그 장면이 붙게 된 건지

뭐가 먼저다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항상 창작 과정이 그런 것처럼. 내게 쁠랑세캉스는 세 가지 기능과 세 가지 의도가 있다. 하나는 일종의 맥거핀 효과. 쁠랑세캉스가 나올 때마다 사람들이 이게 되게 중요한 건가 보다(웃음) 싶으면 다른 얘기로 이렇게 넘어가는, 결국 이 얘기가 이 얘기를 하려고 이렇게 깔아놓은 포석이었구나 이런 게 의도였다. 그래서 쁠랑세캉스를 사람들이 막 기대하거나 되게 중요한 어떤 장치인가 보다 싶어 텐션을 갖게 하는. 또 하나는 김열이 평생 2류 감독, B급 감독으로 있는 거기서 탈피하려는 욕구 때문에 쁠랑세캉스라는 되게 아티스트한 감독들의 전유물 같은 것들을 자기가 보여줘야 한다, 그것으로 예술감독으로서의 비전을 과시해야 된다 하면서 그런 악조건 속에서 굳이 왜 쁠랑세캉스를 하려는 (일동 웃음) 그런 어떠한 것들이 있다. 감독들이 현장에서 제일 부딪히는 것들 중 “아니 그걸 굳이 왜 하려고 그래?” 하는데 '나는 해야 될 것 같아' 이런 게 있다. 근데 그게 그 사람의 독창성이고 오리지널리티를 보여주는 것인데, 그래서 이제 그거를 밀고 나가는 지점으로서의 쁠랑세캉스. 또 하나는 김 감독이 영화 안에서도 '나는 지금 이렇게 헌신적이고 이렇게 희생하는데 모두 나만 방해한다'고 얘기를 하다가도 또 한편으로는 '내가 재능이 없는 걸까' 이렇게 왔다 갔다 하지 않나. 자기에 대한 믿음과 또 끊임없는 자기혐오 같은 의심을 왔다 갔다 하는 대목이 있는데 나도 많이 느낀 것이다. '아니 지금 나만 이 현장에서 애쓰고 있나?' 이럴 때가 있다. 다 같이 좋으려고 하는 건데. 반면에 사실은 더 큰 감동을 얻을 때도 있다. 스태프과 배우들이 초긴장 초몰입 상태에서 무언가를 어려운 장면을 성취해냈을 때. 그런 감동을 쁠랑세캉스를 찍는 그 모습에서 좀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현장에서 느낀 감동들. 모든 사람들이 혼연일체되고 합심해서 모은 것을 성과로 성취해내는 어떤 그 과정. 이게 “이렇게 우리는 영화를 만듭니다”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거다.

김지운 감독 (사진 제공=바른손이엔티)

아까 영화의 의미, 영화의 재정립 이런 말씀을 했는데 그럼 감독님한테 '영화'는 어떤 의미를 갖는 단어라고 생각하게 됐는지 궁금하고 또 감독이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셨는지 궁금하다.

영화감독으로서 영화를 만들어내면서 내가 최종적으로 듣고 싶은 말이나 이루어내고 싶은 것이 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좋은 책을 보며 좋아지고, 좋은 영화를 보면서 좋아진 부분들이 있다. 적어도 더 나빠지지 않은 부분들이 있다. '저런 영화를 만들려면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어떻게 살아야 될까' 이러면서 자기단련의 시간을 확장시킨 것들이 있다. 내가 저런 영화를 만들려면 내가 지금 놀고 있으면 안 되지, 책을 봐야지, 내가 저런 영화를 만들려면 더 인내를 가져야지, 더 혹독한 나의 시간들을 가져야지. 이렇게 하면서 자기를 이렇게 단련시키는 시간들을 보내며 좋아진 부분들이 있다. 그런 것처럼 누군가에게 내 영화가 그렇게 작용되는 것이 내가 영화를 만드는 마지막 이상 같은 거다. 영화는 나한테 그런 것이고. 감독의 존재는 모든 게 되게 복잡한데 현장에서 가장 외로운 존재이기도 하고 매번 매 순간이 그런 선택을 해야 하곤 한다. 그러니까 시한폭탄을 들고 있는 상태다. 언제 터질지 모르고 터지기 전에 버튼을 눌러야 되는데 누르는 시간이 맞는지도 모르겠고 지금 눌러야 되는 건지 조금 더 끌었다 눌러야 되는지. 그런 것들이 너무 혼란스럽고 혼자 결정해야 될 때 좀 외로울 때가 있다. 또 현장에서는 가장 책임자니까 나도 불안하지만 그 사람들 동요시키지 않으려고, 많게는 100명 정도의 사람들이 현장에서 “어떻게 할까요?” 하면서 나를 보는데 나도 모른다. 근데 짐짓 그 사람들을 동요시키지 않고 안정시키려면 “괜찮아, 오케이야” 이래야 하지만 내가 속으로 떨릴 때가 있다. (웃음) 진짜 힘들다. 그렇게 감독은 현장에서 가장 고독하고 불안한 상태 불안한 존재,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는 거고 그렇지만은 <거미집>에서 나오는 것처럼 결국 자기를 믿고 갈 수밖에 없다. 누구한테 물어볼 수가 없다. 챗GPT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일동 웃음) 물론 영화가 협력 예술이지만 또 (조언을 구한) 그 사람의 말이 맞다 싶어도 보장이 안 되는 거니까.

<거미집>

앙상블 코미디를 표방했다. 배우들이 다했다라고 말하긴 했지만, 감독 입장에선 어떻게 준비했는지 알고 싶다.

이번에는 캐스팅 조건 원칙들이 있었다. 대사를 진짜 잘 다루는 사람, 이렇게 감칠맛있게 잘 다루는 사람. 대사를 칠 때 호흡을 조절할 줄 아는 배우들. 그러니까 흘러가는 얘기인데도 막 감칠맛이 나게 하는 배우들. 이 영화가 끊임없이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그런 것들이 필요하니까 딕션이 깨끗한 사람들, 잘 들리는 사람들. 이런 배우들, 딕션의 장인들 위주로 캐스팅을 하려고 했다. 애덤 맥케이의 <돈 룩 업>이라든가 또 <아메리칸 허슬>(데이비드 O. 러셀) 같은 진짜 연기 달인들 장인들이 나와서 막 이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이렇게 만들어내는 고품격 코미디 같은 것들이 있다. 선수들이 할 수 있는 협동의 예술 같은 느낌들. 누가 더 나서지도 돋보이지도 않고 각자 빛난다. 프로페셔널이라는 것은 각자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잘 차지하고 있고 그것을 수행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앙상블의 매력인 것 같다. 고른 어떤 재미를 도처에서 느낄 수 있는 상태. 우리나라도 한 번 제대로 된 앙상블 연기가 이렇게 재밌을 수 있다를 한번 보여주고 싶다라는 야심은 있었다.

오여사 역의 박정수(왼쪽), 한유림 역의 정수정

의외의 캐스팅이라면 박정수씨와 정수정씨가 있다. 정수정씨 f(x) 때부터 팬인데.

누구나 팬이다. (일동 웃음)

정수정씨는 외국에서 살다 와서 그런지 특유의 어투가 있다. 이번 영화도 그 부분이 다소 보였는데.

그게 그 캐릭터에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항상 이렇게 뽐내고 그런 캐릭터라서. 좀 품위 있어지려고 하는, 다방 출신이었다가 벼락 스타가 되는. 그런 귀여운 속물성을 표현하는 데 저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했다. 박정수 선생님도 의외의 캐스팅이긴 하지만은 우리나라의 시트콤의 대명사 같은 프로그램에서도 되게 재미있게 하셨었다. 그리고 딕션이 깨끗하시고. 이제 선배 배우들 연기자 중에 그런 배우가 필요해서 박정석 선생님을 캐스팅했다. <거미집>은 기획을 들었을 때 배우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게 있었다. 이 놀이판에 들어가서 정말 재미있게 같이 놀고 싶다, 이런 욕구들이 있었고.

신미도 역의 전여빈

캐스팅이 제일 걱정됐던 캐릭터가 있다면.

전여빈씨가 한 미도다. “쟤는 왜 저런 거야?”라는 말이, “도대체 이유가 뭐야”라는 말이 나오지 않게끔 해야 되는 인물이다. 그냥 그런 페이싱과 자기 포스가 강한, 약간 괴물 같은 느낌으로 얘가 꽂히면 그냥 직진하는 스타일에 뭐가 있어야 될 것 같고. 그러려면 단순히 에너지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람이 느껴졌으면 좋겠다 싶었다. 쟤는 그런 사람이구나 싶게. 근데 전여빈 씨가 연기할 때 어떤 테크닉을 갖고 있냐면은 그 사람이 이렇게 느껴진다. 좋은 사람이구나라는 걸 느껴지게 하는, 배우로서 되게 좋은 장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저 사람이 하면은 그냥 믿게 되고 그냥 쟤는 원래 그렇구나 그런 배우와 연기가 필요해서 미도 역할 캐스팅이 제일 어려웠다. 여빈 씨를 믿고 갔다. 여빈 씨는 나를 믿고 왔다고 얘기하겠지만(웃음) 그 사람이 보이는 여빈 씨를 믿고 갔다. 이상한 역할일 수 있는데 잘 살렸다.

김열 감독 역의 송강호

혹시 김열 캐릭터에는 감독님의 모습이…

진짜 많이 들어갔다. (일동 웃음)

그걸 송강호씨가 연기하는 점에서 의미가 컸을 것 같다. 송강호 씨랑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는지.

송강호와 나만이 할 수 있는 어떤 것들이 있는 것 같다. 그간의 영화들에서 보여줬던 모습에서 증명했다는 생각도 들고. 웃음의 장치나 웃음의 재료들을 <거미집> 여기저기 흐트러 놨다. 행사에서 인사말 할 때도 “여러 군데 알게 모르게 다 뿌려놨으니까 취향에 맞게 식성에 맞게 아무 데나 웃으셔도 되는 영화”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그게 웃겨?”라고 해도 나는 진짜 웃기는 지점들이 있는데, 그거를 형상화시켜준 사람이 송강호라는 배우 같다. 내가 느끼는 독특한 지점의 웃음의 뉘앙스를 송강호라는 배우를 만나서 <조용한 가족> 때부터 같이 이루어냈구나 싶다. 또 배우로서 송강호를 존경하는 지점이자 한국의 대표적인 배우 국민 배우가 될 수밖에 없었던 건 이 사람이 무슨 역할을 맡아도 되게 인간적인 느낌을 주는 배우다. 그런데 그 안에서 내가 더 느끼는 매력은 그래서 익숙하고 낯익고 편하고 친숙한 느낌인데 어느 순간에 순식간에 이렇게 싸늘하게 서늘하게 공기를 바꾸는 그런 장악력이 엄청난 배우다. 소름이 끼칠, 정말 서늘함이 느껴질 정도로. 또 그러다가도 천연덕스럽게 그걸 또 유연하게 또 풀어내고. 우리가 말하는 쥐락펴락한다고 하는 그것을 한국에서 제일 잘하는 배우가 아닌가. 그런 쥐락펴락하는 연기는 다른 배우도 할 수 있지만, 그 강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싸늘해지는 순간과 그거를 릴랙스하게 탁 풀어내는 순간들, 양쪽 다 세게 줄 수 있는 배우로의 매력이 있다.

<거미집> 촬영장의 송강호(왼쪽), 김지운

이번 영화에서 감독님이 송강호라는 배우로부터 이끌어내고 싶었던 얼굴이 있었을지도 궁금하다.

감독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울그락불그락 진퇴양난 딜레마에 빠진 그런 초상들을 송강호 씨한테 많이 얘기했다. 그러니까 이렇게 배우의 연기를 보면서 이렇게 자기 얼굴이 막 찌그러지잖아. (일동 웃음) 나는 항상 현장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편이고 표정에 어떠한 변화도 없는데, 어느 순간에 내가 그럴 때가 있다. 몰두해 있으면 그 배우랑 같이 얼굴이 같이 찌그러지거나 막 몸이 뒤틀어지거나 이럴 때가 있는데 그런 순간들은 강호 씨가 잘 표현하더라. 또 (감독들이 느끼는) 자기에 대한 믿음과 자기에 대한 혐오, 그걸 왔다 갔다 하는. 박찬욱 감독도 비슷한 얘기를 했는데 하루는 자기가 천재같이 느껴졌다 또 하루는 쓰레기처럼 느껴지는 그런 감정들을 많이 느낀다. 나는 현실에서 되게 평정심을 유지하는 사람인데 영화가 뭐라고 내가 여기 오면 이렇게 계속 비탄에 빠지기도 하고 절망하기도 하고 고통스럽고, 또 막 날개 달은 것처럼 이렇게 환희에 처하고 이런 걸 느끼나. 현실에서 최악의 순간이 오더라도 쿨한 태도를 유지하고 유머 감각을 잃지 말아야 되겠다는 것이 내 삶의 신조인데 왜 이렇게 현장에 가면 내가 이렇게 내면의 폭풍을 항상 느껴야 되나. 그런 것들이 영화 현장에서 느끼는 특별한 감정인데, 달리 말하면 내가 현장에 있을 때만 살아있는 거구나 싶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는 내가 현장에 있을 때만 희로애락을 다 표현하는구나 이런 생각들을 했다. 현장은 텐션과 릴랙스를 끊임없이 오간다. 액션 하면 모두가 다 일시에 긴장을 한다. 그러면 조용한데 카메라 돌아가는, 필름 돌아가는 소리만 나면 심장이 툭툭툭툭 뛴다. 혹시 실수할까 봐. 혹시 내가 기침이나 하지 않을까, 내가 뭐 떨어뜨리지 않나 그런 초긴장 상태가 되는데, 현실에선 내가 이렇게 긴장 상태를 갖는 일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긴장과 릴랙스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는 곳이니까 그럴 때 내가 살아있는 사람이구나, 이렇게 내가 무감한 사람이 아니구나 이런 걸 현장에서 느끼곤 한다.

<거미집>을 보고 자아실현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높은 목표의식을 언급하는 반응도 있었다.

그렇지만 모든 예술 형태라는 게 되게 특수한 지점에서 보편성을 끌어내는 거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면은 특수한 상황, 공간, 인물에서 보편성을 내가 찾아간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감옥 얘기를 어떻게 영화로 만들겠는가. 잘 전달하지 못했다면 모르겠지만 전달이 준수하게 됐다면 보는 사람은 그 과정에서 근본적인 질문 하나 정도는 갖게 될 것이다. 그럼 이 얘기가 뭘 하는 것일까 하는. 이 특수한 지점에서 내가 어떤 얘기를 하려고 하는가, 이 과정이 보편성을 획득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대중성 확보가 곧 보편성을 획득하는 것인데, 그 정도는 해야 하는 것이다. 아니면 왜 영화를 보러 오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드니까. 물론 관객이 영화를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졌을 수 있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조용한 가족>을 많이 떠올렸다. 그 영화는 더 대중성이 없는 영화다. 대중 영화가 지켜야 될 것들을 다 위반했다. 특정 주인공이 없는 가족, 호러와 코미디가 섞인 듣도 보도 못한 장르. 그리고 열린 결말. 이런 지켜야 할 것을 다 위반한 영화인데도 평단의 고른 지지를 받았고 흥행도 꽤 성공했다. 김열 감독이 영화에서 “평론가는 예술가가 되지 못한 자들이 되는 것”이라며 원망하지만 난 지금 평론이 잃었던 힘, 리뷰가 잃은 기능과 힘 이런 것들이 다시 회복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는 영화 혼자 (지금의 위기를) 돌파하기엔 어렵다. 비평을 하든 혹평을 하든 지적질을 하든 누군가가 계속 “우리가 계속 지켜보고 있다”라는 시선을 강하게 느껴질 때가 예전엔 있었다.

<거미집>의 배경인 70년대는 후시 녹음을 하던 시기다. 이번 영화에도 후시 녹음을 했는지.

후시 녹음을 연기한 거다. 거의 동시 녹음을 했다.

<거미집> 영화 속 영화 "거미집"

영화에 나오는 계단이 이만희 감독의 <마의 계단>(1964)을 연상시킨다.

계단이 메타포 작용하는 경우는 신분 상승과 추락, 계급, 욕망과 추락 이런 것을 표현하는 것이라서 사용했다. 그래도 계단의 형태는 <마의 계단>을 비슷하게 한 게 맞다.

70년대 암흑기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유년 시절이라 이제 영화를 신기해서 볼 때다. 다 재밌었다. 영화가 좋았는지 나빴는지 (몰랐다). 영화란 매체가 신나고 신기한 시절이었다. 하길종 감독님의 <바보들의 행진>, 이런 것 재밌게 봤다. 그 시절 영화는 다 추억이고 내게 노스탤지어를 건드리는 부분이 있다. 이번 영화의 영화 속 영화는 앙리 조르주 클루조의 <디아볼릭>, 알프레드 히치콕의 <사이코> 등을 반영하려고 해봤다.


※ 이하 내용은 <거미집> 엔딩에 대한 문답을 서술하고 있다. 영화를 관람한 후에 읽는 것을 추천한다.

<거미집>

마지막 엔딩, 그러니까 영화 속 "거미집"에서 그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다. 그 장면으로 상징하고 싶은 것이 있었는지. 그리고 영화 속 영화와 실제 영화 <거미집>의 엔딩을 겹치는 부분에 대해서도 궁금하다.

고민이 있었다. 영화가 끝났는데, 또 시작하는 것이니까. 그게 내게는 일종의 쁠랑세캉스로 같았다. 그런 독특한 흐름이 이 영화의 매력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어떤 면에선 환기도 된다. 영화 속 영화입니다, 우리는 (영화 속) 이 사람들이 만든 영화를 보여주는 겁니다 하면서 다시 김열에게로 돌아간다. 그게 다른 영화들이 하지 않은 이 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다 싶었다. 매력은 좋은지 나쁜지 모르겠지만 그게 마음에 걸리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 거니까. 포스터에서 “이 영화를 만들기 전에 여기서 빠져나갈 수 없다”하는 것처럼. 송강호씨도 그런 인터뷰를 했는데, 우리가 다 욕망에 걸려있는 사람들, 거미줄에 다 걸려들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그런 게 욕망이다. 마지막 거미줄 장면은 거기서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태들, 그런 걸 상징하려고 했다. 그리고 영화 속 그 집안이 몰락할 수밖에 없는 강력한 이미지, 그리고 영화의 주제를 가장 강력하게 전달할 수 있는 이미지. 그런 것들을 생각해서 새로 추가한 장면들이다.

영화를 찍으면서 큰 엔딩을 생각해두지만 언제나 대안의 엔딩을 생각한다. 영화는 생물 같아서 흐르다보면 거기에 맞는 대답이 나올 때가 있다. 난 항상 그런 편이다. <장화, 홍련>도 그랬고 <달콤한 인생>도 앞의 선문답에 맞는 해답을 뒤에 찍어가면서 찾았다. 하루키가 그런 말을 했다. 자신은 게이머이면서 동시에 프로그래머라고. 나도 마찬가지다. 영화를 만들 때 만드는 사람이면서 관객 같은 느낌으로 참여하며 상호작용한다. 그러면서 결론을 만든다. <악마를 보았다>도 그랬다. 이병헌의 캐릭터가 자신이 느낀 고통을 되돌려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그럴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하다가 그 엔딩을 만들었다.

촬영하면서 엔딩을 계속 찾은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엔딩보다는 이미지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끝맺음 할 수 있는 이미지를 찾으려고 했다. 어떤 이미지가 클라이맥스에서 나와야 하는가. 내가 내러티브가 약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사실 나는 이미지가 영화 언어라고 생각한다. 이미지가 대사를 대처할 수 있고, 주제를 대변할 수 있는 것이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장면이 없어도 영화의 주제나 스토리는 상관없지만 그 장면이 있어서 감정적으로 인상으로 작용하면서 주제에 무게를 얹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변곡점이 될 때마다 이미지를 찾지만, 중요한 건 엔딩 이미지니까.

영화를 완성한 것만으로도 김열은 멋있는 사람이 된 것인데, 기립박수를 묘사한 이유도 궁금하다.

김열의 마지막 표정 때문이다. 보완의 의미. 사람들이 김열의 표정을 보면 어떤지 모른다. 내가 오묘한 표정을 지으라 했다. 이 영화가 네(김열)가 하고 싶은 걸 이루고 성공했다는 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 순간 김열 감독이 성공했다고 해서 들뜰까? 나라면 아닐 것 같다. 그 순간에 김열 감독이 이 영화를 끝내기 위해서 지나온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을 것이다. 그 모습이 감독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아르놀트 하우저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에서 예술가와 창부를 같이 얘기한다. 예술가와 창부는 자신이 가진 테크닉을 총동원해 황홀경에 빠뜨리지만, 그 황홀경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그게 예술가와 창부의 공통점이라고 말한다. 그런 예술가의 초상을 김열 감독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