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가 다운됐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재부팅하면 대부분 멀쩡해진다. 컴퓨터가 다운되듯이 영화의 시리즈가 영 시원찮다면? 리부트(Reboot)가 해결책이 될 수 있다.
할리우드 스튜디오는 여러 가지 이유로 리부트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과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시리즈라면 요즘 시대에 맞게 설정을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 기존 시리즈의 흥행이 별로였지만 캐릭터 인지도가 높다면 버리기 아깝다. 저작권 등 계약상의 이유로 영화를 더 만들어야 할 수도 있다.
이러저런 이유로 리부트는 죽어가는 시리즈를 심폐소생시킨다. 리부트의 심폐소생술은 사실 대수술에 가깝다. 기존 시리즈의 제목과 기본적인 설정만 유지한 채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배우의 교체도 일반적이다.
리부트에 대한 대략적인 개념을 알아봤다.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리부트 시리즈를 만나볼 차례다. 성공적인 리부트와 실망스런 리부트를 각각 소개한다. ‘리부트 Good & Bad’다.
Good
배트맨 비긴즈 (2005)
<배트맨> 시리즈
<배트맨 비긴즈>는 할리우드에서 리부트 붐을 일으킨 시발점이라고 봐도 좋겠다. 1997년 개봉한 조엘 슈마허 감독의 <배트맨4: 배트맨과 로빈>은 엄청난 실패작이 됐다. 이로 인해 1989년 팀 버튼 감독이 시작한 이른바 배트맨 ‘모던 에이지 시리즈’는 명맥이 끊어져버렸다.
이때 구원투수로 등장한 사람이 크리스토퍼 놀란이다. 그는 <다크나이트> 3부작의 첫 작품인 <배트맨 비긴즈>로 시리즈를 부활시켰다. 또한 슈퍼히어로 영화에 대한 편견을 깨부수기 시작했다. <배트맨 비긴즈>의 후속작인 <다크나이트>에 이르면 슈퍼히어로 영화에 시큰둥하던 어른들도 넋을 놓고 스크린을 보게 됐다. <다크 나이트> 3부작에서는 크리스천 베일이 브루스 웨인/배트맨을 연기했다.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2011)
<혹성탈출> 시리즈
<혹성탈출> 시리즈는 1970년대 인기를 얻었다. 1968년 1편이 제작된 이래 1973년까지 모두 5편의 영화가 개봉했다. 찰턴 헤스톤 주연의 1편 <혹성탈출>은 고전 SF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2001년 팀 버튼 감독이 리메이크 영화 <혹성탈출>을 제작한 바 있다.
2011년 <혹성탈출> 시리즈가 리부트됐다. 대략 40여 년 전에 인기를 끓었던 시리즈를 재창조해냈다. 과거 시리즈의 4편 <혹성탈출4: 노예들의 반란>에 등장하는 ‘시저’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혹성탈출> 리부트의 특징은 기술적인 부분에서 두드러진다. 특수제작한 코스튬을 입었던 과거와 달리 리부트 버전에서는 컴퓨터그래픽 기술을 이용한 모션 캡쳐 방식이 사용됐다. 리부트 시리즈는 1편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과 2편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을 지나 <혹성탈출: 종의 전쟁>이 7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스타트렉: 더 비기닝 (2009)
<스타트렉> 시리즈
할리우드에는 유명한 ‘떡밥의 제왕’이 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J.J. 에이브럼스 감독이다. 그에게 또다른 별명을 붙여준다면 ‘리부트의 장인’ 정도가 어울릴 듯하다. <스타트렉: 더 비기닝>으로 <스타트렉> 시리즈의 리부트를 성공적으로 해냈기 때문이다.
<스타트렉> 시리즈는 TV 시리즈와 영화로 꾸준히 제작됐다. 1987년부터 1994년까지 방영된 <스타트렉> TV 시리즈 ‘더 넥스트 제너레이션’(TNG, The Next Generation) 기반의 <스타트렉 10: 네메시스>가 2002년 개봉했다. 이후 <스타트렉> 시리즈 영화는 제작이 중단됐다.
2009년 <스타트렉>은 리부트를 통해 시리즈를 이어나갔다. 최초의 TV 시리즈인 ‘디 오리지널 시리즈’(TOS, The Original Series)가 기반이 됐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스타트렉> 시리즈는 전 세계적인 팬(트레키)들을 거느리고 있다. 다만 어린 관객들에게는 이 세계관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리부트는 새로운 트레키 양성을 위한 선택이다. 국내에서는 성공하지 못했다.
007 카지노 로얄 (2006)
<007> 시리즈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가 처음 등장한 <007 카지노 로얄> 역시 리부트 영화로 분류할 수 있다. 피어스 브로스넌이 제임스 본드로 등장한 직전 영화들과 달리 <007 카지노 로얄>은 이언 플레밍의 원작 소설을 근간으로 한 작품이다. 원작에 충실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영화 내용상에서도 리부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제임스 본드가 이제 막 ‘007’ 넘버를 부여받은 정보원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제임스 본드 영화는 1대 제임스 본드였던 숀 코너리 시절부터 오락영화였다. 진지한 스파이물은 아니라는 뜻이다. 시리즈가 지속될수록 오락성만 커지고 현실성은 점점 떨어졌다. 동시에 관객들도 떨어져나갔다. <007 카지노 로얄>의 리부트를 통해 현실 감각을 찾았다고 볼 수 있겠다.
So So
맨 오브 스틸 (2013)
<슈퍼맨> 시리즈
<맨 오브 스틸>을 ‘굿’에 넣을지 ‘배드’에 넣을지 조금 고민하다가 ‘소소’를 만들었다. <맨 오브 스틸>은 DC확장유니버스의 시작을 알린 작품이다. <맨 오브 스틸>은 2006년 개봉한 <수퍼맨 리턴즈> 이후 리부트한 영화로 헨리 카빌이 슈퍼맨으로 출연했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다소 갈린다. 리부트라는 기준에서 본다면 나쁘지 않다.
고스트버스터즈 (2016)
<고스트버스터즈> 시리즈
유령 잡는 영화 <고스트버스터즈>는 1980년대 2편까지 제작된 <고스트버스터즈> 시리즈의 리부트다. 1편의 성공으로 2편이 제작됐지만 성적이 별로였다. 이로 인해 3편 제작은 물거품이 되고 세월이 한참 지나 리부트가 이뤄졌다. <고스트버스터즈> 리부트의 핵심은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나섰다는 점이다. 이 전략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불러왔다. 미국에서는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남녀 관객의 대결구도를 만들어버린 것이다. 국내외 평론가의 평가는 아주 나쁘지 않았으나 국내 흥행은 신통치 않았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012)
<스파이더맨> 시리즈
샘 레이미 감독과 소니픽처스는 2002년 개봉한 <스파이더맨>을 시작으로 3편의 <스파이더맨>을 제작했다. 피터 파커/스파이더맨은 토비 맥과이어가 맡았다. 스파이더맨의 연인 메리 제인 왓슨은 커스틴 던스트가 연기했다. 샘 레이미의 3부작은 크게 흥행했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으로 리부트된 이유는 스튜디오와 샘 레이미 감독의 불화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서 피터 파커/스파이더맨은 앤드루 가필드로 대체됐다. 엠마 스톤이 여주인공 그웬 스테이시 역으로 출연했다.
인크레더블 헐크 (2008)
<헐크> 시리즈
이안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유독 눈에 띄는 작품이 하나 있다. 2003년작 <헐크>다. 이 영화는 말하자면 ‘평론가들이 사랑한 슈퍼히어로 영화’다. 영화 자체는 훌륭하지만 일반 대중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지 못했다. 결국 마블은 리부트를 결정했다. 그렇게 등장한 영화가 <인크레더블 헐크>다. <헐크>에서 브루스 배너를 연기한 에릭 바나 대신 에드워드 노튼이 기용됐다. 전편의 무거움을 걷어냈지만 흥행은 부진했다. 이후 헐크는 <어벤져스>에 다시 등장했다. 마크 러팔로 버전의 헐크는 <토르: 라그나로크>에 다시 등장할 예정이다.
Bad
터미네이터 제네시스 (2015)
<터미네이터> 시리즈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5번째 영화인 <터미네이터 제네시스>는 4편에서 이어지는 내용이 아니다. 1편 이전의 이야기를 하면서 리부트를 꾀했다. 이제는 고전과 같이 인용되는 1편과 2편에 등장하는 장면을 차용하기도 했다. TV 드라마 <왕좌의 게임>으로 유명한 에밀라아 클라크를 기용하기도 했다. 이병헌은 2편에 등장했던 T-1000으로 캐스팅됐다. 제임스 카메론이 홍보에 나서기도 했다.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 최근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직접 나서서 리부트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판타스틱 4 (2015)
<판타스틱 4> 시리즈
<판타스틱 4>는 리부트의 끝판왕이다. 안 좋은 쪽으로. 이 영화는 총체적 난국으로 평가받았다. 최악의 영화라는 불명예를 안기는 골든 라즈베리 수상은 기본이다. 로튼토마토 지수는 9%다. 이 영화의 리뷰 가운데 오직 9%만이 호평했다고 볼 수 있다. <판타스틱 4> 이후에 시리즈의 다음 영화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속편 계획도 사라졌다. 또 리부트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Coming Soon
미이라 (2017)
<미이라> 시리즈
<미이라> 시리즈는 1999년 시작돼 2008년까지 제작된 바 있다. 사실 톰 크루즈 주연의 리부트 영화 <미이라>는 이 시리즈와는 관련이 없다. 유니버설의 1932년작 <미이라>의 고전 호러 영화를 리부트하는 것이다. 6월 6일 국내 개봉하는 <미이라>는 유니버설 픽쳐스의 세계관인 ‘다크 유니버스’의 시작점이다.
스파이더맨: 홈 커밍
<스파이더맨> 시리즈
스파이더맨이 ‘집으로 온다’. 마블에서 제작하는 스파이더맨 솔로 무비 <스파이더맨: 홈 커밍>이 7월5일 개봉 대기 중이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 등장했던 마블판 스파이더맨의 이야기를 다룬다. 영국 출신의 배우 톰 홀랜드가 세 번째 피터 파커/스파이더맨을 연기한다.
툼 레이더 (2018)
<툼 레이더> 시리즈
안젤리나 졸리의 라라 크로프트로 유명한 <툼 레이더> 시리즈도 리부트된다. 2018년 개봉 예정인 <툼 레이더>에서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연기한 라라 크로프트를 볼 수 있다. 리부트 <툼 레이더>는 원작인 게임의 리부트를 바탕으로 제작하는 영화다. 라라 크로프트가 탐험가가 되는 기원에 대한 이야기라고 알려져 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신두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