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역사는 20세기 말 비약적인 변화를 맞는다. 컴퓨터그래픽 기술이 영화에 본격적으로 도입됐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은 특히 눈에 띄는 변화를 맞이했다. 1995년 <토이 스토리>는 혁명과도 같았다. 이런 관점에서 2000년 이후 최고의 애니메이션을 꼽아보는 일은 꽤 흥미롭다. 미국 영화 매체 ‘인디와이어’가 “21세기 최고의 애니메이션 20편”을 선정한 리스트를 소개한다. ‘인디와이어’는 매체 이름처럼 저예산 독립영화를 지지하는 성향이 강하다는 점을 밝힌다.


20위 <블루스를 부르는 시타>
Sita Sings The Blues, 2008

<블루스를 부르는 시타>는 인도의 대서사시 ‘라마야나’를 재해석한 작품으로 고대의 비극과 현대의 코미디가 공존하는 애니메이션이다. 제목에 ‘블루스’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이유는 이 애니메이션이 1920년대의 재즈 스타일로 재해석됐기 때문이다. 2008년 안시애니메이션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이다. <블루스를 부르는 시타>는 오픈 소스 필름이기도 하다. 홈페이지(http://www.sitasingstheblues.com)에서 무료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블루스를 부르는 시타

감독 니나 페일리

출연 매니쉬 에차리야

개봉 2008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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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위 <숀더쉽>
Shaun the Sheep Movie, 2015

앞서 컴퓨터그래픽 기술과 영화, 애니메이션의 관계를 살짝 언급했다. 필름이 사라지는 시대, 많은 영화들이 디지털화됐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수작업의 영역이 남아 있는 분야가 애니메이션이다. 특히 <월레스와 그로밋> 시리즈로 유명한 영국 아드만 스튜디오는 여전히 수작업을 고집한다. 클레이 애니메이션 <숀더쉽>은 아드만 스튜디오가 만든 또 하나의 걸작이다.

숀더쉽

감독 마크 버튼, 리처드 스타잭

출연 저스틴 플레쳐, 존 스파크스, 오미드 다릴리, 리차드 웨버

개봉 2015 영국,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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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위 <아노말리사>
Anomalisa, 2015

아직도 애니메이션이 아이들만을 위한 장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존 말코비치 되기> <휴면 네이쳐> <어뎁테이션> <이터널 선샤인>의 각본가로 유명한 찰리 카우프만이 직접 연출을 맡은 <아노말리사>는 어른들만 이해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인형을 이용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인 <아노말리사>는 성인판 <인사이드 아웃>이라고도 불린다.

아노말리사

감독 찰리 카우프만, 듀크 존슨

출연 제니퍼 제이슨 리, 데이빗 듈리스, 톰 누난

개봉 2015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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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위 <벨빌의 세 쌍둥이>
Les Triplettes De Belleville 2003

우리에게 익숙한 애니메이션은 주로 일본, 미국에서 만든 것들이지만 프랑스어권 애니메이션도 무시하지 못한다. 일본과 미국과 비교하면 다소 예술성이 짙은 프랑스어권 애니메이션을 접하고 싶다면 실뱅 쇼메라는 감독의 이름을 기억해두는 게 좋다. ‘인디와이어’는 프랑스에서 열리는 사이클 경기 ‘투르 드 프랑스’를 소재로 한 <벨빌의 세 쌍둥이>를 17위에 올렸다. 실뱅 쇼메의 다른 작품으로 <일루셔니스트>도 매우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이다.

벨빌의 세 쌍둥이

감독 실뱅 쇼메

출연 미쉘 코크투, 장-클로드 돈다, 미쉘 로빈, 모니카 바이거스

개봉 2003 영국, 프랑스, 벨기에, 라트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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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위 <레고 무비>
The Lego Movie, 2014

<레고 무비>에 대한 정보가 없는 사람이라면 무슨 PPL 영화처럼 볼 수도 있겠다. 사실 PPL 영화가 맞긴 하지만, 실제 레고 블록과 CG를 결합한 이 애니메이션은 매우 천재적인 발상들로 가득하다. 광고 영화의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토이 스토리>의 애뜻한 추억과 <트랜스포머>의 화려한 변신이 함께 공존하는 영화라는 평을 해도 무방할 정도다. 아이든 어른이든 <레고 무비>를 재미 없게 보는 사람은 쉽게 찾기 힘들 것이다.

레고 무비

감독 필 로드, 크리스 밀러

출연 윌 페렐, 리암 니슨, 알리슨 브리, 엘리자베스 뱅크스, 모건 프리먼, 윌 아넷, 크리스 프랫

개봉 2014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덴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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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위 <라따뚜이>
Ratatouille, 2007

픽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이 순위에 첫 등장했다. 브래드 버드 감독의 <라따뚜이>가 15위다. 절대 미각의 소유자인 생쥐 레미와 그의 조종을 받는 요리사 링귀니의 좌충우돌은 시종일관 유쾌한 리듬을 만들어낸다. 수프가 끓는 소리, 칼과 부딪히는 도마 소리 등 청각과 군침 도는 음식의 시각적 즐거움도 훌륭하다. 물론 아름다운 파리도 감상할 수 있다.

라따뚜이

감독 브래드 버드

출연 패튼 오스왈트, 루 로마노

개봉 2007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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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위 <하울의 움직이는 성>
ハウルの動く城, 2004

반가운 이름, 스튜디오 지브리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14위다. 이 글에 대한 스포일러를 살짝 하자면 앞으로 우리는 지브리의 많은 작품들을 더 보게 될 것다. 너무나 당연한 거 아니냐고? 당연한 얘기 맞다. 저주에 걸려 헐머니가 된 소피와 꽃미남 마법사 하울의 이야기는 지브리의,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이 늘 그렇듯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개인적으로는 하울의 성을 책임지는 불의 악마, 캘시퍼(카루시파)가 기억에 남는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출연 바이쇼 치에코, 기무라 타쿠야

개봉 2004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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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위 <코렐라인: 비밀의 문>
Coraline, 2009

19위에 랭크된 <숀더쉽>에 도전장을 내민 애니메이션이 <코렐라인: 비밀의 문>(이하 <코렐라인>)이다. 미국의 라이카 스튜디오가 만든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코렐라인>은 아드만 스튜디오와 달리 수작업과 정교한 3D 기술을 결합해서 자신만의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코렐라인>은 새 집으로 이사한 코렐라인이 집안의 숨겨진 문을 발견하고 다른 세계로 가게 되는 이야기다.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의 감독 헨리 셀릭이 연출을 맡았다.

코렐라인: 비밀의 문

감독 헨리 셀릭

출연 다코타 패닝, 테리 해처

개봉 2009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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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위 <업>
Up, 2009

<업>은 한번 보기 시작하면 중간에 멈추기 힘든 애니메이션이다. <업>의 오프닝 시퀀스가 그야말로 최고기 때문이다. 엄청난 액션이 있냐고? 아니다. 인생의 모든 애환이 녹아 있는 사랑 이야기를 보여준다. 그렇게 울고 나면 이 애니메이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풍선에 매달린 집을 타고 남미로 여행을 떠난 할아버지 칼과 어린 탐험가 러셀의 모험은 언제 봐도 가슴 뭉클하다.

감독 피트 닥터, 밥 피터슨

출연 에드워드 애스너, 조던 나가이, 크리스토퍼 플러머, 밥 피터슨

개봉 2009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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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위 <파프리카>
Paprika, 2006

곤 사토시의 이름이 낯설다면 <파프리카>를 꼭 보길 추천한다. <파프리카>는 간혹 <인셉션>에 비교되기도 하는데 이유는 꿈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꿈 속에 들어간다는 설정이 비슷하다. <인셉션>과의 차이는? 하나만 꼽자면 비주얼에 있다. <인셉션>에서 파리의 건물이 뒤집어지고 도로 한복판에 열차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파프리카>는 이 정도는 가뿐하게 뛰어넘는 스펙터클을 보여준다. 오직 애니메이션이기에 가능한 비주얼이 <파프리카>에 있다.

파프리카

감독 곤 사토시

출연 하야시바라 메구미, 후루야 토오루

개봉 2006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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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위 <토이 스토리 3>
Toy Story 3, 2010

<토이 스토리 3>가 10위다. 좀더 높은 순위일 줄 알았는데 ‘인디와이어’의 매체 특성이 반영된 것 같다. 2000년 이후 즉, ‘21세기’라는 기준이 없었다면 아마도 <토이 스토리> 1, 2, 3편이 1~3위를 차지해도 불만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토이 스토리>를 빼놓고 최고의 애니메이션을 얘기할 수도 없지 않을까.

토이 스토리 3

감독 리 언크리치

출연 톰 행크스, 팀 알렌, 조안 쿠삭

개봉 2010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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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위 <바시르와 왈츠를>
Vals Im Bashir, 2008

‘인디와이어’의 매체 특성이 여기서 또 보인다. <바시르와 왈츠를>이 9위다. <바시르와 왈츠를>은 이스라엘의 아리 폴만 감독의 자전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팔레스타인 난민촌에서 벌어진 ‘피의 복수극’에 대한 자기반성이 담겨 있다. <바시르와 왈츠를>은 엄밀히 얘기하면 애니메이션화한 실사영화다. 감독 자신과 동료들의 인터뷰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촬영한 뒤 그 영상을 애니메이션화하는 로토스코핑 기법을 사용했다.

바시르와 왈츠를

감독 아리 폴만

출연

개봉 2008 이스라엘, 독일,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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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위 <월드 오브 투모로우>
World Of Tomorrow, 2015

<월드 오브 투모로우>는 ‘인디와이어’가 사랑하는 애니메이션이다. 17분짜리 단편이지만 ‘인디와이어’가 소개하는 각종 리스트에 자주 등장한다. 국내에서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된 바 있다. 2015년 전주영화제 측은 “돈 헤르츠펠트 감독의 창의력이 극대화된 순수한 형태의 핸드 드로잉 애니메이션. 단편영화가 제공하는 최상급의 완성도를 가진, 역사상 최고의 단편영화라는 극찬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월드 오브 투모로우

감독 돈 헤르츠펠트

출연 줄리아 포트

개봉 2015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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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위 <페르세폴리스>
Persepolis, 2007

<페르세폴리스>는 펑크록에 취한 차도르 소녀 마르잔이 겪은 이란의 이슬람 혁명에 대한 이야기다. 갑자기 엄격해진 율법으로 인해 마르잔은 혼란을 겪고 가족과 함께 고국 이란을 떠나게 된다. <바시르와 왈츠를>처럼 이란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마르잔 사트라피 감독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그래픽노블로 먼저 발간됐다가 애니메이션화했다.

페르세폴리스

감독 뱅상 파로노드, 마르얀 사트라피

출연 까뜨린느 드뇌브, 다니엘 다리유, 시몬 압카리언, 틸리 맨델브롯, 키아라 마스트로얀니

개봉 2007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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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위 <월·E>
WALL-E, 2008

이 작은 청소로봇과 사랑에 빠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지금도 월·E 피규어는 쉽게 눈에 띈다. 그만큼 이 로봇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말 한 마디 하지 않지만 그 어떤 말보다 더 큰 울림을 만들어내는 월·E와 이브의 러브스토리는 봐도 봐도 아름답다. 동시에 탐욕스러운 인간의 모습은 봐도 봐도 추하다.

월-E

감독 앤드류 스탠튼

출연 벤 버트, 엘리사 나이트, 제프 갈린, 프레드 윌러드

개봉 2008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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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위 <바람이 분다>
風立ちぬ, 2013

미야자키 하야오의 하늘 사랑은 유별나다. 정확하게는 하늘을 나는 비행기에 대한 사랑이다. <바람이 분다>는 그 미야자키 하야오의 사랑을 비행기 설계사 호리코시 지로의 삶에 이입시킨 애니메이션이다. <바람이 분다>의 지로 목소리는 ‘에반게리온의 아버지’ 안노 히데아키가 연기했다. 국내에서는 다소 논란이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호리코시 지로가 설계한 제로센이 진주만 공습과 가미카제 특공대의 전투기로 사용됐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이 불편하다면 미야자기 하야오의 또 다른 비행기 사랑과 반전의 메시지가 확실한 <붉은 돼지>를 보면 좋겠다.

바람이 분다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출연 안노 히데아키, 타키모토 미오리

개봉 2013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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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위 <니모를 찾아서>
Finding Nemo, 2003

1990년대 <인어공주>가 있다면 2000년대에는 <니모를 찾아서>가 있다. 애니메이션이 아니라면 호주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의 환상적인 바닷속을 볼 수 있었을까. 아들 니모를 찾아 떠나는 아빠 말린의 모험을 볼 수 있었을까. 말린을 연기한 앨버트 브룩스와 도리의 목소리를 연기한 엘런 드제너러스는 13년 뒤에 나온 속편인 <도리를 찾아서>에도 함께 출연했다. 참고로 이 물고기의 정식 학명은 흰동가리다. <니모를 찾아서> 이후 이 물고기를 흰동가리라고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니모를 찾아서 3D

감독 앤드류 스탠튼

출연 앨버트 브룩스, 엘런 드제너러스, 알렉산더 굴드, 윌렘 대포, 브래드 거렛, 앨리슨 제니, 오스틴 펜들튼

개봉 2003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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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위 <가구야공주 이야기>
かぐや姫の物語, 2013

지브리에는 미야자키 하야오만 있는 게 아니다. 그와 함께 지브리를 설립하고 이끌어가는 다카하타 이사오가 있다. <추억은 방울방울>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이웃집 야마다군> 등이 그의 작품이다. <가구야공주 이야기>는 일본 설화 ‘다케토리 야이기’의 줄거리를 바탕으로 해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국내 정서에는 다소 맞지 않을 수 있는 이야기지만 익숙한 지브리풍이 아닌 작화만큼은 진정 아름답다.

가구야공주 이야기

감독 다카하타 이사오

출연 아사쿠라 아키, 코라 켄고

개봉 2013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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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위 <판타스틱 Mr. 폭스>
Fantastic Mr. Fox, 2009

<판타스틱 Mr. 폭스>는 웨스 앤더슨 감독의 애니메이션이다. 인형을 이용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원작은 영국의 아동문학 작가 로알드 달의 작품이다. 원작의 국내 출간명은 <멋진 여우씨>다. 조지 클루니가 사냥 본능을 되찾으려는 미스터 폭스를, 메릴 스트립이 미세스 폭스를 연기했다. 웨스 앤더슨의 팬이거나 로알드 달의 팬이라면 이미 봤을 확률이 높지만, 혹시라도 놓쳤다면 꼭 봐야 할 작품이다.

판타스틱 Mr. 폭스

감독 웨스 앤더슨

출연 조지 클루니, 메릴 스트립, 제이슨 슈왈츠먼, 빌 머레이

개봉 2009 미국,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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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千と千尋の神隠し, 2001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고전의 반열에 올라도 좋을 애니메이션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지브리의 정수를 담고 있다고 봐도 좋겠다. 자연친화적인 세계관, 물질만능주의, 전통의 가치 등 많은 걸 얘기하고 있다. 일본의 온갖 정령들이 모이는 온천장을 배경으로 소녀 치히로의 모험을 담은 이 애니메이션은 2002년 베를린영화제 금곰상, 이듬해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애니메이션상을 수상했다. 수상 내역을 소개하는 걸로는 이 애니메이션을 설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아직 안 봤다면 당장 봐야 한다. 참고로 지브리는 온라인에서 애니메이션을 다운로드하는 VOD 서비스 등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DVD를 구매하길 권한다. 블루레이가 보고 싶다면 ‘해외 직구’에 도전해봐도 좋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출연 히이라기 루미, 이리노 미유

개봉 2001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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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이 순위에서 왜 <인사이드 아웃> <주토피아>는 안 보이는 걸까. ‘인디와이어’의 실수가 아닐까. ‘인디와이어’, ‘콜라이더’ 등이 선정한 21세기 베스트 시리즈를 소개한 포스트는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신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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