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태양의 후예>(2016)

드라마 <태양의 후예> 속 서대영을 연기한 진구는 딱딱한 군인 그 자체인 모습, 걸출한 격투 실력을 선보임과 동시에, 김지원과 애틋한 커플 케미를 보여주며 서브커플임에도 불구하고 2016 KBS 연기대상 베스트 커플상을 수상했다. 무표정할 땐 차가워 보이나, 내 여자를 향해 웃을 때만큼은 그 누구보다 해사하게 웃을 줄 아는 남자. 이런 남자를 누가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서대영을 매력적으로 해석해 낸 진구는 그해를 기점으로 명실상부한 대세 배우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진구를 '서대영'으로만 알고 있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준비한 '진구의 숨겨진 모습들'. 히트하진 못했지만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였던 진구의 모습을 정리해 볼 예정이다. 그의 다양한 필모그래피 중 가장 눈에 띄는 것들만 추릴 생각이니, 만약 '내 마음속 최고의 진구'가 리스트에 없다면 댓글로 알려주시길! 덧붙여, 드라마 <태양의 후예> 서대영은 리스트에서 제외했다. 오늘은 진구의 '숨겨진' 모습을 파헤쳐 보는 시간이니까. 

태양의 후예

연출 이응복, 백상훈

출연 송중기, 송혜교, 진구, 김지원, 강신일, 온유, 서정연, 현쥬니, 조재윤, 조우리, 이이경

방송 2016, KB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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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올인>에서 이병헌 아역으로 데뷔
드라마 <올인>(2003)

2003년 SBS 드라마 <올인>에서 이병헌 아역으로 데뷔한 진구는 첫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거칠고 날 것 그대로의 문제아를 완벽하게 연기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병헌 닮은 꼴로 시선을 사로잡은 그는 노름꾼인 아버지 친구의 밑에서 거칠게 자란 인물로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다혈질 소년을 매력적으로, 동시에 애틋하게 연기했다. 선 굵은 인상과 연기로 배우로서의 시작을 알린 그는 대중에게 큰 호평을 받았으나, 이후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며 서서히 잊히는 듯했다. 

실제로 그는 <올인>으로 스타덤에 올랐을 때, 초심을 잃고 거만해진 적도 있었다며 고백한 바 있는데, 그는 "갑자기 많은 팬과 많은 분의 기대, 큰돈을 얻었다. 인기가 거품이라는 말을 믿지 않았다"라며 "하지만 인기가 무너졌을 때 상처가 굉장히 컸다"고 덧붙였다. 어쩌면 그에게 부끄러운 기억일 수도 있는 <올인>이지만, 그는 "배우로서 터닝포인트가 된 작품이 있나"라는 질문에 "올인"이라고 답하며 첫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올인

연출 유철용

출연 이병헌, 송혜교, 지성, 박솔미, 허준호, 이덕화

방송 2003,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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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달콤한 인생>, <비열한 거리>의 조직폭력배로 이름을 알리다.
<달콤한 인생>(2005)

<올인> 이후 스크린으로 간 그는 <달콤한 인생>에서 다시 한번 이병헌과 만나게 된다. 그는 김선우(이병헌)의 친한 동생 민기를 연기하며 조력자 역할을 해낸다. 등장 신은 다소 짧았지만, 특유의 까무잡잡한 피부와 날카로운 눈빛 덕분에 그는 어두운 뒷골목이 유독 잘 어울리는 배우로 자리 잡는 데 성공했다. 

<비열한 거리>(2006)

<달콤한 인생>으로 조폭 인생(!)을 시작한 그는 <비열한 거리>에서 다시 한 번 주인공 병두(조인성)의 오른팔 종수 역을 맡아 매력을 마음껏 뽐냈다. <달콤한 인생>에서도 오른팔 역을 맡았지만, 달라진 점은 주인공을 묵묵히 따라다니던 캐릭터를 넘어 <비열한 거리>에서 조인성과 함께 로터리파를 이끌어 가는 역할이 되었다는 점이다. 어린 나이에 병두를 따라 로터리파에서 조폭 생활을 시작한 종수는 병두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캐릭터다. 어릴 적부터 뒷골목 생활을 한 덕분에 독기 가득한 눈빛을 한 그는 병두가 시키는 일이라면 사람을 찌르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병두의 오른팔이자, 야망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믿음까지 져버리는 냉혈한이기도 하다. 입체적일수록 매력적인 게 캐릭터라 했던가. 진구는 <비열한 거리>를 통해 다시 한번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게 된다. 

달콤한 인생

감독 김지운

출연 이병헌, 김영철, 신민아

개봉 2005.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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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열한 거리

감독 유하

출연 조인성, 천호진, 남궁민, 이보영

개봉 2006.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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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로 칸의 레드카펫을 밟다.
<마더>(2009)

봉준호의 뒤틀린 모정을 그린 영화 <마더>는 김혜자 원톱 영화라고 해도 좋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진구가 영화의 빈 부분을 탄탄히 받쳐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연기한 진태는 남자라면 어린 시절 한 번쯤은 동경했을 법한 남자답고, 싸움 잘하는, 동네 건달 같은 캐릭터다. 동네 여성들을 다 꿰고 있는 정력가에 한량처럼 휘적휘적 돌아다니지만, 그렇다고 멍청하게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 

<비열한 거리>에서 진구의 연기를 인상 깊게 본 봉준호 감독은 집필 당시부터 이미 진구를 염두에 뒀다. 그렇기에 그는 오디션 없이 바로 캐스팅이 되었는데, 시작은 맥주 한 잔이었다. 봉준호 감독은 <마더> 촬영 시작 즈음, 진구를 불러 오랜 시간 맥주를 마시며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하던 진구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는 자신이 캐스팅 된 건지 물었고, 봉준호 감독은 슬며시 그렇다고 답했다. <비열한 거리>에서 선 굵은 인상으로 천진하면서도 냉혹한 깡패 역을 완벽히 소화해 냈던 만큼, 진태에도 걸맞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그의 판단은 역시나 틀리지 않았다. 미국 유력 영화지 버라이어티는 "진구가 연기한 진태는 손에 잡힐 듯 강렬하다"며 캐릭터의 생생함에 대해 극찬한 바 있다. 

마더

감독 봉준호

출연 김혜자, 원빈

개봉 2009.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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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으로 재조명하다.
<26년>(2013)

2009년, 진구는 <마더>의 진태 역으로 제30회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과 제46회 대종상 영화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충무로에 연기파 배우로 확실히 각인됐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 사이 알음알음 난 소문일 뿐, 대중들은 여전히 그를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기담>(2007), <초감각 커플>(2008), <식객 : 김치전쟁>(2010), <모비딕>(2011) 등 여러 영화의 주연을 맡았지만, 흥행에 실패하며 대중적인 인지도를 쌓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던 중 만난 <26년>이란 작품은 그에게 한 줄기 단비와 같았다. 

<26년>에서 진구의 존재감은 단연 눈에 띈다. 전라도 사투리는 진구의 카리스마를 만나 잘 벼려지고, 이는 극이 진행될수록 점점 무르익어 간다. 단죄의 구도를 가지고 있는 만큼, <26년>은 결말을 향해 굉장히 직선적으로 나아간다. 군더더기가 없기에 보는 입장에 따라 다소 단조롭게 느껴질 수도 있는 플롯이다. 그럼에도 극이 에너지를 갖는 이유는 진구의 연기, 진배가 크게 한몫한다. 광주 5·18의 비극과 그 이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만큼, <26년>은 굉장히 무겁다. 이러한 분위기에 숨 틔울 구멍을 주기 위해, 진구는 원작의 냉철한 진배를 새롭게 해석했다. 그가 바라본 진배는 입담좋고 거칠지만, 내면은 가장 슬픈 인물로 종국엔 모든 걸 짊어지려고 한다. 

26년

감독 조근현

출연 진구, 한혜진, 임슬옹

개봉 2012.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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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후예>와 <연평해전>으로 '진구+군복 = 성공' 공식을 만들어내다
<연평해전>(2015)

강한 카리스마 탓인지, 유독 진구는 조폭 아니면 군인 이미지가 강하다. 현실에선 극과 극에 위치한 그들이지만, 모두 거친 현실을 몸으로 헤쳐 나간다는 점에서 진구와 걸맞다. <태양의 후예>의 서대영 상사로 군복핏을 자랑하기 전에 <연평해전>에서 해군 한상국 하사를 한 차례 연기한 적 있는 그는 실제로 해군으로 복무했었다. 

<연평해전>은 2002년 6월 29일, 연평도 앞바다에서 벌어진 제2연평해전을 바탕으로 한 영화로 대한민국 해군, 참수리 357호정 승조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는 함내에서 생활하는 해군병사들의 일상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참혹한 장면도 존재하지만, 비교적 온건하고 똑바르게 에피소드를 풀어 나간다. 그 과정이 자못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각 인물들 간의 인간적인 서사가 영화의 굴곡진 재미를 준다. 

연평해전

감독 김학순

출연 김무열, 진구, 이현우

개봉 2015.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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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남자에서, 따뜻한 감성의 남자로. <내겐 너무 소중한 너>
<내겐 너무 소중한 너>(2021)

조폭, 군인 등 지금껏 거친 남자의 면모를 강조해 온 진구이지만 이번에 개봉한 <내겐 너무 소중한 너>에서는 인간적인 따스함을 가진 남자 재식을 연기한다. <내겐 너무 소중한 너>는 돈 빼고는 세상에 무서운 게 없는 재식이 시청각장애를 가진 아이 은혜(정서연)의 가짜 아빠를 자처하며 시작된 두 사람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지만 손끝으로 세상을 더듬어 가는 은혜를 만나며 재식은 조금씩 책임감과 사랑을 배워 나간다. 

군복을 벗은 진구는 인간미가 있다. 거칠지만 속은 따뜻한 남자 재식은 다소 상투적이라고 느껴질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진부하지 않고, 그 감성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이유는 진구의 과하지 않은 섬세한 표현 덕분이었다. 두 아이를 키우는 현역 아빠답게 아역 배우 정서연과의 안정적인 호흡도 인상적이다. 돈을 노리고 접근했지만, 생면부지의 아이를 키우게 된 상황을 결국엔 받아들이고 오히려 그와 가족을 이뤄나가는 이 영화는 마냥 따뜻한 현실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진구는 영화 속 재식과 은혜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묻자 "힘들겠지만,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라고 단번에 답했다. 

드라마 <올인>으로 데뷔한 후, 18년이 흐른 지금. 진구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경험, 그리고 다시 재조명되고 이를 붙잡는 방법을 배워갔다. "초반에는 오디션에도 많이 떨어지고, 하고 싶었던 작품에서 고배도 많이 마셨죠. 기대작이 많은 사랑을 받지 못했던 적도 있어요."라며 연기 인생에서 힘들었던 시절을 기억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원동력이 돼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라며 소중한 이들을 떠올렸다. 어쩌면 이번 <내겐 너무 소중한 너>는 진구가 지금까지 쌓아온 18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영화가 아닐까. 맹렬하게 다가갔지만, 결국엔 누군가에 기대어 오랜 시간 나아간다는 것. 진구는 그렇게 오래, 기억되기 위해 함께할 것이다. 

내겐 너무 소중한 너

감독 이창원, 권성모

출연 진구, 정서연, 강신일, 장혜진, 박예니, 김태훈

개봉 2021.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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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객원 기자 김명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