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TV 보는 일이 이렇게 재밌을 줄 몰랐다. 지금 다시 보는 옛날 TV에는 온갖 재밌는 게 다 있다. 신기한 것, 이상한 것, 황당한 것, 어이없는 것, 미처 기억하지 못했던 것, 이제서야 알게 된 것 등 흥미진진한 것 투성이다. 옛날 TV, 즉 영상 아카이브를 재편집해 만든 프로그램이 KBS <다큐 인사이트- 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코리아>(이하 <모던코리아>)다.

<모던코리아> 시즌1의 첫 방송은 1980년대 대학생이던 386세대를 다룬 <우리의 소원은>이다.

<모던코리아>는 2019년에 첫 방송을 시작했다. 지금 소개하는 게 늦었지만 2021년 3월부터 방영한 <모던코리아> 시즌 2가 5월 13일에 열린 제57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교양 작품상 수상이 계기가 됐다. 지난 4월에는 <모던코리아> 시즌 1이 글로벌 다큐멘터리 전문 OTT 플랫폼 다필름스(#DaFilms)에 진출했다. 또 지난해 9월에 방송한 <모던코리아> 7편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은 올해 50주년을 맞은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모던코리아>는 제57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교양 작품상을 수상했다.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모던코리아>의 이태웅 PD는 방송을 처음 만들 당시의 에피소드를 전했다. “프랑스 예술영화처럼 만들라.” 본부장이 그에게 전했던 업무지시라고 한다. 그는 덧붙였다. KBS에서 나오기 쉬운 말은 아니라고. 결과적으로 <모던코리아>의 제작진은 본부장의 업무지시를 충실히 수행한 듯하다. <모던코리아>는 분명 새로운 문법의 다큐멘터리 방송이다. <모던코리아>를 소개하기 위해 세 가지 포인트를 꼽아봤다.


김기조 디자이너의 타이포그래피.
박민준이 제작한 <모던코리아> 믹스테입.

레트로
<모던코리아>는 레트로라는 문화적 흐름과 함께 한다. 대체로 1980~90년대의 영상 아카이브를 재가공하는 푸티지(Footages)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에 당연한 말처럼 느껴진다. 브라운관 시절의 화면비와 저해상도의 영상, 지금 다시 들으니 묘하게 어색한 영상 속 말투만이 <모던코리아>를 레트로로 규정하는 건 아니다. 김기조 디자이너의 타이포그래피, 레터링 이미지가 <모던코리아>의 (프랑스 예술영화처럼) 세련된 레트로 이미지에 크게 기여했다. 김기조는 붕가붕가 레코드의 디자이너로 유명하다. 김기조와 더불어 음악을 맡은 박민준(DJ Soulscape)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아티스트다. 그는 <모던코리아>가 만들어지기 오래전부터 과거 한국의 대중음악을 작업의 재료로 삼은 음악가다.


<모던코리아: 시대유감, 삼풍>
<모던코리아: 수능의 탄생>
<모던코리아: 짐승>

아카이브
<모던코리아>를 세련되게 만들어준 사람이 김기조와 김민준라면 아카이브에서 이야기를 찾아내고 만들어내는 사람은 연출자와 작가다. 이태웅 PD와 민혜경 작가가 <모던코리아>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은 <모던코리아>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 <천하장사 만만세>(2011), 서울올림픽 3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88/18> 등에서 함께 작업했다. 여러 인터뷰에서 이태웅 PD가 밝힌 작업과정은  속된 말로 ‘노가다’다. 적재적소에 맞는 영상을 어떻게 찾아냈을까, 그 많은 영상을 언제 다 볼까 싶지만 실제로 혼자 몇 달 동안 다 보면서 엑셀로 각 푸티지를 정리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친다. ‘머니투데이’ 인터뷰 내용에 따르면 그렇게 추려진 영상은 30테라바이트 정도 된다고 한다. 누군가는 이 아카이빙 작업이 KBS라서 가능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모던코리아>는 과거의 뉴스, 토론 방송, 드라마, 예능 등 거의 모든 부문의 방송 영상을 재료로 사용한다. 담당 연출자가 1차로 추려진 아카이브를 가지고 민혜경 작가를 비롯한 제작진과 더하고 뺄 것을 정한다. 주제에 따라 외부인이 제작에 참여하기도 한다. 시즌 2의 <짐승> 편은 <고양이를 부탁해>, <말하는 건축가>의 정재은 감독이 연출했다. <짐승> 1980~90년대 여성운동, 성폭력특별법 제정에 대한 내용이다.


<모던코리아: K-POP 창세기>

편집
<모던코리아>의 가장 인상적인 점은 내레이션이 없다는 것이다. 내레이션이 없으면 심심하지 않냐고? 전혀 그렇지 않다. 노가다로 찾아낸 영상과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인터뷰 조합은 지루할 틈이 없다. 내레이션이 없다는 점에서 중요한 것이 편집이다. 편집만으로 내러티브를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각 영상을 선정하고 배치하고 이어붙이는 편집에 분명 제작진의 의도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레이션이 없다는 것은 시청자들에게 불친절하지만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느낌을 준다. 그것이 <모던코리아>를 보는 묘미 가운데 하나다. 내레이션의 부재는 통일, 종교, 재벌 총수, 한일관계, 여성 문제 등 첨예한 주제에서 <모던코리아>가 어느 한 쪽의 비난을 듣지 않고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중요한 장치다. 시즌 1의 <우리의 소원>의 마지막 장면이 그런 점에서 특히 인상적이다. 토크쇼에서 사회자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정치할 거냐고 묻고, 박 전 대통령은 할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균형 잡힌 시각은 <모던코리아>의 장점이지만 매력은 아니다. <모던코리아>를 보는 진짜 재미는 위트다. 글의 첫 시작처럼 <모던코리아>는 온갖 재밌는 영상의 총합이다. 편집은 위트를 만들어낸다. 시즌 2의 마지막 편 <K-POP 창세기>를 예로 들면 윤상의 인터뷰 중간에 윤상이 과거에 출연한 드라마의 한 장면이 삽입되는 식이다. 드라마에서 윤상은 “아, 꿈이었구나”라는 대사를 한다.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누군가는 피식하고 웃을 수 있는 장면이다. 1990년대 말 윤상이 지금과 같은 K-POP 현상을 예상했을까. 이런 식으로 내레이션을 하지 않으면서 <모던코리아>는 주제와 위트를 담아낸다.


모던코리아 방송 리스트

시즌 1
<우리의 소원은>
<대망>
<수능의 탄생>
<시대유감, 三豊>
<왕조>
<휴거, 그들의 사라진 날>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

시즌 2
<포스트 모던코리아>
<왕의 되려던 남자>
<짐승>
<K-POP 창세기>

<모던코리아>는 KBS <다큐인사이트> 홈페이지(https://program.kbs.co.kr/1tv/culture/docuinsight/pc/index.html)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